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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탈냉전’ 시대 동아시아 북방학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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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시대 동아시아 북방학의 가능성

An Essay on the Nothern Studies of East Asia in the “Post-Cold War” Era

任佑卿 ( Im Woo-kyung )
  •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 대동문화연구 10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12월
  • : 9-33(25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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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잊혀진 연대, <폴란드로 간 아이들>
Ⅱ. 1989년의 희망과 북방관계연구의 등장
Ⅲ. ‘탈냉전’ 이데올로기와 탈정치화의 정치
Ⅳ. ‘냉전’/‘탈냉전’을 해체하기
Ⅴ. 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 북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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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세계적 ‘탈냉전’ 시대, 과거로 물러나 버린 ‘냉전’ 시대의 역사화 작업이 진행되면서 최근 글로벌냉전사 연구가 활발하다. 이들은 냉전의 지역적 다양성과 주변의 행위주체성에 주목하면서 연구패러다임의 ‘지역적 전환’을 꾀하고, 냉전이 개인들의 일상적 문화적 층위에 미친 깊은 영향을 강조하면서 ‘문화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냉전은 종식되었다’라는 역사적 명제와 ‘냉전은 종식되어야 한다’는 가치 평가적 명제는 거의 모든 분야의 담론에 암묵적 전제를 이루고 있다. 또한 ‘냉전’이라는 패러다임 자체는 대결하는 양쪽 진영의 세력이 대등하다는 착시를 초래하고 나아가 냉전 대결의 양방을 양비론적 태도로 접근한다. ‘탈냉전’ 시대 이와 같은 냉전서사는 애초 사회주의적 이념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열망과 연계되어 있음을 간과하게 만들고, 그와 관련된 역사를 정리되어야 할 과거로 치부하거나 아예 역사의 지표 아래로 소거해 버렸다. 그런 점에서 본 논문은 1989년 제기되었던 북방관계연구 시론에 주목하고 ‘북방’이라는 개념과 범주에 기대어 실은 패권적 패러다임인 ‘냉전’과 ‘탈냉전’ 패러다임 자체를 심문하고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남한의 이북으로서 북방이란 북한을 포함하여 중국, 몽골, 소련 및 동구의 공산권 국가들을 가리킨다. 북방은 사회주의적 이념과 실천의 연쇄, 그리고 상호연대를 통해 구축된 관계적 구성물이었다. 사회주의적 이념과 실천의 연쇄라는 점에서 북방범주는 또한 남한과 일본, 대만,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의 혁명과 민족해방운동으로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동아시아 북방학을 제안한다. 동아시아 북방학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토대로 북방의 트랜스내셔널한 연대의 사상과 실천을 교훈삼아 현실개혁의 동력으로 삼는 학술적 실천이며 지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As the era of the so-called "post-cold war" has come, historicalization of the "cold war" era, which has already become a past, has been carried out, and research on global cold war history has been active recently. Noting the regional diversity of the Cold War and behavioral subjectivity of the periphery, they are trying to make a "local transformation" of research paradigm and they are trying to seek a "cultural transition" by emphasizing the deep impact the Cold War has had on individuals' daily and cultural strata. However, the historical premise of "The Cold War is over" and the valuation premise of "The Cold War should be over" are implicitly prefixed to discourse in almost every field. In addition, from the very beginning the paradigm of "Cold War" leads to the illusion that the forces of the opposing camps are equal, and furthermore, the two sides of the Cold War confrontation are all bad. Cold War narratives such as this one in the era of the "post-cold war" initially made us forget that socialist ideology was linked to democratic aspirations from below to overcome capitalism, and dismissed the history associated with it as a past that should be sorted out, or even wiped it out below historical indicators. In this regard, this paper notes the theory of Northern Relations Research, which was raised by Sunho Hong in 1989, and argues that the hegemonic paradigms "Cold War" and "Post-Cold War" paradigm itself need to be interrogated and deconstructed by raising the concept and category of “the North”. Here, the “North” means north of South Korea, referring to communist countries including North Korea, China, Mongolia,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an countries. The north was a chain of socialist ideologies and practices, and a relational construct built through mutual solidarity. Given that it is a chain of socialist ideologies and practices, the northern category also extends to revolutions and national liberation movements in South Korea and Japan, Taiwan, Vietnam and Southeast Asia. In this regard, I propose Northern Studies of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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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382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64-2019
  • :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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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탈냉전' 시대 동아시아 북방학의 가능성

