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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지역의 목판 인쇄 문화 연구

Research on the Woodblock Printing Culture in Gangwon Province in Joseon dynasty

최경훈 ( Choi Kyung-hun )
  • : 강원사학회
  • : 강원사학 34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5월
  • : 91-125(35pages)

DOI

10.31097/KHR.2020.34.04


목차

Ⅰ. 머리말
Ⅱ. 강원도 지역 간행 서적
Ⅲ. 강원도 지역 서적 간행의 특징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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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조선시대 강원도 지역 간행의 서적 조사를 통하여 강원도의 목판 인쇄 문화가 가지는 특징을 고찰한 연구이며, 연구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강원도 지역에서는 16개 고을에서 모두 183종의 목판 간행이 확인되었다. 감영(원주)과 강릉이 80종으로 간행 비중이 높아 지역 출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사찰이 있던 회양·양양(금강산), 고성(설악산)과 한양과 가까운 춘천에서 10종 이상의 서적이 간행되었고, 정선·삼척·간성에서 각 9종, 철원이 8종이며, 그 외에는 간행이 저조하였다.
둘째, 서적 간행의 유형은 124종의 서적에서 확인된다. 부임 수령의 사적 간행이 38종, 왕명 수행에 의한 간행이 30종, 민간 간행으로 사찰 간행이 52종, 지역 민간 단체에 의한 간행은 4종으로 나타나 민간 서적 간행은 사찰을 제외하면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셋째, 조선 후기의 서적 간행은 조선 전기와 비교하여 증가 추세를 보이지 않았다. 원주를 포함하여 9개 고을에서 전기보다 후기에 다소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 이유는 사찰 간행의 전반적 추이가 18세기부터 감소하는 흐름을 보인 점, 왕명이나 부임 수령의 사적 간행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여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점, 그리고 경상·충청 등 다른 지역과 달리 서원·사우를 중심으로 한 민간의 서적 간행 역할이 활발하지 못했던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넷째, 책판의 보관은 원주와 강릉, 철원 등에서 42종이 확인된다. 官版과 같은 공적 간행 책판은 관아와 향교에, 수령의 사적 간행 책판은 원주의 구룡사, 영원사 등 사찰, 강릉의 송담서원, 오봉서원 등의 서원에 보관하여 다른 지역과 같은 보편적인 현상을 보였다. 사적 간행 책판은 수령의 의지에 따라 이동하기도 하여 사적인 소유물로 인식되는 면이 있었다.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woodblock printing culture in Gangwon Province in Joseon dynasty. And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ings.
First, totally 183 kinds of woodblock publication were confirmed in 16 cities of Gangwon province during the Joseon dynasty. Wonju, the site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of the Gangwon province, and Gangneung published 80 kinds of books, played a central role in local publishing. More than ten kinds of books were published in Hoeyang, Yangyang, and Goseong, where there are many temples, 9 kinds of books each in Jeongseon, Samcheok and Ganseong, 8 kind of books in Cheolwon, and the others. the Buddhist Scriptures
Second, the background for the publication of 124 kinds of books was investigated including 38 kinds of personal publication by local officials, 30 kinds of public publication to carry out the royal order, 52 kinds of publication by temples, and 4 kinds of publication by the local private organization. The publication of books by local private organization was not actively carried out, and showed a tendency to rely on external influences.
Third, there are not increasing trend in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compared with the first half of the Joseon Dynasty contrary to the general trend. Nine villages, including Wonju, saw a slight decrease in the late Joseon period compared to the early Joseon period. The reasons are that overall trend of temple publication has been decreasing since the 18th century, the publication by king's order or local officials highly influenced the local publication, and that the role of private book publication by local private organization was not active unlike other regions such as Gyeongsang province.
Forth, the woodblock was kept in a government office, the Confucian temple and school(鄕校), Confucian academy(書院), or Buddhist temple, according to the background for the publication. And the woodblock was also able to move the another place in the case of personal publication by local offic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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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226-306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5-2020
  • :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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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원 영동지역의 고대(古代)~중세기(中世期) 사찰 건물지 발굴 사례와 그 성과

