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崔致遠, 857~?)은 본래가 당나라 과거에 급제한 엄연한 유학자 출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원은 종종 신선사상과 매우 깊은 관련을 지닌 인물로 거론되었다. 특히 『해동전도록』 『해동이적』 『순오지』 『청학집』 등의 조선시대에 나온 선도관계 저술에는 최치원을 우리나라의 신선사상을 계승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그에 관한 기술을 비교하면서 최치원이 도교적으로 신비화된 원인을 분석하고, 그의 도교사상에 대한 정당한 평가 문제를 제기하였다. 불우한 천재 최치원을 둘러싸고 신비화된 신선설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사실 최치원이 남긴 글들을 보면 그는 중국 도교뿐 아니라 고유의 선도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그는 도교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것은 당나라와 신라를 넘나들며 중국사상과 고유사상을 두루 섭렵하면서 국제적이고도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고 있었던 까닭에, 그가 중국 도교의 허황된 측면에 대해 비판하면서, 풍류라는 우리 고유의 선도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고 본다.
新羅末大學者崔致遠(857~?)本來就是及第唐科擧之儒學者身分. 但是他常常被看做與神仙思想密切關係的人物. 特別『海東傳道錄』 『海東異蹟』『旬五志』 『靑鶴集』等朝鮮時代仙道關係著作, 把他寫成爲繼承發展韓國仙道之重要人物. 本稿, 通過比較高麗與朝鮮兩代之崔致遠的記述, 不但分析了對於他的道敎神秘化之原因, 而且提出了對於他的道敎思想之評價問題. 後代繞着不遇的天才崔致遠, 把他神秘化的神仙說話也面世了. 其實一看他寫的道敎關係文章就知道他自己對於中國道敎與固有仙道兩方面的理解都헌深. 但是영一方面批評道敎的文章也有了. 當時, 出入唐與新羅之間而都涉獵中國與固有之思想, 他能具備了國際的客觀的眼光, 所以他能指出了中國道敎中之虛荒的弊端而且存錄了固有仙道風流之精確的本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