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상세보기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도예연구> 한국 현대도자 전시의 경향 연구

한국 현대도자 전시의 경향 연구

The Trends of Korean Modern & Contemporary Ceramic Exhibitions

전주희 ( Joohee Jeon )
  •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 : 도예연구 2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11월
  • : 7-34(28pages)

DOI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 현대도자 전시의 시대별 경향
Ⅲ. 맺음말

키워드 보기


초록 보기

한국의 현대도자 전시는 정전 이후 시작된 대학의 도자교육과 함께 태동하였고, 그 자장 안에서 정치·경제·문화 등의 영향을 받으며 실행되고 있다. 전시는 동시대 주요 현상들을 감지한 미술계 관련자들이 특정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에 대한 의미요소를 담은 작품들을 다각적으로 선택하여, 미술제도 안에 배치하는 종합 행위이다. 따라서 전시는 시대별 가치의 지향성을 나타내는 징후이거나 당시 상황을 확인하는 지표로 의미를 갖는다. 본 연구는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한국 현대도자 전시의 흐름과 주요전시를 짚어 경향을 분석하고, 키워드를 추출하여 시대별 변화를 읽어내고자 한다.
1950년대는 국가재건의 시기로 다양한 도자전시가 개최되지 못했으나, 일부 전시에서 근대를 탈피하여 현대로 가는 과도기적 징후들이 발견된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기술적 재현을 벗어나 도자기의 표면장식에 문양, 색감, 질감의 변화를 주는 새로운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전시는 대학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전통의 재해석을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 조형적 변화를 추구하였고 개인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작업의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1970년대 도자전시는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재해석에 대한 진화된 담론이 전시 속에 구현되지 못하고 내용적으로 정체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젊은 작가들(1940년대 출생)은 전통 연구보다 개성을 드러내는 자유로운 조형표현을 선호하였고, 대학의 동문전을 통해 과거와의 문화적 분리를 진행하였다. 1980년대에는 현대미술의 한 범주로써 도자를 매체로 접근하고 확장시키는 전시들이 급증하였다. 이와 함께 서구와 일본에서 유학생들이 돌아오며 국제미술계의 이슈들이 반영된 도자 전시들이 폭넓게 전개되었다. 199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전시주제에서 문화적 위계가 사라지며 다원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놀이·어린이·장식·여성·민속·세계 등 일상과 주변에 대한 담론을 구체화시킨 전시에서 보여지며 실천적 경향을 강화하며 동시대성을 갖춰갔다. 2000년대는 외환위기 이후 삶의 만족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식기전시가 양적으로 증가하였다. 도자·공예 비엔날레가 개최되며 담론의 장이 일시적으로 형성되며 주목을 이끌었다. 2010년대 초반에는 국공립 전시공간 이외의 사설 갤러리에서 조형도자전시가 감소되며, 공예전시나 크로스오버 전시로 대체되었다. 후반부터는 미술시장이 공예로 확장되며 조형도자 전시와 실용도자 전시가 안정적인 균형감이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지난 60여 년간의 현대도자전시는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며 조형성과 실용성 간의 시소게임으로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를 견인하며 진화시켜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exhibition of modern ceramics in Korea launched along with the ceramics education of universities that started after the Armistice, and is being carried out under the influence of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The exhibitions are a comprehensive act in which art-related people who have sensed major contemporary phenomena select a specific theme, variously select works containing the elements of the theme, and place them within the art system. Therefore, the exhibition is a sign of the direction indicating the values of each period or is meaningful as an indicator of the situation at the tim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trends of Korean contemporary ceramic exhibitions from the 1950s to the recent years, and to extract the keywords for each period.
In the 1950s, various ceramic exhibitions were not held due to the period of national reconstruction, but in some exhibitions, transitional signs to modernity are found. Aside from the technical reproduction of Goryeo celadon and Joseon white porcelain, new attempts were made to change the appearance, color, and texture on the surface decoration of ceramics. In the 1960s, the university-educated artists accepted the reinterpretation of tradition as the task of the era, pursuing the formative change, and working around solo exhibitions to form the identity of the work. Despite the quantitative increase in ceramics in the 1970s, the eVolved discourse on the reinterpretation of tradition could not be embodied in the exhibition, but stagnated in content. On the other hand, young artists (born in the 1940's) preferred free formative expression to reveal their individuality rather than traditional studies, and proceeded to cultural separation from the past through university alumni exhibitions. In the 1980s, the ceramic exhibitions of approaching and expanding the ceramics into the medium as a contemporary art, were surged. At the same time, the return of students from the West and Japan has led to a wide range of ceramic exhibitions reflecting the issues of the international art world. In the 1990s, due to the influence of post-modernism, cultural hierarchies disappeared from the exhibition subject and diversified. This phenomenon is seen in exhibitions that embodies the discourse about daily life and surroundings such as play, children, decoration, women, folklore, and the world, strengthening practical trends and equipping them with contemporaryity. In the 2000s, interest in life satisfaction increased after the financial crisis, and tableware exhibitions increased quantitatively. The Ceramics and Crafts Biennale was held, and a place for discourse was temporarily formed, attracting attention. In the early 2010's, plastic ceramic exhibitions were reduced in private galleries other than public exhibition spaces, and were replaced by craft exhibitions and crossover exhibitions. From the second half, the art market has been expanded to crafts, and the exhibition of plastic and practical ceramics has maintained a stable balance.
Therefore, during the past 60 years, modern & contemporary ceramic exhibitions have been confirmed that they are embracing the changing times and are eVolving by leading each other by maintaining the proper tension as a seesaw game between formativeness and practicality.

