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중세 지방 분권 제도는 근현대 독일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데 그 출발점 중의 하나가 된다. 프랑스나 영국은 왕을 중심으로 중앙 집권적인 근대 국가 체제를 구축하였으나 독일에서는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제후들이 주축이 된 지방분권적 지역 작가가 탄생되었다. 13세기에 "이미 하나의 독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여러 독일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라는 마르크 블로흐의 정의는 이러한 독일의 이질적 정치구조를 잘 대변하고 있다. 독일 역사에 있어서 특징적인 지방 분권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중세 영방에 대한 개별적 실례연구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영방이란 세속 제후나 성직 제후가 각자의 지배 영역 내에서 재판권이나 화폐주조권, 관세징수권, 축성권과 같이 지배권 형성에 토대가 되는 법적, 경제적 권리들을 집중화하여 생겨나는 중세의 정치 공동체를 의미한다. 지역간의 정치적 특수성을 배제하면 대 다수의 중세 영방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유기체이기에 실례 연구를 통한 중세 독일의 지방 분권 제도를 고찰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파사우 교구는 중세 독일의 교구들 중에서 사목영역이 가장 광범위하여 더욱 연구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교구의 토지대장(Urbare), 주교 사료, 수도원 토지대장, 수도원의 연보(Annalen), 전기물(Vitae), 13세기 로마법의 영향을 받은 교회법(Canones)을 분석하였고, 사위인조의 여부를 밝히기 위하여 제국법령(Constitutiones), 여타 인접 교구들의 사료들과 3차(1178), 4차(1215) 라테란 공의회에서 제정된 교회 법령들을 비교 연구했다. 제1장에서는 中世盛期의 정치·사회적 배경과 교권과 세속권의 상호관계를 밝히고 있고 2장은 家門史 연구의 일환으로 Gebhard의 혈연관계를 다루고 있다. 3장은 교회 정책에 관한 장으로 교구의 말단 조직인 본당(本堂)이 영방 통치 기구로 활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수도원 정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주교가 영방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해 구성한 통치 조직은 5장에서 고찰되었다. 효율적인 지배권을 위해 겝하르트는 교회법에 능통한 성직자를 영방의 주요직에 임명하였고 특히 로마법의 수용은 집권적 지배 체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6장에서는 교구의 미니스테리알렌 계층이 사회사적 측면에서 조사되었고 7장에서는 주교의 상업진흥정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 졌다. 원거리 무역은 시민 계층의 성장을 재촉하였고 시민들은 점차 정치참여권을 요구하게 된다. 주교에게 있어서 시민들의 경제적 힘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는 시민들과 공조하게 되고 반면에 이들은 주교의 영방통치에 적극 동조하였다. 9장에서는 주교와 인접 세속귀족들의 관계를 서술하였고 10장에서 필자는 Gebhard가 봉건영주로서 영방에 귀속된 토지를 관리하는 장원제도에 대해 서술하였다. 주교의 치밀한 주도하에 이루어지던 교회영방정책은 교구 내의 저항 세력을 형성케 했다(11장). 12장에서는 Gebhard가 제후로서 신성로마제국에서 차지하는 입지를 조사하였다. 특정 주교의 다양한 통치 유형을 조사하면서 필자는 中世盛期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과정에 새로운 지배구조가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封을 매개로 한 봉주와 봉신의 개인적 지배 관계가 근간인 봉건적 통치 구조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었다. 교구의 재산을 보호하고 이에 대한 고권(高權)을 확보하고자 주교는 법적, 정치적, 경제적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을 영방 통치에 등용하였고 이는 근대 관료제의 맹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겝하르트의 활력적인 정책으로 골격을 갖춘 파사우 영방은 대외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중앙 황제권과 로마 교황청과는 협력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적으로 영방을 대표하는 신분제 지방의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는 독일 지방자치의 기원인 중세 영방 형성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