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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연해주 금속 루트와한반도 청동기의 기원과 계통

The Origin of the Korean Bronzeware and Diffusion Routes of Eurasian Metallurgical Tradition

강인욱 ( Kang In Uk ) , 김경택 ( Kim Gyongtack )
  •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 인문학연구 44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8월
  • : 7-45(39pages)

DOI

10.35559/TJOH.44.1


목차

1. 서론
2. 한반도 중부 초기 청동기 출토 유적과 유물
3. 한반도 초기 청동기의 성격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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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우라지, 춘천 근화동과 천전리 유적에서 출토된 7점의 청동기를 중심으로 한반도 청동기의 기원 및 초기 청동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유물의 절대수가 많진 않지만, 모두 주거지 내부라는 확실한 출토 맥락에서 다른 유물들과 공반하여 출토되었고, 절대연대 측정치 산출되었기에 한반도로의 청동기 도입 과정을 구명하는 자료로 전혀 손색이 없다.
한반도 초기 청동기의 기원은 멀리는 시베리아의 세이마-투르비노 유형이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세이마-투르비노 청동기 제작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카라숙 청동기’ 전통 내지 문화로 구현되었는데, 이는 전차와 강력한 마구와 무기를 발달시킨 유목민족을 통해 중국 장성지대뿐만 아니라 요서·요동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 청동기 제작 전통은 자바이칼을 거쳐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지역과 두만강 일대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루트를 형성했는데, 마제석검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는 강력한 무기 대신 소형 장신구를 단조로 제작하는 지역화가 발생했다.
동북한 청동기 전통은 두만강 유역 흥성유형을 거쳐 기원전 13세기 전후로 돌대문토기 단계의 한반도 중부지방으로 확산되었다.동북한 계통 청동기의 도입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즉, 제Ⅰ단계(기원전 13세기)는 단조로 제작된 청동기가 석제 장신구의 일부로 사용되는 시기이다, 제Ⅱ단계는 돌대문토기 후반~청동기시대 전기 전반(기원전 13~10세기) 장신구와 소형 노동도구가 제작되는 시기이고, 마지막 제Ⅲ단계(기원전 10~8세기)는 단조 기법에서 탈피하여 재가공된 동모와 같은 무기가 사용되는 천전리식 주거지 축조 시기이다. 현재까지 보고된 고고자료로 한정하면, 동북한 계통 청동기가 남한 청동기 제작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진주 대평리 옥방 출토 곡옥형 청동기는 동북한 청동기 전통이 남해안 일대까지 확산되었음은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다만, 서북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가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 형성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미쳤기에 동북한 청동기 전통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지게 보일 뿐이다.
동북한 계통 초기 청동기 전통은 한반도 청동기의 보급 연대를 상당히 소급했음은 물론, 그 기원을 유라시아 청동기의 보편성에서 살펴볼 근거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서, 기원전 15세기 무렵 발생한 동아시아 일대의 기후변화(한랭건조화) 및 인구 급감과 함께 세이마-투르비노 청동기 전통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한반도도 이 영향권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정선 아우라지 출토 소형 장신구는 석제 목걸이를 감싸는 장신구의 일부분 역할에 머물렀으며, 주거지가 폐기되면서 동시에 폐기되었음은 한반도 중부에서는 청동기가 도입 과정부터 대단한 사회 변화를 촉발하거나 석기와 차별화된 위신재로 채택되진 않았을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청동기 도입에 따른 본격적인 사회 변화는 청동기시대 중기 이후 청동기가 주거지가 아닌 고인돌이나 석관묘에 부장되고, 기종 역시 위신재로서의 상징성이 강한 동검 위주로 재편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반도 청동기 도입에서 유라시아적 보편성과 석검 위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특수성은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주요 특징이며, ‘청동기시대’란 시대 명칭 대신 한반도의 특수성과 편의성을 강조한 ‘무문토기시대’라는 시대 명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Based on the seven bronze implements unearthed from Auraji site, Jeongseon and Geunhwa-dong and Cheonjeon-ri sites, Chuncheon, the origin and initial aspects of the Bronze Age of the Korean peninsula are thoroughly reviewed and analyzed. Although the number of bronze artifacts is quite small, only seven, all of them were unearthed in the evident archaeological context without any doubt, inside the semi-subterranean houses at these sites, along with associated artifacts. In addition, radiocarbon dates of these artifacts provide qualification as critical data for the investigation diffusion processes of bronzeware into the Korean Peninsula more than enough.
The Korean Bronze Age originated from the spreading processes of Siberian Seima-Turbino Type bronzeware throughout Eurasia continent. The Seima- Turbino bronzeware tradition was implemented in East Asia as the ‘Karasuk Bronzeware culture’, and it also spread to the region of the Great Wall of China and Liaoning region via nomadic people equipped with chariots, harnesses and weapons. This bronzeware tradition explored another diffusion route through the Trans-Baikal region into the Far East including Maritime Province and the Tumen River where quite strong polished stone dagger tradition had been maintained. Instead of powerful weapons, localization to manufacture small-sized ornaments and tools for labor through forging technique occurred. The northeastern tradition of making bronzeware diffused into central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t the stage of the raised band decoration pottery via Heungseong assemblage of Tumen River valley around the 13C BCE. 
The introduction process of the bronze tool can be largely divided into three stages. The first stage (13C BCE) was a period when the forged bronzeware was used as a part of a stone ornament, 13C BCE. The second stage(13~10C BCE), from the second half of the raised band decoration pottery phase to the first half of Early Bronze Age, was a period of making bronze ornaments and small tools for labor. The third stage (10~8C BCE) was a period of Cheonjeon-ri type house when reprocessed weapons (e.g. bronze spearhead at Cjeonjeon-ri site) were adopted instead of implements using the forging technique of the earlier stage. The influence of the northeastern bronzeware tradition on the making bronze tools of the South Korea was quite limited; however, considering bronzeware with the shape of comma-shaped jade unearthed at Okbang site at Daepyeong-ri, Jinju, it is quite clear that the influence had spread into the South coast. Due to the spread of the Mandolin-shaped bronze dagger culture introduced from northwestern region, little trace of northeastern tradition were left.
The early northeastern bronzeware tradition not only raised the upper limit of the Korean Bronze Age considerably but also provided concrete base to reconsider the origin of Korean bronzeware in the context of the universality of the Eurasian bronzeware. In other words, along with climate change (being cold and dry) and rapid population decline in the East Asia around the 15C BCE, the Seima-Turbino bronzeware tradition spread throughout the whole East Asia, including the Korean peninsula and Maritime Province. Considering that a small bronze ornament at Auraji site of Jeongseon simply played a role to cover a part of a stone necklace and was discarded along with the pit house, the bronzware seems not to have trigger a significant social change and not to have been adopted as prestige goods distinguished from stone implements such as a polished stone dagger at least in the initial stage. The full-scale social change along with introduction of the bronzeware seems to have began to occur after the Middle Bronze Age when the bronzeware was buried in dolmens or stone cists rather than found at pit dwellings, and symbolic items such as a bronze dagger appe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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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21-000-001013878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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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계간
  • : 1229-5485
  • : 2671-8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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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96-2021
  • :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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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라시아-연해주 금속 루트와한반도 청동기의 기원과 계통

