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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장 자료의 유형과 특징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Archives in Okdong Seowon in Sangju

김순한 ( Kim Soon-han )
  • : 한국서원학회
  • : 한국서원학보 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12월
  • : 135-179(45pages)

DOI

10.30594/kss.2019.12.9.6


목차

Ⅰ. 머리말
Ⅱ. 옥동서원 소장 자료 현황
Ⅲ. 옥동서원의 자료 유형과 특징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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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옥동서원 소장 자료 중 기존에 공개된 자료와 미공개 자료까지 포함·정리하여 그 내용과 특징을 검토하였다. 옥동서원은 황희 영정을 봉안한 黌堂이 효시이며 이후 祠宇로, 또 影堂으로 발전하였고, 1714년(영조 40)에는 사서 전식을 배향하여 서원으로 승원 하였다. 이듬해 현재 자리로 이건 후 1789년(정조 13)에 사액 되었다. 옥동서원은 1984년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많은 연구자에 의해 서원 연구가 축적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3년 국가 문화재 준비과정에서 서원의 많은 자료가 새롭게 발굴되어 서원의 인적 구성· 운영· 사액·승무(陞廡)·제향 의례 등 연구 범위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공개된 자료만으로 서원의 종합적인 내용과 특징을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미공개 자료와 함께 모든 자료를 재조사·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하고 그 내용을 살펴보고 유형별로 정리하였다.
옥동서원의 모든 자료는 3차에 걸쳐 상주박물관에 기탁 보관하고 있다. 기탁된 자료는 크게 成冊古文書 · 古文書 · 影幀 · 책판 등으로 구분되며, 현대 자료를 제외한 고문서는 약 246종 397건이다. 이들 자료는 165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자료가 두루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서원의 설립과 승원·사액·운영·경제·제향 등을 밝힐 수 있으며 나아가서 서원의 위상까지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서원의 서적과 책판 자료는 교육과 출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This study arranged previously undisclosed archives including disclosed ones in Okdong Seowon and reviewed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archives. Okdong Seowon had been developed from Hoingdang(黌堂) sealed with the portrait of Hwang Hee to Sawoo(祠宇) to Youngdang(影堂). In 1714, Saseo Jeon hick was also enshrined and it was elevated to Seowon and in the following year, i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and named by King in 1789.
A remarkable characteristic of Okdong Seowon's diverse archives consist of those from the time that it became Seowon in the 1650's and those after being named by King until the 1900's. The archive is very important showing of the Seowon's position by figuring out its establishment, organization, education, and socio-economic relations. And the books and published sources could be very helpful for culture of education and publication.
Okdong Seowon was named by local heritage in 1984 and the researches about it by lots of researchers have been accumulated. In the process of preparing to rise to national heritage, the archive of the Seowon was broadly disclosed and the topics of the researches were various including human organization, management, being named by King, Seungmu(陞廡), sacrifice rites. However, the existing sources are few and in-depth studies are limited. This study aims at rearrange and collect the list of all the archives including new ones in and report the current status in order to overcome these difficulties. Currently, old books and book board stored in Sadang and Kangdang in Okdong Seowon were sent to and store in Sangju Museum in three times. The owned sources consists of old books, documents, portraits, and book board. The old documents are 316 cases and 550 items, and book boards and other boards are 105 items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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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의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 등재 과정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

저자 : 이상해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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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18세기 함양 정여창 가와 남계서원의 노론화 과정

