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16.73.217.86
216.73.217.86
Les syndicalistes parisiens et la guerre , 1908 - 1914 : une etudes des pratiques militantes et des mentalites collectives
신행선
서양사론 48권 187-189(3pages)
UCI I410-ECN-0102-2009-900-008984648
이 자료는 4페이지 이하의 자료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던 해인 1914년 이전 몇 해 동안, 프랑스 노동총연맹(Confe´de´ration Ge´ne´rale du Travail)은 총파업까지도 불사하는 그 어떤 수단을 이용하여서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여러 번에 걸쳐서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총동원령이 내리자 거의 모든 노동 조합원들은 별 반항도 없이 각자의 소속 부대에 합류하여 참전하였다. 더욱이 당시 프랑스 노동총연맹의 서기장이었던 레옹 주오(Le´on Jouhaux)가 8월4일 장 조레스(Jean Jaure`s)의 장례식에서 그동안의 혁명적인 입장을 지양하고 조국의 방어를 위한 신성한 연합(Union sacre´e)에 가담하는 내용의 연설을 함으로써 C.G.T.는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 해 동안 표명해 왔던 반전의 의지가 왜 이처럼 일말의 저항도 없이 무너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노동조합과 사회당 지도자들의 입장과 태도 등 이데올로기적인 분석에 치우친 데 반해서, 본 연구는 일반 노동조합원들과 각 단위 노동조합에 촛점을 둠으로써, 노동조합의 성향에 따라서 전쟁문제 및 군대문제, 조국(patrie)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파리지역 노조원들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있어서의 군국주의(militarisme)와 국민의식(sentiment national)문제, 외국인 노동자, 특히 독일인 노동자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태도가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반전 운동과 국제 위기와의 상관 관계 및 당시 유럽에서 중요한 좌파세력으로서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제2인터내셔널과의 관계 등을 분석함으로써 파리지역 노동자들이 어떻게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다 잘 이해하고자 하였다. 노동자들 모임에서 있었던 논의내용과 의사일정(ordre du jour), 그리고 연설자들의 연설내용을 조사한 결과 노동자들은 반군국주의와 국제노동자주의의 계급이념 양쪽 모두에 충실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 철도 노조와 같이 개량적 성향으로 간주되던 산업들의 노조원들은 반군국주의와 국제 노동자주의의 이념에 충실하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강한 조국애를 감추지 않았다. 한편, 전쟁이 일어날 경우 총파업이나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혁명적 성향의 조합원들도 계급과 조국 양쪽 모두에 충실하였다. 즉 반군국주의 선전을 가장 강렬하게 하고 노동자혁명을 예찬하던 조합인들조차도 국제 노동자주의와 계급 이념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애국자들이었다. 결국 전쟁 총동원령과 동시에 폭동을 일으켜서 국가 개념을 초월한 노동자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실제적 의미의 비애국자들(antipatriotes)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중심으로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일반 노조원의 차원에서 재확인시킨 것으로, 제1차세계대전 이전 시기의 유럽 각국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이슈였던 계급과 민족문제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는데 일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전쟁 문제에 대해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1911-1912년의 시기였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반전 운동이 1911년의 모로코위기, 1912년 발칸위기 등 국제 위기와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반전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노동자들의 모임들이 정작 위기가 발발한 시점보다 매 번 대체로 두 달 가량 늦게, 그것도 상부 중앙 조직의 지휘하에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반전 집회와 시위 등을 전후해서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반전 운동이 노동조합이 갖는 구조적인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1913년 전반기에도 군복무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3년법에 대하여 반대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전쟁문제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음을 엿볼 수 있었지만,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는 8월 이전인 6월경부터는 그 투쟁의 열기가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다. 1913년부터는 노조 모임에서 경제적인 문제 이외에 정치적 문제, 즉 군국주의나 전쟁 혹은 총파업 문제 등을 논의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결실도 없는 투쟁들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서 노동 조합원들이 싫증을 느낀데다, 그동안 가장 활동적이었던 혁명적 성향의 노조들 특히 건축 노조가 일차대전 직전에 매우 약화되었던 것이다. 결국 전쟁은 노조의 활력이 아주 미미한 상황에서 발발하였다. 결론적으로 볼 때, 조국애와 국제 노동자주의의 계급이념이 공존하는 이중적 이념구조와 노동조합의 약화라는 이 두 가지 점이 1914년 8월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