UCI(KEPA)

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미술
  • :
  • :
  • : 연간
  • : 2383-791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9-2019
  • : 161


저작권 안내

한국학술정보㈜의 모든 학술 자료는 각 학회 및 기관과 저작권 계약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자료를 상업적 이용, 무단 배포 등 불법적으로 이용할 시에는 저작권법 및 관계법령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발행기관 최신논문
| | | | 다운로드

1한국 현대도자 전시의 경향 연구

저자 : 전주희 ( Joohee Jeo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34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한국의 현대도자 전시는 정전 이후 시작된 대학의 도자교육과 함께 태동하였고, 그 자장 안에서 정치·경제·문화 등의 영향을 받으며 실행되고 있다. 전시는 동시대 주요 현상들을 감지한 미술계 관련자들이 특정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에 대한 의미요소를 담은 작품들을 다각적으로 선택하여, 미술제도 안에 배치하는 종합 행위이다. 따라서 전시는 시대별 가치의 지향성을 나타내는 징후이거나 당시 상황을 확인하는 지표로 의미를 갖는다. 본 연구는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한국 현대도자 전시의 흐름과 주요전시를 짚어 경향을 분석하고, 키워드를 추출하여 시대별 변화를 읽어내고자 한다.
1950년대는 국가재건의 시기로 다양한 도자전시가 개최되지 못했으나, 일부 전시에서 근대를 탈피하여 현대로 가는 과도기적 징후들이 발견된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기술적 재현을 벗어나 도자기의 표면장식에 문양, 색감, 질감의 변화를 주는 새로운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전시는 대학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전통의 재해석을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 조형적 변화를 추구하였고 개인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작업의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1970년대 도자전시는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재해석에 대한 진화된 담론이 전시 속에 구현되지 못하고 내용적으로 정체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젊은 작가들(1940년대 출생)은 전통 연구보다 개성을 드러내는 자유로운 조형표현을 선호하였고, 대학의 동문전을 통해 과거와의 문화적 분리를 진행하였다. 1980년대에는 현대미술의 한 범주로써 도자를 매체로 접근하고 확장시키는 전시들이 급증하였다. 이와 함께 서구와 일본에서 유학생들이 돌아오며 국제미술계의 이슈들이 반영된 도자 전시들이 폭넓게 전개되었다. 199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전시주제에서 문화적 위계가 사라지며 다원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놀이·어린이·장식·여성·민속·세계 등 일상과 주변에 대한 담론을 구체화시킨 전시에서 보여지며 실천적 경향을 강화하며 동시대성을 갖춰갔다. 2000년대는 외환위기 이후 삶의 만족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식기전시가 양적으로 증가하였다. 도자·공예 비엔날레가 개최되며 담론의 장이 일시적으로 형성되며 주목을 이끌었다. 2010년대 초반에는 국공립 전시공간 이외의 사설 갤러리에서 조형도자전시가 감소되며, 공예전시나 크로스오버 전시로 대체되었다. 후반부터는 미술시장이 공예로 확장되며 조형도자 전시와 실용도자 전시가 안정적인 균형감이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지난 60여 년간의 현대도자전시는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며 조형성과 실용성 간의 시소게임으로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를 견인하며 진화시켜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공예·디자인교육과 여성 : 19 - 20세기 초 서구 공예·디자인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저자 : 허보윤 ( Boyoon Her ) , 주요안나 ( Yoanna Ju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62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는 19세기-20세기 초 공예·디자인교육과 젠더 이데올로기 간의 영향관계를 규명하고자 하였으며, 특히 19세기에 등장한 서구의 공예·디자인교육기관의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이 여성성을 어떻게 구축·강화하였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근대 공예·디자인기관의 발생배경 및 설립과정 그리고 교육프로그램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당시 여성교육의 현황을 간략히 살피고, 본격적으로 공예·디자인학교에서 여성교육이 어떠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조사하여, 당대 젠더 이데올로기와의 연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당시 공예·디자인교육 역시 여타의 근대 여성교육과 마찬가지로, 서구 근대 사회가 강조하는 여성다움을 승인하고 젠더 이데올로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수행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이 연구는 근대 공예·디자인교육기관이 강조한 여성성을 가정성, 장식성, 아마추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여성다운 일은 첫째, '가정'에 속하거나 '가사노동'에 근접한 일이어야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느질이었기 때문에, 공예·디자인학교에서도 여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바느질과 자수 과목을 개설·교육했다. 둘째, 본질에 아름다움을 덧붙이거나 꾸민다는 의미에서 '장식'이 여성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장식은 사물의 표면장식부터 실내장식에 이르기까지 범주가 넓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정에 속하는 실내용품과 관련된 장식을 특히 여성교육에 필요한 분야로 인식하였다. 셋째, 여성의 일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비전문적인 아마추어 활동으로 인식하여, 전문성을 요하는 남성의 영역에서 배제했으며, 근대교육을 받아도 여성에게는 전문적인 지위가 보장되지 않았다.
이렇듯 19세기 당대의 젠더 이데올로기가 공예·디자인교육에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으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내면화한 여성성은 오늘날 공예의 여성적 이미지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공예와 여성의 관계를 새로이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며, 동시에 보다 발전적인 관계정립을 위해 여러 방면의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3한국도예에 내재된 “쓰임(用)의 가치”에 관한 탐구

