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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동양학> 『표해록』으로 본 18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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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으로 본 18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

The 18th Century Jeju Scholar Jang Han-cheol and Island People from Perspective of the Travel Record 『Pyohaerok』

김미선 ( Kim Misun )
  •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 : 동양학 7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20년 01월
  • : 1-20(20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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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표류일기와 장한철의 『표해록』
Ⅲ. 『표해록』에 나타난 장한철의 삶과 선비적 면모
Ⅳ. 제주도 선비 장한철의 눈에 비친 섬사람들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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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표해록』을 통해 18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Ⅱ장에서는 조선시대 표류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장한철 『표해록』 작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표해록』은 표류 체험 중 호산도에 있을 때 1차 작성되었고, 제주도로 돌아온 직후 2차 작성되어, 표류 체험이 구체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표해록』에 나타난 장한철의 삶과 선비적 면모를 살펴보았다. 가족들을 서술할 때 효와 제사를 중시하는 선비적 면모가 드러나는데, 이러한 면모는 『표해록』 전체를 관통하였다. 장한철은 유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책을 읽은 독서인으로서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여 사람들을 설득하였으며,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위기가 끝난 후에도 함께 표류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또 예의를 중시하는 면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Ⅳ장에서는 제주도 선비 장한철의 눈에 비친 섬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함께 표류한 섬사람들은 미신을 믿고, 쉽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함께 위기를 극복한 후 장한철은 섬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성품이 착하다고 긍정적으로 기술하였다. 또 표류인을 도와준 청산도 사람들, 귀환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 도움을 준 제주도 사람들을 통해 18세기에 섬사람들이 표류한 동향 사람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d 18th-century Jeju scholar Jang Han-cheol and Jeju Island people from the viewpoint of the travel record 『Pyohaerok』. To that end, Chapter Ⅱ briefly summarizes the drifting diary of the Joseon Dynasty and examined the process of writing Jang Han-cheol’s 『Pyohaerok』. 『Pyohaerok』 was primarily written while he stayed in Hosando Island after he drifted ashore, and it was secondarily written right after he returned to Jejudo, making the record very specific.
Chapter Ⅲ examines Jang Han-cheol and his scholarly life as described in 『Pyohaerok』. His scholarly spirit was manifested when he described his family, and such spirit prevailed all through the record. Jang Han-cheol studied Confucianism, and read a lot of diverse books, making him a learned man, which enabled him to analyze the situations so as to persuade the people as a leader, thus exercising his leadership through the crisis and encouraging the people drifted. Further, he valued Confucian rites.
Chapter Ⅳ examines the Island people from the perspective of Jejudo scholar Jang Han-cheol. The record describes the people drifted together as believing in superstition and easily succumbing to distress. After overcoming the crisis, however, Jang Han-cheol understood the brokenhearted island people and affirmatively described them as good-natured. Further, the record illustrated the Cheongsando people who came to the aid of the drifted people and Jejudo people who he came cross while returning home and who helped the distressed people. This offers a glimpse of the Island hometown people’s favorable treatment of the drifted people from the same town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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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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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계간
  • : 1229-3199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17-2020
  •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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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표해록』으로 본 18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

저자 : 김미선 ( Kim Mis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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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표해록』을 통해 18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Ⅱ장에서는 조선시대 표류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장한철 『표해록』 작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표해록』은 표류 체험 중 호산도에 있을 때 1차 작성되었고, 제주도로 돌아온 직후 2차 작성되어, 표류 체험이 구체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표해록』에 나타난 장한철의 삶과 선비적 면모를 살펴보았다. 가족들을 서술할 때 효와 제사를 중시하는 선비적 면모가 드러나는데, 이러한 면모는 『표해록』 전체를 관통하였다. 장한철은 유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책을 읽은 독서인으로서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여 사람들을 설득하였으며,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위기가 끝난 후에도 함께 표류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또 예의를 중시하는 면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Ⅳ장에서는 제주도 선비 장한철의 눈에 비친 섬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함께 표류한 섬사람들은 미신을 믿고, 쉽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함께 위기를 극복한 후 장한철은 섬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성품이 착하다고 긍정적으로 기술하였다. 또 표류인을 도와준 청산도 사람들, 귀환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 도움을 준 제주도 사람들을 통해 18세기에 섬사람들이 표류한 동향 사람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혜강(嵇康) 시가의 결구(結構) 분석을 통한 처세태도 연구 – '입세(入世)'에서 '출세(出世)'로 –

