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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후보
남부이딸리아 반봉건개혁 연구 - 프랑스지배기 ( 1806 ∼ 15 ) 를 중심으로 -
정문수
서양사론 56권 175-176(2pages)
UCI I410-ECN-0102-2009-900-008983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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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지배기(1806∼15) 이전 남부이딸리아의 토지부르조아지(galantuomini)는 토지사유화 투쟁을 통해, 한편으로는 영주의 봉건적 권리에 저항하고 또 한편으로는 농민의 用益權(usi civici)을 제한하면서 지방세계의 실력자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범위가 지방세계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토지부르조아지는 프랑스지배기에 실현된 반봉건개혁을 통해 법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토지의 사유화를 보장받고, 토지분배와 교회토지 매입을 통해 토지소유를 더욱 증식시켰다. 더욱이 이들은 사법·조세·행정제도 근대화의 산물인 `행정군주정` 체제하에서 지방 및 중앙관료로 등용되었고 이때부터 그들의 활동범위가 지방을 넘어서서 전국에 걸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비로소 정치세력화 할 수 있었다. 토지부르조아지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최초의 시도가 1820년 나폴리혁명인데, 이들은 혁명 주도단체인 카르보네리아와 이후 소집된 의회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입헌혁명 이후 토지부르조아지는 사적 소유권이 확립된 토지소유자란 측면에서 귀족과 거의 동질화되어 갔던 반면 농민의 토지분배 내지 용익권 요구를 탄압하였다. 입헌혁명 이후 토지부르조아지와 구귀족으로 구성된 토지소유자가 통일운동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농민은 통일주체와 통일에 대해 불신하게 된다. 달리 표현하면, 프랑스지배기의 반봉건개혁 성격이 이후 이딸리아통일운동(Risorgimento)의 전개를 조건지울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강하게 남아있는 남부문제의 원인이 된다. 본고는 이와 같은 남부이딸리아 토지부르조아지의 사회·경제적 부상, 정치세력화, 귀족과의 동질화에 이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농민과의 갈등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본고에서 검증한 내용에 근거할 때, 리소르지멘또를 부르조아혁명으로 보는 정통론과 중간신분의 정치세력화 과정으로 보는 수정론의 주장은 프랑스지배기를 기점으로 각각 논리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엽까지의 리소르지멘또는 부르조아혁명의 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하고, 프랑스지배기 이후 통일 성립까지의 리소르지멘또는 구귀족과 부르조아지가 융해된 중간신분의 정치세력화 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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