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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담양지역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변천

KCI등재

담양지역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변천

The Transition of Ancient Tombs and Pottery in Damyang Area

강은주 ( Kang Eun-ju )
  •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2월
  • : 87-120(34pages)

DOI

10.37924/JSSW.77.3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분의 분구 형태와 매장시설 분석
Ⅲ. 고분 출토 토기의 기종별 검토
Ⅳ.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변천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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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담양지역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를 검토해 보았다. 고분은 크게 분구묘와 매장시설만 확인된 것으로 구분되는데 분구 형태와 매장시설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 매장시설별로 확인되는 유물 구성과, 주구에서 확인되는 토기의 구성을 분석하였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크게 호류·배류·기타류로 구분하여 기종별로 검토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변화양상을 살펴보면 분구의 형태는 방형(길이 1,000㎝ 미만)·제형이 5세기 전·중엽까지 조영되다가 5세기 중·후엽부터는 방(대)형·원형·장고형으로 변화한다. 출토 토기는 매장시설과 주구에서 중형의 호류를 중심으로 확인된다가 5세기 중·후엽부터는 매장시설 내에서는 배류 중심으로 변화하며 일부 고분의 주구에서는 대호가 확인되기도 한다.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양상으로 보았을 때 담양지역은 5세기 전·중엽까지는 공간밀집적인 공동체적 생활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중엽이 되면 분구 형태가 다양해짐과 동시에 고분 출토 토기 역시 배류가 등장하면서 기종이 다양해진다. 고분 출토 토기에 있어서도 백제계·가야계·왜계 등의 요소가 확인되고 있다. 이는 5세기 중엽을 기점으로 담양지역에 새로운 요소들이 유입되는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담양지역은 5세기 중엽~6세기 전엽까지 영산강 상류지역이 물류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영산강 본류를 이용한 수운교통로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 통하는 내륙교통로로서 기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This paper reviewed the status of Ancient tombs and pottery excavated in Damyang Area so far. The status of ancient tombs was checked by dividing Mound Burial and Burial Structure that are identified without Mound Burial. Each type of Mound Burial identified in burial structure in mound or Jugu, and the relevant relationship between types of Mound Burial and burial structure was identified. The classification of pottery divided type of jars, cups, and pottery etcs.
The shape of Mound Burial is shaped like a square(less than 1,000㎝ in length) and trapezoidal until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but it changes from the middle to the late of the 5th century into a square, circular, and Keyhole-shaped Monund Burial. The pottery excavated from the site is found to be centered on medium-sized the type of jars. From the mid-to late 5th century, pottery in Burial Structure was identified the type of cups. And in some Jugus are found large-pots.
In Damyang area, new elements are flowing to ancient tombs and pottery figurines after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Damyang area was served as an inland transportation route and water traffic route through other regions in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the early 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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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계간
  • : 1975-2431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7-2020
  • :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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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국 근현대 의료사 연구의 새로운 흐름과 동향

저자 : 유연실 ( Yu Yon-sil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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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 의료사 연구는 프로테스탄트 의료사, 위생사, 질병사, 신체사, 의사와 환자의 관계, 의료 분규, 동서의학의 교류와 충돌, 의료인ㆍ병원ㆍ의료 자선단체, 의약품의 생산과 소비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연구 성과가 누적되었다. 본 논문은 1990년대부터 2019년까지 출판된 중국ㆍ대만ㆍ일본ㆍ영미의 연구 서적을 중심으로 중국근현대 의료사 연구의 동향과 향후의 전망을 소개하였다. 중국근현대 의료사의 주요 동향은 內史와 外史의 통합, 의료와 제국주의 및 근대성의 문제, 의료사의 지구사적 전환과 물질주의적 전환이라는 4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오랫동안 내사와 외사가 대립하며 의료 지식과 의학 이론의 변천만을 중시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中西醫의 회통과 의학 기술의 사회적ㆍ문화적 실천 및 작용, 기술에 대한 의료인과 대중들의 인식과 태도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둘째, 의료사를 통해서 제국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제기되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주체성과 특수성을 규명하고자 하는 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적 근대의 혼종성과 연속성의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셋째, 역사학의 지구사적 전환 속에서 지역과 세계를 연결시키려는 연구가 증가하며, 지역 사회의 의료적 노력과 제국주의의 관계, 의료 지식과 물질의 세계적 전파ㆍ소비ㆍ교류에 관한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넷째, 물질문화사적 시각에서 의료 지식의 형성과 전파, 대중의 일상생활, 의약품의 생산과 소비, 물질문화의 상징적 의미 등을 분석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이를 통해 물질문화에 투영된 권력ㆍ문화적 상징ㆍ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의료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의료사 연구가 보다 확장되기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경계 흐리기가 이루어질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어 내사와 외사의 경계 흐리기, 근대와 전통의 경계 흐리기, 지역과 세계의 경계 흐리기, 학제간의 경계 흐리기가 필요하다. 또한 의료사를 통해서 중국사를 새롭게 서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19로 인한 초국가적 위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현대 사회로 접어들수록 인간의 삶에서 질병과 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는 무엇보다 의사와 치료중심으로 인식되어왔던 의료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 질병의 사회ㆍ문화적 영향과 인간의 대응, 의료 지식과 약품의 세계적 확산과 교류, 의료와 물질문화ㆍ일생생활의 관련성 등에 대한 역사학적 회고와 전망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의료'의 정치적ㆍ사회적ㆍ문화적 함의에 대한 역사적 시사점과 교훈을 찾아내어, 이를 현대 사회의 의료 문제에 대한 이해 및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실마리로 제시하려는 노력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증적 사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모색을 통해 의료사를 이론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며, 학제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서 '통합적' 혹은 '융합적' 의료인문학의 토대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2영미 의료사의 연구 동향: 1990-2019

