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상세보기

강원사학회> 강원사학> 강원지역 개신교 의료선교와 독립운동 : 감리교회와 의사독립운동을 중심으로

KCI등재

강원지역 개신교 의료선교와 독립운동 : 감리교회와 의사독립운동을 중심으로

Protestant Medical Missionary and Independence Movement in Gangwon Province : Focusing on the Methodist Church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Medical Doctors

신규환 ( Sihn Kyu-hwan )
  • : 강원사학회
  • : 강원사학 33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11월
  • : 47-70(24pages)

DOI

10.31097/KHR.2019.33.03


목차

Ⅰ. 머리말
Ⅱ. 감리교회와 강원지역의 의료선교
Ⅲ. 강원지역의 의료선교와 독립운동
Ⅳ. 맺음말

키워드 보기


초록 보기

이 글은 개신교 의료선교 특히 강원지역 감리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일반 민중을 상대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내외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었던 역사적 기원과 배경을 검토하였다. 개항 이후 강원지역 의료선교는 재정적 여건이나 제반 환경적 조건이 열악하였으며, 식민지시기 이후로는 식민당국이 설립한 관립병원 등의 확대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의료선교사들은 교단의 관할구역 내에서 순환근무를 하였으며, 이 때문에 병원이 일시적 침체를 겪기도 했다. 반면 강원지역은 주로 활동했던 남감리회 소속 얼 앤더슨(Earl Willis Anderson: 1879-1960)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다양한 인물들이 의료선교사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선교병원을 의사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도 했다.
북감리회와 인연이 깊었던 세브란스의전 졸업생인 안사영(1917년졸)이 단독으로 원주 서미감병원과 만주 지린성 등지에서 활약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남감리회 소속의 곽병규(1913년졸), 이원재(1914년졸), 이병천(1919년졸), 박정식(1919년졸), 송춘근(1923년졸) 등은 춘천, 강릉, 원산 등 서로 다른 지역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남감리회의 주요 거점인 원산 구세병원에서 합류하기도 했다. 원산 구세병원은 블라디보스토크 해성의원과 하얼빈의 고려의원 등과 같은 해외 독립운동 거점과 연결되는 중간 거점이었다. 이곳을 거쳐 이원재, 이병천, 박정식 등은 하얼빈 고려의원에서 활동했으며, 곽병규는 블라디보스토크 해성의원, 송춘근은 해남 고려의원 등지에서 활약했다. 요컨대 강원지역은 인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의료선교를 실행하기에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감리회라는 기독교적·교파적 배경, 세브란스의전이라는 학연, 인척관계 등을 배경으로 끈끈한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d the historical origins and backgrounds of the Protestant Medical Missionary Church, especially the Methodist Church in Gangwon Province, not just providing medical services to the general public in the community, but also being an important base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at home and abroad. Since the opening of the port, medical missionary work in Gangwon Province has been in poor financial and environmental conditions, and it has been a difficult situation since the colonial period due to the expansion of public hospitals established by colonial authorities. Medical missionaries worked on a rotation in the church's precincts, which caused hospitals to experience temporary stagnation. On the other hand, human networks were formed around Earl Willis Anderson(1879-1960), who mainly worked in Gangwon Province, and various figures used the medical missionary network to use missionary hospitals as outposts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medical doctors.
Unlike Ahn Sa-young, a graduate of the Severance Union Medical College and a member of the North Methodist Episcopal Church, who worked alone in Swedish Methodist Hospital at Wonju, Kwak Byeong-gyu, Lee Won-jae, Lee Byung-cheon, and Song Chun-geun, who graduated from Severance Union Medical College are based in different regions such as Chuncheon, Gangneung and Wonsan. Wonsan Salvation Hospital was a midpoint connecting with overseas independence movement strongholds such as Haeseong Hospital in Vladivostok and Korea Hospital in Harbin. Through here, Lee Won-jae, Lee Byung-cheon and Park Jung-sik served at Korea Hospital in Harbin, while Kwak Byung-kyu and Song Chun-geun served at Haesung Hospital in Vladivostok and at Korea Hospital in Haenam district. In short, despite the dire situation of implementing medical missionary work both in person and financially, Gangwon Province has formed a strong network of connections against the backdrop of Christian and religious backgrounds of South Methodist Episcopal Church, school ties of Severance, and personal relationships, which led to active participation in independence movements not only in Korea but also abroad.