저자 : 박소희 ( Park So-hee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5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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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는 남명학파의 본거지이자 인조반정 이전까지 북인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특히 함양은 정인홍의 문인들이 많아 선조 연간 양홍주, 노사예 등 일부 서인계 인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하동정씨 정여창의 차남 계열인 정홍서가 노사예를 두둔함으로써 정인홍의 문인으로부터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는 광해군 대 정인홍의 비호를 받던 정여창의 장남 측과 종사문제로 이어졌다. 이후 정홍서의 후손들은 서인으로 좌정, 무신난에 창의하면서 노론계로 전향하였다.
한편 인조반정 이전 남계서원은 풍천노씨의 참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신계서원 [향현사] 내 위차문제를 두고 향론이 분열되면서 이는 남계서원 내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이후 광해군 대 남계서원은 정인홍의 문인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북인계 서원을 표방하였다. 그리고 『원록』의 입록 범위도 함양에 한정되지 않고 우도 지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러나 인조반정 후 북인의 실각으로 남계서원은 자구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정온과 강익, 유호인의 별묘 제향을 통해 남인화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효종 연간 원장 朴以燾·유사 朴鳴震을 통해 남계서원의 서인화도 일정 부분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숙종 연간 하동정씨를 비롯한 서인계 가문의 참여도 확대되어 갔다.
이후 영조 대 무신난을 겪으면서 남계서원에도 노론계 인사들이 경원장을 지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무신난 때 창의한 하동정씨 가문의 참여도 점차 높아졌다. 특히 순조 이후가 되면 과거 많이 참여했던 반남박씨, 남원양씨, 삼척박씨 등은 감소하고 하동정씨의 압도적인 참여 속에 진양하씨, 풍천노씨 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향안을 둘러싼 향전과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계서원은 1820년(순조 20) 정여창의 종사를 되찾아온 정홍서를 별묘에 배향, 1849년(헌종 15) 정환필 주도로 風詠樓를 중건하는 등 하동정씨 중심으로 운영되어갔다.

317세기 청주(淸州) 신항서원(莘巷書院)과 송상현(宋象賢) 추모의 정치적 함의 -송상현 사묘(祠廟)와 서원(書院)을 중심으로-

저자 : 정수환 ( Jung Su-hwan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7-8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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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양란을 전후한 16∼17세기 전쟁영웅의 현창 과정에서 작동한 정치적 배경을 송상현을 제향하는 전국의 祠廟와 청주의 莘巷書院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17세기 전란 직후의 위기상황에서 정치적 부침이라는 환경과 서원 건립과의 관련성을 추적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임진전쟁 당시 동래성에서 죽음을 맞이한 송상현에 대한 전후 추모 및 현창 양상을 평가했다. 전국에 산재한 송상현을 위한 祠廟의 건립 추이를 추적하여 시대적 배경이 17세기 중엽에 있음을 확인했다. 사묘의 건립 배경으로 전쟁 중 그리고 전쟁 후 그의 죽음을 둘러싼 평가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고, 인조반정을 계기로 서인에 의해 그의 죽음이 殉節로 규정되면서 추숭사업이 본격화하는 과정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이 효종조 이후 송준길과 송시열 등 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그의 행적에 대한 정리와 청주 신항서원에 대한 사액 성취로 연결되었음을 파악했다. 이를 통해 송상현의 죽음이 17세기 중엽 송시열에 의해 순절로 규정되고, 그에 대한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신항서원 향사와 사액을 달성하게 되면서 17세기까지 전국에 송상현을 위한 묘우 건립이 실현되었음을 규명했다.
청주의 신항서원에 송상현을 병향하고 서원을 사액하는 과정에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의 영향력이 작용하여 송상현에 대한 忠節을 상징화 했으며, 이는 정치적 함의를 가지면서 전국에 송상현 祠廟의 건립과 사액으로 이어 졌다는 이 연구성과는 조선 초기의 이념적 忠보다는 17세기 실천적 忠으로서 송상현에 대한 형상화가 필요했던 17세기를 규명하는데 기여한다.