저자 : 강인욱 ( Kang In Uk ) , 김경택 ( Kim Gyongtack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4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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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우라지, 춘천 근화동과 천전리 유적에서 출토된 7점의 청동기를 중심으로 한반도 청동기의 기원 및 초기 청동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유물의 절대수가 많진 않지만, 모두 주거지 내부라는 확실한 출토 맥락에서 다른 유물들과 공반하여 출토되었고, 절대연대 측정치 산출되었기에 한반도로의 청동기 도입 과정을 구명하는 자료로 전혀 손색이 없다.
한반도 초기 청동기의 기원은 멀리는 시베리아의 세이마-투르비노 유형이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세이마-투르비노 청동기 제작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카라숙 청동기' 전통 내지 문화로 구현되었는데, 이는 전차와 강력한 마구와 무기를 발달시킨 유목민족을 통해 중국 장성지대뿐만 아니라 요서·요동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 청동기 제작 전통은 자바이칼을 거쳐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지역과 두만강 일대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루트를 형성했는데, 마제석검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는 강력한 무기 대신 소형 장신구를 단조로 제작하는 지역화가 발생했다.
동북한 청동기 전통은 두만강 유역 흥성유형을 거쳐 기원전 13세기 전후로 돌대문토기 단계의 한반도 중부지방으로 확산되었다.동북한 계통 청동기의 도입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즉, 제Ⅰ단계(기원전 13세기)는 단조로 제작된 청동기가 석제 장신구의 일부로 사용되는 시기이다, 제Ⅱ단계는 돌대문토기 후반~청동기시대 전기 전반(기원전 13~10세기) 장신구와 소형 노동도구가 제작되는 시기이고, 마지막 제Ⅲ단계(기원전 10~8세기)는 단조 기법에서 탈피하여 재가공된 동모와 같은 무기가 사용되는 천전리식 주거지 축조 시기이다. 현재까지 보고된 고고자료로 한정하면, 동북한 계통 청동기가 남한 청동기 제작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진주 대평리 옥방 출토 곡옥형 청동기는 동북한 청동기 전통이 남해안 일대까지 확산되었음은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다만, 서북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가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 형성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미쳤기에 동북한 청동기 전통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지게 보일 뿐이다.
동북한 계통 초기 청동기 전통은 한반도 청동기의 보급 연대를 상당히 소급했음은 물론, 그 기원을 유라시아 청동기의 보편성에서 살펴볼 근거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서, 기원전 15세기 무렵 발생한 동아시아 일대의 기후변화(한랭건조화) 및 인구 급감과 함께 세이마-투르비노 청동기 전통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한반도도 이 영향권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정선 아우라지 출토 소형 장신구는 석제 목걸이를 감싸는 장신구의 일부분 역할에 머물렀으며, 주거지가 폐기되면서 동시에 폐기되었음은 한반도 중부에서는 청동기가 도입 과정부터 대단한 사회 변화를 촉발하거나 석기와 차별화된 위신재로 채택되진 않았을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청동기 도입에 따른 본격적인 사회 변화는 청동기시대 중기 이후 청동기가 주거지가 아닌 고인돌이나 석관묘에 부장되고, 기종 역시 위신재로서의 상징성이 강한 동검 위주로 재편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반도 청동기 도입에서 유라시아적 보편성과 석검 위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특수성은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주요 특징이며, '청동기시대'란 시대 명칭 대신 한반도의 특수성과 편의성을 강조한 '무문토기시대'라는 시대 명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2고대 동북아시아 편두 고인골의 연구 현황

