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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 필리핀 」 점유과정 (占有過程)
On the American Occupation of the Philippines
최문형 ( Moon Hyung Choi )
서양사론 vol. 9 92-93(2pages)
UCI I410-ECN-0102-2009-900-00897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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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이 大陸中心主義로부터 脫脚, 필리핀을 倂合해 나가는 過程은 필리핀史에 對한 우리의 知識不足과 倂合過程에 대한 엇갈린 解釋으로 말미암아, 쉽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美軍의 마닐라灣 侵攻事件과 거기에서 派生된 새로운 事態進展에 관한 問題들만을 中心으로 하여 以下 다음과 같은 몇 가지 點으로 要約해 보았다. 첫째, 美國의 필리핀攻略에 대해서는 프런티어의 消滅과 더불어 美國의 國內事情으로 말미암은 必然的 結果라고 보는 常識的 見解가 있는가 하면 루즈벨트 등 一部 「大政策(Large Policy)의 發案者들만에 의하여 결행된 것이라고 보는 專門的 見解가 있어 이 兩論은 크게 對立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필리핀問題에 관한 限, 그리고 이를 조금이라도 專門的으로 다루어 본다면 이러한 우리의 常識的 見解는 거의 根據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美國의 마닐라灣 攻擊은 大統領도 海軍長官도 모르는 가운데 海軍次官 루즈벨트 등이 獨斷的으로 決行한 것으로서 政府는 不可避해진 處地에서 다만 그 事後處理를 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大統領이 5月 1日의 마닐라灣 侵政事態가 벌어지기 以前에 전혀 필리핀에 대한 事前知識이 없었다고 하여 後者의 경우를 확대 해석하려는 見解에 대해서도 또한 수긍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美國政府는 5月 1日 以前에도 新聞報道나 極東에 駐在하고 있던 外交官들을 通하여 이미 數10次에 걸쳐 現地情勢에 관한 報告를 받은 바 있었고 특히 싱가포우르領事 프랠(Pratt)은 國務省의 回答을 기다릴 수가 없게 되자 독단적으로 아귀날도(Aguinaldo)와 會見한 사실까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上論한 바와 같이 듀이 提督의 마닐라勝戰 以後에야 비로소 政府當局이 필리핀에 대한 理解를 가지게 되었다는 見解보다는 오히려 當時의 美國政府가 美西戰爭으로 말미암아 모든 精力을 쿠바에 쏟았던 나머지 太平洋 건너 6,000마일 밖에 떨어져 있는 필리핀에 대하여 좀처럼 關心을 表明할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無關心할 수 밖에 없었다는 結論을 얻게 되었다. 美國政府가 쿠바의 戰勢가 好轉되던 7月末頃부터 비로소 필리핀에 대하여 關心을 表明했던 사실은 바로 이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둘째, 美國政府로 하여금 필리핀 全群島의 倂合을 本格的으로 고려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列强의 反應이었다. 美國의 마닐라灣 政略과 더불어 斷行된 英·獨·日 등 列强의 直接介入과 佛·露 등의 關心表明은 美國政府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던 것이다. 듀이提督이 英國의 協力과 本國의 援軍을 얻어 독일의 威脅을 排除하게 되면서 마닐라灣은 마침내 國際外交의 焦點이 되었고 더우기 그가 이 危機를 극복, 그 기세로 마닐라市로 進軍하게 되자 와싱톤에서 이보다 6時間 後에 調印된 休戰議定書는 결국 署名과 더불어 休紙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듀이의 勝戰의 報償을 마닐라灣의 海軍基地 確保만으로써 終結지으려던 와싱톤 當局도 美軍의 마닐라市 진주와 더불어 이제 루손島의 領有뿐만 아니라 全群島의 倂合까지도 本格的으로 考慮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上論한 바와 같이 어디까지나 7月을 고비로 하여 美西戰爭을 一段落지어 필리핀에 대하여서도 美國政府가 關心을 가질 수 있게 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美國의 필리핀 領有는 政府當局者들이 필리핀에 대하여 전혀 關心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狀態에서 決行된 듀이의 마닐라灣 攻略과, 政府가 이러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가운데 決行된 美軍의 마닐라市 進駐라는 두 事件이 그 決定的 계기가 되었다고 나누어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政府의 決定은 항상 輿論에 後行되었다는 事實을 우리는 결코 看過할 수가 없다. 요컨대 美國의 필리핀 領有는 루즈벨트, 롯지 등의 단호한 決行, 듀이의 忍耐力, 쿠바戰勢의 好轉과 더불어 필리핀에 대해서도 關心을 가질 수 있었던 政府當局의 餘力, 美軍의 마닐라市 進駐가 政府에 加한 拍車, 그리고 美國民의 高潮된 輿論 등이 相互作用함으로써 비로소 可能한 일이었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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