저자 : 심우영 ( Shim Wooye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4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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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혜강의 시를 대상으로 결구 분석을 통하여 '入世'에서 '出世'를 지향한 처세태도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의 사상 기조는 노장사상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유가적 정치 이상도 일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 총 11편 53수를 대상으로 각 단편시 및 연작시의 결구를 분석하였는데, 대부분 '입세'에서 '출세'로 가는 순차적인 배열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의 시에는 유가적 제세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고, 다만 「내 뜻을 술회하다(述志詩)」 제1수에 '고아한 뜻 펼칠 수가 없구나. (雅志不得施)'라는 시구가 등장하는데, '雅志'가 곧 노장의 無爲之治가 가능했던 상고사회처럼 만들겠다는 뜻이므로, 그의 도가적 '입세' 정신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출세'의 이유는 대부분 '고결한 자신'과 '현실적 고민 세계' 두 가지에 해당한다. '출세'로의 전환 또한 크게 '은일'과 '유선' 그리고 '도가의 소요경계'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은일'은 은일 추구와 육체적 실천 그리고 정신적 자락으로 나타났고, '유선'은 인격적 독립과 정신적 해탈을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상상 속 선계의 모습과 다양한 활동이 그려졌으며, 그의 현학사상이 가미된 '도가의 소요경계'는 무위의 도를 구축하고 玄虛와 소요유의 경계를 지향하며 萬物齊同의 사상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3리야(李冶)와 그 시(詩)에 대한 중국 문인의 인식과 평가

저자 : Park Hye Kyung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7-63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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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역대 문인들의 詩話를 통하여 李冶와 그 시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살펴보았다. 李冶의 시는 최초로 高仲武의 『中興間氣集』에 간단한 평론과 함께 6수가 수록되었으며 이 책의 비평 관점은 이후 문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문인들에 의해 기록된 일화 속에서 李冶는 재능을 지녔으나 행실이 좋지 못한 여성으로 그려졌으며 그것은 '蕩'이라는 시 비평에도 영향을 미쳤다. 明末에 이르러 처음으로 “大曆正音”이라는 中唐 시의 변화의 측면에서 李冶의 시를 바라보는 평론이 나타났다. 李冶는 大曆 시단의 문인들처럼 五言을 잘 지었으며 禮敎에 얽매이지 않고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나 자신의 주관적 사상을 유창한 詩想과 言語로 표현하였다. 李冶의 시는 大曆 시기 내향적이며 형식을 중시하는 변화된 시풍을 반영한다. 이것이 李冶와 그 시에 대한 역대 문인들의 긍·부정의 이중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李冶의 시가 가치를 인정받고 전해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4『상서(尙書)』 품사 및 어법기능 고찰 – 한어 품사 및 어법체계 연구 Ⅱ –

