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7세기 절대왕정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였던 전반적인 재정제도와 왕정의 실질적인 재정상태, 왕정의 재정업무를 담당한 재정가들의 활동, 그리고 재정활동을 주도한 계층을 중심으로 한 재정가들의 역할과 국왕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절대왕정의 재정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과 계속되는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절대왕정이 유지될 수 있었던 절대왕정 재정계의 전반적인 실상을 밝히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1장에서는 우선 절대왕정의 세제와 징세체계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모든 세입원의 징세체계가 같은 성격의 방식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과 징세관리들의 실질적인 역할이 사적인 재정가들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밝힌다. 그리고 재정업무 절반에 대한 관리감독제도를 고찰하므로써 절대왕정에 자금을 공급한 전반적인 재정구조가 비능률적이고 비합리적이었기 때문에 국왕은 정규제도를 통해서 필요로 하는 자금을 제때에 마련하기 어려웠음을 밝힌다. 2장에서는 17세기 전반에 걸친 재정수입과 지출에 대한 여러 통계자료들을 이용한 비교 분석을 통하여 절대왕정의 실질적인 재정운용상태를 부분별로 세분하여 살펴봄으로써 17세기의 전반적인 재정상태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확인하고, 특히 왕정의 재정수입에서 사적인 재정가들을 통하여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임시수입의 비중이 컸음을 밝힌다. 3장에서는 만성적 재정난에 처한 절대왕정의 재정 자체가 완전히 파산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게 하는데 재정가들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재정가들의 사회적 배경과 구체적인 활동 내용 및 그 규모에 대해서 17세기 중엽에 전성기를 맞이한 재정가들의 파벌을 통하여 살펴본다.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 재정계는 지극히 폐쇄적이면서 동질성을 지닌 집단이며, 재정가들은 기존의 사회계층이나 신분과는 무관하고 단지 재정분야의 이해관계를 근간으로 삼은, 독특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사실상의 한 사회적 범주를 형성하고 있음을 밝힌다. 4장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정의법정(Chambre de Justice)은 재정관계 임시 특별 법정으로서, 그 재판과정은 재정가들의 활동 내용과 그 한계를 시사해 주며, 뿐만 아니라 재정구조와 재정계의 드러난 부분과 숨은 부분을 동시에 보여 줌으로써 재정계의 실상을 밝힐 수 있게 해주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푸께사건(l`Affaire Fouquet)이다. 5장에서는 절대왕정에서 재정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우선 푸께사건에서 드러난 재정가들의 비호세력인 유력자들의 구체적인 재정활동과 재정가들과의 관계를 고찰하고, 재정활동의 주도층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습·법복·성직귀족들로 구성된 유력자들 중에서 고위 재정관리를 별도로 구분하여 그들의 재정활동 방식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절대왕정에서의 재정가들의 역할, 그리고 국왕과 재정가의 관계를 고찰한다. 이상의 연구를 통하여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은 예산이라는 개념도, 근대적인 재정행정과 운용체제도 갖지 못한 채 임시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의존도는 재정가에 대한 국왕의 의존도와 비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재정가를 배출한 절대왕정은 그들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양자의 관계가 파괴된다는 것은 왕정의 응집력이 파괴됨을 의미하고, 나아가 체제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유력자들의 재정활동 현황을 보면 그들이 국왕재정과 재정계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7세기 프랑스 재정은 실질적으로 고위 재정관리에 의해 주도되었고, 그들을 포함한 유력자들과 재정가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이용하였으며, 국왕은 절대왕정의 필요악이었던 재정가와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국왕·유력자·재정가로 구성되는 세가지 요소의 삼각관계 때문에 만성적인 재정적자 상태에도 불구하고 절대왕정은 유지·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