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1921년 분열된 프랑스의 노동총연맹(C.G.T.)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1936년 3월, 통합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살펴 봄에 있어 상부조직 뿐만 아니라 하부조직까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 통합운동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는데 있다 사실상 15년간의 분열상태 이후 통합된 새로운 C.G.T.는 매우 강력한 노동조직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그리하며 5백만명에 육박하는 노동자가 규합되기에 이르렀고 마띠뇽 협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동자계급의 승리에 일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 노동총연맹의 통합과정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필자는 네 개의 지역(빠리지역, 노르道, 빠드깔래道, 르와르道)과 여섯 개의 산업(건축, 철도, 출판, 광산, 금속, 직물)을 선택하여, 여기에 속한 각 노동조합들의 통합활동을 검토하였다. 총 600여개의 집회와 시위, 30여개의 파업, 그리고 여기에 참석한 연설원들의 연설문을 분석한 계량적 연구방법에 의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1934년부터 공동투쟁이 점점 확산되었으며, 그 원인으로서는, 비록 경제적 원인이 비교적 중요하였다 하더라도, 파시즘의 대두와 국민연합정부의 시행령이 이 C.G.T. 통합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산업별로 공동투쟁을 살펴보았을 때, 1934년 2월 12일 총파업 이전에는, 광산노조와 직물노조에서 통합활동이 비교적 활발하였으나, 그 이후에는 급격히 쇠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반대로, 철도노조, 건축노조, 금속노조에서는, 통합활동이 이 이후 뚜렷하게 증가하였다. 한편으로, 철도노조는 Laval정부의 시행령 발표 이후 특히 통합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업종이 되었다. 이 업종에서는, 단위노조(syndicats)와 연맹(fe´de´ rations)의 중간에 위치한 노선별 노조(unions des synidcats ou sections fe´de´rales)의 역할이 통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지역별로 통합활동을 검토해 보면, 빠리와 지방의 뚜렷한 대조를 보게되는데, 빠리지역은 1934년 총파업 이후 통합의 중심점이 되었다. 통합문제에 관한 연설원들의 입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34년 이전에는`통일전선`이나 `행동통일`에 대한 입장이 강하였으나, 1934년 이후에는 C.G.T.U.가 주장하는 통일전선의 또 다른 형태인 `단일노조(syndicat unique)` 의한 통합입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마지막으로, 하부조직에서의 공동투쟁이 통합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였을 때, 비록 두 노동총연맹의 전술이 통합의 향방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할지라도, 하부조직의 역할 또한 새로운 노동자 총 연맹의 창설에서 간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 결과를 통하여 밝힐 수 있었다. 결국, 본고는 프랑스에서 파시즘의 공세에 대항한 좌파 조직들, 특히 노동총연맹이 커다란 어려움 없이 통합을 이루내었다고 이를 신비화해 온 지금까지의 통념에 대하여, 1930년대의 C.G.T 통합 운동을 하부조직에서부터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탈신비화(de´mystification) 시켰다는 데 본 논문의 주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