저자 : 홍성익 ( Hong Sung-ik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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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중국에서 도입된 남종선은 통일신라의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새로운 이데 올로기로 작용하였다. 이 남종선이 도입되고 정착하는 중심지가 강원지역의 금강산과 설악산이 되었다. 또한 오대산과 두타산권역에도 많은 사찰이 건립되고 경영되었다.
이 권역은 1980년대 이후에 여러 사찰과 절터가 발굴되었다. 금강산권역은 북한지역에 포함되어 조사된 내용이 보고되지 않았으나 설악산이 있는 양양권역의 진전사지·선림원지·낙산사, 오대산이 있는 강릉권역의 굴산사지·보현사·신복사지·한송사지·관음사지 등, 두타산권역의 삼척지역인 삼화사·천은사·흥전리 사지 등이 부분 또는 전면발굴조사 되었거나 발굴이 진행 중에 있다. 이렇게 많은 유적이 조사되고 있음에도 유적의 개체별 또는 권역별 연구는 미진한 상태이다. 일례로 강릉권역에서 「신복」이라고 새긴 기와가 여러 절터에서 출토되었고, 양양권역세서는 물고기 문양이 새겨진 기와가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었으나 유적간의 상관관계 속에서의 유물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古·中世期 가람배치에 관한 연구도 역시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즉, 출토된 유물과 유구에 대한 종합 연구가 필요하다.
이 글은 그간 발굴된 주요 유물과 유구의 성격을 살피면서 그 특징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발굴조사된 자료를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살피지 못하였다. 앞으로 출토된 기와·도자·금속류의 유물, 金堂구역인 禮佛공간과 僧堂구역인 생활공간에 대한 유구를 종합정리하면서 강원지역의 사찰 건물지에 대한 특성을 찾는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2조선전기 영동지역의 전세조공물

저자 : 박도식 ( Park Doh-sik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3-6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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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전기 영동지역의 전세조공물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전기의 공물 연구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자 하였다.
조선전기 공물에는 원공물과 전세조공물이 있었다. 원공물은 논밭의 결수를 통계하여 잡물을 계산해 중앙각사에 납부하는 공물이었고, 전세조공물은 면포·마포·유밀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징수하여 중앙각사에 납부하는 공물이었다.
전세는 주로 쌀·보리·밀·콩 등의 곡물류를 수취하였다. 이들 현물을 한양으로 운송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운송수단이 사용되었다. 특히 산지가 많아 육로 운송에 어려움이 많은 미곡과 같은 대량의 물품을 운송하는 데는 선박이 가장 적절한 수단이었다. 특히 강원도 영동지방은 험난한 큰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輸納의 어려움이 다른 도에 비해 매우 컸다. 그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조공물로 布類를 납부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조선초기에는 왕실과 관련된 사원들을 중심으로 불사가 이루어졌다. 영동지방에서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사세를 유지시켜 간 대표적인 사원은 상원사였다. 세조는 상원사를 중창할 때 이에 소요되는 경비와 자재로 米穀·綿布·正鐵 등을 내리기도 하였고, 상원사를 중창하고 낙성법회가 있었던 그 다음해에 상원사에 산산 제언을 사급하였다. 상원사에 대한 특혜는 토지에 국한되지 않고, 내수사 노비특사와 각종 잡역과 요역, 사원 소유의 염분세를 면제해 주었다. 학열은 민간에게 면포를 강제로 나누어주고 갚게 하였는데, 기한 내에 갚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식을 계산하여 받기도 하였다.

3조선전기 삼척심씨(三陟沈氏) 가문 성장의 지역 사회적 기반 - 강릉지역 삼척심씨를 중심으로 -

저자 : 임호민 ( Lim Ho-mi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9-9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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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삼척심씨 시조 심동로의 삼척 낙향 배경, 낙향 전후 그의 주요 행적, 그리고 후손들 중 강릉지역을 중심으로 가문의 성장을 주도하는 과정과 성장의 사회적 배경을 조사 정리하고 분석한 것이다.
심동로는 고려 말 유생 출신 신진관료로 정방의 치폐 문제와 관련된 기득권 세력인 권문세족들의 정치적 부패와 민전 점탈 등과 같은 부정행위에 대해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던 인물이다. 또 삼척은 심동로의 본향이자 처향이었기에 정치적 부패에 회의를 느낀 그는 고려 말 남귀여가혼과 서류부가 형태의 풍습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낙향하였던 것이다.
삼척에 낙향한 심동로는 동해·삼척 주변 해안 명소에서 유유자적하며 시를 읊고 후학을 양성하였고, 그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그의 손자대이다. 손자들이 출사를 하면서 가문의 기반은 성장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부 후손들은 인근 강릉 고을의 토성 가문들과 통혼을 하면서 강릉으로 입향하였다. 강릉 입향 과정에서 역시 남귀여가혼과 서류부가의 거주 형태는 가문을 더 성장 발전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의 후손들이 과거 응시와 출사를 이어가고 있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조선시대 심동로 후손들 중 과거합격자는 모두 17명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중 11명이 조선전기에 사마시 입격 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는 삼척심씨 가문이 삼척을 본향으로 하고는 있지만 강릉 입향 이후 과거 합격과 출사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러한 성과는 강릉대도호부 토성 가문과의 통혼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그 역시 가문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필수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4조선시대 강원도 지역의 목판 인쇄 문화 연구