UCI(KEPA)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226-306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5-2019
  • : 288


저작권 안내

한국학술정보㈜의 모든 학술 자료는 각 학회 및 기관과 저작권 계약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자료를 상업적 이용, 무단 배포 등 불법적으로 이용할 시에는 저작권법 및 관계법령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발행기관 최신논문
| | | | 다운로드

1강원지역 3·1운동의 특성에 대한 재조명

저자 : 엄찬호 ( Eom Chan-ho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4 (2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강원지역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있은 지 7일 만에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로 시작되었다. 평강군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된 것은 2월 28일이지만 서울의 상황파악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독립선언서 전달도 조금씩 늦어지게 되었고, 만세시위도 다른 지역에 비해 늦어져 비교적 강원도에서 서울의 소식을 빨리 접한 춘천농업학교 학생들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강원지역의 만세시위 참여계층은 처음에는 주로 천도교인 기독교인 유학자 등 지식인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준비되고 계획됐으나, 시위가 퍼지어가면서 청년과 학생·농민·상인·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해 갔다. 특히 강원도에는 의병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1910년 병탄 후 술장사나 화전민으로 숨어 살다가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항일구국투쟁의 연속성을 가져오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은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운동의 사상적 지주 역할을 하고, 교사·학생·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층·농촌지도자들이 민중을 동원지도하였으며, 농민·상인·노동자가 운동의 역량이 되었다.

2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강원도의원의 구성과 활동

저자 : 황선익 ( Hwang Sun-ik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46 (2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지역별 선거구 운용을 통해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표방했다. 기본적으로 임시의정원 의원은 본적지와 연고지를 근거로 의원에 선출되었다. 이러한 선거구제도는 임시의정원법이 제정되어 공포된 1919년 4월 25일부터 광복때까지 계속 지켜졌다.
강원도 출신 의원은 1919년 4월 제2, 3회 임시의정원에서부터 활동하였다. 한기악, 이필규 등 원주 출신 인사들이 임시의정원법 제정 전에 이미 의원으로 활동한 것이다. 그러다 제4회 임시의정원에서부터는 이필규가 1922년까지 강원도를 대표하여 의정 활동을 하였다. 한편으로 철원과 연고가 있는 송세호, 박용각이 제4회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되었다. 이들은 국내와의 비밀활동의 영향이나, 박용만노선의 임시정부 탈각 등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의정활동을 중단하였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 개최는 강원도선거구가 공백으로 남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대 강원도 임시의정원 의원들의 부침과 이탈 속에서 염온동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1935년 민족혁명당에 합류하면서 강원도의원은 다시 공석이 되었다.
강원도 의원이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중경시기에 이르러서였다. 임시정부의 통합 흐름 속에서 많은 독립운동가가 임시정부에 다시 합류하게 되었고, 강원도 의원도 그러한 맥락에서 충원되었다. 1942년 10월 제34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통한 통합의회가 구성될 때 김관오와 이구연은 각각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을 대표하는 중견 인사이자 강원도 대표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들은 모두 한국광복군 및 경찰조직 등에서 활동을 하였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역할이 증대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강원도 선거구는 임시의정원의 구성 변천을 알려주는 한편, 임시의정원 및 임시정부 변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임시정부의 분열과 요인들의 이탈, 장정 시기 이후 임시정부로의 복귀와 활동 재개, 그리고 통일정부 및 통합의회구성 등이 마치 축소판처럼 대비된다.