저자 : 한진성 ( Han Jin-seong ) , 이혜진 ( Lee Hye-jin ) , 신동훈 ( Shin Dong-hoon ) , 홍종하 ( Hong Jong-ha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7-8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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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변형(Cranial deformation)은 두개골에 일정한 압력이 가해지면서 보통의 형태와 다른 변형된 두개(Deformed crania)를 가지게 되는 것을 칭한다. 이러한 두개골 변형에는 의도적인 것과 비의도적인 것이 있는데, 비의도적 변형의 경우 영유아기 성장 과정에서 요람에 의한 눌림 등 전통적인 양육방식에 의한 변형이나 두개유합증(craniosynostosis)과 같은 선천적 장애의 영향을 받는 경우, 후천적으로는 두개부 외상(cranial trauma)에 의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비의도적 변형의 경우에는 인간의 의도에 의해 성장 중인 두개골의 형태를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변형하는 것으로, 체질인류학 분야에서 인위적 두개골 변형은 Artificial Cranial Deformation (ACD) 이나 Intentional Cranial Deformation (ICD) 등으로 부른다.
이 중 인위적 두개골 변형은 역사 기록을 실증하거나 집단 간 또는 집단 내 차별적 신분 및 지위를 표현하는 상징(또는 차별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과 민족 또는 종족 이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 체질인류학 및 고고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된 진한사람들의 편두 습속을 입증하는 실물 자료로서 김해 예안리 인골의 두개골 변형 사례가 학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두개골 형태를 인위적 두개골 변형의 결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연구자 간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국내 두개변형 사례의 경우 이것이 인위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동북아시아 지역 (한국, 중국, 러시아 극동지방 및 일본)에서 그동안 보고된 인위적 두개골 변형 사례를 성별, 유적별, 권역별로 나누어 검토하여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향후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한 기초적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31~3세기 읍루(挹婁)의 고고(考古) 문화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읍루(挹婁)