저자 : 이상덕 ( Lee Sang-duk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1-8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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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독일에서 시작된 의료사 연구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많은 독일 학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그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갔다. 웰컴 트러스트의 지원을 받아 영국에서도 한 세대 후 의료사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영미 의료사는 서양 의료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관심이 높고, 영국은 커먼웰스(특히, 인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연구가 많으므로 영미 의료사는 세계 의료사의 많은 부분을 연구한다. 본 연구가 영미 의료사에 집중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시기적으로 1990년에서 2019년 사이를 주목한 것은 이 시기의 연구들이 문화사적 전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의 문화사적 전환은 기존의 사회사적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과 새로운 주제들을 포함한다. 본 연구에 포함된 주요 주제들은 전염병, 여성, 어린이, 인구학과 우생학, 죽음, 공공의료, 식민지 의학, 병원과 보호시설, 환자, 트랜스내셔널, 오럴 히스토리 등이다. 사회사적 전환기의 의료사가 사회와 의료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의료를 파악하였다면 문화사적 전환기의 의료사는 개별성과 특수성에 그 초점을 맞춘다.

3담양지역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변천

저자 : 강은주 ( Kang Eun-ju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7-12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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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담양지역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를 검토해 보았다. 고분은 크게 분구묘와 매장시설만 확인된 것으로 구분되는데 분구 형태와 매장시설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 매장시설별로 확인되는 유물 구성과, 주구에서 확인되는 토기의 구성을 분석하였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크게 호류·배류·기타류로 구분하여 기종별로 검토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변화양상을 살펴보면 분구의 형태는 방형(길이 1,000㎝ 미만)·제형이 5세기 전·중엽까지 조영되다가 5세기 중·후엽부터는 방(대)형·원형·장고형으로 변화한다. 출토 토기는 매장시설과 주구에서 중형의 호류를 중심으로 확인된다가 5세기 중·후엽부터는 매장시설 내에서는 배류 중심으로 변화하며 일부 고분의 주구에서는 대호가 확인되기도 한다.
고분과 고분 출토 토기의 양상으로 보았을 때 담양지역은 5세기 전·중엽까지는 공간밀집적인 공동체적 생활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중엽이 되면 분구 형태가 다양해짐과 동시에 고분 출토 토기 역시 배류가 등장하면서 기종이 다양해진다. 고분 출토 토기에 있어서도 백제계·가야계·왜계 등의 요소가 확인되고 있다. 이는 5세기 중엽을 기점으로 담양지역에 새로운 요소들이 유입되는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담양지역은 5세기 중엽~6세기 전엽까지 영산강 상류지역이 물류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영산강 본류를 이용한 수운교통로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 통하는 내륙교통로로서 기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4일본 긴키지역의 생산유적으로 본 백제계 도래인의 정착양상