419세기 남양향교의 운영과 지역사회에서의 위상

저자 : 김자운 ( Kim Ja-woon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7-11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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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현존하는 고문서 자료들을 토대로 19세기 남양향교의 운영 실상을 분석하고 당시 지역사회 내에서 남양향교의 위상을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첫째, 남양향교의 역사를 간략히 검토하고, 둘째, 조선후기 남양향교의 운영상을 19세기 남양향교의 이건 과정, 향교 전답의 유실과 회복, 청금록의 문란과 재정비 등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마지막으로 19세기 남양향교의 운영에 양반과 평민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였으며, 이들 각 계층은 향촌에서 자신들의 존재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향교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는지 검토함으로써 조선후기 지역사회 내에서 남양향교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에 대해 해석하였다.
조선후기 향교는 흔히 교육기능을 상실하고 군역을 면제받기 위한 피역소로 전락한 채 간신히 제향활동만을 유지해온 황폐화된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과 달리, 19세기 남양향교는 향교 이건 시 재원의 60% 이상을 양반 유생들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확보할 만큼 향교 운영에 유생들의 참여가 매우 활발하였다. 이는 같은 시기 직산향교나 진주향교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 대단한 규모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후기 남양향교는 언제부터인가 국가에서 지급했던 學田이 제대로 획정되지 않아 재정 기반이 사라지자, 향교 자체 내에서 인근의 전답을 마련하여 운영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향교의 재정난과 관리의 부실로 19세기에는 그 일부가 유실되었으나 19세기 후반 지방관과 교임들의 노력으로 유실된 토지를 되찾고 이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한 절목을 마련함으로써 활로를 모색하였다. 이 때 작성한 절목과 1884년 향교 유생들이 작성한 완의의 내용에 따르면, 19세기 남양향교는 단지 제향 활동 뿐 아니라 疏廳으로 활용되는 등 지역 유생들의 향론 집결지이자 다양한 향촌활동의 근거지로서 기능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8세기 이래로 나타나기 시작한 청금록의 혼입은 당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분상승을 도모했던 남양지역 평민층의 성장과 함께 향교 내 양반유생들의 지위가 점차 위협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교유생들이 명분과 교화를 앞세우며 끝까지 향교에 남아 모칭유학들을 찾아 삭적하고 청금록을 재정비하며 향교를 독점하고자 한 것은 남양향교가 양반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행사할 수 있는 지역사회 내에서의 마지막 활동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후반에는 남양 지역의 유일한 서원이었던 안곡서원과 사우 용백사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된 상태에서 지역문화의 중심지로서 남양향교의 위상은 이전보다 한층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570년 동안의 중국 서원 연구

저자 : 肖永明 ( Xiao Yongming ) , 刘艳伟 ( Ryu Yeomwi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9-133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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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20, 30년대부터 신식교육에 대한 반성에 비롯하여 학계에서는 서원 연구의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풍성한 연구성과를 거두었다.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된 이후, 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원연구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확대 시키며 전통사회에서 서원의 가치를 발굴해 왔다. 20세기 말에 들어, 새로운 사학 연구방법의 응용에 따라 중국서원사 연구는 연구내용, 방식, 관념 등 면에서 진부한 부분에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발전시켜서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연구적 시야의 편협, 문제의식의 결핍 등 문제점도 드러나 있었다. 이에 다음 단계의 서원연구발전을 위해 과거 서원연구에 대한 총정리도 필요하다고 본다.

6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장 자료의 유형과 특징

저자 : 김순한 ( Kim Soon-han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5-179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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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옥동서원 소장 자료 중 기존에 공개된 자료와 미공개 자료까지 포함·정리하여 그 내용과 특징을 검토하였다. 옥동서원은 황희 영정을 봉안한 黌堂이 효시이며 이후 祠宇로, 또 影堂으로 발전하였고, 1714년(영조 40)에는 사서 전식을 배향하여 서원으로 승원 하였다. 이듬해 현재 자리로 이건 후 1789년(정조 13)에 사액 되었다. 옥동서원은 1984년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많은 연구자에 의해 서원 연구가 축적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3년 국가 문화재 준비과정에서 서원의 많은 자료가 새롭게 발굴되어 서원의 인적 구성· 운영· 사액·승무(陞廡)·제향 의례 등 연구 범위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공개된 자료만으로 서원의 종합적인 내용과 특징을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미공개 자료와 함께 모든 자료를 재조사·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하고 그 내용을 살펴보고 유형별로 정리하였다.
옥동서원의 모든 자료는 3차에 걸쳐 상주박물관에 기탁 보관하고 있다. 기탁된 자료는 크게 成冊古文書 · 古文書 · 影幀 · 책판 등으로 구분되며, 현대 자료를 제외한 고문서는 약 246종 397건이다. 이들 자료는 165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자료가 두루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서원의 설립과 승원·사액·운영·경제·제향 등을 밝힐 수 있으며 나아가서 서원의 위상까지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서원의 서적과 책판 자료는 교육과 출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7송대(宋代)의 서원교육과 사인(士人) 사상의 통합