저자 : 최경훈 ( Choi Kyung-hu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1-12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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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조선시대 강원도 지역 간행의 서적 조사를 통하여 강원도의 목판 인쇄 문화가 가지는 특징을 고찰한 연구이며, 연구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강원도 지역에서는 16개 고을에서 모두 183종의 목판 간행이 확인되었다. 감영(원주)과 강릉이 80종으로 간행 비중이 높아 지역 출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사찰이 있던 회양·양양(금강산), 고성(설악산)과 한양과 가까운 춘천에서 10종 이상의 서적이 간행되었고, 정선·삼척·간성에서 각 9종, 철원이 8종이며, 그 외에는 간행이 저조하였다.
둘째, 서적 간행의 유형은 124종의 서적에서 확인된다. 부임 수령의 사적 간행이 38종, 왕명 수행에 의한 간행이 30종, 민간 간행으로 사찰 간행이 52종, 지역 민간 단체에 의한 간행은 4종으로 나타나 민간 서적 간행은 사찰을 제외하면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셋째, 조선 후기의 서적 간행은 조선 전기와 비교하여 증가 추세를 보이지 않았다. 원주를 포함하여 9개 고을에서 전기보다 후기에 다소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 이유는 사찰 간행의 전반적 추이가 18세기부터 감소하는 흐름을 보인 점, 왕명이나 부임 수령의 사적 간행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여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점, 그리고 경상·충청 등 다른 지역과 달리 서원·사우를 중심으로 한 민간의 서적 간행 역할이 활발하지 못했던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넷째, 책판의 보관은 원주와 강릉, 철원 등에서 42종이 확인된다. 官版과 같은 공적 간행 책판은 관아와 향교에, 수령의 사적 간행 책판은 원주의 구룡사, 영원사 등 사찰, 강릉의 송담서원, 오봉서원 등의 서원에 보관하여 다른 지역과 같은 보편적인 현상을 보였다. 사적 간행 책판은 수령의 의지에 따라 이동하기도 하여 사적인 소유물로 인식되는 면이 있었다.

5춘천 남양홍씨가문 소장 “사초(史草) 등서본(謄書本)” 연구

저자 : 유재춘 ( Yu Jae-chu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7-15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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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지역에서 고문서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그 이후 많은 소장처에서 새로운 고문서 자료가 조사되었으며,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 소장되어 온 '사초' 사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문서는 같은 종류 고문서가 여러 개 두루마리 형태로 말려 있었는데, 종래이 문서는 <承政院日記草>로 알려 졌다. 그러나 이 문서 내용이 『승정원일기』와 유사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형태로 보면 또한 朝報와 매우 유사한 점도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朝報와 비교하여 보면 유사하기는 하지만 다른 면이 많기에 朝報로 단정하기도 곤란한 점이 있다.
이 고문서는 춘천 남양홍씨 문중에 전해오는 많은 문서 자료중 하나인데, 내용에 기록된 시기를 가늠해 보면 18세기에 해당하며, 춘천의 남양홍씨 익산군파 문중의 직계조상 가운데 당시 官界에서 활동한 인물인 洪彦喆((字 稚明, 號 適窩/1729~1796)과 관련된 문서라고 판단된다. 洪彦喆은 洪昌震의 아들로 1762년 生·進 兩試에 합격하고, 다음해의 癸未增廣 문과시험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낸 인물이며, 남양홍씨 익산군파가 춘천지역에서 자리를 잡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춘천 남양홍씨 익산군파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종래 “승정원일기초”로 알려진 고문서는 형태나 담겨진 내용상으로 보면 朝報와 매우 유사하나 이 문건에 첨부되어 있는 書吏 申泰夏가 홍언철에게 보낸 告目을 보면 이 문서의 성격이 朝報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서의 告目 내용을 보면 엄연히 조보와는 다른 문건이며, 승정원 또는 예문관 史官의 사초 일부를 謄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고문서를 굳이 성격에 따라 명칭을 부여한다면 '史草 謄書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례를 보면 기존에 조보라고 알려진 문건 가운데 일부는 이런 형태의 것으로 작성된 것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보와 유사 성격의 문서이나 그 작성되는 과정을 본다면 조보와는 다른 고문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춘천 남양홍씨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고문서는 朝報나 史草 연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6원주 우계이씨 문중 소장 「금중교문도(禁中校文圖)」의 내용과 의의