3강원지역 개신교 의료선교와 독립운동 : 감리교회와 의사독립운동을 중심으로

저자 : 신규환 ( Sihn Kyu-hwa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7-70 (2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개신교 의료선교 특히 강원지역 감리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일반 민중을 상대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내외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었던 역사적 기원과 배경을 검토하였다. 개항 이후 강원지역 의료선교는 재정적 여건이나 제반 환경적 조건이 열악하였으며, 식민지시기 이후로는 식민당국이 설립한 관립병원 등의 확대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의료선교사들은 교단의 관할구역 내에서 순환근무를 하였으며, 이 때문에 병원이 일시적 침체를 겪기도 했다. 반면 강원지역은 주로 활동했던 남감리회 소속 얼 앤더슨(Earl Willis Anderson: 1879-1960)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다양한 인물들이 의료선교사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선교병원을 의사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도 했다.
북감리회와 인연이 깊었던 세브란스의전 졸업생인 안사영(1917년졸)이 단독으로 원주 서미감병원과 만주 지린성 등지에서 활약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남감리회 소속의 곽병규(1913년졸), 이원재(1914년졸), 이병천(1919년졸), 박정식(1919년졸), 송춘근(1923년졸) 등은 춘천, 강릉, 원산 등 서로 다른 지역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남감리회의 주요 거점인 원산 구세병원에서 합류하기도 했다. 원산 구세병원은 블라디보스토크 해성의원과 하얼빈의 고려의원 등과 같은 해외 독립운동 거점과 연결되는 중간 거점이었다. 이곳을 거쳐 이원재, 이병천, 박정식 등은 하얼빈 고려의원에서 활동했으며, 곽병규는 블라디보스토크 해성의원, 송춘근은 해남 고려의원 등지에서 활약했다. 요컨대 강원지역은 인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의료선교를 실행하기에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감리회라는 기독교적·교파적 배경, 세브란스의전이라는 학연, 인척관계 등을 배경으로 끈끈한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41920년대 중국의 '비기독교운동(非基督敎運動)' 재평가 -반기독교(反基督敎)에 대한 이성적 비판의 관점에서-

저자 : 최병욱 ( Choi Byung-wook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1-96 (2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1920년대의 반기독교운동은 확실히 淸末에 일어났던 반기독교운동, 즉 敎案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중국 사회의 성숙한 면도 잘 반영하고 있다. 당시 반기독교인사들은 서양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기독교와 모든 종교들을 비판하였다. 청년학생과 지식인이 중심이 된 1920년대의 반기독교운동은 민족주의 사조와 결합하여 반제국주의 정치운동의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1924년 이후 국민혁명 시기에 들어 서양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교육권을 회수하려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볼 때 1920년대의 반기독교운동은 민족주의 사상을 선양하고 민중의 민족의식과 애국적 격정을 격발시켰으며, 당시 反帝·反軍閥 혁명운동의 발전을 촉발시킨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조류 아래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반기독교운동에 대한 이성적 비판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5·4운동의 정신은 1915년부터 시작된 신문화운동부터 제시된 '민주와 과학'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5·4운동의 정신과는 달리 1920년대의 반기독교운동은 '과학'을 앞세워 '비과학'의 종교를 비판하였고, 나아가 '과학'이 소위 종교가 되어버려 기독교와 반기독교에 대한 이성적 비판 운동은 매몰되고 말았다. 물론 당시에 중국 기독교는 반기독교진영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통을 겪었지만, 기독교 측에서 보자면 그 고통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계에서는 반기독교운동의 시기에 기독교교리에 대해 언론을 통해 중국 지식층과 학자들에게 널리 소개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결국 반기독교운동 이후에 중국 교회에서는 자립의 소리가 높아져 중국교회의 토착화를 촉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5미국 식민 체제 정착 과정과 필리핀 초등교육 정책 수행의 정치적 함의, 1902-1907

