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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 1930년 『신편(新編)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요망건(要望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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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신편(新編)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요망건(要望件)에 대하여

A Study on the proposal for the Revision of Chinese Classic Textbooks in 1930

박영미 ( Park Youngmi )
  • : 근역한문학회
  • : 한문학논집 5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6월
  • : 225-264(40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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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高等普通學校 朝鮮語及漢文科와 敎科書
3.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편찬과 특징
4.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에 대하여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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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직후, 조선총독부는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을 발포하였고 이 교육령에 기반해 편찬된 것이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이다.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은 『稿本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과는 달리 조선어부와 한문부로 구분하고 1-3권까지 현토 하였다.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가 발간되면서 참고용 도서도 여러 종류가 간행되었다. 이 교재를 5-6년 정도 사용하다가 1930년, 경성부내 한문교원회가 중심이 되어 학무국에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동아일보』에 1930년 2월 28일부터 3월 9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을 연재하였다. 한문교원회는 현행 독본이 크게 배열 순서와 存拔에 관한 것, 착오 및 중출 등에 관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내용을 선택하여야 하고, 학생들이 흥미를 잃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독본에는 문법 연습, 삽화를 넣을 것, 종이 질 및 장정도 고려할 것을 요구하였다. 교재의 내용도 문학적인 성취가 있는 것을 넣고, 쉬운 데서 어려운 데로 그리고 단문에서 장문으로 학습할 것을 희망하였다. 한문교원회는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의 오류를 별표로 제공되었는데 현토 오류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930년 학무국은 이들의 요구와는 별도로 교과서 개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이 제출되면서 출판에 박차를 가하여 1933년부터 『中等敎育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1937년 조선어급한문과에서 한문과는 폐지되었고 조선어과로 개편이 되었다. 이후, 고등보통교육에서의 국어(일본어)급한문과에서 이루어졌다.
After the 3 · 1 Independence Movement(of Korea),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issued the second Joseon Education Decree in 1922.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published new textbooks in accordance with the new Decree. That was 『New Korean and Chinese Classic Reading book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 『New Korean and Chinese Classic Reading book(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 was divided into two parts: Korean and Chinese Classic, and made up to 1-3 volumes added Korean endings to classical Chinese phrases.(吐) Several kinds of reference books related to those text books had been published in particular.
In 1930, the Korean-Chinese Teachers' Association submitted a proposal to the Office of Education to revise the textbook. And It was serialized 10 times in Dong-A Ilbo. They pointed out each of the problems and errors in the text books. And they hoped that the text books to be published would arouse interest in students and fill them with content that fit their learning levels.
In 1930, the Office of Education was planning to compile a new textbook even before their demands. Just in time, when the proposal was submitted, the Office of Education accelerated the publication of the new textbook. As a result, 『Secondary Korean and Chinese Classic Reading book(中等敎育朝鮮語及漢文讀 本)』 was published. The new book was used from 1933 to 1937. By 1937, Korean-Chinese was finally abolished. Only Korean was left. Since then, Chinese Classic has been taught in Japnese and Chinese Classic(國語及漢文) c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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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3회
  • : 1225-1313
  • : 2713-9905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3-2020
  • :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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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촌(象村) 신흠(申欽)의 풍체(風體)에 관한 고찰

저자 : 尹錫花 ( Yoon Sukhw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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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은 穆陵盛世에 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風體 16편을 남겼다. '풍체'란 四言古詩의 시경체를 말한다.
그의 풍체에는 백성을 권면하는 시와 풍자의 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그의 생애와 관련된 것으로 평탄한 관료생활 기간에는 백성을 교화하는 일환으로 권면의 시를 읊었고, 광해조의 계축옥사 이후에는 사회풍자의 시가 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권면의 시에는 농업의 권장과 교육의 지표를 내세웠고, 풍자의 시에는 자신의 억울함과 사회의 모순, 즉 소인배의 횡행을 지적하고 있다.
상촌의 풍체에 있어 특징은 개인의 성정을 읊은 國風의 성격이라기보다는 백성을 상대로 한, 조정관료로서의 신분에서 읊은 雅의 문체를 구가하였다. 이는 관료의 입장에서 조정의 정책 및 교화라는 公的인 시가를 읊은 때문이다. 이러한 시풍은 멀리 陽村 權近이 조선조 창업제왕을 찬양한 시경의 大雅의 문체를 계승하여, 아래로 茶山 丁若鏞 등의 사회풍자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2『팔선루집(八仙樓集)』, 기생의 사랑과 이별

