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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한국문화연구>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 등재된 경기도 자기소(磁器所)의 입지 특징과 등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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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 등재된 경기도 자기소(磁器所)의 입지 특징과 등재 기준

The Location Characteristics and the Registration Criteria of Jagiso(磁器所) in Gyeonggi Province Examined Through 『The Annals of King Sejong(世宗實錄) 』 and 「Book of Geography(地理志)」

박정민 ( Park Jungmin )
  •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 한국문화연구 3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6월
  • : 75-107(33pages)

DOI


목차

Ⅰ. 머리말
Ⅱ. 경기도 자기소 분포와 입지 상황
Ⅲ. 조선 왕실의 講武와 경기도 내 자기소 등재 군현 의 상관성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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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世宗實錄』 「地理志」를 기준으로 磁器所가 등재된 경기도 郡縣의 입지 특징을 파악하여 경기도 자기소의 등재 기준을 추론한 것이다. 조선 정부는 전국에 걸쳐 139곳의 자기소를 마련했으나, 전국 모든 군현에 자기소가 등재되지는 않았다. 어떤 목적과 기준에 의해 자기소를 등재한 것이다. 당시 조선정부의 전국 자기소 등재기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道 단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정 등재 기준은 전국에 걸쳐 적용했겠지만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등재 기준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에는 廣州牧 등 10개 군현에 총 14개의 자기소가 등재되었다. 경기도 자기소는 대부분 경기도의 동쪽 절반에 해당하는 山地 군현에 자리한다. 이 지역은 대부분 숲이 많아 자기 제작이 용이하고, 조선 왕실이 講武場으로 자주 이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 정부는 강무장 인근 주민들의 피해와 반발을 줄이기 위해 강무 때 필요한 물자를 해당 지방에 미리 준비했다. 다수의 강무 인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할 다량의 그릇 역시 반드시 사전에 갖추어야 할 물품이었을 것이다. 조선 정부는 강무장으로 사용한 군현에 자기소를 등재해서 필요한 그릇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경기도와 왕실간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이자 경기도 자기소 등재 기준에 풍부한 땔감과 왕실의 중요행사 준비라는 요소가 반영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This study deduces the location characteristics in local counties and prefectures(郡縣) of Gyeonggi province, which are recorded ceramics workshop known as Jagiso(磁器所) in 『The Annals of King Sejong(世宗實錄)』 and 「book of geography(地理志)」thereby inferring the criteria of registration for Jagiso in Gyeonggi province.
139 kilns across the country in the early Joseon period. At this time, some kilns were registered as Jagiso. Some kilns were not so.
As for the registration criteria of Jagiso in the whole country, there is a need to first grasp a situation in the unit of province(道). That is because even the registration criteria of having reflected regional particularity will definitely exist even though the specific registration of criteria may be applied across the country.
In Gyeonggi province, totally 14 sites of Jagiso were registered in 10 local counties and prefectures such as Gwangjumok(廣州牧).
Jagiso in Gyeonggi province is mostly situated in mountain area of corresponding to the eastern half of Gyeonggi province. This districts were used as great hunting ceremony field(講武場) by the royal family of Joseon. The Joseon government prepared beforehand for the necessary supplies during great hunting ceremony in the district in order to reduce damage and resistance of local residents living near the great hunting ceremony field. The Joseon government seems to have secured necessary bowls through recording Jagiso in local counties and prefectures of having been used as great hunting ceremony.
This phenomenon is the result that was reflected distinct characteristics between Gyeonggi province and the royal family. In addition the registration criteria of Jagiso in Gyeonggi province can be understood in which even the correlation with the royal great hunting ceremony was refl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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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석기시대의 기후 변동과 석기 조성의 변화

저자 : 이기성 ( Yi Kisu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4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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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문화 변동을 설명하는데 있어 기후 변화는 큰 기제로 인식되어 왔다. 구석기시대의 종말과 신석기시대 시작까지의 공백기, 동남해안과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문화 등장의 시간적 차이, 신석기시대 중기에 확인되는 유적입지의 변화와 농경의 확산, 신석기시대 후만기의 유적의 해체 등, 신석기시대 문화의 시간적인 흐름에 있어 중요한 획기로 여겨지는 것들은 직간접적으로 기후변화와 연동되어 있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신석기시대의 문화 변동 중, 가장 큰 획기로 이야기되는 것은 신석기시대 중기의 내륙 지역으로의 유적 입지 변화와 그에 따른 농경의 수용 및 확산이며, 농경의 수용 및 확산의 증거를 석기의 조성변화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적인 검토에서는 기후 변동과 농경의 수용 그리고 석기 조성의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농경의 수용 등은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 다양한 적응전략의 산물일 수 있으며,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신석기시대 석기의 성격상, 농경 수용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 이야기되는 타제석부의 등장을 반드시 농경의 증거만으로 해석할 수도 없다.
물론 신석기시대 기후 변동이 당시의 사회, 생업경제 등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나, 그 인과관계에 대한 접근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한국 미술에 호명된 고구려 고분벽화 -해방 이후-1970년대의 전개 양상을 중심으로-

저자 : 송희경 ( Song Heekyu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3-7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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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는 한반도의 국혼이 담긴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강력한 국가의 아름다운 묘장 미술로 인식되어 왔다. 한국미술 통사에 수록된 고구려 고분벽화를 살펴보면, 해방 직후에는 일본 고대 문화에 영향을 준 민족 미술로, 1960-70년대에는 우리 그림의 시작점이자 동아시아 고대 회화사의 연결고리로 기술됐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동양화 창작 분야에서 민족성 확립과 현대성 추구를 위한 창작의 해법으로 활용됐다. 특히 이응노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조형성을 채색화의 대안이자 추상의 양식적 근원으로 보았다. 또한 1970년대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제작 방식, 특히 안료의 재질을 분석하여 동양화 채색에 응용하는 방법론이 발표됐다. 수묵화에 경도된 창작 경향을 극복하고 채색화의 우수성을 표명하여 동양화의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 고구려 고분벽화가 연구된 것이다. 이는 현대 미술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동양화단이 여타 장르와의 차별화를 표명하고자 전통을 소환하는 습속을 알려준다. 이렇듯 고구려 고분벽화는 민족성 담론에 부합하는 범본으로, 한국미술사 서술의 시작으로, 동양화의 현대성을 이룩하기 위한 창작의 해법으로 적극 호명됐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간직한 미술사적 의의와 풍부한 조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현상인 셈이다.

