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05년 대중정당 체제로 출범한 프랑스 사회당이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과 1920년 分黨이라는 포괄적인 위기 국면을 극복하면서 1936년 총선에서 프랑스 제1당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오뜨-가론느 지구당을 통해 조명한 것이다. 오뜨-가론느 도지부가 연구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정당정치 체제의 발육 부진으로 수많은 정당과 정파가 난립해 온 정치 풍토 속에서 이 지역 사회당이 1936년 총선에서 6개 의석 가운데 5개를 장악한 것이 사회당 발전사의 전형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노동자 계급의 성장 기반이 취약하고 그들의 사회 구성비가 낮았던 농촌지역에서 계급투쟁 노선을 표방하는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가 전국 최다 득표율(48.8%)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 경제적 요인을 앞세우는 경우 이같은 결과를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르며, 실제로 1920년 사회당에서 분리 창당한 공산당이 지역 정계의 고아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연구 대상으로 잡은 시기는 1914년에서 1936년까지이며, 이를 세 단계로 구분하여 각각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였다. 제1기는 1914년에서 1920년까지로, 사회당이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신성동맹(l`Union sacre´e)에 참여해 분당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를 통해 필자는 신성동맹 참여의 후유증으로 발생한 소수파 논쟁 및 코민테른 가입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당내 갈등의 양상과 그 해소과정을 조명하면서 프롤레따리아 국제주의를 내걸고 출범한 사회당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결국은 자국의 역사적 전통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배경을 분석하였다. 제2기는 1920년에서 1924년까지로 사회당 재건기에 해당한다. 70%가 넘는 당원들이 공산당으로 이적함으로써 폐허로 변했던 사회당은 이 기간동안 당원과 조직을 정비해 당세를 회복하고 1924년 좌파동맹을 결성해 통합 사회당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같은 사실에 주목한 필자는 사회당이 등을 돌리고 떠난 노동자들을 재 결집해 나갈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통합사회당의 틀과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사회당 조직의 독창성과 그 운영체계의 효율성을 급진당의 선거 위원회 조직 및 공산당의 공장 세포조직의 경우와 비교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제3기는 사회당 발전기에 해당하는 1925년에서 1936년까지다. 사회당 발전사의 커다란 전환점은 1924년 총선이었다. 1924년 1월 마르세이의 전당대회가 좌파 여론과 당원들의 요구에 따라 채택한 좌파동맹전략(le Cartel des gauches)은 사회당이 전통적인 좌우 대결구도로 복귀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사회당은 104석을(도지부 : 6석 가운데 4석) 획득해 창당이후 최대 규모의 원내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재기의 가능성과 그 방향을 확인한 사회당이 공화파규율(la discipline re´publicaine)과 공산당과의 차별화 정책을 구사하며 현실 정치세력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각 선거를 통해 조명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였다. 사회당의 발전은 당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회현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계급 투쟁론과 프롤레따리아 국제주의의 토양이 척박한 지역에서 사회당원들은 이상과 현실을 접목시킬 수 있는 균형 감각을 갖고 있었다. 이같은 균형감각에 힘입어 사회주의가 당원들을 통해 의인화된 모습으로 투영될 수 있었고, 그 결과 비노동자 선거민들의 거부 반응을 순화시킬 수 있었다. 사회당은 급진당과 공산당에 비해 모자이크 형태를 띄고 있었던 프랑스 현실 정치구조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직체계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원과 하부조직이 갖고 있는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이를 전체의 이해관계에 조율해 나가는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동질성이 결여된 노동자 계급을 규합해 이들을 주축으로 대중 정당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