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나 공화국』(The Commonwealth of Oceana)의 저자 제임스 헤링턴(James Harrington)은 격동의 세기인 17세기의 인물이었었다. 이 시기에 영국은 청교도 혁명(Puritan Revolution)과 호국경의 통치(The Protectorate)를 거쳐 왕정복고(The Restoration)에 이르는 격변을 겪었고 그러는 동안 공화주의를 비롯한 많은 사상이 분출하였다. 17세기 공화주의 사상으로 당시에 많은 명성을 얻었던 헤링턴은 18세기 이후 한때 잊혀졌다가 1941년 토니(R. H. Tawney)교수에 의해 "혁명의 원인을 사회, 경제적으로 분석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으면서부터 학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이후 헤링턴에 대한 연구는 영국 혁명의 성격과 원인의 규명 등의 주제와 관련되어 많은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다. 헤링턴에 대한 연구와 평가의 방향은 크게 세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토니교수처럼 "혁명의 動因을 사회, 경제적으로 분석한,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인물"로 보는 것이고 다음은 포코크(J. G. A. Pocock)처럼 "이탈리아의 시민적 휴머니즘(civic humanism)과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를 영국에 도입한 봉건주의 史家"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맥퍼슨(C. B. Macpherson)은 "헤링턴은 부르즈와지의 개념을 파악하고 시장경제의 원리를 알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해석하였다. 헤링턴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그가 『오세아나 공화국』에서 나타내보인 17세기까지의 영국의 봉건사회의 형성 과정의 규명과 17세기의 영국봉건사회의 해체의 주된 원인의 파악을 토지 소유로 인한 봉건적 질서의 수립과 그 와해라는 데에 그의 시각을 두었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로 인한 권력의 소유가 그 때까지의 역사상의 政體를 군주정에서 귀족정으로 변환시키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본 그는 이제 토지 소유가 인민의 수중으로 넘어와있으므로 인민에 의한 민주정치가 필연적이라고 보고 그러한 민주 정치를 위한 기본적인 원리를 천명하였다. 헤링턴이 그의 정치 사상의 전개를 위해 수립한 핵심적인 이론들은 政體循環論, 재산균형론(The theory of balance of property)이었던 바 이를 통해 그를 고전적 공화주의자, 사회 경제사가, 시민적 휴머니즘의 마키아벨리적 전달자, 부르즈와지의 시장 경제 개념을 일찍이 파악한 인물 등으로 그를 해석하였던 것이다. 헤링턴은 항구적이며 안정적인 이상공화국의 수립을 생각하였고 그러한 이상적인 국가의 토대로서 관직교체, 비밀투표, 農地法(agrarian law), 그리고 권력 분립의 4가지를 기본 원리로 제창하고 그 중에서도 농지법과 관직 교체를 이상적이고 공평한 공화국(an equal commonwealth)을 이루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의 저서 『오세아나 공화국』은 이러한 이상국가, 즉 유토피아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또한 유토피아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오세아나는 바로 영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이는 당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영국의 문제를 파악하여 문제들을 가상의 공화극을 내세워서 치유코자한 정치적 유토피아이자, 고대의 법과 질서와 제도로의 복귀를 통하여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의도하에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헤링턴의 정치사상은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의 이론과 시민적 휴머니즘의 이론을 영국의 현실에 적용시켜 참된 공화국으로서의 영국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에 입각한 현실적 공화주의자로서의 헤링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헤링턴의 모습은 그의 생존시의 동조 세력인 헤링턴파(Harringtonian)와 18세기 초의 신헤링턴파(neo-Harringtonian)에 의한 공화주의의 실현 운동에 의하여, 그리고 18세기의 대서양과 프랑스의 공화주의에 끼친 영향력 등으로 증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