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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의 선도(仙道)와 천손문화(天孫文化)
韓國の仙道と天孫文化
박성수
선도문화 vol. 10 101-130(30pages)
DOI 10.35573/JKSC.10.4
UCI I410-ECN-0102-2012-240-001828834

한국고대사에 관한 기록으로는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규원사화』와 1970년대에 발견된 『한단고기』가 유명하다. 그래서 요즘은 이 두 사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상고사에 관한 고전적 사서인『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 두 개의 사서에도 상고사에 관한 결정적인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라를 건국한 육부(육촌)의 사람들이 단군조선의 유민이었다고 하는 기록이다. 종래 고구려와 백제는 단군조선의 유민이 건국한 나라였다고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신라가 조선유민이었다는 것과 하늘에서 내려온 천민(天民)의 후손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백마가 하늘에서 태워 온 박혁거세를 왕으로 해서 신라를 건국한 육부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구지봉으로 내려와서 가락국을 건국한 수로왕과 같이 어딘가에서 온 유민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세우는가를 잘 알고 있었고 巨大한 王城을 짓고, 四方에다 山城을 쌓아 수천 명의 弓師들로 하여금 王城을 지키게 하였던 것이다. 고구려의 第1首都 桓仁에 가보아도 사방에 4부족이 살고 있어 중앙의 왕성(五女山城)을 護衛하고 있었다. 朝鮮에서 亡命한 遺民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옛 朝鮮에 살았던 慣例에 따라 王城을 지어 새 나라를 세우고 王城을 지켰던 것이다. 그들은 천신의 후손 즉 천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며 해마다 天祭를 열어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자 시조인 조상을 모셨다. 이것이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천제 또는 산신제로 계승되었으며 오늘의 추석과 개천절 등 각종 명절과 국경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러한 천제와 더불어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이념이 신라의 광명이세 이념으로 계승되어 사회질서를 바로잡았던 것이다.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고, 신의를 존중하고, 사람을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 것이며, 싸움터에 나아가서는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삼교를 포함한 풍류도이고, 신라의 세속오계였던 것이다. 신라는 ‘새 나라’라는 뜻으로, 새 나라는 옛날의 단군조선을 재건하였다는 뜻이었다. 새 나라의 중심세력은 화랑도花郞徒였다. 신라 화랑도의 수련은 첫째 선도의 도의를 닦아 세속오계를 지키게 하는 것이었고, 둘째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즐기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째 산수를 즐기며 신체를 단련하였다. 이러한 수련법은 삼국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삼한과 단군조선으로 소급해 올라가는 오랜 전통이다. 화랑도의 수련은 일본열도로 이민한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었으니 英彦山의 修驗道가 그것이다. 영언산의 수험도에도 화랑도와 똑같은 계율에 따라 수련하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英彦山은 일본 북구주에 있으며, 수험도가 일본 본토의 近畿지방으로 전파되어 사무라이(武士) 등 일본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신라의 천제와 천손문화는 남 구주의 阿祖山과 太伯山 그리고 韓國岳에 전파되어 일본민족의 시조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韓國上古史に關する記錄としては『揆園史話』と『桓檀古記』が有名である。そうして、最近は此の2書に學界の關心が集中している。しかし、上古史に關する古典的史書である『三國史記』と『三國遺事』を無視することはできない。このふたつの史書(史記, 遺事)にも上古史に關する決定的な記錄があるからである。その代表的な例が新羅を建國した六部(六村) の人達が古朝鮮の遺民であったという記錄である。從來,高句麗と百濟は檀君朝鮮の遺民が建てた國であったと推定されている。しかし、新羅が古朝鮮遺民の後孫であったことと天から降りてきた天民の後孫であったことに對しては全然關心が無かった。上古史を意圖的に抹殺しようとした結果である。白馬にのせられて天からおりてきたてきた幼い朴赫居世を王にして新羅を建國した六部の人達は、天から龜旨峰に降りて九部落の伽倻人が首露王を推戴して駕洛國を建國したことのよぅに彼等もどこからかきた遺民であった。そうなので、その人達は國をどのように立てることかについてよく知っていた. 卽ち先ず巨大な王城を建てて王と臣下の居處にしたのち、四方に山城を積んで數千名の弓師たち駐屯させ王城を守るようにした。高句麗の第一の首都である桓仁に行っ見ても、四方に四部族が住んでいて、中央の王城(五女山城)を護衛していた。古朝鮮で亡命してきた遺民の後孫たちだったので、彼らは先祖が昔朝鮮に城があっことおぼえていた。それで王城を築って新しい國を立て、王城を守ったのである.その人達は又た神の後孫、すなわち天孫という誇りを特っていて、每年天祭を開いて、天から降りた天神であると同時に始祖である祖上にんた。これが三韓時代と三國時代、そして高麗、朝鮮時代の天祭、あるいは壇廟又は山神祭につながって、今の秋夕と開天節などの名節日になったのである。天祭と共に古朝鮮の弘益人間、理化世界とか新羅の光明理世の敎えも傳たわったであろう。新羅の光明理世の敎えを一名世俗五戒と言った。1) 家では親孝行2)出ては國に忠誠、3) 友には信義、4) むやみに人を殺すな、5) 戰場では逃れるなと敎しえた。これが儒彿仙三敎を含む風流道であり, 新羅の世俗五戒であった。新羅というのは、新しい國という意味で、新しい國は昔の古朝鮮を建て直したということである。新しい國の中心勢力は花郞徒であった。新羅の花郞徒の修練は、1) お互に仙道の道義を修め2) 歌を歌いながら山水をしたしめ3) 自然に親しみながら心身を鍛えよ。このような修練方法は、古朝鮮以來三韓をえて新羅に傳わった文化である。花郞徒の修練は又た日本列島に移住した人人によって日本九州英彦山にも傳播された。英彦山の修驗道にも花郞道とそっくり似た戒律によって修練した。英彦山の修驗道は本州の近畿地方へも傳播され日本文化の重要な一部になった。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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