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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선비들의 구곡경영과 최남복의 백련서사
Yongnam Sunbi`s Gugok Management & Chae Nam-bok`s Backryen-seosa
이종호 ( Jong Ho Lee )
영남학 vol. 18 99-158(60pages)
UCI I410-ECN-0102-2012-910-001789768

주희의 무이구곡 경영과 「무이도가」가 조선에 소개된 이후 한국의 구곡문화가 전개되었다. 초기 구곡문화의 전개는 15세기 영남사림파의 형성과 연계되어 있다. 성리학적 세계관을 공유한 영남사림은 은둔과 소요의 공간으로 구곡원림을 기획했다. 아울러 문학이나 회화, 건축 등을 통하여 구곡경영의 의의를 부각시켰다. 조선의 구곡문화는 조선중기 퇴계 이황을 만나면서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을 드러낸다. 이황은 구곡을 이상과 현실의 조화에서 이해했다. 도가적 별유천을 부정하고 현세에서 이상향을 찾으려했다. 이황은 주희의 「무이도가」가 주로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보아 도학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다. 이황은 「무이도가」를 차운하고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원림을 경영하여 영남학파 구곡시가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율곡 이이는 직접 석담에서 구곡원림을 경영하면서 「고산구곡가」를 지어 기호학파의 구곡문화인식에 전범으로 작용하였다. 이이의 「고산구곡가」는 주자학의 조선적 전개를 표지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뿐 아니라 이황이 미처 성취하지 못한구곡문화의 토착화를 웅변하고 있어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 기호 서인들은 보고 배울 모델이 있었기에 구곡경영에 적극적인 편이었다. 반면에 이황이 몸소 구곡경영을 시범하지 않았기에 18세기 후반까지 영남의 구곡경영은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오면 영남선비들의 구곡경영과 구곡시가 창작이 활기를 띠어간다. 그 가운데서 최남복(1759~1814)의 구곡경영은 주목할 만하다. 최남복은 울산 반구대 주변에 백련구곡을 지정하고 백련서사를 경영했다. 백련구곡은 주희 이래 틀이 잡힌 구곡문학의 18세기 말기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최남복은 여러 편의 한시와 산문을 통해 백련구곡의 의미와 이상을 밝혔다. 최남복의 연화동천 경영은 혼란한 현실 상황을 단순히 도피하여 은둔하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았다. 그는 서학이 유교전통의 예교질서를 흔들고 당쟁의 편파적인 의론이 사대부의 은둔을 촉진하는 현실을 성리학적 이념으로 무장하여 극복하고자 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안정을 통해 육신의 병고를 다스리고자 하는 목적도 한 몫 했다. 장수와 유식의 공간인 蓮華書社에서 최남복은 독서와 강학을 통해 虎溪三笑로 유명한 慧遠法師의 晉代風流를 재현하고자 했다. 또한 연화동천의 산수경치를 폭넓게 감수함으로써 보다 심화된 天人合一의 경계에 다가서려 했다. 최남복은 백련동천에서 온갖 시름과 번뇌가 소거된 淸虛한 경지를 보고 싶어 했다. 요컨대 최남복의 구곡경영은 난세에 明哲保身하는 한 가지 방편으로 추구된 측면이 강하다. 사대부가 뜻을 잃으면 산림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당쟁이 살육과 복수로 점철되자 조선은 참으로 벼슬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당쟁이 신선세계와 같았던 조선을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최남복의 明哲保身이 주는 정치사적 의미이다. 최남복은 사적 욕망을 억제하여 명철보신의 생활철학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 한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조선후기 구곡경영의 이 상향이 드러내는 양면성이다.

In late 18th century, Yongnam sunbi`s gugok management and gugok poetry writing showed signs of activity. Chae nam-bok(1759~1814)`s was considered the most noteworthy. He designated Backryen-gugok and managed Backryen-soesa near the Bangudae in Ulsan province. The Backryen-gugok was typically characteristic of late Chosun`s gugok culture which originated in the Chuxi of Namsong very well. Chae said so clearly his utopia through gugok poems and sansu proses in chinese characters. What is the goal of Chae`s management of Yeonhwa-dongchun? Simply escaping from a chaotic realities or renouncing the world was not his ultimate goal. He thought we should protect the traditional Confucian moral philosophy which was being destroyed due to a pollution by Western Learning, espec. Catholics. Besides he believed that the cruel strife between the parties stimulate Sadaebu, cultured noblemans secluding themselves in a mountain hermitage. Therefore Chae decided to overcome conflicts and troubles between realities and ideals by rearmament of Neo-confucian ideology. In the space of changsu and ganghak, Backryen-seosa, Choe would try to practice reading of classics and discussion about philosophical subjects, while he had a desire to reproduce Dongjin dynasty`s poongryu(wonderful moods) being famous by ``Hogaesamso`` episode came from Heawon who was a high buddhist monk of China at the same time. In short, he managed Backryen gugok to take care of his health and improve his mental state through enjoying beauties of nature. So he hoped to reach a unity between heaven and man by controling man`s endless human desire. That is a ideal utopia that he dreamed.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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