저자 : 任佑卿 ( Im Woo-ky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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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세계적 '탈냉전' 시대, 과거로 물러나 버린 '냉전' 시대의 역사화 작업이 진행되면서 최근 글로벌냉전사 연구가 활발하다. 이들은 냉전의 지역적 다양성과 주변의 행위주체성에 주목하면서 연구패러다임의 '지역적 전환'을 꾀하고, 냉전이 개인들의 일상적 문화적 층위에 미친 깊은 영향을 강조하면서 '문화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냉전은 종식되었다'라는 역사적 명제와 '냉전은 종식되어야 한다'는 가치 평가적 명제는 거의 모든 분야의 담론에 암묵적 전제를 이루고 있다. 또한 '냉전'이라는 패러다임 자체는 대결하는 양쪽 진영의 세력이 대등하다는 착시를 초래하고 나아가 냉전 대결의 양방을 양비론적 태도로 접근한다. '탈냉전' 시대 이와 같은 냉전서사는 애초 사회주의적 이념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열망과 연계되어 있음을 간과하게 만들고, 그와 관련된 역사를 정리되어야 할 과거로 치부하거나 아예 역사의 지표 아래로 소거해 버렸다. 그런 점에서 본 논문은 1989년 제기되었던 북방관계연구 시론에 주목하고 '북방'이라는 개념과 범주에 기대어 실은 패권적 패러다임인 '냉전'과 '탈냉전' 패러다임 자체를 심문하고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남한의 이북으로서 북방이란 북한을 포함하여 중국, 몽골, 소련 및 동구의 공산권 국가들을 가리킨다. 북방은 사회주의적 이념과 실천의 연쇄, 그리고 상호연대를 통해 구축된 관계적 구성물이었다. 사회주의적 이념과 실천의 연쇄라는 점에서 북방범주는 또한 남한과 일본, 대만,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의 혁명과 민족해방운동으로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동아시아 북방학을 제안한다. 동아시아 북방학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토대로 북방의 트랜스내셔널한 연대의 사상과 실천을 교훈삼아 현실개혁의 동력으로 삼는 학술적 실천이며 지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2한(조선)반도 문학예술 개념의 문화정치학 ― 접변하고, 횡단하고, 실천하는 문학의 분단을 중심으로

저자 : 李芝順 ( Yee Ji-s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5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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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학의 분단을 중심으로 남북한 문학예술 개념의 분단을 살펴보았다. 분단 민감성을 바탕으로 살펴본 문학예술 개념들은 물리적 분단이 어떻게 의식과 개념의 분단을 이끌고, 분단을 공고히 했는지 보여주었다. 남북한은 단절되었지만 완전한 분리가 아니었고, 서로를 배제하며 경쟁했고, 그리고 때로는 상호 소통했다. 1980년대말 민족문학이 남북한 소통의 매개가 된 것처럼, 문학예술은 남북한이 서로 교섭할 가능성이 큰 분야이다. 완전히 다른 의미로 개념화되었지만 언제든 대화의 물꼬를 틀수 있는 김소월처럼 문학예술은 소통을 선도할 수 있다. 현실의 경험과 기대가 개념의 변화를 가져왔듯이, 이 글은 개념이 어떻게 시공간을 맥락화하고 분단을 역사화 했는지 인식함으로써 분단을 해체하고 분단 너머를 상상하고자 했다.

