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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사경회의 교육사적 의미
1910年代における査經會の敎育史的意味
이명실
UCI I410-ECN-0102-2012-370-001873334

사경회는 성경 공부를 위해 개최된 모임으로 1880년내 개신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1890년대 중반 이후부터이다. 특히 1907년 대부흥 운동에 따른 기독교의 보급은 새로운 신도를 관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사경회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개최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1920년대 이후 조선인의 교육열을 이끌었던 배경의 하나로 1910년대 사경회의 관련 가능성에 주목한다. 제도적 교육이 조선 민중에게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 그리고 조선 민중의 교육행위에 대한 모습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던 19101년대 전반, 기독교 보급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성경공부가 조선 민중, 특히 여성의 문해교육의 한 모습이었다는 측면에서 사경회의 교육사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査經會は聖經勉强のために開催された集まりで、1880年代に改新敎が朝鮮に普及されたからはじまったが、本格的に活性化されたのは1890年代の半ばからであった。特に1907年の大復興運動の結果、キリスト敎の普及は新たな信徒を管理し、敎育できるシステムの重要性をもたらした。査經會はこのような要求から、全國の各地で多樣な階層を對象に開催されたものである。本硏究では1920年代以降における朝鮮人の敎育熱を導いた背景の一つとして1910年代における査經會の關連可能性に注目した。制度的敎育が朝鮮民衆に十分に普及していなかった時期、そして朝鮮民衆に關する敎育行爲の在り方が充分に知られていない時期である1910年代の前半、キリスト敎の普及という名目で行われた聖經勉强が朝鮮民衆に對する文解敎育の一つの側面であったことから査經會の敎育史的意味を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本硏究と通して次のような特徵が明らかになった。第一に、女性を對象にした査經會がおおく開催されたのは女性の參與が積極的に行われたことを意味する。査經會に通いながら習得した讀み書き能力とこれを通して得た新たな知識と情報は女性たちが公的社會へ進入する條件になり、また女性を中心にした家族關係や社會關係を變化させる可能性を持っていた。第二に、査經會のもつ敎育史的意味は、査經會の一次的目的がキリスト敎の普及にあったが、朝鮮人の文解敎育にも大きな役割を?當した。聖經勉强の敎育課程の中で讀み書きが明示的に含まれた場合はあまり多くなかったが、勉强の中で聖經を理解し讀むのが必要であったことから、分解率の增加に寄與した側面は評價すべきであろう。これは1920年以降における朝鮮人の敎育熱が現れた原因を說明してくれる一つの要因になることから、この硏究の意味を言えるだろう。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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