저자 : 이승호 ( Lee Seung-ho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5-12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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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재까지 확보된 挹婁 관련 고고학 성과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1~3세기 읍루 역사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를 시도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특히 『三國志』 東夷傳의 읍루 관련 기사에 대응하는 고고 문화를 해명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읍루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고고 문화로는 오늘날 黑龍江 중·하류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폴체-蜿蜒河 문화, 중국 三江平原의 滾兎嶺-鳳林 문화, 團結-크로우노프카 문화와 직접 동북 - 서남으로 연접해 있는 연해주 폴체 문화(올가 문화), 그리고 牡丹江 중·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東康 유형·東興 문화가 모두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三國志』 東夷傳의 挹婁 관계 기록은 王頎가 이끄는 魏軍이 挹婁의 남쪽 경계에까지 진군하면서 입수한 정보에 기초하고 있다. 이때 王頎의 부대가 조우한 挹婁 집단은 최종적으로 연해주 폴체 문화의 담당자들일 가능성이 크다. 연해주 폴체 문화는 北沃沮와 남북으로 인접하면서 동쪽으로 '大海(동해)'에 접해 있고, 우수리강과 綏芬河 수운을 통해 북옥저 지역을 약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또 고지성 취락과 수혈식 주거지가 확인되어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읍루의 지리·문화적 특징 및 역사적 활동상에 대체로 부합한다.
다만, 경역이 수천 리에 달하고 그 북쪽 끝은 알 수 없다고 하였을 만큼 당시 읍루의 범위가 광활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 三國志』 東夷傳에서 지칭하는 挹婁가 반드시 현재 확인되는 어느 한 고고 문화에만 대응하여야 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三國志』 東夷傳에서 지칭하는 '挹婁'의 문화는 수천 리에 달하였다는 읍루의 경역 범위 안에서 폴체-蜿蜒河 문화·滾兎嶺-鳳林 문화·연해주 폴체 문화 등 여러 문화를 모두 포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만주·연해주지역 “말갈관(靺鞨罐)” 검토

저자 : 안재필 ( Ahn Jae-pil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3-170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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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북방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가 가능해짐에 따라 발해를 중심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연구는 주로 발해 궁성이나 발해 지배층의 고분, 고구려·발해의 계승성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 지역에 살았던 다수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관심 대상 밖으로 벗어났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4~9세기 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용기로 사용하였던 토기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말갈관이라는 기종은 4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포크로프카 문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급격하다기보다는 일정하며 점진적인 변이를 갖는 토기이다. 즉, 고구려, 발해, 당, 여진의 각축 속에서도 일정한 변이 궤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말갈관이 4~9세기 만주·연해주 토착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유물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분석하였다.
분석의 기준 속성으로는 유물의 외견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곡률과 문양으로 삼았다. 이 곡률과 문양으로 분류한 결과 형식은 총 6개로 분류되었다. 이 형식은 만주·연해주의 4개 수계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분포하였다. 이런 지역성은 철촉, 완, 동물형 기물, 양이부호 등과의 공반관계에서도 확인되었다. 각 수계에 따른 유물복합체의 양상이 토기 형식에도 반영되어 있던 것이다. 공반관계뿐만 아니라 문헌사료에서도 말갈을 지역에 따라 구분하고 있었다. 또 그 구분의 기준은 속말수, 흑수, 백산, 즉 쑹화강, 아무르강, 라즈돌나야강이 흐르는 백두산 일대였다. 이를 근거로 하여 제2쑹화강, 아무르강, 무단강, 라즈돌나야강에 속말, 흑수, 불열, 백산말갈을 가설적으로 대입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4~9세기 만주·연해주 지역 어느 곳에나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물, 말갈관을 검토하였다. 결과적으로 말갈관이라는 토기로 대표되는 문화 체계 내의 여러 아문화가 독립적·역동적, 그리고 복합적으로 교류·접변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5조선문인 이형상(李衡祥)의 사(詞) 역주

저자 : 이태형 ( Lee Tae-huoung ) , 김민정 ( Kim Min-jung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3-230 (5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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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서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사(詞) 창작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후기의 시문화 안에서 사를 체계화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형상은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 사패를 중심으로 연장체사를 많이 짓고, 또한 다양한 사패를 사용하여 사를 지었다. 여러 명이 어울려 함께 사를 주고받으며 사를 창작하는 모습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당시 다양한 가창문화의 발달로 그는 사에 다른 장르들과 융합하면서 보다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었다. 그는 24調 46수에 달하는 비교적 많은 사를 남기고 있는 작가이다. 역자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韓國文集叢刊』과 류기수가 편찬한 『歷代韓國詞總集』을 저본으로 삼아 역주했고, 이것을 통해 이형상(李衡祥)의 삶과 사작품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무릇 사는 서정성이 강한 장르인데 그의 사는 이학(理學)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자연경물을 노래하기도 했고, 은근하고 아름다운 완약(婉約)한 풍격이 많지만, 몇몇 사작품은 호방(豪放)하고 청신(淸新)한 풍격을 지니기도 했다. 그의 사에는 떠나간 친구의 이별이나 그리움, 한스러움과 추억, 인생에 대한 감회, 정치적 시련을 겪으면서 느낀 소회 등이 투영되어 있다. 본 역주작업이 조선시대 사인 이형상의 사문학연구하는데 기초토대가 되어 조선시대 사문학의 진면목과 가치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해본다.

