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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ate
16 세기 양소천다현상의 발생과 국가의 대응
The Increase of Slave Population and the State in the 16th-Century Korea
김성우(Sung Woo Kim)
경제사학 vol. 29 3-37(35pages)
UCI I410-ECN-0102-2009-320-006807160

본고는 16세기 良少賤多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한 규명을 통해 이 시기 良人과 賤人의 인구구성비의 변동추이, 그리고 국가의 대응 방식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서 16세기 이후 국가의 징세규모가 급증하면서 부세의 주요 담당충인 양인 농민충의 몰락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왕실이나 지배층의 농장으로 흡수, 신분을 노비로 하강시키는 경향이 많았다. 양인층의 노비로의 전환방식은 壓良爲賤, 投托, 그리고 良賤交婚으초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당시 지배층이 가장 선호한 방식은 `양천교혼`이었다. 경상도 士族가문의 `良賤交婚`率은 15세기에는 최고 10%대에 머물러 있었지만, 16세기 초반부터 급중하기 시작하여 1520년 연간에는 50% 안팎, 1540년 무렵에는 70%를 상회하는 등 급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公民의 수가 급감한 반면 私民의 수가 급증하는 이른바 良少賤多현상이 1530년대 이후 보편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530년대를 전후하여 양인 농민충이 급속하게 몰락하면서 이들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國役體 制도 더이상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왕조 말기적 양상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조선왕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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