저자 : 강상미 ( Sangmi Ka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3-88 (2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에 필요한 일상의 모든 물건을 제작하는 것이 당연한 공예의 사명이면서 확실한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당연한 것이었던 공예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도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도예는 오랜 과거로부터 생활 속에서 쓰임(用)으로의 정체성이 확실한 수준 높은 공예를 실현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혼란의 근대기를 거치면서 과거의 생활 속 쓰임(用)으로서의 한국도예는 우리의 일상미감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전통과 현대, 전승공예와 미술공예, 장인과 예술가라는 이중적 구조를 만들었다. 한국도예는 1960년대 이후 대학에 도예과가 편성 되면서 현대적인 조형교육을 받은 도예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은 주로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한 정부와 민간주도의 공모전을 통해 작품을 평가 받거나 전시회를 통해 발표를 하는 것이 주요활동 방법이었다. 당시 대학교육에서의 도예는 생활 속 쓰임(用)으로서의 기능이나 공예행위에 대한 철학적 가치보다 형태와 조형미에 대한 탐구에 집중하였으며 이후 해외 유학파의 영향으로 오브제 형식의 미술공예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렇게 한국도예는 서양현대미술의 영향을 받아 도예에 미술적인 개념과 정의에 바탕을 두고 발전이 되어 온 반면, 생활 속 쓰임(用)으로서 일상미감을 반영하는 공예는 소외되어왔다. 산업혁명 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예에서 “쓰임(用)”이란 단어는 혼란과 딜레마의 키워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공예의 본질적인 가치를 찾으려는 담론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개화기 이후 전문적인 조형교육을 받은 도예교육 안에서 생활 속 쓰임(用)으로의 도예가 존재한 방식을 알아보고, 현재의 도예상황을 살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떠한 도예의 가치를 필요로 하는지 찾고자 한다.
방법으로 먼저, 1960년대 대학교육의 도입 이후부터 국전, 전시를 통한 도예가의 활동방식이 현재에는 전시가 줄고 페어와 비엔날레로 변화하는 점을 주목하고 그 과정을 살펴 일상미감을 반영하는 생활 속 쓰임(用)으로서의 공예가 가지는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다음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미술공예운동,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 독일의 바우하우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북유럽의 공예정신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오늘날 한국도예에서 요구되는 현대적인 삶의 방식으로 침투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접근 방법에 대해 모색해본다. 공예는 물건이면서 가치이다.
공예는 그 나라의 생활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므로 우리의 일상미감이 반영 된 한국공예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와 발전은 디지털 시대인 21세기에 한국도예에서 찾고 있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4리좀으로 접근한 현대공예의 분화

