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5월 1일 일본에 도착한 113명의 한국 유학생들은 이후 한국 역사상 최초의 재일유학생 단체인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大朝鮮人日本留學生親睦會)≫를 결성하고 기관지 『친목회회보(親睦會會報)』를 발행한다. 본인이 이 글에서 분석하는 대상은 바로 『친목회회보』에 나타나는 ≪친목회≫의 존재 조건이다. 구체적으로 본 분석 작업은 지금껏 『친목회회보』를 둘러싼 논의에서 은폐되어온, 정확히는 그 영향력을 탈색하는 데 경주해온 `일본`의 존재를 드러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는 근대 국문자(國文字)의 지정학적 위치의 재구를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서 구상 중인 1890년대 특히 갑오개혁기 이후 매체장(media-sphere)의 형성 과정에서 잡지 『친목회회보』의 `위치`를 비정하기 위한 기초 분석 작업임을 밝혀둔다. 거시적 측면에서 본 분석 작업이 목적하는 바는 「번역」과 비교의 관점에서 근대 텍스트의 「지역적 교환 및 분배 구조와 그 기능」의 탐구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위 연구 주제의 일부분으로 근대 국문자 담론을 재구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 축으로서 일본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 분석한 것은 세 가지로 『친목회회보』의 발간 조건으로서 일본의 당대 관련 법령인 <신문지조례>와의 상관관계(Ⅱ장), ≪친목회≫의 수익 구조(Ⅲ장), ≪친목회≫의 출판물 수급방식(Ⅳ)이다. 이를 통해 확인한 지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친목회회보』는 일본 당국의 검열에 의해 그 출판 및 발행에 있어 제약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편익을 제공받았다. 둘째, ≪친목회≫는 본회의 운영 및 『친목회회보』 등 각종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재원이었던 기부금 및 기부자 양 측면에서 모두 일본(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셋째, ≪친목회≫는 본회의 출판물 수급의 상당 부분을 일본인에게 기증받아 『친목회회보』의 기사 및 회람에 이용하고 있었다. 넷째, 일본 측의 기부금 및 기증 서적의 기증자는 당대 일본의 정치문화 지형에서 일정한 지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