저자 : 최영주 ( Choi Young-joo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1-15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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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일본열도 긴키지역에서 확인된 백제계 도래인 관련 생산유적을 통해 그들의 정착양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도래 초창기(4세기 후엽∼5세기 중엽)에 백제계 도래인들은 지방의 유력 수장층의 비호 속에서 토기 제작과 철기 생산하였다. 초기 토기 가마유적 주변에서 '한반도형' 생활방식의 취락을 형성하고 토기 제작과 유통(항구와 교통로 상의 물류시설)을 담당했다. 야마토지역 나라현의 난고유적군에서는 백제계 도래인이 온돌 주거지와 대벽건물지('한반도형')에 생활하면서 왜인들에게 철기 생산 기술을 지도하였다. 그밖에 야마토지역과 가와치호 일대의 철기 생산유적에서도 도래 초창기에는 난고 유적군처럼 '한반도형' 생활방식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래 정착기(5세기 후엽 이후)에 백제계 도래인들은 오사카 평야지역의 개발과 가와치호 일대에서 말 사육을 본격적으로 전담하였다. 가와치호 일대의 철기 생산 취락유적에서의 백제계 도래인들은 '일부 일본형' 생활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말 사육이 성행한 시토미야기타유적에서는 5세기 전엽에 '한반도형' 생활방식에서 중엽 경에 '일부 일본형' 생활방식으로, 6세기에 대부분 '일본형' 생활방식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양상은 가와치호 일대의 백제계 취락에서 대부분 확인된다.
이렇듯 백제계 도래인들은 도래 초창기에 그들의 기존 생활방식(한반도형)을 유지하지만, 도래 정착기에는 대부분 왜의 생활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백제계 도래인들은 빠르게 일본 생활에 적응하여 고대 일본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지배구조에 확립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5조선시대 영광군수의 문서 행정과 업무

저자 : 노인환 ( Noh In-hwan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3-18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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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광군은 지방 제도의 변화, 綱常 사건, 대역죄인의 출생 및 거주지, 읍호의 강등과 陞號를 통해 영광군 또는 영광현이 되었다. 영광군수는 吏曹에서 세 명의 후보자를 올리면 국왕이 落點을 하여 임명하였고, 임명 후에 국왕에게 謝恩과 下直을 거행하였다. 영광군수는 전라도관찰사에게 牒呈으로 보고하였고, 전라도관찰사는 영광군수에게 關으로 지시하였다. 영광군수와 지방 수령 사이에도 關과 첩정으로 업무와 관련된 문서를 주고받았다. 영광군수와 소속 관원 사이에는 백성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下帖와 文報를 주고받았다. 이러한 영광군수와 지방 관원의 문서 행정은 『경국대전』 用文字式의 조항을 준용하여 이루어졌다. 영광군수의 민원 처리는 영광군 백성들이 영광군수에게 올린 所志를 통해 立案과 立旨를 통한 官의 증빙, 효행의 포상과 煙戶雜役의 면제에 대한 처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6대한제국기 무안감리(務安監理) 진상언(秦尙彦)의 반침략 외교활동

저자 : 민회수 ( Min Hoi-soo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3-21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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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尙彦은 일찍이 중인 집안 출신으로 譯科를 거쳐 出仕하였다. 그는 1880년대에 개화정책 수행을 위한 청국 시찰단인 領選使行에 선발된 뒤 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主事로 임명되어 근대적 외교인력의 풀로 활동하였다. 주로 監理와 군수 등 지방관직을 주로 역임하며 아주 고위관직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1897년 목포 개항과 더불어 務安監理로 임명되어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침탈에 대응하는 최일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이전에 개항장에서 관직들을 역임하며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토지매매와 관련된 규정을 제정하였고, 三鶴島 사건이나 租界地 내 공사에 대한 외국인의 방해 시도 등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 속에서도 시종일관 한국인의 편에서 사건을 처리하려 노력하였다.
1897년에 러시아가 木浦 영사관 부지 매입 과정에서 高下島 구입을 시도하자 그는 조계 밖 10리 이내라도 바다로 둘러싸인 곳은 외국인에게 매매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고 처음에는 중앙의 外部에서도 이에 호응하였다. 그러나 애초에 조약에 해당 조항이 없어서 불리한 입장이었던 한국 정부는 러시아 측의 집요한 요구에 결국 굴복하였다. 이후 러시아 측이 섬의 일부 토지를 매입한 뒤 그에 대한 地契 인증을 요청하자 마찬가지로 진상언은 거부했다, 하지만 매매 과정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있음에도 정부의 입장은 이미 허가해주는 쪽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에 진상언은 자신의 관할구역이 아니라는 다소 억지 논리로 지계 발급을 거부했으나 러시아 측의 계속되는 압박과 외부의 힐책으로 점차 고립되어 갔다.
한편 일본도 러시아에 자극받아 고하도 매입을 추진했는데, 먼저 李允用 명의로 구매한 뒤 일본인에게 넘기는 형태로 은밀하게 진행하였다. 결국 임대의 형태로 계약을 체결한 뒤 고종의 허락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언에게 이 사실을 공개하며 인증을 요구했으나 그는 영사관의 공문 수령 자체를 거부하며 강경하게 나왔다. 이에 일본 측에서 강력하게 항의하며 진상언의 처벌을 요구하였고, 또다시 방문한 러시아 관원의 지계 발급 요청을 마찬가지로 '관할 논리'로서 거부한 그에 대해 러시아에서도 강력히 항의하여 罰俸 처분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러시아 측이 지계 발급을 위해 고하도를 방문했을 때에도 부지의 면적 문제로 대립하다가 결국 면직 처리되고 말았다. 그의 행위는 당시 기준으로 볼 때는 자신의 관할을 남에게 미루는 직무유기였지만, 한국을 둘러싼 러·일간의 치열한 제국주의 쟁탈전이라는 당시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중앙정부가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름 자신의 관점에 따라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며 외국의 토지침탈을 저지하려는 행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7종전/해방 직후 남한에서의 간도 5ㆍ30 소환과 표상, 그리고 불안정성