저자 : 박영민 ( Park Young-m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3-7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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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仙樓集』은 2018년 11월 25일 KBS1에서 방송된 제1149회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처음 일반에 공개된 필사본 유일본이다. 본고는 『八仙樓集』(개인소장본)을 통해 기생의 사랑과 이별의 형태를 보다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그래서 기생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에게 사랑과 이별은 무엇이었을까를 살펴보았다. 기생은 박학, 시재, 덕 등의 덕목을 기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근거로 보았고, 이 가치를 가지고 자신의 가치에 상응하는 짝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생이 자신의 가치를 키우고 그 가치에 상응하는 상대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그가 누구를 만나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사랑을 이룬 기생들은 주변의 축하를 받았고 아직 사랑을 이루지 못한 기생들은 은근한 재촉을 받았다. 그런데 소운과 미양공자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을 풍류공간으로 명명하는 것을 통해 볼 때, 기생이 꿈꾸는 百年之約은 단 한 번의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생과 남성의 만남은 혼인과 풍류 그 사이의 지점에 자리하고 있고, 혼인과 풍류 사이에 자리잡은 기생의 百年之約은 불변하는 사랑, 영원한 지속과는 거리가 있는 관계이다. 이 점이 사랑의 주체인 기생들이 빈번하게 혼인과 관련된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신분의 여성들과는 다른 함의를 부여하는 이유이다.

3조선시대 임종 장례 일기 연구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3-10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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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장례 일기는 임종과 장례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죽은 사람을 대신해 그의 가장 측근 중 한 사람이 기록한다. 일기는 날짜별로 기록된 자신의 일상이니 당연히 작성자 또한 본인이 되지만, 임종 장례 일기의 경우는 타인을 대상으로 한 기록이다.
통상 임종 장례일기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임종의 순간이나 장례의 과정을 다룬다. 일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1달 안팎의 짧은 기간을 다루고 있다. 지금 흔히 쓰는 考終日記란 용어는 임종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용어로는 임종 장례 일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임종 일기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죽음을 맞는 모습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생 동안 했던 공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증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의 생활을 단절하지 않고 육신이 한계치에 이를 때까지 지속했으며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정중했다. 이 모든 것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바탕이 되었다. 제자들에 대한 강론을 지속하고 문병객들을 상대했다.
병세가 위중해지면 더 이상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집중하지 않았다. 본인의 몸에서 보내오는 죽음의 증후를 인정하며 의원을 청하거나 약을 먹지 않고, 음식 섭취를 줄여나갔다. 몹시 위중해지면 남에게 배변을 위한 도움을 받거나 노출이 불가피할 때도 극도로 조심했다. 생애 마지막 순간에 임박하며 정침으로 자리를 옮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도 내 삶을 점검하는데 필요한 공부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죽음에서 지금까지 살아 왔던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의 의미를 재조정하는 시간이 된다. 그들이 갔던 길이 곧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임종 장례 일기는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웰다잉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4임재당(任再堂)의 『갑진일록(甲辰日錄)』에 나타난 죽음과 애도

저자 : 鄭雨峰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3-13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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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任再堂(1686-1726)이 아내의 죽음 이후의 삶을 기록한 일기인 『甲辰日錄』을 중심으로 조선후기에 이르러 나타난 일기문학 및 悼亡文學의 새로운 경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갑진일록』에 나타난 애도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일기 장르의 선택 및 작품 구조, 작품상의 중요한 특징적 면모를 구명하였다.
임재당의 『갑진일록』은 지금까지 알려진 전근대시기 일기 자료 가운데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갑진일록』은 홀로 남겨진 작자가 아내의 죽음 이후로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소상하게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문이나 행장, 묘지명 등을 통해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기라는 장르를 통해 홀로 남겨진 자의 애도의 글쓰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일기문학으로서의 특별한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특정 장르를 활용하여 창작된 기왕의 도망문학과 달리 『갑진일록』은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낸 이후 홀로 남겨진 작자의 달라진 생활과 변화된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내해야 했던 내면의 감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매우 구체적이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만 2년에 걸쳐 지속된 시간 속에서 작자가 견뎌내야 했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리움의 감정이 일상의 나날 속에서 끊임없이 환기되고 있다는 점이 도망문학으로서의 『갑진일록』이 지닌 특징적인 면모이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悼亡詩文의 창작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의 하나는 悼亡錄의 편찬이다. 悼亡錄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 단행본 저술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제문, 묘지명, 행장 등의 단일 장르를 이용한 창작에서 벗어나 단행본 형태의 悼亡錄이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 18세기 이후 주목할 만한 변화의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문을 통해 다루고자 한다.