저자 : 여병창 ( Yeou Byungcha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5-9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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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구어 어법을 원용한 현행 한어 품사 분류 및 어법체계가 고립어인 한어의 실제에 부합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고대한어 주요 문헌들의 언어 자료를 대상으로 한 연작 연구를 통해 그 문제점을 밝히고 한어의 특성과 실제에 부합하는 품사 분류 및 어법체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장기 연구의 일환이다.
이에 본고는 선행연구인 『論 語』에 이어 두 번째 문헌인 『尙書』 중 출현빈도 10회 이상의 단어(字)를 대상으로 품사 및 어법기능을 분류, 검토하고 관련 통계를 분석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째, 조사 461개 대상 단어 중 하나의 단어가 복수의 품사 및 어법기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전체의 83%로, 단일 품사 및 어법기능을 가지는 경우의 4배 이상이다. 이처럼 겸류, 활용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은 印歐語 語法을 차용한 현재의 한어 어법체계를 전면 수정해야 할 당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名詞, 動詞, 形容詞 세 가지 주요 실사 품사간의 겸류, 활용 현상이 상당히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볼 때, 현행 품사 분류체계로 한어 실사의 품사를 분류하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한어 단어의 분류체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副詞의 實-虛 판단, 介詞와 動詞의 관계 등 실사, 허사에 관한 적지 않은 문제들이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다. 따라서 실사와 허사의 분류가 가능하거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이상과 같은 각 문헌에 대한 분석, 검증 결과를 축적함으로써, 이후로도 한어의 실제와 특성에 부합하는 품사 분류 및 어법체계를 모색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나가고자 한다.

5니토베 이나조·량치차오·신채호의 무사도·화랑도 수립 비교 연구

저자 : 최형욱 ( Choi Hyeong-wook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3-11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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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환기 서세동점의 시기에 한중일 삼국의 민족주의·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우승열패·적자생존의 엄혹한 시대환경 속에서, 전파자/가해자인 서구의 정신문화는 물론이고 수용자/피해자인 한중일 자신의 정신문화에 대해서도 성찰하고, 대체로 민족주의적, 심지어 군국주의적인 경향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자 노력했다.
한중일 지식인들은 무엇보다 국민·국가 - 국민성·국가정신을 수립하고 유지하려는 소명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간략히 정리하면, 사회진화론 → 민족주의·계몽주의 → 국민성담론 → 국혼론의 사유흐름 속에서 이상적 국민성을 모색하며 특히 상무정신을 고취하고자 했고, 이때 그 표상으로서 무사도·화랑도를 수립하고자 했다. 무사도·화랑도는 한중일이 전환 또는 위기의 국면을 맞아,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부터 만들어가며 이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지식인들의 해답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무사도·화랑도의 수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인물로는 일본의 니토베 이나조, 중국의 량치차오, 한국의 신채호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근대 전환기 또는 수난기에 국가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진취적이고 강건한 리더십과 그것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보편적으로 내면화되는 것이었다. 이에 자국의 고대 역사·인물로부터 그 모범을 추출하여 정립하고, 자신들의 문학가·사학자·언론인·교육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여 대내외적으로 선전·계몽하는 데 진력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그것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이미 군국주의적 성과도 이룬 일본의 경우는, 무사도론을 통해 그 기제와 자신들의 성과를 대내외적으로 설명하거나 과시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한창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낀 한중의 경우는 개념을 재구하고 계몽·선전하는데 힘썼다는 점이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무사도·화랑도론은 민족주의 기반 위에서 계몽주의와 군국주의를 결합시킨 산물로서의 한계가 있지만, 니토베·량치차오·신채호 등 선각자들도 한창 '상상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매몰되어 전혀 여유가 없었고, 특히 량치차오·신채호의 경우는 국가적으로 참담한 수난을 당하는 입장에서 현실적 고려가 우선이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6식민지 시기 조선 청진화교의 위상