저자 : 朱汉民 ( Zhu Han Min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1-19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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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문화사에 중요한 문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시에 이루어진 서원과 理學의 흥기와 번영이었다. 정치의 가장자리에 처했던 이학가들은 그들의 문화중심의 입장을 견지하며, 개인적 교습이나 서원 교육의 방식을 통해 학술연구, 인재양성 및 학파구축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송대 서원이 이학사상과 사서교육의 근거지가 되게끔 적극 노려하였다. 정치와 문화 두 가지 측면의 주체가 된다는 사대부집단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학가들은 “學以成聖”의 교육이념을 적극 추진하고 실천하였다. 문화교육에 이루어진 이학의 성공은 송대 士人들의 사상적 통합을 촉진시켰고 이학으로 하여금 점차 송대 사인들의 보편적 사상공식으로 되도록 하였다.

8조선왕조 서원제도 수용에 관한 몇 가지 문제 - 조선 서원 문헌을 중심으로 한 토론 -

저자 : 邓洪波 ( Deng Hong-bo ) , 赵伟 ( Zhao Wei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1-2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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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동아시아 士人들의 공동의 문화교육조직이다. 조선은 명나라 강정 연간에 중국으로부터 서원제도를 수용하였으며 『죽계지』, 『영봉지』, 『오산지』 등 서원지들이 서원의 수용과정을 잘 보여준다. 우선 주세봉은 주자 백록동서원 고사를 따라 처음으로 백운동서원을 설립하고 『죽계지』를 엮었으며, 근사(謹祀), 예현(禮賢), 수우(修宇), 비름(備廩), 점서(點書) 등의 운행제도를 세웠고, 조선서원의 시작과 기초를 닦는 데 공을 세웠다. 다음으로 노경린은 영봉서원을 설립하고 『영봉지』를 엮었으며 사우를 세워 선현들을 모시고 서원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묘원정의록』, 『학규록』을 제정하는 등 제도적 구축도 처음으로 시도하였는데 서원의 발전에 공이 있다. 그리고 주세봉을 이어서 백운동서원을 운영하였던 이황은 상소를 올려서 사액을 청구하였는데 서원 사액 제도의 시초를 열어주었고, 그 후에 학자의 신분으로 10개소 정도의 서원 건립에 관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백록동서원게시』를 해석하여 널리 보급시키고, 『성학십도』에도 편입하였으며 조선서원 제도를 집대성하는 데 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9조선후기 여산(礪山) 죽림서원(竹林書院)의 운영과 위상

저자 : 이경동 ( Lee Kyungdong )

발행기관 : 한국서원학회 간행물 : 한국서원학보 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5-25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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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은 전라도 여산에 위치했던 兩湖 지역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자인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을 배향하였으며 서인-노론계의 학문과 정치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죽림서원의 건립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는 죽림서원이 서인의 정치적 성장과 맞물려서 건립되었음을 의미한다. 죽림서원의 건립은 김장생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김장생이 정묘호란 과정에서 호소사로 활동할 당시 근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1663년(현종 4) '죽림'으로의 사액은 죽림서원이 명실상부한 서인계 서원으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했다. 사액의 과정은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계 산림들을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며, 이는 배향인물의 추향 작업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사액 이후 서인들은 서원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으며, 儒疏 등 정치적인 활동에 있어서도 중심지적 역할을 수행했다. 노소분기가 분명해진 18세기부터는 노론계의 서원활동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이와 함께 조정에서는 호남의 도통 서원으로 죽림서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죽림서원은 고종대 서원훼철령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양호 지역을 아우르는 노론계 도통서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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