31950~60년대 북한 문예미디어 지형과 사회주의 문화정치

저자 : 金成洙 ( Kim Seong-su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9-8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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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기(1953~1968년) 문학예술 미디어 지형의 계보를 개관하고, 그 문화정치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6.25전쟁부터 주체사상의 유일체계화(1967)에 이르는 1950, 1960년대 북한 문학예술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문예 미디어매체 지형을 공시적, 통시적으로 조망하였다. 북한 대표 문학지 『문화전선』(1946)-『조선문학』(1947)-『문학예술』-『조선문학』에 대한 20년 간의 전수 조사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1950, 1960년대 북한 문예 미디어의 전체 지형을 그려보았다. 특히 제2차 조선작가대회 전후(1955, 1956년)를 초점화하였다. 이 시기에 이전까지 『조선문학』, 『아동문학』밖에 없던 북한 문예장에 문학지 『청년문학』, 『문학신문』, 예술지 『미술』-『조선미술』, 『조선음악』, 『조선예술』, 『조선영화』 등이 창간되어 미디어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1950, 1960년대에 족출한 북한 문예지를 통해 지면이 확대되고 신인의 활동무대가 넓어졌으며 이론과 실제 비평 등 찬반토론이 활기를 띠는 등 리얼리즘 담론의 백가쟁명 양상을 보였다. 문예 미디어 지형을 조망한 결과 이들 미디어가 전후 복구건설과 천리마운동을 통한 사회주의 기초 건설기의 문화를 다채롭게 반영하고 있음을 알았다. 미디어가 사회주의체제 건설과 그를 미학적으로 뒷받침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예'의 물적 토대로 기능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활기는 주체사상이 유일체계화된 1967년을 고비로 급격히 쇠퇴하여 1968년 대부분의 문예지가 폐간, 통합, 축소되었다.

4완결성과 탈출성: 감각의 사실과 사실의 감각 ―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남북한 문예의 비교예술학적 고찰

저자 : 洪志碩 ( Hong Ji-suk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1-11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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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다수의 남한과 북한 예술가들은 모두 개념과 도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감각적 체험에 주목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 예술가들이 감각에 주목해야 했던 이유는 크게 달랐다. 먼저 4.19의 좌절로 인해 남한 예술가들의 마음에 자리하게 된 '뿌리가 뽑혀진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어떤 조각이라든가 감각이라도 뭔가 확실한 것이 되도록”하는 경향을 낳았다는 주장에 주목할 수 있다. 1970년대 남한 예술가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념에 대한 적대감에 주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위 피부문학은 완결성을 갖춘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논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마찬가지로 현실적 조형언어를 갖춘 미술을 원했던 논자들은 지각의 직접성을 강조하는 예술가들을 공격했다. 한편 1960년대~1970년대 북한예술가들은 이념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서, 또는 이념을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이념을 확증, 선전하기 위해서 감각적 체험에 주목했다. 즉 그들은 예술의 비현실적인 내용(사회주의적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심각하고 더욱 생동하게 독자들을 자극할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일반화의 약점을 일반화의 역할을 약화시킴으로써 해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화에 절절한 구체적인 생활감정을 부단히 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반화의 위력을 더욱 과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접근법을 취함으로써 북한 예술가들은 감각에 호소하는 자극의 강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하고 진부해져 버린다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통해 독자와 관객들을 더욱 강하게 충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임헌영이 1971년에 제시한 분류법에 따라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의 남한문예를 탈출성에 경도된 예술로, 같은 시기 북한문예를 완결성에 경도된 예술로 분류할 수 있다. 이로부터 지금 우리가 문제 삼는 남북한 문예의 극명한 차이가 도출됐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술가는 언제나 자기에게 결핍된 것을 욕망한다. 즉 탈출성에 경도된 예술은 완결성을, 완결성에 경도된 예술은 탈출성을 욕망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찰로부터 우리는 1970년대 이후 남북한 문예의 변동을 비교 관찰하기 위한 유의미한 틀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5여말선초 이행(李行)의 정치적 입장과 절의(節義) 인식

저자 : 朴宰佑 ( Park Jae-wo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5-14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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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行은 사대부 가문의 후손으로 李穡 휘하에서 과거에 급제하였다. 위화도회군 이후 李成桂 세력이 주도하는 사전개혁, 관제개혁, 인사개혁에 함께 참여하였다. 그는 좌주 李穡이나 權近과 교유 관계가 있었으나 개혁에는 입장이 달라 그들의 당여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계의 당여가 되지도 않았다. 李行은 요동정벌의 실책을 범한 우왕의 퇴위는 동의하였으나 우왕과 창왕을 고려의 정상적인 국왕으로 생각했으므로 창왕의 폐위와 공양왕의 추대를 비판하였고, 禑昌의 죽음의 배후에 이성계가 있다는 史草를 작성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 史草의 내용이 드러나 유배되었으나 그것은 그가 이성계에 반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졌다는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 개국공신 세력과 대립하던 이방원이 군신의리를 강조하며 고려를 위해 절의를 지킨 인물을 등용하면서 다시 진출하였다. 조전절제사로서 趙思義 난을 진압하고, 여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에 사신으로 갔으며, 한양 천도를 앞두고 판한성부사가 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행은 두문동 72현의 하나로서 조선에 出仕하지 않고 은거한 인물로 이해되어 왔으나 그것은 조선후기의 節義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오히려 조선초기의 李行은 절의를 지킨 인물을 등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출한 것으로, 이행의 출사는 절의에 대한 포창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李行의 출사는 조선초기 절의 인식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6시문 수창을 통해 본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의 삶과 문학

