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소설이 그 장르적 성격을 지시하기보다 근대적인 문학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1920년대 들어 소설 비평이 본격화되면서,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게 된다. 이 시기의 소설 비평은 전문적인 비평가가 아니라,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에 의해 이뤄지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소설 비평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다운 소설`이란 그 자체로 소설의 읽기 및 쓰기의 준거가 된다. 전대의 소설의 "참스러움"이 작가의 체험을 통해 보증되었으며, 작가와 작중 인물이 동일시되는 사소설적 읽기가 되었다면, 이 시기의 소설은 작가와 소설의 인물을 분리하고, 작가의 체험과 현실을 분리함으로써 좀더 허구에 근접하게 된다. 또한 사소설적 읽기가 작가와 독자가 서로를 잘 아는 좁은 문단이라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었다면, 이러한 작가와 작중 인물의 분리 및 허구의 강화는 작가의 경험 세계를 넘어선 더 보편적인 세계로 소설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소설의 참스러움을 보증해주던 작가의 체험이 더 이상 그 진실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됨으로써, 이제 소설은 자신의 진실성을 다른 식으로 증명할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 시기의 소설 비평에서 소설다운 소설, 소설의 참스러움을 보증하는 것은 바로 `자연스러움`이라는 감각이었다. 『조선문단』과 『개벽』의 월평, 신년평 등에서 자연스럽다 혹은 부자연스럽다는 말이 압도적으로 소설 비평에 활용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소설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보편성을 부여받게 되며, 또한 개별적인 감각을 묶어주는 공통감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공통감의 존재를 통해 소설은 자신의 안과 밖, 작가의 경험 세계와 독자의 경험 세계를 융합시킬 수 있었으며, 하나의 보편적 공동체를 가시화하게 된다.
1910年代の小說というものはそのジャンルとしての性格を指示するより近代的文學そのものを意味したのである。ところが1920年代に入って小說の批評が本格化されながら芸術性あるいは文學性ではなく"小說らしい小說"、"ちゃんとした小說"というものが問題になったのである。それはすでに理想的小說という一種のモデルが想定されているのを意味するともいえる。この時期の批評はプロの評論家ではなく小說家によってなしたもので、實際のところ、評論家と小說家とはほぼ一致していたのである。それゆえに小說についての批評はそのまま小說を書くに準據になったのである。小說字體の眞實性の根據を作家の體驗の反映から探した1910年代の小說と違ってこの時期の小說は作家と小說の人物を分離し、自分の領域をもっと普遍的に擴張して行く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そして作家の想像上に構築された小說は自分の眞實性の證明のため、また小說の內外の融合のため"自然さ"を要求される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この"自然さ"というものは小說の內外を系ぐ一種の媒介になる共通の感覺といえるもので,それは先驗的ものではなくこの時期の小說批評によって初めて規定され、構成されたものである。これによって小說は前代の小說と違ってもっと普遍的領域まで進入することになれ、當代日本の私小說とも弁別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