5정원용(鄭元容)의 기록정신과 저술(著述)

저자 : 권은지 ( Kwon Eun-ji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3-15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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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세기 관료 문인이자 지식인이었던 經山 鄭元容(1783-1873)의 기록정신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원용의 저술을 제시하고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기존연구에서 정원용의 기록정신에 대해 많이 언급하였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울러 정원용이 남긴 저술의 전체 규모와 현황에 관한 연구는 미흡한 편이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정원용의 기록정신의 배경과 저술의 전체 현황을 고찰하였다.
먼저 2장에서 정원용의 기록정신의 배경을 가학, 관료로서의 경험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정원용은 서울에 대대로 세거한 동래 정씨의 박학과 문헌학에 기초한 학풍과 아버지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기록을 중시하며 다양한 문헌을 접하였다. 또한, 그는 70여 년간 벼슬을 하며 국가에서 주도하는 다양한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고, 헌종 즉위 이후 여러 차례 삼정승을 지내며 조정의 중심에서 국정을 이끌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철종 즉위 이후 국정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국가의 전장, 제도와 관련된 저술을 편찬하였다.
3장에서 정원용의 저술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정원용의 현전 저술은 모두 21종으로 이들을 표를 통해 시기별로 제시하고, 소장 현황을 밝혔다. 그리고 이 가운데 기존의 해제나 설명에 오류가 있었던 『經山北征錄』, 『黃閣章奏』를 검토하여 이를 다시 규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원용의 저술을 관료로서의 자의식을 중심에 두고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①관료로서의 삶을 기록한 저술 ②실제 정무 과정 및 관련 문서를 모은 저술 ③실무 관련 典章ㆍ制度를 상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한 저술 ④복합적 성격의 저술로 분류하고 간략히 고찰하였다.

6갑오·을미년 한 지방관의 소신과 기록 -수당 이남규의 영흥 부사 시절-

저자 : 서성준 ( Seo Sung Ju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9-19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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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거울로 삼고자, 구한말 국권 침탈기 갑오년(1894), 을미년(1895)에 영흥 부사를 지냈던 修堂 李南珪(1855~1907)의 행적과 소신에 초점을 맞추었다. 수당의 영흥 부사 시절의 기록인 『갑오일기』와 『을미일기』, 관련된 50여 편의 시문을 자료로 하여 영흥 부임 경위부터 사퇴까지의 15개월여를 살펴 시대상, 수당의 행적과 사상, 내면과 정서, 지향과 소신, 사퇴 경위, 유교 지식인으로서의 현실 대응을 고찰하였다.
수당의 영흥 부사로서의 행적과 소신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民生 수습과 광산 철폐령'. 수당은 각종 사건과 재난시 民生 구호 및 수습에 진력하였고 임소에 도착하기 전 광산 철폐령을 감행하는 등, 영흥 지역 백성들에게 福星이 되고反風之政을 펼치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豐沛之鄕과 尙武之地의 전통'. 수당은 조선 왕조의 발상지이자 關防 요충지인 영흥에서 역사적 전통과 지역적 특성을 유지하고 계승하려 노력하였다.
셋째, '儒風 진작과 文敎 장려'. 수당은 關北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시각과 인식을 교정하여 이곳에 기대를 걸었다, 곧 관북의 儒風을 진작하고 文敎를 장려하여 학문의 힘으로 당대 현실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넷째, '廢后 勅命 반대와 自劾'. 수당은 乙未事變 때 복수설치를 주장했으며, 폐후 칙명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소신이 용납되지 않자 스스로를 탄핵하여 벼슬을 던지고 낙향하였다. 수당은 갑오년과 을미년의 혼란 속에서 유교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소임을 다했으며 그 배운 바를 소신껏 실천하였다. 그의 의리 정신, 자주적인 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하고자 했던 삶의 자세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7『관저(關雎)』의 수용 양상과 주요 논의에 관하여 -조선시대 문집과 실록을 중심으로-