저자 : 이은영 ( Eunyoung Le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9-105 (1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가브리엘 타르드(Gabriel Tarde)의 모나돌로지와 사회학(Monadologie et Sociologie)에 따르면 오래된 사회는 통일성을 찾고 규칙을 만드는 방향으로 흐르며, 이는 다시 분화로 이어진다. 일반화가 이해, 합일 그리고 안정의 단계라면 다양화는 그 안에 가려진 최소 단위(monade)들의 차이가 도출되는 단계이다. 일반화가 이해, 합일 그리고 안정의 단계라면 다양화는 그 안에 가려진 최소 단위(monade)들의 차이가 도출되는 단계이다. 일반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유입과 창조가 권장되며 그 역할도 커진다. 하지만 합일 속에서 새로운 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분열이 필요하다. 공예는 분열과 다양화가 쉽지 않은 영역 중에 하나다. 연구자는 이러한 상황을 들뢰즈(Gilles Deleuze)의 리좀(Rhizome)을 바탕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일원화된 구조를 다양체(multiplicity)로 다시 인식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합일점을 뒤로하는 분열의 시작점이 될수 있으며 새로운 논제들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국내 공예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영국 공예재단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구를 통해 다른 영역과의 접점을 만들고 있다. 2012년도 이후 재단에서 발표하는 논문들을 보면, 공예의 미래 가치 분석부터 시작해, 경제, 교육 그리고 앞으로 가능성 있는 분야까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여러 영역으로 주제를 넓혀나가고 있다.
V&A 연구 기관 레지던시(VARI)는 다양한 작가들과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VARI는 작가들이 박물관의 연구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하고 관련부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독려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자료는 새로운 해석을 얻게 되며, 전시장소도 이전과는 다른 공간으로 거듭나기도 한다.레지던시의 여러 협업들은 박물관의 오래된 데이터를 분화하여 새로운 다층적 의미를 만들어 낸다. 
Rhizome Ceramis Monadologie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평적 구조의 적용이다. 각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 연결접속의 원리가 적용된다. 이 단계는 도자와 다른 영역을 접속해 분화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된다. 연결접속에 의한 결과물이 보여지는 프로젝트의 중반부터는 결과물이 참여자들 각각의 지식과 경험에 기반해 재해석되고 소비 되며 분화한다.
4차 산업이후 입지가 좁아지는 공예계의 상황은 그 내부가 안정적일지라도 이를 둘러싼 사회의 가치관과 기준이 변화 한다면, 그에 발맞추기 위한 시도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리좀이 제시하는 수평적, 다층적 구조의 시야는 현 구조를 확장시키고 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리좀적 접근이 변해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새로운 공예의 발전 방향을 제시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5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이 반영된 현대 도자예술 연구

