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한국은 유교 국가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나라였다. 중국에서 유교가 주로 정치 이념을 규정하는 이념이었으며, 일본에서 유교가 학문적으로 존재하는 데 그쳤다면, 한국에서의 유교는 정치와 경제, 풍습, 사고 양식을 규정하였으며 당시 문화의 핵이었다. 이 유교는 문화이자 사회제도였으며 법률이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조선사회가 붕괴되면서 유교 또한 사라지면서 서구적인 문물과 제도, 문화가 물밀듯 들어왔고 그 결과, 유교는 더 이상 사회제도도 법률의 근간도 아니며 다만 사람들의 가치관 속에 남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유교는 1980년대에 이르러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유교문화권인 중국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륙해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서구 사회에서 근대 이후 계속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비판하는 대안적 세계관, 즉 공도에 주의가 발흉하면서 서구인들도 공동체적 사회이론인 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지 때문이다. 본 논문은 인간의 본성, 사회질서라는 두가지 차원에서 유교의 사회이론적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면에 있어서 서구의 계몽주의가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개인주의적 인간관을 설정한 데 비해 유교는 인간의 본성을 하늘이 명한 것(天命지언성)으로 보고 그 구체적 내용으로 仁義禮智의 四端을 설정함으로서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질서의 문제에 대해 계몽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와의 계약적 의무를 수행함으로서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비해 유교는 사람이 가족, 동료관계, 공동체, 사회 속에서 갖는 위치에 따라 생기는 규범을 충실히 자발적으로 준수함으로서 사회질서가 유지된다고 본다. 계몽주의가 타율적인 규제에 의거한다면 유교는 자율적인 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가족과 사회의 和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교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증용이요, 또 하나는 강조가 적절히 배합된 객관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계몽주의가 사회적 계약이라는 가정에 의거하여 사회윤리를 유도 해낸다면 유교는 가족, 친족 공동체, 사회, 국가라는 구체적 장에서 화합을 이루어내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유교는 하나의 원리나 이론을 의거해서 전체 사회를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를 반대하며 인간에게 필요한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들이 함께 공존하는 관점을 제시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