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여지없이 제퍼슨은 그의 시대에 있어서 가장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인물 중의 하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쌓고 그것의 이념과 가치를 대변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에 관한 사가들의 주된 관심은 그의 그러한 면모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어둡고 음울한 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때로는 폭군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의 냉정 침착한 이성적인 언행의 이면에는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감정 또한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끊임없이 외쳐댔지만, 스스로 그것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그러한 측면들도 활발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 다룬 제퍼슨의 어둡고 비진보적이며 부정적인 면모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이다. 첫째, 그가 흑인은 백인에 비해 근본적으로 열등하다고 본 시각, 즉 그의 인종관이다. 둘째, 그는 많은 노예를 소유한 전형적인 대농장주였으며 노예제 폐지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점이다. 세째, 그는 여성의 정치적·사회적·경제력 역할 등에 대해 철저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네째, 당시는 유럽이나 미국을 막론하고 자본주의에 입각한 산업화를 추진하는 것이 큰 추세 중의 하나였으나, 그는 오히려 농본사회 건설을 역설하였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시 국민의 기본권을 무참히 유린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제퍼슨의 이러한 면모들은 당시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과 비교해 볼 때 유난히 두드러지거나 특별한 성격을 띤 것은 아니었다. 제퍼슨처럼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확신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도는 나쁜 것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나, 그들 대부분은 그것을 위해 거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당시인들, 특히 버지니아의 상류층의 사람들은 대체로 그들의 조상들이 그러하였듯이 여성의 역할은 가정의 테두리내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연시하였다. 미국이 산업사회로 나가는 대신 제퍼슨처럼 농업중심의 사회로 남기를 희망한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거의 누구에게나 국가를 이끌어갈 위치에 놓이게 되면 예전보다 더 현실적으로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확대행사하려는 경향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제퍼슨은 결국 그러한 면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한계와 일반적인 경향을 뛰어넘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퍼슨은 당시 어느 누구보다도 진보적인 인물이었고, 미국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역으로 시대적 한계와 일반적인 경향을 뛰어넘지 못한 그러한 측면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제퍼슨이 그러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