저자 : 이은상 ( Lee Eunsa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7-14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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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세기 조선 북부지역 화교에 관한 일련의 연구 중 하나로 청진화교의 위상을 원산화교와 비교하면서 서술하였다.
우선, 청진화교의 규모를 살펴보았다. 청진의 중국인은 1912년 100여 명으로 시작하였으나 1922년부터 급증하여 1925년 1천명을 돌파하였다. 이 시점 이후 청진화교 규모는 원산화교를 앞섰다. 1940년 청진부가 나남읍과 통합하여 대청진부로 확장되면서 2천명을 돌파하였고, 1941년에는 3천명을 넘어 같은 시기 원산화교에 비해 3배 증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만주와 조선, 일본을 연결하는 철도 유통망과 항만 시설을 갖춘 공업도시로서 청진이 주목받으면서 가능해졌다.
다음으로, 1920년대 청진화교의 경제력과 화교조직을 분석하였다. 1920년대 말 청진화교의 구심점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직물상이었다. 청진과 원산 두 지역의 대표적 직물상 4호의 경제력을 비교해보면, 원산이
청진에 비해 약간 우위를 차지하였다. 1930년 당시 청진에는 화상상회(중화상회)를 포함하여 중화노공협회(中華勞工協會) 청진분회, 국민당 주조선(駐朝鮮) 청진분부(分部)가 설립되었다.
마지막으로, 1930년대 발생한 배화폭동,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외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청진화교의 위상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검토하였다. 배화폭동으로 점포를 정리한 1호를 제외하고 남은 직물상 3호는 영업을 계속하였고, 자산액은 오히려 폭동 이전에 비해 증가했다. 새롭게 부각된 직물상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교소학교의 교동(敎董, 이사)은 중화상회 임원이 겸임하는데, 1943년 말 청진화교소학교 교동으로 기존의 직물상 외에 새롭게 직물상 2호가 포함되었다. 그 중 인합동(仁合東)은 중일전쟁 이후 중화상회 대표로 활약하였다. 청진화교 직물상은 1941년 시점에 오히려 숫자와 자산액이 늘어났다. 청진화교의 경제력은 원산화교를 이미 능가하였고 인천과 경성화교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718~19世紀 朝鮮 集字碑 一考 - 顏真卿集字碑 為中心

저자 : 王亞楠 ( Wang Ya Na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1-158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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盛行於唐一代的集字碑在海東具有悠久的傳統. 特別值得注意的是, 海東樹立集字碑傳統的起源與發展與中國碑帖的流入與受容有著密切的關係, 即海東集字碑可以看作一種對中國碑帖爲代表的外來文化的積極受容的產物. 集字碑的研究對於深入考察審美趨向及外來文化的受容樣相都具有十分重要的意義. 海東集字碑的傳統可以追溯到9世紀, 通過新羅·高麗時代金石資料的考察可以發現這一時期的集字碑中王羲之行書有著絕對的優勢, 以王羲之行書碑帖集字而成的碑刻也整體再現了晉代書風. 進入朝鮮時代, 特別是18~19世紀集字碑開始大量樹立的同時集字碑的字體·構成·被撰者等多方面都發生了顯著變化. 最爲明顯的改變便是顏真卿集字碑的盛行, 更為值得注意的詩集顏字碑風潮是受到客觀條件, 審美取向與文化認同, 家門影響, 社會教化等多方面影響繼而形成的.

8예(禮)의 개정 가능성에 관한 이론적 토대 모색

저자 : 설준영 ( Seol Junyo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9-173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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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도덕 원칙으로서 예(禮)의 개정에 관한 이론적 토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예는 오랜 기간 사회의 습속을 통하여 생겨나는 도덕 원칙이다. 이때의 도덕 원칙은 사람다움[仁]과 같은 가치를 근거로 한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수많은 행위원칙을 뜻하고, 이는 다양한 형식의 예로 제도화된다. 예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렇다면 시대에 따른 형식의 변화는 내적 가치를 적합하게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변화한 예의 정당성 확보 문제이다. 이보다 근본적으로는 개정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토대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즉, 예의 시의성을 논하기 이전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토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예의 시의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묵시적 동의를 통해 확보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개별자들의 승인이 보편적 가치와 통합될 수 있는가'로 옮아간다. 본 연구에서는 유가(儒家)의 마음과 예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유가 철학에서 마음의 주체적 지위를 최초로 언급한 맹자(孟子)와 그와 대척점에 있다고 평가 받는 순자(荀子)를 비교하고, 나아가 맹자를 계승한 왕양명(王陽明)의 양지(良知) 개념을 중심으로 개별자들의 마음이 어떻게 보편의 가치가 반영된 예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관한 이론적 계기를 모색한다.