6『그리스도교 교양』Ⅳ권에 전개된 문체론의 독창성 문제

저자 : 신경수 ( Shin Kyung-soo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1-25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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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 교양』Ⅳ권의 문체론을 탐구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 수사학의 독창성을 재고(再考)하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교양』Ⅳ권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키케로의 이론을 기독교화하려는 시도로 여겨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전 수사학 연구자들은 대체로 아우구스티누스 문체론에 대한 키케로의 영향을 강조한 나머지, 아우구스티누스 문체론과 키케로 문체론의 차이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두 저자의 많은 유사점들을 나열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수사학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산일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수사학을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전학문의 수용뿐만 아니라, 그 수용을 통해 구성한 이론과 실제적 기여를 종합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Ⅳ권에서 법정과 의회, 예식 영역에서 상대적 가르침을 다루는 고대 수사학과 구별되는 진리교육을 위한 수사학을 표방한다.
그리고 그는 수사학의 법칙이 인간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는 소신하에 문체의 전형으로 성경 본문을 제시한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그는 연설가의 의무뿐만 아니라, 세 가지 문체의 중요도와 활용법에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문체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그 관점에 따른 전반적인 구조분석 및 논증의 타당성을 공정하게 평가한다면, 키케로의 영향과는 별개로 아우구스티누스 수사학의 독창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7아렌트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본 하이데거 철학의 문제점

저자 : 서동은 ( Suh Dong-uhn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61-28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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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아렌트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전체주의에 대한 대결과 연관된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하이데거 사상이 지니는 한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특별히 이 두 사상가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두었던 주제인 관심, 타자, 죽음, 그리고 현상학적 휴머니즘과 연관하여 비교하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철학함이 타자 및 이웃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고 사회 정치적 문제와 동떨어질 때 생길 수 있는 도덕적 정치적 문제점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아렌트의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과의 대결에만 몰두 하면서, 근원 윤리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8금기, 위반 그리고 해체: '선악과 서사'에 대한 해체주의적 독해

저자 : 최일성 ( Choi Il-sung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7-32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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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선악과 서사'를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 선악과 '위반'의 해체주의적 함의를 검토한다. 필자가 보기에 선악과 서사의 관심은 죽음, 즉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죽음이 정상적이면서 동시에 신의 은총이라는 조건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는 원죄(위반·해체)가 야기한 불가피한 형벌이며, '신/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기 위한 등불로 설정된다. 만일 신에 의해 태초에 설정되었던 '신/인간'의 경계를 허물 수 없었다면, 요컨대 신과 인간의 이질성이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라고 한다면, '신/인간'을 둘러싼 서구 형이상학의 이원론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을 것이다. 선악과 금기는 신의 계율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이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 넘어 신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해체(위반)되어야만 했던 계율이었다. 인간이 신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탐스러운 열매를 한 입 깨무는 '사건(해체)'만으로 충분하다. 이로 인해 비록 '신/인간'의 절대적 이원관계는 흔들렸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 선악과 '위반'에 대한 해체주의적 함의는 이 지점에서 마련될 수 있다.

9Hermeneutic Phenomenology of a National Glossolalia: Memory, Myth, and Allegory

저자 : Kwon Jeongkee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학연구 4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27-374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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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방언의 해석학적 현상학: 기억, 신화, 알레고리”
이 논문은 한국인의 집단기억의 구조를 해석학적 현상학의 관점에서 구성해 보고자 한다. 이는 자아 또는 민족 형성의 현상학적 내용과 해석학적 특성이 결합하여 정체성을 구성하는 변증법적 과정의 탐구이다. 먼저 주요한 도덕감정 중 하나인 '르상티망'이란 무엇인데 근대의 정체성의 정치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알아본다. 이어 '집단기억'의 선이해적 구조가 신화와 알레고리의 형태로 개인과 민족으로서의 우리의 세계관을 정의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인지되고 재구성된 고난의 역사에 대한 집단기억인 르상티망의'신화'가 근대성과 조우하여 민족 형성의 기반이 되고, 민족주의는 다시금 선민성과 유일성으로 구성되는 집단기억의 '민족방언'을 구현하는 '해석학적 순환'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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