3『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 등재된 경기도 자기소(磁器所)의 입지 특징과 등재 기준

저자 : 박정민 ( Park Jungmi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5-10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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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世宗實錄』 「地理志」를 기준으로 磁器所가 등재된 경기도 郡縣의 입지 특징을 파악하여 경기도 자기소의 등재 기준을 추론한 것이다. 조선 정부는 전국에 걸쳐 139곳의 자기소를 마련했으나, 전국 모든 군현에 자기소가 등재되지는 않았다. 어떤 목적과 기준에 의해 자기소를 등재한 것이다. 당시 조선정부의 전국 자기소 등재기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道 단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정 등재 기준은 전국에 걸쳐 적용했겠지만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등재 기준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에는 廣州牧 등 10개 군현에 총 14개의 자기소가 등재되었다. 경기도 자기소는 대부분 경기도의 동쪽 절반에 해당하는 山地 군현에 자리한다. 이 지역은 대부분 숲이 많아 자기 제작이 용이하고, 조선 왕실이 講武場으로 자주 이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 정부는 강무장 인근 주민들의 피해와 반발을 줄이기 위해 강무 때 필요한 물자를 해당 지방에 미리 준비했다. 다수의 강무 인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할 다량의 그릇 역시 반드시 사전에 갖추어야 할 물품이었을 것이다. 조선 정부는 강무장으로 사용한 군현에 자기소를 등재해서 필요한 그릇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경기도와 왕실간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이자 경기도 자기소 등재 기준에 풍부한 땔감과 왕실의 중요행사 준비라는 요소가 반영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4조선시대 추고경차관 제도의 운영

저자 : 허문행 ( Heo Moonhae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9-13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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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시대 추고경차관推考敬差官 제도에 대해 분석한 것이다. 조선시대 지방에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앙에서 경차관敬差官으로 불리는 관원이 파견되었다. 경차관은 국가의 재정, 군사,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는데, 추고경차관은 지방에서 발생한 강상범죄를 철저하게 조사하는 '특별수사관'이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추고경차관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5세기 중반으로 19세기까지 약 250건의 활동사례가 확인된다. 추고경차관은 표류자의 수색, 도적의 체포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16세기 이후 주로 강상범죄綱常犯罪의 조사를 전담하게 되었다. 강상범죄는 왕실王室 혹은 친족親族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를 가리킨다.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은 국가와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성리학性理學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강상사건은 통치이념을 위협하는 요소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강상사건을 더욱 엄격하게 다스리는 한편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고경차관을 파견하였다.
추고경차관은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서 사건의 정황을 조사하고 연관된 사람들을 직접 심문했으며 죄인에게 최후 진술을 받아 국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추고경차관의 파견이 증가하면서 활동에 필요한 규정이 정비되기 시작했다. 추고경차관에게 발급된 「추고경차관 재거사목推考敬差官齎去事目」에는 임무와 권한이 기록되어 있다.
추고경차관 제도를 통해 조선시대 국가의 지방 강상범죄에 대한 인식,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 경차관의 임무와 권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경차관의 성격을 밝히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5사직공원 조성과 사직단을 둘러싼 '개발'과 '문화재보호' 담론의 대립 -일제시기부터 1960년대를 중심으로-

저자 : 김수자 ( Kim Sooja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7-17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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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및 사직공원은 해방 이후에도 정체성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 문화유적 중 하나이다. 일제시기 사직단의 훼손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사직단의 기능을 정지시킨 것 외에도 사단과 직단, 두 단만 남기고 나머지 시설물들을 철거, 원형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만든 것, 그리고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신성시되었던 제의공간을 위락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사직단의 원형은 일제가 패망되고, 해방된 이후에도 6.25 전쟁 등 시대 상황의 급변 등으로 방치된 채 복원되지 못하였다. 특히 1960년대는 도시계획에 따른 '개발'에 밀려 사직단의 중심 요소들이 더욱 축소되거나 변형되었다. 사직정문은 도로건설계획에 의거, 보행자 및 운전자들의 운행을 위해 이전되면서 사직단으로 들어가는 '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직단 복원 관련 논의들은 현재뿐 아니라 해방 이후 1960년대의 '개발'과 '문화재 보호' 담론의 대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일제시기 변형된 공간들의 복원 및 정체성 확립을 둘러싼 담론의 고찰은 탈식민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인식을 살펴보는 것이기도 하다.
사직공원 및 사직단의 정체성 회복을 둘러싼 논의들은 큰 틀에서 '민족' 담론과 '개발' 담론의 대립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 식민시기를 거치면서 왜곡, 변형된 상징공간의 정체성 회복 과정의 지난함을 살펴보는 데도 유용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6Current Trends and Prospects for the Development of Korean Studies in Russia

저자 : Mozol T. , Pokholkova E.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3-187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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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국불교사 연구를 일단락 짓다 -정병삼, 『한국 불교사』 (푸른역사, 2020)-

저자 : 박광연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1-197 (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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