저자 : 양두영 ( Yang Du-young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7-130 (3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 미국-필리핀 전쟁 제2국면(1902-1907)에서 추진된 초등교육 정책 분석을 통해 미국 식민 교육 정책의 성격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제2국면의 주요 정치적 이슈를 둘러싸고 나타난 미국인들의 정책 수행과 필리핀인들의 대응을 배경적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해당 시기 초등교육의 주요초등교육 지수가 확대되는 과정을 고찰하고, 초등교육 변화 양상과 원인, 그 속에 담겨있는 정치적 함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식민 교육 정책을 '자비로운 동화'(Benevolent Assimilation) 정책의 일환으로 보거나 군사 점령의 도구로 보는 등 이분법적 관점에 머물러 있는 기존 연구를 넘어, 층위가 다른 다중 주체의 능동적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복합물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미국의 식민 정책은 미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필리핀 연방당 인사들에게는 자비로운 동화 정책일 수 있었지만,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세력에게는 군사적 진압과 선동법 등의 법적 조치를 통한 '폭력적인 배제'(Violent Elimination) 정책이었다. 또한 식민 당국은 필리핀인들의 자치 능력 향상을 위해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지만, 필리핀을 미국에 동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획득하며 정치적으로 성공하였다. 여기서 동화란 미국과 동등한 주권 국가로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 문화가 확산되고 미국에 종속되는 '폭력적인 미국화'(Violent Americanization)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인들은 미국의 영어교육과 학교교육을 적극 수용하고 참여하며 지원하였다. 영어는 다양한 부족어로 분리되어 있던 필리핀의 특수한 상황에서 부족을 넘어 전체 필리핀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용어로서의 '필리핀어'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영어교육이 '자비로운 필리핀화'(Benevolent Filipinization) 정책의 일환이었다. 결국 미국의 식민 교육 정책은 다중주체와 결합하여 이율배반적 목적과 성격의 이중적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낸 복합적인 생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6강원고고학 연구의 동향과 전망

저자 : 김규운 ( Kim Gyu-u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3-152 (2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강원도의 고고학조사는 1912년 關野貞과 谷井濟一에 의한 강릉 하시동고분군 조사 이래 약 100년 정도 지나왔고, 특히 1980년대 전국의 개발 열풍과 동반하여 본격적인 구제발굴이 시작되면서 많은 고고자료가 쌓여왔다. 그간 강원도에서도 이러한 자료 축적에 따라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 100년 동안의 연구성과를 다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 경향에 대해 검토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의 시대별 양상, 그리고 전국 학술지에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고고학 논문이 얼마나 게재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낙관적이지 못하였다. 강원고고학 연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역내에서만 소비되고 있는 실정을 지적하였다. 즉, 한반도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강원고고학 연구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과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송국리문화로 대표되는 청동기시대 중기에 천전리유적 등의 독특한 문화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른바 예맥논쟁이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 고고학적으로 치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함을 상기시켰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강원지역에서는 삼국시대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점을 지적하였다. 물론, 한반도내 다른 지역보다 고분의 수가 현저하게 적지만, 강원지역내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으며 그 매장주체부도 목곽묘부터 석곽묘, 횡혈식석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축조되었다. 따라서 강원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을 면밀하게 분석한 다음 그 변화양상을 추적하는 것을 통해 고대 강원지역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강원고고학이 나아가야 할 것이며 특히, 신진연구자들의 많이 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였다.

7기록을 통해 본 풍수원 성당 안나회

저자 : 이원희 ( Lee Won-hee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3-179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안나회는 풍수원 성당의 오래된 단체로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신자들은 안나회에 대하여 기도 생활과 시간 생활,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하였던 '동정녀들의 모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안나회 회원들은 제의방 및 제대 관리 그리고 본당신부의 공소 방문시 복사의 역할 등을 담당하였으며, 현재의 안나회 회원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던 동정녀들의 모임이자 일종의 수도단체로 인지하였던 안나회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풍수원성당에는 안나회에 대한 기록으로 「안나회원인명부」와 「허원문답」이 남아있다. 「안나회원인명부」와 「허원문답」은 안나회의 설립자 및 설립 이유, 회원들의 인적 구성, 안나회원들의 규칙 그리고 안나회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로, 안나회라는 단체의 역사 뿐만 아니라 풍수원성당 역사에서 안나회가 지니는 의미, 그리고 지역 천주교사의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안나회원인명부」와 「허원문답」에 보이는 안나회의 설립과 인적구성 그리고 그들의 규칙을 토대로 하여 안나회에 대한 사실적인 접근에 주목하였다. 인명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안나회의 회원은 총 109명이며 이들의 나이는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안나회를 풍수원 성당의 신자들은 동정녀들의 모임이었고, 수도생활을 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안나회원인명부」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안나회는 동정녀들의 모임이나 수도생활을 하는 단체라기 보다는 풍수원 성당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의 모임으로, 기혼·미혼·과부 등이 혼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초기에는 수도생활을 지향하는 동정녀들의 모임이었으나 다양한 연령층이 가입하기 시작하는 1925년부터 그 성격이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안나회에 속한 이들 중에는 혈연관계로 맺어진 이들도 있으며, 다양한 본적지와 출생지가 등장한다. 안나회원들의 다양한 본적지와 출생지는 인명부와 풍수원 성당의 세례대장 및 혼배대장의 교차 확인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인적교류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으며 이는 향후 연구과제로 삼는다.