저자 : 이상봉 ( Lee Sang B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9-22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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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은 유학의 대표적인 경전이기에 주자는 『시경집전』을 남겼고, 주자의 학설에 경도된 대부분의 조선 문인들은 「관저」를 '후비의 덕'이나 '왕실의 교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관저」를 단순한 사랑의 노래나 축혼가로 보는 견해도 많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성립되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개별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기 마련이어서, 고려말과 조선시대에는 「관저」의 내용을 '후비의 덕'이나 '왕실의 교화'로 인식하면서 敎命文·表文·箋文·상소문 등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또한 임금과 대신들이 함께한 자리에서도 「관저」의 내용을 비유로 삼아 대화를 나눌 정도로 「관저」는 조선의 왕실과 고위층 사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저」에 대한 조선문인들의 논의 중 두드러진 것은 공자가 말한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의 해석문제와 「관저」의 화자가 누구인지의 문제였다. 이익은 '樂而不淫'을 방안에서 연주하는 琴瑟을 이용해서 성욕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절제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았고, 정약용은 '荇菜流芼'가 제사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哀而不傷'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이익의 경우 '琴瑟友之'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樂而不淫'을 '음악'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한것 같다. '琴瑟'이 '음악'이 아니라 '음률의 조화로움'으로 '부부의 화목함'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樂而不淫'은 지나치지 않고 '절제된 사랑의 표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것 같다. '哀而不傷'에 대한 정약용과 이삼환의 논쟁에서는 '荇菜流芼'가 제사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 정약용의 주장이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삼환의 말처럼 「관저」를 가지고 주남 전체, 또는 『시경』 전편을 지칭한다면, 「관저」만을 가리키고 싶을 때는 어떤 표현을 써야 되는지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관저」의 화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문인과 왕들이 궁인을 지목했는데, 더러는 문왕을 지목하기도 했고, 안정복은 알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성록』의 기록에 따르면 영조의 경우 「관저」의 작자를 詩人(侍人)이라고 했는데, 작자를 밝혀낼 수 없는 상황에서 희박한 근거를 내세우며 작자를 단정하기 보다는 그냥 詩人(侍人)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판단인 듯하다.

81930년 『신편(新編)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요망건(要望件)에 대하여

저자 : 박영미 ( Park Youngmi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5-26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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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직후, 조선총독부는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을 발포하였고 이 교육령에 기반해 편찬된 것이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이다.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은 『稿本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과는 달리 조선어부와 한문부로 구분하고 1-3권까지 현토 하였다. 『新編朝鮮語及漢文讀本』가 발간되면서 참고용 도서도 여러 종류가 간행되었다. 이 교재를 5-6년 정도 사용하다가 1930년, 경성부내 한문교원회가 중심이 되어 학무국에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동아일보』에 1930년 2월 28일부터 3월 9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을 연재하였다. 한문교원회는 현행 독본이 크게 배열 순서와 存拔에 관한 것, 착오 및 중출 등에 관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내용을 선택하여야 하고, 학생들이 흥미를 잃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독본에는 문법 연습, 삽화를 넣을 것, 종이 질 및 장정도 고려할 것을 요구하였다. 교재의 내용도 문학적인 성취가 있는 것을 넣고, 쉬운 데서 어려운 데로 그리고 단문에서 장문으로 학습할 것을 희망하였다. 한문교원회는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의 오류를 별표로 제공되었는데 현토 오류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930년 학무국은 이들의 요구와는 별도로 교과서 개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新編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개편 要望件이 제출되면서 출판에 박차를 가하여 1933년부터 『中等敎育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1937년 조선어급한문과에서 한문과는 폐지되었고 조선어과로 개편이 되었다. 이후, 고등보통교육에서의 국어(일본어)급한문과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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