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중세 말과 근대 초 유럽에서 사회적 일탈자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마녀에 대한 인식은 다른 일탈자에 대한 인식과 달랐다. 당시 사람들에게 마녀는 실재하는 사람인 동시에 상상의 존재이기도 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마녀의 실재와 상상이라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특히 마녀와 체액 병리학과의 상호 관련성을 추적할 것이다. 마녀와 멜랑콜리 체질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본 논문은 중세 말과 근대 초 대표적인 악마 논고들 즉 헨리 인스티토리스와 야콥 스프렝거의 『마녀의 망치(1486)』, 요한 와이어의 『악마의 환영술에 관하여(1486)』, 장 보댕의 『마녀의 빙의망상에 관하여(1580)』를 비교분석한다. 『마녀의 망치(1486)』는 다양한 마녀 행위들을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마녀의 망치(1486)』는 멜랑콜리 체질이 악마와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하지만 마녀와 멜랑콜리 체질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와이어는 마녀사냥을 반대했고 그의 비판은 마녀와 멜랑콜리 체질 사이의 관련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마녀들은 나이가 많고 멜랑콜리 체질의 여성들이었다. 의존성은 멜랑콜리 체질의 전형적인 증상이며, 멜랑콜리 체질의 늙은 여성들은 쉽게 악마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와이어는 그녀들을 마녀로 처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 우선 의사의 진찰을 받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댕은 이러한 견해를 맹렬히 비난했다. 보댕에게 마녀의 사악한 행위는 실재하고 분명한 것이었다. 멜랑콜리 체질에 관해서도 보댕은 와이어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보댕은 멜랑콜리 체질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마녀와 멜랑콜리 체질 사시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비교분석을 통해 본 논문은 멜랑콜리에 관한 견해가 16세기 초반 급격하게 변했음을 확인했다. 고대 이후 멜랑콜리 체질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와 긍정적인 견해가 동시에 존재했었다. 긍정적인 견해는 특히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첫 사반세기까지 유행했었다. 하지만 종교개혁 때문에 멜랑콜리는 부정적인 함의를 얻게 되었고 이러한 부정적 사고는 16세기 후반세기에 주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