91910년대 국외 '애국창가'에 대한 음악학적 연구 - 하와이판 『애국창가』(1916)를 중심으로 -

저자 : 김보희 ( Ban Bohi Gim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6-203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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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1916년 하와이판 『애국창가』(1916)를 중심으로 북간도 광성중학교 『최신창가집』(1914), 1910년 초에 필사본으로 기록된 손봉호 편 필사본 『창가』(1910), 안수산 소장본 『구한말 애국창가집』, 손승용 편 필사본 『창가집』와 명동학교 『신찬창가집』(1913) 등이 1910년대 '애국창가'를 싣고 있는 창가와 『신한민보』에 수록된 창가를 연구하였다.
하와이판 『애국창가』(1916)와 광성학교 『최신창가집』(1914)의 수록된 곡을 비교하고 위에서 열거한 6개의 '창가집'과 『신한민보』에 수록된 독립운동가요 레퍼토리를 분석하여 1910년대에 가장 많이 부른 대표적인 '애국창가'에 나타나는 음악 장르적 특징을 연구하였다.
『애국창가』 가사의 주제적 특성은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독립정신을 요구하는 애국적인 내용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애국가>, <정신가>, <국민가>, <보국가>, <국기가>, <단군가>, <한반도가>, <경축가>, <국민회가> 등 『애국창가』의 주제는 애국, 자주, 독립 등 한인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둘째, 애국·계몽·교육적인 주제가 많다. <부모 은덕가>, <사의 은가>, <수신가>, <산보가>, <운동가>, <전진가>, <소년남자가>, 등의 애국·계몽·교육을 위한 노래의 특징은 창가 풍의 노래로 작곡된 곡들이 많다. 셋째, 서양음악인 기독교음악의 영향을 받아 내용이 종교적이다. 그러나 주제는 독립, 자유와 해방을 기원하고, 빼앗긴 나라를 구원해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본 연구에서 하와이판 『애국창가』에 실린 77곡 곡조의 저본을 고찰하기 위해 광성학교 『최신창가집』을 음악적으로 분석한 결과 『애국창가』 77곡 중 42곡이 가사와 곡조가 같은 곡이며 그 외 광성학교 『최신창가집』(1914)의 같은 곡조를 사용하고 유사한 노래 제목을 부친 곡이 13곡이다. 그러므로, 총 77곡 중 55곡이 같은 선율을 사용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광성학교 『최신창가집』(1914)보다 2년 후에 편찬된 하와이판 『애국창가』(1916)는 광성학교 『최신창가집』을 저본으로 편찬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개화기 창가는 서양 찬송가의 영향과 더불어 일본창가의 영향을 받었다. 애국창가 중에서 많은 곡이 오오노우메와카 작곡 <철도창가>는 <학도가>와 <성경목록가>, <중국의 학당악가> 등 이 시기의 창작된 독립운동가 요 중 가장 많은 곡에 영향을 주었다. 타나카 호즈미(田中穗積) 작곡 <아름다운 천연>은 한인들에게 <망향곡>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하와이판 『애국창가』(1916)에서는 찬송가로 <구쥬셩탄가>, <구쥬젼쟁가> 선율에 <망향가> 선율을 차용해서 노래했다. 결과적으로 『애국창가』(1916)의 대부분의 곡조가 새로 창작된 창가가 아니라 대부분 기존의 찬송가와 일본창가, 그리고 외국의 민요선율을 차용하여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필요한 새로운 가사를 지어 노래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음악학적 분류(민요풍의 노래, 창가풍의 노래, 찬송가풍의 노래)에 관한 연구로 앞으로 한국의 전통음악이 서양음악을 수용하면서 나타나는 음악적 변용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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