저자 : 임종명 ( Im Chong-myong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5-269 (5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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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간도 5·30에 관한 한국인들의 의식은 식민지 시기 구축된 간도 5·30상에 영향 받은 것이 적지 않다. 식민지 시기에 그것은 '비민족적인, 즉 중국 공산당 주도의 폭력과 파괴의 폭동'으로 재현·표상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간도 5·30은 '조선의 운동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될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방 직후 간도 5·30 소환물은 간도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가까운 지역'으로 재현하면서, 간도 5·30의 주체들을 현재의 한국인들과 같은 '조선 동포·민족'으로 민족화하였다. 민족주의적으로 의미화된 간도 5·30은 그것의 역사화 과정에서 인민·대중 중심적으로 표상되고 또 그러한 관점에서 의미화되었다. 즉, 간도 5·30은 일본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계속된 항일무장투쟁의 정초(定礎)가 된 대중적 무장 투쟁으로 표상되고 또 그와 같이 역사화되었다. 간도 5·30의 민족 역사화는 식민지 시기 구축된 간도 5·30상, 즉 '비민족적인, 파괴와 폭력의 폭동'상을 탈식민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식민시기 한국인의 피의 투쟁'의 결과로 식민지 해방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식민지 해방이 연합국의 승리로 가능해졌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자신들의 당혹스러운 처지를 해소하는 정치적 효과를 가진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과거 식민시기 제국의 질서 안에서 비(非)·탈(脫)민족화된 조선인을 민족적 주체로 구성/생산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나아가 그것은 공산주의자 등 당대 좌익이 민족적 헤게모니를 주장할 수 있는 역사적 자원을 생산하였다는 의미 또한 가진 것이 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간도 5·30상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다.

85ㆍ18 광주민중항쟁에서 구속된 여성 활동가 이야기 - 홍보 활동가를 중심으로

저자 : 임선화 ( Im Seon-hwa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1-29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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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선전·홍보 활동을 하다가 구속된, 여성 네 명에 관한 서술이다. 전춘심, 차명숙, 박영순, 이경희. 이 네 명의 여성은 계엄군의 잔혹한 시위 진압에 반발하여 5·18에 참여하였다. 전춘심과 차명숙은 5·18 초기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할 때, 계엄군의 참상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동참을 유도하는 가두방송을 주로 하였다. 이 두 여성은 시위대와 함께 하며 계엄군과 대치하였다. 이 두 여성은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간첩'으로 오래받고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박영순과 이경희는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참여하였다. 이들은 도청의 수습대책위원회에서 주었던 원고를 가두 방송을 하거나, 전남 도청내 상황실안의 방송실을 통해 행동 수칙을 알렸다. 박영순은 27일 진압군이 도청에 들어오기 직전 5·18 시민군의 굳은 의지를 담은 내용을 방송하였다.
이 네 여성은 5·18 이전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던 여성이었다. 이 여성들 뿐만 아니라 5·18이라는 격동의 사건에 주저함없이 참여한 5·18 참여자들의 공통된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5·18에 참여하였지만, 체포, 구속, 취속, 고문, 재판, 구금 등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출소 후 가정으로 들어갔다. 이후 이들은 5·18이 국가기념일로 인정받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5·18 관련 활동을 시작하였다.

