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연구자들은 ``사려``와 ``지각``을 동일한 의식 차원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서, ``사려미맹``과 ``지각불매``가 서로 논리적으로 충돌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두 명제가 논리적으로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아마도 17세기 기호학파의 미발에 대한 이해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17세기 기호학파 내에서 우암 송시열 주변의 학인들은, 주자의 미발설이 중화신설 이후에도 『중용혹문』을 저작하던 말기에 다시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들은 미발에 해당하는 괘상(卦象)을 바꾼 것에서 주자의 이러한 변화된 태도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우암은 전혀 의식이 없는 곤괘와, 옅은 의식은 있으나 아직 감정으로 전개되지 않은 복괘의 두 층위로 미발을 구분한다. 우암은 이렇게 의식의 단계 설정을 통해 ``사려미맹``과 ``지각불매``의 충돌을 피해가려고 한다. 주자는 사려가 싹트지 않은 상태에서도 결코 흐릿하지 않는 지각, 즉 ``지각불매``를 표상하기 위해서 언제나 복괘를 쓴다. 그러나 ``사려미맹이면서도 지각불매``라는 미발의 포괄적인 모습을 형용하기에는 곤괘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가 곤괘를 들어 설명할 때는 ``사려미맹이지만 지각불매``라는 대비를 쓰지 않는다. 그가 사용한 것은 ``주재하는 주체만 있을 뿐, 대상지향적 주재함은 없다``는 표현이다. 특히 미발을 의식의 유무에 대한 문제의 차원으로 이해할 때 ``지각의 깨어있음[有]``은 ``사려의 움직임[一陽已動]``으로 이해되어 이발이라 여기게 될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처럼 주자는 중화신설 이후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곤·복괘의 비유 속에서 주자는 지각불매[陽]의 ``영속·지속``을 얘기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유자들은 ``불연속``과 ``분절``을 읽으려 했다. 주자는 시종일관 미발시에도 일상적인 의식은 유지된다고 설명한다. 주자는 ``지각``이 동(動)임에도 불구하고 사려나 감정적 동요와는 무관한 미발이 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확언한다. 그것은 ``주재집지(主宰執持)``로서 ``언제나 있는 것``이지 대상지향적 의식이나 감정의 동요로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가 말하는 ``지각``은 ``주재함``의 의미로서 도덕심리학적 차원의 논의이지 의식이나 감정의 유무에 대한 논의가 아님이 명백하다. 이렇게 볼 때 주자 미발론에서 ``사려미맹``과 ``지각불매``는 결코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일 수 없다.
韓國的有些硏究者因爲看``思慮``和``知覺``共爲意識層次上的問題,故以爲朱子所說的``思慮未萌``和``知覺不昧``之間存在邏輯上的沖突.他們這마以爲的主要原因之一是韓國朝鮮時期17世紀畿湖學派學者對朱子未發說的理解.17世紀畿湖學派的主要人物尤庵宋時烈周圍的有些學者以爲``中和新說``時期以後朱子的未發說又變一次,旣他闡寫≪中庸或問≫之時朱子把≪周易≫的坤卦分屬於未發情況.他們以爲這絶然不同與中和新說時期以複卦分屬於未發的態度.對著這樣的認爲宋時烈區分未發情況爲絶無意識狀態的坤卦層次和雖有潛隱的意識却還沒發展到感情狀態的複卦層次.宋時烈以爲這마區分就能脫開思慮未萌和知覺不昧之間邏輯上的問題,以能達到維護朱子的目的.但是,朱子常以複卦描述知覺不昧的狀態.不過,他認爲要描述``思慮未萌而知覺不昧``的未發的全面狀態則是坤卦更爲妥當.却朱子用坤卦說明未發狀況時,則他不提``思慮未萌而知覺不昧``的命題而常用``但有能知覺而無所知覺之事``的命題.他特別强調不要以未發理解到意識層次上的問題,要不然``知覺不昧(有)``容易被誤解爲``思慮萌動(一陽已動)``而知覺的不昧被誤解爲已發狀態.朱子從中和新說以後一向堅持一貫的態度.通過坤卦複卦的比喩朱子强調知覺不昧(陽)的``永續·持續``,不過一些朝鮮儒者看出``不連續·分節``.朱子始終主張未發時日常意識的仍然存在.他主張知覺的``動``絶不同於思慮或感情的動繞,故知覺的``常有``絶不妨碍未發狀態.因爲知覺的不昧乃是``主宰執持``的``常有``而不是感情動繞等的``發生``.再說,他所說的知覺병不是意識或感情有無的問題,而是主宰執持等的道德心裏學上的問題.由此看來,朱子未發說中的``思慮未萌``和``知覺不昧``乃邏輯上絶不沖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