저자 : 金龍泰 ( Kim Yong-tai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7-1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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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문학사를 기술할 때 기본 구도가 되는 '절의파'와 '역성혁명파'의 대비는 매우 유효한 방법이며 이는 조선전기 문학사의 '사림파'와 '관각파'의 구도로도 연결된다. 그런데 이 구도는 사대부들의 '隱居'와 '出仕'를 너무 단절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절의'와 '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면모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기우자 이행과 같은 중요한 인물이 아직도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한 주된 원인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우자는 '신진사대부'라고 할 수 있지만 특정한 정파에 얽매이지 않고 매사 소신에 따라 처신했다는 점에 그의 특별한 점이 있다. 기우자는 기울어가는 고려의 개혁을 위해 혁명파와 한편으로는 협력하고 한편으로는 견제하는 노선을 걸었다. 역성혁명에는 반대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지만, 태종이 즉위한 이후 고려의 충신들이 대거 등용될 때 그도 조선왕조에 출사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물러날 때라고 판단되면 즉시 물러나는 처신을 보였다. 그의 삶은 사대부로서 세상에 대한 책무도 온전히 수행하면서 자신의 삶도 잘 지켜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기우자의 삶은 '處士'와 '大夫' 두 측면을 적절히 아울러야 하는 '사대부' 본연의 존재 조건을 충실히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의 시문학을 '출'과 '처'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은거의 삶이 그의 출사에 도움을 주고, 반대로 출사가 그의 은거에 도움을 주는 상호 보완의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의 논의는 '출'과 '처'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방법론의 정립에 도움을 줌으로써 여말선초 문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사대부 일반의 사상과 문학을 새롭게 이해하는 단초를 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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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여암 신경준이 지은 『韻解訓民正音』을 康節易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글이다. 이를 토대로 이 책의 저술 목적과 성격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주장을 하려고 한다. 여암은 강절역에다 자신의 관점을 더해 이 책을 완성했다. 여암의 관점은 '창의적 변용'으로 나타난다. 그는 먼저 송대 3대 도서 중 「하도」를 이용하여 자신 이론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면서 성음론을 열어나간다. 이 점은 여암 자신의 관점이 드러난 부분이다. 여암은 正音의 창제에는 加一倍法이 작용했음을 간파하였고 이를 이 책 서문인 '훈민정음도해서'에서 밝혔다. 여암이 강절역으로 훈민정음의 원리를 풀고 거기다 자신의 '창의적 변용'을 더해 치밀하게 이론을 엮어간 것을 보면 이 책은 조선에서 역학과 음운학이 온전하게 합해진 '易學的音韻書'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국어학계에서는 漢字韻圖 작성이 이 책을 지은 목적이라 했다. 그러나 이 책 내용의 분석결과, 여암의 목적은 1)강절역 중심으로 정음을 분석하고, 2)이런 분석을 통해 정음으로 중국의 한자음 표기에 문제없음을 입증하여 3)정음으로 聲音의 道를 밝히고자 하였고, 그 결과물을 책 후반에 韻圖로 그렸음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한자 운도 작성이 이 책 저술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여암이 중시한 '聲音의 道'는 '正音의 道'를 의미하고, 그 道는 정음 효용의 '우수성'을 말한다. 문자의 '우수성'은 문자를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고 그 문자로 온갖 표현을 할 수 있어야 담보된다. 정음은 이런 효용을 구비했기에 우리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닌 만방에 혜택을 줄 수 있는 '天下聲音大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책은 강절역이 조선 음운학에 미친 한 사례이지만 조선에서 음운학과 역학의 변통적 호환을 통한 '融合學'의 한 모형을 제시했다고 봤다. 따라서 이 책은 '창의융합'을 고리로 미래 급변사회 대처라는 현대 학문방향과도 부합하는 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8『북학의(北學議)』와 『설수외사(雪岫外史)』의 비교 연구