저자 : 김미경 ( Mikyoung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7-125 (1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사회적 제약과 본인의 창작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작품을 탄생시키는데, 이는 문화 예술 발전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술가들은 사회적으로 고정된 시선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취했던 행동은 예술의 진보적 결과를 낳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창의적 행위는 예술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을 찾게 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예술가들은 전통, 정치, 종교, 철학, 그리고 생활양식과 같은 고정된 사회적 제약에서 자유롭게 창작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의 레디메이드 실험은 당시의 고정된 사회 문화적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 언어와 독창성을 실현한 전위적 개념 예술의 시발점이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실험의 대표적 작품인 '샘'은 예술 작품의 전통적 정의를 전환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뒤샹의 '샘'은 기성품(레디메이드, Ready-made)이라는 일상용품이 예술적 오브제로 기능이 전환될 수 있다는 개념에서 시작되었다. 작가의 생각에 의해 선택된 오브제는 그 자체로 예술적 기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술가의 물리적 제작과정을 통해 창조된 작품이라는 전통적 예술작품의 정의는 현대예술 분야에서 다양하게 변형되고 해석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예술 분야에서 개념을 기반으로 창작 행위는 순수 예술 뿐 아니라 공예영역에서도 마르셀 뒤샹의 '샘' 이 전과 이 후로 확연히 구분 시켜놓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공예에 머물러 있던 도자를 순수한 예술의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조형예술 영역으로 범위를 확대 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본 논문에서, 첫 번째로 연구자는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탄생한 산업도자 분야의 캐스팅 기법의 도자제품이 예술적 오브제로서의 가치와 순수 예술로서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데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으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조사하였다. 두 번째로 최근의 실용 위주로 생산된 산업 도자 제품들이 도자 예술가들에 의해 어떻게 기능적인 면보다 작가의 창의적 생각과 실험을 통해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끝으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실험과 관련하여 기성 오브제를 도자예술 분야에서 다양하게 해석하는 국내 작가작품 사례와 연구자의 작품들을 분석한 다음, 철저하게 실용과 기능을 위해 생산된 산업 도자제품도 작가의 개념과 실험을 통해 기능성을 넘어서는 예술작품으로서 다양한 조형적 요소와 미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6조선 초 '司膳'명자기의 성격

저자 : 박경자 ( Kyungja Park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7-152 (2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사선서(司膳署)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1380-1420년대)에 왕실(王室)의 일상식사와 궁궐 안에서 공적(公的)인 용도의 음식제공을 담당한 관청이다.
'司膳'명자기는 '司膳署'를 의미하는 '司膳' 두 글자가 표기된 자기이다. '司膳'명자기에 대한 학계의 지금까지의 연구는 자기의 사용주체, 생산지역, 생산지에서 사용처인 궁궐까지의 운송 담당자와 운송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 내용은 첫째, 司膳'명자기의 사용주체는 왕실이다. 둘째, 그 생산지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여러 지역이다. 셋째, 생산지에서 궁궐까지의 운송 업무는 왕실의 식사를 담당한 조직인 사옹(司饔)이 수행하였다. 넷째, 운송방식은 사옹이 제작지에 직접 내려가서 현물의 세금(貢物)으로 수취하여 궁궐까지 육로(陸路)로 운송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司膳'명자기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와 달리 '司膳'명자기의 사용주체가 왕실이 아니라 이조 소속의 관사인 사선서이고, 공부(貢賦) 운송시스템인 육로가 아니라 국가가 구축한 운송방식인 해로(海路) 운송이었다. 또 공납자기를 상납하는 주체는 해당 군현(郡縣)이었다. 즉, '司膳'명자기는 사선서가 왕실에 대한 조석상식(朝夕常食) 제공이 아니라, 공적인 용도의 음식제공에 사용한 관용자기(官用磁器)이다. 이러한 결과는 『조선왕조실록』의 내용과 가마터에 대한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에서 확인한 세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도출되었다. 첫째, 조선 초에 왕실이 일상식사에 사용한 그릇은 자기가 아니라 은기(銀器)였다. 둘째, '司膳'명자기의 사용처는 궁궐 안팎의 관청영역이었다. 셋째, 조선 초에 '司膳'명자기를 포함한 공물(貢物)은 해로로 운송되었다.

