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安軸(1282~1348)이 1330년경에 創作한 景幾體歌 <關東別曲>을 중심으로, 거기에 사용된 借字表記 7개 항목을 選定하여 解讀을 시도하고, 그 결과를 國語史的 觀點에서 分析 · 檢討함을 目的으로 한다. 특히 [麗·美]의 意味인 `古溫`[*고온] 표기의 새로운 발견을 계기로 國語史에서 존재했다고 알려진 `脣輕音`에 대한 여러 見解를 약술하고, 이 자료가 國語史의 爭點 解決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景幾體歌는 韓國語를 漢字의 音 · 訓을 빌려 國語 語順으로 表記한 자료라는 점에서 國語學의 硏究對象이 된다. 그러나 우리 國語學界에서 이 자료는 거의 연구된 바 없으며, 소개된 지 70년간 주로 古典文學의 관점에 서만 다루어져 왔다. 제2장에서는 硏究對象인 <關東別曲>의 作者와 創作年代, 그리고 『謹齋集』의 異本검토를 통해 國語史 資料로서의 信賴性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安軸이 1329년 9월 이후 대체로 1330년경에 창작하여 1348년 이전까지 文字로 기록한 것이 분명하며, 후대에 故意的인 改作이나 原典의 毁損이 없는 신뢰할 만한 자료임을 확인하였다. 제3장에서는 <關東別曲>(전9장) 중에서 7개 항목의 借字表記를 선별하여 高麗時代 및 朝鮮前期 文獻資料를 근거로 삼아 國語史的 觀點에서 자료를 분석하고 解讀하였다. 이를 통해 文學硏究者들의 解讀에 여러 군데 誤謬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들을 새로운 근거로써 修正하였다. 文法史的으로 아직 조명받지 못한 `無豆舍叱多`[*업두샷다]와 `藩甲豆斜羅`[*반갑두샤라] 등의 形態分析과 形態素의 序列의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놓았다. 3.4 "爲 古溫貌 我隱伊西爲乎伊多"에서 `古溫`은 高麗語[*고온]으로 解讀되는데, 이는 1461년 『楞嚴經諺解』에서 脣輕音(ㅸ)이 소멸되는 것보다 130년 전에 나타난 異例的인 語形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4장에서는 `古溫`[*고온]에 대한 解讀 결과를 바탕으로, 國語音韻史 硏究의 爭點 主題인 脣輕音(ㅸ)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요약하고, 각 견해가 해결해야 할 課題 및 새로운 解釋의 가능성은 없는지를 검토하였다. 學界의 通說인 `音素說`뿐만이 아니라 모든 견해가 이 자료를 對象에 넣지 않고 硏究하였으므로, 앞으로 이 새로운 자료를 포함하여 再檢討할 필요가 있다. 특히 脣輕音(ㅸ)이 `ㅂ` 維持語와 `오/우` 維持語의 `折衷的表記`라는 견해는 이 실증적 자료의 발견으로 새로운 假說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 글을 통해 그간 논의가 부족하였던 景幾體歌도 國語史 硏究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앞으로 기존의 借字表記 자료에 대한 精密한 再分析과 새로운 자료의 積極的인 發掘을 통해 國語史가 올바르고 균형 있게 立體的으로 記述되기를 희망한다.
本稿は、安軸(1282~1348)が1330年頃創作した景幾體歌<關東別曲>で使用された借字表記の中で7つの項目を選んで解讀し、それらを國語史的な觀点から分析 · 檢討することが目的である. 特に、[麗·美]の意味である`古溫`[*고온]の表記を新しく發見し、それを基に國語史の中で旣に存在していたと知られている`脣輕音`の樣樣な見解を略述した。また、この資料が國語史で主な爭点になっている問題の解決にどのような役割を果たせるかと言う点も檢討した。景幾體歌は、韓國語を漢字の音 · 訓を借り、韓國語の語順に徒って表記した資料であると言う觀点から國語學の硏究の對象になる。しかしながら、南韓の國語學界に置いてこの資料についての硏究はほとんど行われていない實情である。この資料が初めて紹介されてからほぼ70年になるが、この資料についての硏究は主に古典文學の分野で行われてきた。この論文は5章から構成されている。第2章では、硏究對象である<關東別曲>の作者と創作年代、そして『謹齋集』の異本の檢討を行い、それを通じて國語史の資料としての<關東別曲>の信賴性を確保しようとした。その結果、この作品は安軸が1329年9月頃から1330年頃にかけて創作いた後、1348年以前に文字で記錄された物であることが明らかであり、後代になっても故意的な改作や原典の毁損のない信賴できる資料であることが確認された。第3章では、<關東別曲>(全九章)の中で7つの項目の借字表記の資料を選び、これらを高麗時代と朝鮮前期の文獻資料を基に國語史的な觀點から分析して解讀し再構成した。その結果、文學硏究者だちの解讀には幾つかの誤った解釋のあることを發見し、これらを新しい資料を根据に修正した。しかしながら文法史の分野の中で今までまだ照明されていない`無豆舍叱多`[*업두샷다]と`藩甲豆斜羅`[*반갑두샤라]等の形態分析と形態素の序列などについての問題は、これからの課題として殘して置いた。3.4の"爲 古溫貌 我隱伊西爲乎伊多"の中の`古溫`は高麗語[*고온]に解讀されるが、これは1461年『楞嚴經諺解』で脣輕音(ㅸ)が消滅される130年前の時代に現れた異例的な語形である点で注目に値する。第4章では、`古溫`[*고온]の解讀の結果を基に國語音韻史硏究の主な爭点である脣輕音(ㅸ)の今までの見解を略述すると共に、各各の見解が解決しなければならない課題と新しい解釋の可能性についても檢討した。今までの國語學界の通說になっている`音素說`を初め樣樣な見解はこの新しい資料を參考にしていない硏究の結果である。そのため、これからはこの新しい資料を含めて再檢討する硏究が必要あると思う。特に、この實證的な資料の發見で、脣輕音(ㅸ)が`ㅂ` 維持語と`오/우` 維持語の`折衷的な表記`であるという見解が新しい假說を提起することができるであろうという点も指摘した。この論文の結果、今まではあまり論議されていなかった景幾體歌が國語史の硏究に寄與できる重要な資料になりうることを確認した。この先の硏究は、旣に存在する借字表記の資料について精密に再び分析を行う一方、積極的に新しい資料の發掘に取り組んで、國語史が正確で均衡の取れた立體的な形で記述されることを期待するところ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