저자 : 차장섭 ( Cha Jang-sup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5-17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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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우계이씨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禁中校文圖」는 契會圖이다. 계회도는 조선시대 문인관료들의 모임을 담은 것이다. 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직된 문인 계회의 기념과 기록을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畵工을 시켜 참가자의 수만큼 그 장면을 그려서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각자의 가문에 보관하였다.
「禁中校文圖」에 그려진 인물 가운데 원주 우계이씨 문중의 이서우의 생애는 계회도가 그려진 배경이다. 李瑞雨는 조선후기 문신으로 大北 계열의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나 인조반정 이후 남인(南人)으로 당색을 전향하였다. 이서우는 숙종 연간에 지속된 환국정치기에 남인들과 운명을 같이하며 부침을 거듭하였는데, 1693년(숙종 19)에는 세 명의 동갑내기 文士인 權愈, 柳命天과 함께 讀權官으로 과거 시험을 관장하고 계회도를 제작하였다.
「禁中校文圖」는 文科 殿試를 주관하는 試官들을 그린 계회도이다. 讀權官 權愈, 柳命天, 李瑞雨 등 3인과 對讀官 朴萬鼎이 과거 시험지를 채점하는 장면을 그린 계회도는 標題, 그림, 序, 座目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權愈는 서문을 통해 계회의 취지와 결성과정, 의의 등을 명시하였으며, 座目에서 계회에 참석한 관료들의 인적사항을 기재하였다.
「禁中校文圖」는 과거제 운영과 관련하여 試官에 관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문과 전시 시관을 그린 유일한 계회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회도에 그려진 인물은 모두 당색이 南人으로 세 사람의 운명은 南人과 부침을 함께 하고 있다.
「禁中校文圖」는 계유생 동갑 계회도 성격을 가지고 있다. 李瑞雨, 權愈, 柳命天 3인은 모두 계유생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과거의 試官으로 임용된 해인 1693년(숙종19)은 癸酉年으로 이들이 회갑을 맞이하여 국왕이 축하해 주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있는 계회도가 된 것이다. 「禁中校文圖」는 국왕이 주관하는 문과 전시의 시관들을 그린 계회도로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유일한 계회도이다.
「禁中校文圖」는 우리나라 계회도의 흐름 속에서 17세기 다양화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내용적으로 동갑의 계회도와 도감의 계회도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들과는 구별되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도상적으로 조선전기 전형화된 도상에서 벗어나 건물을 국왕의 은총을 강조하기 위해 궁궐을 강조하고 인물을 축소하는 형태로 그리고 있다.

7중국의 북강항목 추진 현황 및 평가

저자 : 윤은숙 ( Yoon Eun-sook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1-22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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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2004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초원문화공정', '북강항목', '몽골족의 기원과 원조의 제릉(帝陵) 종합연구'와 '내몽골민족문화건설연구공정' 등의 몽골 관련 연구 과제를 공모하고 있고, 그 결과물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물량의 연구 성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사회과학원의 중대 3대 공정 중 하나인 북강항목은 중국의 대표적인 몽골 프로젝트의 하나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기초 연구와 응용연구 등 170여건의 연구 과제를 공모하였다.
연구 과제 공모가 공식적으로 종결된 2014년 이후의 북강항목은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눠서 후속사업을 추진하고 하고 있다. 첫째, 연구자들이 연구 결과물을 제출하고 있고, 결과물 제출 이후 과제 평가위원회의 심사 결과에 따라 논문으로 게재되고 있거나, <북부 변방의 역사와 현상 연구 문고>라는 시리즈로 내몽고대학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다. 둘째, 북강항목의 연구 성과를 점검, 공유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학술연구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셋째, 기관 책임자 및 전문가들로 싱크탱크를 구성해, 북강공정의 방향, 현 상황의 진단과 문제점 등을 분석하는 북강논단, 북강항목 연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북강학술살롱 그리고 핵심 주제에 대한 강연회라 할 수 있는 북강강단 등을 개최해 연구 성과를 공유 및 확산시키고 있다.

8상설영화극장 니켈로디언의 관객 연구

저자 : 홍종규 ( Hong Jong-gyu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4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7-24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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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로디언은 1905년 피츠버그에서 해리 베이비스와 존 해리스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다. 거리에 상점입구를 면한 점포를 영화 극장으로 개조한 니켈로디언은 대체로 적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을 보유하였다. 5센트나 10센트라는 적은 비용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던 니켈로디언은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1910년에 이르면 미국 전역에 약 1만여 곳이 운영되었고, 이 시기 미국인의 여가 생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니켈로디언의 관객을 분석하는 것은 20세기 초 미국인의 여가생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니켈로디언의 관객에 대한 연구는 사회 계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니켈로디언의 관객은 노동계층, 이민자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는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사회계층을 중심으로 관객을 분석하여, 다양한 역사의 행위자를 충분히 분석하지 못한 한계 또한 가진다. 특히 니켈로디언이 등장한 초기부터 주요 행위자였던 여성과 아동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본 연구은 지금까지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니켈로디언의 주요한 행위자 중 하나였던 영화관객을 분석하여 이 시기 미국인의 여가 생활의 한 단면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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