7국보 1호 숭례문 복구 기와 연구와 제작기법

저자 : 김창대 ( Chang Dae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3-176 (2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우리 모두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2008년 2월 국보 1호 숭례문 화재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문화재 관리에 소홀했는지 일깨워 준 재앙이였다.
이런 반성을 바탕으로 숭례문 복원은 오랜 시간 심도 깊은 연구를 기초하여 여러 전문가와 전통기술장인들 참여 속에 전통기술과 전통도구로 복원한다는 대 원칙이 세워졌고, 당시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 보유자이셨던 故한형준 선생님께서 복구 장인으로 선정되어 전승되어진 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 전통제와기법과 전통도구를 이용하여 등요 기와가마에서 숭례문 복구용 기와 및 전돌을 제작하였다.
숭례문 복구용 기와 제작에 사용된 기왓가마는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판단되는 감투 기와가마 대신 전국 190개 요지를 조사하여 경기도 남양주 호평1호 등요 기와가마와 부여 규암면 합정리 롯데골프장 개발 현장에서 발견된 등요 기와가마를 모델로 결정되어져 전남 장흥 제와장 제와소 1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제와작업장 3기를 설치하여 소성작업을 진행하여 약 22,000장 제작하였다.
숭례문 복구용 암키와와 수키와는 현 제와장에서 사용하는 동일한 전통 와통을 이용하여 전통방식으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어 건장부가 약간 좁은 마름모 형태로 제작되어진 특대와 규격에, 등문양은 세로 방향으로 반복적으로 선이 있는 선각 어골문으로 장식하여 고증 및 자문 결정에 따라 제작하였다.
암막새는 용문양으로 1960년 숭례문 수리 당시 탁본 자료를 참고 하여 종묘 정전 동문 일원에 남아있는 실물을 확인하여 복원 제작하였고, 수막새는 수습기와 중 봉황문 수막새가 확인되어 실물 복원 제작하였다. 장식기와 중 잡상은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이귀박, 이구룡 6개만 수습되어 나머지 마화상, 삼살보살, 천산갑은 상와도에 그려진 도상과 고궁박물관 근정문 잡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에 실제 설치된 잡상들을 조사하여 복원 제작하였다. 토수는 어룡형으로 실물이 잘 남아 있어 그대로 복원하였고, 용두는 1960년 도상 도면이 남아 있어 종묘와 흥인지문에서 실물을 확인한 후 제작하였다. 취두는 총 3단으로 구성되어 하단과 중간단은 해태의 머리가 용마루를 물고 있는 형상이며, 상단에는 작은 용이 아래를 향하도록 조각되어 있어 먼저 골격쌓기, 반건조, 세밀부조, 조립 순서로 복원 제작하였다.
위에서 서술한 숭례문 수습기와를 여러 전문가의 자문에 따라 고증하였다. 7단계 36과정인 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 전통제와기법에 따라 제작하여 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8동남아시아 페라나칸(Peranakan) 자기의 조형과 성격 : 문화적 혼종성과 창조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저자 : 구혜인 ( Hyein Koo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7-204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페라나칸 자기는 19세기-20세기 초 중국 청대 경덕진에서 제작되어 싱가포르,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등지에 소비된 법랑자기이다. 페라나칸 자기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백자 태토에 광물성 안료인 에나멜(법랑)로 그림을 그려 장식한 채색자기 중 하나인 법랑자기가 주류를 차지했다. 페라나칸 문화의 큰 특징은 유럽과 동남아시아 문화와 융합되면서도 동시에 중국 본토의 정체성도 잃지 않고 유지했다는 점인데, 페라나칸 자기 역시 중국 도자기 문화에 바탕을 두면서도 타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페라나칸 도자의 성격을 '문화 혼종성과 창조적 정체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페라나칸 자기는 경덕진에서 유행하였던 분채의 양식을 따르고 있고 소재도 중국의 길상소재인 봉황문, 모란문을 주로 사용하지만 분홍색과 밝은 청록색을 안료로 칠하여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도자기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캄쳉이나 카트마우와 같은 특수 기형을 제작 주문하는 등 페라나칸 도자만의 기종, 문양, 안료 등이 어우러진 독자적인 도자문화를 이루었다. 물론 페라나칸은 생산지역이 아니라 소비지역이기는 하지만 중국 경덕진과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수입이 아니라 주문 방식을 통해서 정착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한 도자문화를 주도적으로 형성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페라나칸 자기는 오늘날에도 상업도자기로 제작되거나 예술작품으로 활발하게 창작되는 등 여전히 애호되고 있어 페라나칸 자기의 의미는 아직까지 현재 진행중이다.

