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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 그룹과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 1883 - 1892
이채욱
서양사론 45권 275-277(3pages)
UCI I410-ECN-0102-2009-900-00898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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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80년대 러시아 혁명계의 가장 중요한 변화인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노동해방` 그룹이 수행한 역할을 살피고 이를 통해 이 시기 러시아 혁명계의 전체상을 재구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존의 연구는 `노동해방` 그룹의 역할을 절대시하거나 거의 무시하는 양 극단으로 나뉘어 이루어져 왔고, 그 결과 1880년대 러시아 혁명계의 모습은 이제까지 아주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된 사료를 검토해보면 기존 연구들이 견지해온 극단적 입장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잘못을 바로잡는다면 1880년대 러시아 혁명계의 전체적 윤곽을 비교적 뚜렷이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1870년대까지 러시아 혁명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여러모로 활용하였으나 그 어떤 혁명가도 그것이 러시아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이러한 혁명계의 입장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70년대에 인민주의 운동이 실패로 끝남으로써 인민주의 운동가들이 그들의 전제상 주요 활동무대인 농촌에 전혀 뿌리내리지 못한 채 도시로 밀려난 뒤의 일이었다. 그들은 사민주의의 주요 실천 수단인 도시 노동자에 대한 선전에 주력했는데, 이는 농민이 혁명의 원동력이라는 그들의 전제와 모순되는 것이었다. 쁠레하노프는 이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고 마르크스주의를 인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 러시아 최초의 인물이었다. 1883년에 쁠레하노프가 조직한 `노동해방` 그룹은 마르크스, 엥겔스의 여러 저작을 번역하는 한편, 스스로도 여러 저술을 집필하여 국내에 공급했다. 국내 사민주의 그룹들이 `노동해방` 그룹과 관계없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인민주의, 라살레주의 등이 혼재된 형성 초기의 이념적 내용을 볼 때, 국내 사민주의 세력에 대한 `노동해방` 그룹의 영향이 시종일관 막대했다는 주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노동해방` 그룹의 출판물들은 블라고예프 그룹이나 브루스녜프 그룹의 예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국내 사민주의 조직들이 좀 더 올바른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도록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노동해방` 그룹은 인민주의 세력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민주의 세력은 1880년대말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혁명계의 다수 세력을 구성했으나 그것의 실천적 내용은 농촌 활동의 실패로 도시 노동자에 대한 선전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해방` 그룹의 문건은 인민주의의 이런 실천과 이론의 괴리 속에 파고들었다. 그 결과 인민주의 세력의 일부는 이미 1880년대에 사민주의로 전향했고, 나머지도 다양한 편차를 보이면서 사민주의의 기본 명제를 수용해가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189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민주의 조직들이 급증하고, 나아가 사민주의가 인민 주의에 대해 우위를 보이게 되는 토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해방` 그룹은 이렇게 국내 사민주의 세력의 이념적 지도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인민주의 세력까지도 상당한 정도가지 마르크스주의로 견인했던 것이다. 1880년대 러시아 혁명계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를 고려해야만 이후의 혁명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예컨대, 1917년 혁명기에 마르크스주의 세력인 멘셰비끼와 인민주의 세력인 사회혁명당간에 이루어진 헙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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