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gasser의 誇 (1946년의 봄)은 型態上으로나 ◎語面으초 보거나 傳統的인 掃情誇로서 詩題가 지적하고 있듯이 戰後 첫번째로 맞게된 봄에 임하여 악몽과도 같은 히틀러의 폭정에서 살아남은 감회를 반신반의 하는 태도로 읖으고 있다. 그러나 戰後不過한 世代를 지내고 난 오늘날의 독일戰後世代들에게 이 誇는 「가슴에 와 닿지 않는 誇」가 되어버렸다. 그 原鑛은 우선 戰後世代가 히틀러의 폭정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였다는데도 있지마는 이 誇가 지니고 있는 ,,난해성$quot;에도 문제가 있다. 이를 具畿的으로 밝히기 위하여 제일부에서는 우선 이 誇 自畿를 分折검토 했고 제이부에서는 이 誇가 戰後經代의 讓者層에게 그 共感帶를 상실하게 된 原因을 究明코저 試圖했다. 詩作에 있어서 自然이나 神話를 活用함은 傳統的 予法에 속한다. 그러나 戰後世代中 都市에서만 成長해온 讀者들은 아네모네 꽃을 모른다. 또한 희랍神話의 催界가 讀書壤들의 一般的 敎養이였던 傳統은 이미 今世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쇠퇴되어 業고 오늘날에는 완전히 살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誇가 讀者와의 對話를 지속하고자 할 때 이와같은 讀者層의 內的變化들은 誇作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이미 1945년에 쓰여진의 G, Eich誇(Inventa)논에 들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