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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ouse Divided " : The Wickersham Comission and National Prohibition
김덕호
서양사론 41권 204-204(1pages)
UCI I410-ECN-0102-2009-900-00898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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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미국에서는 헌법 수정조항 18조로 금주가 성문화된 이후 술의 밀주, 밀수, 밀매, 조직화된 범죄의 증가, 법질서의 파괴 등의 예상치 않은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따라 미국 사회는 금주법을 보다 엄격히 시행해야한다는 사람들(Dry)과 금주법을 개정내지는 폐지해야 한다는 사람들(Wet)로 크게 분열되었다. 그리하여 금주법 논쟁은 1928년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때 대통령이 된 Herbert Hoover는 금주법으로 야기된 문제의 크기와 범위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의회의 협조하에 George Wickersham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통령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초기 단계에 위원회는 사회과학적 방법에 입각한 편견이 배제된 객관적인 사실들을 수집, 분류, 분석하는 것을 기초작업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시적 성격을 지닌 위원회가 이러한 목표를 2∼3년 내에 달성한다는 것은, 적어도 William Kenyon을 비롯한 몇몇 위원들 눈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Kenyon파는 현실주의자들이었으며 Wickersham과 그의 협력자들은 이상주의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위원들 간에는 심각한 이념적 갈등과 나아가 개인적 반목까지 있게 되었다. Hoover 대통령이 금주법에 관한 중간보고서를 갑작스레 요구하고, Kenyon파의 Roscoe Pound가 그것을 만든 이후 Wickersham은 더 이상 위원회를 이끌어 갈 수 없었다. 게다가 Pound는 최종 보고서도 작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Kenyon파가 원했던 방향대로 보고서가 완성되지 못했다. 그것은 첫째, 문제 자체가 도덕적 성격을 지닌 가치판단적인 것이였기 때문이었으며 둘째, 거의 대다수 위원들은 금주법이 충분히 준수되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지만 금주법의 집행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문제의 해결책에 있어서도 합의가 형성될 수 없었다. 따라서 최종적인 결론과 건의사항은 타협에 의해 모자이크처럼 혼합된 것이었다. 게다가 위원회는 시간제약 때문에 금주법에 대한 충분한 사실들을 모으기도 전에 결론부터 끌어내었다. 그리하여 위원회는 그 기본적 정신을 외부적 압력이나 간섭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내분에 의해 저버렸다. 결국 Wickersham위원회를 통해 금주법문제를 해결하려했던 Hoover행정부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Hoover 또한 큰 정치적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ickersham 보고서는 금주시대를 끝내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보고서가 AAPA, WONPR, VCL 같은 반금주법단체들의 최종목표인 금주법 폐지에 가장 권위있는 문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전대미문의 대공황하에서 주류산업의 재개가 고용 창출이나 세수증가를 통하여 경기회복을 가져오리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충분히 이용하면서, 그들은 동 보고서로부터 그들에게 유리한 사실들만 추출하여 널리 선전한 결과 국민들에게 금주법이 전혀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하며 나아가 헌법 수정조항 18조를 폐지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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