9백제·왜의 불교교류와 적칠관목주자(赤漆欟木厨子)

저자 : 강은영 ( Kang Eun-young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7-32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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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원(正倉院)의 보물은 견당사, 견신라사, 신라사신, 승려들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 8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문화의 총합이다. 그런데 정창원 소장 물품 중에 당이나 신라가 아닌 백제와 관련된 물건이 존재하다. 적칠문관목어주자(赤漆文欟木御厨子=제1주자)와 적칠관목주자(赤漆欟木厨子=제2주자)라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두 개의 주자(厨子)이다. 적칠문관목어주자는 천무천황으로부터 지통(持統), 문무(文武), 원정(元正), 성무(聖武), 효겸(孝謙) 등 역대천황에게 상속되었던 것이고, 적칠관목주자는 백제의 의자왕이 내대신(內大臣)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에게 보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들 주자(厨子)의 제조국과 현존하는 주자가 어떤 주자인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주자(厨子)의 역사적 의의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특히 경전 수납장으로서의 주자의 용도를 확인하고 주자를 통한 백제와 왜의 불교교류의 일면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또한 주자가 몇 대에 걸쳐 전해지는 과정에서 형성된 상징성의 본질을 고찰하고, 주자가 천황가·후지와라씨의 정통성이나 불교적 장엄과 어떠한 관계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의 보물을 비로자나불에 헌납한 주체는 광명황후(光明皇后)와 자미중대(紫微中臺)였다. 국가진보는 내용상, 성무천황(聖武天皇)의 유품과 광명황후가 준비한 물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광명황후 내지는 '내사(內司=자미중대)'가 준비한 물품이 <국가진보장>에 존재한다. 그중의 하나가 제2주자인 적칠관목주자(赤漆欟木厨子)이다. 주자(厨子)는 불상·불화·사리·경전 등을 안치 수납하기 위한 것으로 두자(豆子) 혹은 불감(佛龕)이라고도 한다. 즉 움직이는 경장(經藏)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칠관목주자는 유마경과 그 주석서를 수납한 채로 제명천황(齊明天皇) 때에 백제 의자왕으로부터 가마타리에게 전달되었다. 7세기 중반, 백제와 왜의 지배층은 재가불자인 유마거사가 중심이 되어 재가신앙의 사상적 근거를 제시한 유마경을 통해 사상적 동질감을 유지하였다. 이후 후지와라씨의 저택에 보관되어 있었던 유마경을 후히토(藤原不比等)의 저택과 함께 그의 적통인 광명황후가 상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광명황후의 황후즉위(立后)와 황후궁직(皇后宮職) 관하에 사경소가 생긴 직후, 불경은 사경소로 이관되고, 주자는 광명황후가 따로 보관하였을 것이다. 천무=지통계 천황가의 상징인 제1주자와 후지와라씨 적통의 상징인 적칠관목주자(제2주자)는 今上天皇(孝謙) 때에 동대사(東大寺) 비로자나불에게 헌납되었다. 즉 <국가진보장>의 헌납품은 천하의 진보를 비로자나불에게 바침으로써 불교적 군주였던 성무천황의 왕생과 새로운 불교적 군주인 효겸천황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었다.

1019세기 중엽 국제적 병기 순환 시장과 일본의 총기 무역

저자 : 김성근 ( Kim Sung-keen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7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27-35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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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중엽 국제적 병기 순환 시장의 형성을 검토하고, 그 같은 시장에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의 총기 무역이 어떻게 연관되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19세기 들어 서양 열강들에 의해 확대된 전장과 총기의 기술적 혁신, 그리고 대량생산은 총기의 순환 주기를 대폭 단축시켰다. 서양 열강들의 병기 공장에서 제조된 새로운 총기들은 속속 전장으로 투입되었고, 그 결과 성능에서 뒤처진 재래식 총기들은 전장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처럼 전장에서 밀려난 중고 총기들은 이른바 '죽음의 상인'들을 통해 국제 병기 무역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메이지 유신 전후의 일본이 대량의 서양 중고 총기를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은 막부와 번들 간의 내전적 요인은 물론, 그 같은 열강 주도의 총기 기술의 진전과 대량생산 시스템의 구축, 무기 교체 싸이클의 단축, 그리고 전쟁 이후 막대한 잉여 총기의 발생이라는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내전 후, 일본은 일부의 서양 수입 총기들을 중국 및 여타 분쟁 지역으로 재판매했는데, 그것은 일본 또한 그 같은 국제적 병기 순환 시장에 합류해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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