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피랍되었던 조선인의 후예로서 17세기 말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사츠마번(薩摩藩)에서 활동했던 조선통사(朝鮮通詞)의 제도화요인을 밝히고 그 의의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조선 표착민 송환체제와 관련시켜 사츠마번 조선통사의 등장과 역할을 설명한 후 조선-사츠마번간 밀무역(密貿易)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사츠마번 조선통사의 존재와 제도화 요인을 분석한 기존 학자들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필자는 사츠마번 조선통사 제도화의 요인으로서 (1) 번주(藩主)를 위시한 번차원(藩次元)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2) 조선통사 스스로의 높은 사명감과 자기희생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나에시로가와(苗代川) 이주 후 조선인들의 정착과정에서의 정체성 유지를 가능하게 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분석하고 조선통사의 발전 역시 그러한 큰 틀의 일환으로 전개되었음을 설명했다. 이와 함께 특히 통사가(通詞家)로서 역대 이가(李家) 통사들의 높은 사명감과 희생정신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나에시로가와의 자생적 조선어학습서로 평가되는 『표민대화(漂民對話)』의 내용분석을 통해 제도화를 위한 조선통사들의 숨겨진 노력을 도출해 보았다. 끝으로 필자는 사츠마번 조선통사의 제도적 발전이 사츠마번 차원의 각종 지원 조치를 토대로 조선통사 스스로가 높은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였다는 점을 결론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