북송 건국 이후 비록 불교와 도교 사원 건설을 엄격히 제한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으나 불교와 도교 사원에 대한 전면적 조사와 통계 자료는 거의 없다. 『담원(談苑)』에 기록된 "景德中, 天下二萬五千寺, 今三萬九千寺"의 자료는 통상 학계에서 북송 진종(眞宗) 내지 인종(仁宗) 시기 불교와 도교 사원의 격증과 불교 팽창의 주요 근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실제 정황을 보면 불교와 도교 사원 건설을 제한하는 정책의 영향을 받아 이 시기 불교와 도교 사원 수가 급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 승려와 도교 도사의 수가 오히려 감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今)"자가 가리키는 것 역시 가우(嘉祐) 3년이 아니라 진종(眞宗) 천희(天禧) 오년이다. 자료의 기록 가운에서 숫자의 변화는 통계 방식과 범위가 서로 다른 데서 온 결과이며 사회 변화의 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