9매장문화재의 전시 교육 콘텐츠 활용 : 도자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저자 : 방유리 ( Bang Yuri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5-224 (2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문화재는 어렵고 지루하며 일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연구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발굴조사된 고고자료를 이용한 콘텐츠 전시 및 활용은 획일적인 문화재교육에 활력을 주고 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찾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매장문화재 조사는 폭발적으로 증가되고, 이에 따라 출토되는 유물도 매우 다양하다. 출토유물은 유적의 연대와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자세한 도면과 사진 등의 보고서 작성을 통해 연구기록으로 영구보존된다. 그러나 발굴자료 중 의미가 부여된 일부 유물만 전시되고, 대다수는 수장고 안에 다시 보관된다. 이외 발굴 문화재 중에는 유물선별회의를 통해 매몰유물로 선정되어 안내판과 함께 땅속에 다시 묻히는 과정을 겪기도 한다.
문화재 교육은 대부분 교과서 내용과 시청각자료를 사용하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은 박물관을 찾아가 진열장 안에 있는 유물을 실견하는 것까지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관심과 흥미는 있으나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한 채 닫히고 만다. 이에 여러 방면으로 체험활동을 포함한 문화재교육 방법을 개발하여 다양하게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유적과 유물을 접했던 사람들의 경험은 그동안 우리가 하지 못했던 문화재활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제 문화재 관련 연구자들은 많은 매장문화재가 발굴되고 있는 만큼, 단순한 체험이나 복제된 재현품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조사를 통해 다시 살아나 우리 옆으로 다가온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이와 같은 활용은 문화의 원형을 배우고 지키면서 현재적 의미를 가진 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1013-14세기 원(元) 공예에 나타나는 원형당초문(圓形唐草紋)의 연원과 성격 : 도자, 금속, 직물공예를 중심으로

저자 : 김세린 ( Serine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5-260 (3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당초는 본래 唐風 또는 異國風의 넝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초문의 구성 및 장식요소는 문화권 및 민족에 따라 각기 다른 조형양식의 특질에 따라 차이가 뚜렷하다. 중국 漢 代에 인도를 거쳐 본격적으로 중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당초문은 꽃과 열매, 인물 등 다양한 문양소재와 결합하여 지속적으로 장식문양 가운데 하나로 전통을 이어 나갔다.
당초문은 다른 문양소재와의 결합이 용이하고, 공간 장식의 효율성이 높다. 또, 중심문양이나 함께 구성하는 문양소재를 부각시킨다. 본 논문은 당초문의 한 유형이자 元代 성행한 원형당초문에 대해 유입과정을 고찰하고, 이를 토대로 元 공예품에 나타나는 원형당초문의 양상과 성격을 분석했다.
원의 원형당초문은 이전 왕조인 宋과도 유사성이 발견되었지만, 오히려 북방계열인 遼와 특히 西夏와의 관계는 밀접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다른 나라와의 작용을 통해서 외래적 요소가 가미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대 원형당초문은 금속, 도자, 직물 등 元 전반의 공예품에 두루 사용된 문양으로 공예품의 재료와 기법에 따라 세부적인 조형의 차이는 확인되지만 여러 유형으로 적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원의 원형당초문은 교류를 바탕으로 한 영향관계에 기인한 발전과 자체적인 전통을 바탕으로 공예품에 선택 적용한 양상이 공존했다. 아울러 高麗와의 영향관계를 통한 유사한 양상을 보이면서도, 차별화된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영향관계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원-고려와의 관계는 물론, 아직까지 정치 및 문화적 관계에 대한 실체가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은 서하와의 관계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12
주제별 간행물
간행물명 수록권호

KCI등재

한국상품문화디자인학회 논문집
61권 0호 ~ 61권 0호

조형논총
1권 0호 ~ 2권 0호

조형논총
4권 0호 ~ 6권 0호

조형논총
16권 0호 ~ 7권 0호

KCI등재

산업디자인학연구
14권 2호 ~ 14권 2호

KCI등재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20권 2호 ~ 20권 2호

KCI등재

기초조형학연구
21권 3호 ~ 21권 3호

KCI후보

전시디자인연구
33권 0호 ~ 33권 0호

KCI등재

미술사와 시각문화
25권 0호 ~ 25권 0호

KCI등재

강좌 미술사
54권 0호 ~ 54권 0호

KCI등재

조형미디어학
23권 2호 ~ 23권 2호

KCI등재

한국디자인포럼
67권 0호 ~ 67권 0호

KCI등재

기초조형학연구
21권 2호 ~ 21권 2호

KCI등재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연구
70권 0호 ~ 70권 0호

KCI등재

한국상품문화디자인학회 논문집
60권 0호 ~ 60권 0호

KCI등재

산업디자인학연구
11권 3호 ~ 11권 3호

KCI등재

산업디자인학연구
13권 3호 ~ 13권 3호

KCI등재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20권 1호 ~ 20권 1호

KCI등재

산업디자인학연구
8권 1호 ~ 9권 4호

KCI등재

산업디자인학연구
6권 1호 ~ 7권 4호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