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 필자는 19세기말, 20세기 초부터 혁명 후 농업집단화에 이르기까지 농민경제육성론을 폈던 러시아의 대표적 인민주의자 여섯명의 이론을 분석하고 러시아 농업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구상을 고찰하였다. 혁명 전의 네 명의 이론가(체르노프, 페셰호노프, 오가노프스키, 맑스주의로 최종적으로 전향하기 전의 수하노프)들을 인민주의자로서 제 1부에서, 그리고 농업집단화 시기까지 활동했던 차야노프(및 조직생산학파)와 콘드라티예프를 신인민주의자로 제 2부에서 각각 다루었으며 각기 상이한 상황(제정시대, 볼셰비키혁명기, 신경제정책기 등)에 따른 이들 이론가들의 현실대응의 구체적 양상을 비교검토함으로써 20세기 인민주의적 농업경제사상의 연속성과 변화를 파악코자 하였다. 각 章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제 1 장. 빅토르 체르노프 - 사회주의적 대농업경영의 옹호자 제 2 장. 알렉세이 페셰호노프 - 러시아 농민경제의 실태분석자 제 3 장. 농업발전에 대한 니콜라이 오가노프스키의 인구론적 이론 제 4 장. 니콜라이 수하노프. 인민주의와 맑스주의 사이의 중재자 제 5 장. 알렉산드르 차야노프와 조직생산학파 제 6 장.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 - 장기전망에 입각한 러시아농업발전의 구상 맑스주의자들이 기본적으로 농업에서의 자본주의발전은 불가피하며 농민들은 자본주의적 양극분해를 거쳐 소멸될 계급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데 반해 20세기의 대부분의 러시아인민주의자들은 농업은 그 생산과정의 특수성으로 인해 공업부문과는 다른 발전경로를 밟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대경영이 농업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농민층은 독자적 계급으로 남으면서 근로경영을 유지해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봉건적제도와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혼재된 상황에서 직접적 생산자로서의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농업제도를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농민적 경영 자체에도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 분산성과 영세성으로 인해 생산성의 계속적 발전, 발전된 농기계의 도입 등이 저해될 수 있으며, 시장관계에서도 농민적 소경영은 자본주의적 대경영에 비해 불리함을 인민주의자들은 인식하였다. 그러나 여러 형태의 협동조합의 결성을 통해 이같은 결함들은 근복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농민생산의 사회화를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였다. 19세기에 그들의 선배 인민주의자들이 옵쉬취나를 바탕으로 하여 달성하고자 했던 농민사회주의적 사회를 체르노프를 비롯한 20세기의 많은 인민주의자들은 -전반적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른 부문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전제로 하면서- 토지의 사회화 내지 국유화의 조건아래서 농업협동조합의 발전에 의해 실현코자 한 것이다. 이같은 입장은 1920년대 신경제정책시기에 레닌이 구상한, 협동조합을 통한 농업발전론 및 사회주의건설론과도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볼 때 인민주의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으로 비록 정치적으로는 패배하였으나 지적, 이념적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새로운 가능성 때문에 조직생산 학과를 비롯한 신경제정책기의 신인민주의자들은 볼셰비키체제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전적으로 멈추고(그들이 혁명 전의 인민주의자들과 구분되어 "新인민주의자"로 불리는 것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비혁명적, 비정치적인 그들의 논의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구체적, 실무적인 농업, 농민경제육성책의 개진에 주력하게 된다. 자본주의경제의 장기주기에 관한 콘드라티예프의 이론 또한 근본적으로 자신의 농민경제육성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이었다. 그의 구상은 공업화의 방법까지 함께 포괄하는 것이어서 인민주의계열의 논의들 중에서도 가장 큰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말 스탈린 정권에 의해 감행된 강제적 농업집단화정책은 이같은 인민주의자들의 구상을 본격적으로 실현시킬 가능성을 극적인 방식으로 좌절시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