저자 : 任明杰 ( Ren Ming-ji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1-23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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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연암 그룹의 중요한 구성원이며 북학파 중에서도 중국을 가장 많이 다녀온 지우로 楚亭 朴齊家(1750~1805)와 綸菴 李喜經(1745~1805 이후)의 연행체험을 통해 확인된 북학의 주장과 이용후생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北學議』와 『雪岫外史』를 구체적으로 비교하였다. 두 사람 모두 서얼 출신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파 중의 이용후생학파의 중요한 구성원이란 점에서 이 두 책은 북학의 사상과 주장에서 많은 공통점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초정의 『북학의』와 윤암의 『설수외사』는 또한 각자의 특색을 분명하게 띠고 있다. 초정의 경우는 전체 사회의 제반 문제점에 관심을 두고 경세제민의 내용이 포괄하는 士農工商 전체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였는바 농업은 물론이고 공·상업, 유통업, 해외 통상, 사회제도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윤암의 경우는 士農工商 중에서 '農'에 유독 관심을 두고 농업에 직접 관련된 분야로 확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설수외사』는 『북학의』보다 후에 이루어진 저서이지만 오히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19세기 벽두 정조의 사망과 더불어 직면한 북학파의 위험한 입지 및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윤암의 『설수외사』는 북학을 주장한 연암그룹의 마지막 저서라고 할 수 있다.

9결부제의 사적 추이

저자 : 金建泰 ( Kim Kuen-ta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41-303 (6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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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부제는 성립 이후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7세기에는 공물 수취와 요역 차출을 위해 노동력을 근거로 결부를 산출하였다. 이후 결부 산출 근거가 노동력에서 농지로 변했다. 고려전기에는 절대면적과 비옥도를 연동시켜 결부를 산출하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전 시기에 비해 농업의 비중이 커지고 사회의 경제적 통일성이 진전되었음을 의미한다. 고려전기 결부제가 상대면적 체제에 기반을 두었지만 상·중·하등전의 결당 곡물 생산량과 곡물 수취량은 상이했다. 그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공물을 활용하여 상·중·하등전의 결당 수취량을 동일하게 했다. 결당 곡물 수취량은 과전법 단계에서 동일해지는데, 이는 결당 생산량을 이념적 차원에서 통일시켰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후기까지 결당 생산량은 부세정책의 영향으로 지역에 따라 상이했다. 그리고 17세기 초까지도 결부제의 주된 기능은 여전히 노동력을 징발하는 데 있었다. 즉 결부 수에 근거하여 부과한 공물이 부세의 중심을 차지했던 것이다. 대동법 실시로 결부제는 또 한 차례 변화했다. 결부제의 주된 기능이 토지세를 수취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이때부터 결부는 토지세를 의미하는 또 다른 표현이 되었다.

10시조의 후신(後身) 모티브 연구

저자 : 金柱洙 ( Kim Joo-so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05-33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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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후신 모티브란 시적 화가가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을 죽음을 통해 다른 존재가 됨으로써 성취하여, 이를 통해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시적 구도를 지닌 것을 말한다. 시조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후신 모티브의 단초는 한시 쪽에서 흔히 활용되는 '두견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시조에는 그것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용, 재창조되어 별개의 새로운 시적 모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한시 시상과 구별되는 시조장르 안에서 발생한 독특한 시적 특징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와 주목을 이끈다.
시조의 후신 모티브는 갈등 해소 방식에 있어 재생과 후신이라는 '다른 차원'을 빌어 현실의 갈등을 초극하고자 한다. 후신 모티브는 불가항력적인 현실 속에서 생기는 깊은 좌절과 슬픔, 그럼에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한 바람을 시적 상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는 좋은 통로였던 것이다.
'접동새'로부터 시작된 후신 모티브는 제비, 소나무, 연리지, 오동과 自鳴琴, 달, 동풍, 술, 술잔, 존재의 맞교환 등 소재 면에서 다양하게 확장을 이루었고, 주제의 측면에서도 戀慕, 절개, 취흥, 충정 등으로 다양하게 변용되었다. 그렇지만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그 중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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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과학기술
14권 1호 ~ 14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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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백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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