8강원미술사의 민중미술 작가 황재형

저자 : 최형순 ( Choe Hyeong-soo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0-202 (2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사회참여적 성격을 미술에 묻는다면 누구나 1980년대의 민중미술을 들게 된다. 민중미술은 오늘날 독특한 한국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미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민중미술 대표작가로서 미술단체 '임술년'을 통해 활동한 황재형이 있다. 강원도 탄광지대에 광부로 직접 뛰어든 현장에의 투신과 열정으로 진정한 리얼리즘을 이루려 한 작가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 개요로부터 황재형의 위치와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 강원의 작가 황재형 전체를 그려 보고자 했다.
황재형은 특별히 강원미술사의 중요한 지점을 지켜오고 있다. 민중미술의 중요한 작가라는 점, 주장의 거침없음을 뒷받침할 남루한 방식에 대한 염려도 놓치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는 점, 여전히 강원의 탄광지대에서 밀도 높은 예술성을 위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게 진정성을 담은 삶과 그것을 리얼하게 담은 작품, 화단과 미술시장에서의 위치가 황재형을 강원미술사에서 평가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9로마 공화정 후기의 전쟁과 정치 : 루쿨루스의 지중해 동부 원정의 경우

저자 : 안희돈 ( Ahn Hee-do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3-226 (2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루쿨루스에 대한 연구는 로마 공화정 후기 노빌레스 계층과 당대 로마 정치를 이해 하기 위하여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술라의 부관으로서 공직 경력을 쌓아 나갔고, 술라 사후 대표적인 '술라체제'의 옹호자로서 공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삼두 정치인의 등장과 포풀라레스 정치인들의 정치적 공세에 대항하였다. 그는 뛰어난 군사적 지휘 능력을 발휘하였고, 미쓰리다테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속주민을 보호하고 군기를 엄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기사신분의 이익 추구와, 로마 군단내 병사들이 이익 추구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였고, 그 결과 로마 정치 무대에서 그에 대한 정치 공세가 강화되었다. 그러한 위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군사 원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뚜렷한 공적을 세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결국 무리한 군사작전 계획으로 전황이 악화되고 휘하병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중도에 군대 지휘권을 내려놓아야 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 요소들 중 중요한 두 가지는 군대의 직업군인화와, 지배층 내에서 상업적 이해를 추구하는 경향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루쿨루스는 공화정기 보수적 귀족의 이상을 추구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맞서는 조치를 취하였고 그것은 결국 그의 정치적 좌절을 초래하고 말았다.

1
주제별 간행물
간행물명 수록권호

KCI후보

중국지식네트워크
15권 0호 ~ 15권 0호

KCI등재

명청사연구
53권 0호 ~ 53권 0호

KCI등재

사림(성대사림)
72권 0호 ~ 72권 0호

KCI등재

선사와 고대
62권 0호 ~ 62권 0호

KCI등재

동양학
79권 0호 ~ 79권 0호

KCI등재

중국사연구
125권 0호 ~ 125권 0호

KCI후보

학림
45권 0호 ~ 45권 0호

KCI등재

중국학논총
67권 0호 ~ 67권 0호

복현사림
37권 0호 ~ 37권 0호

KCI등재

중국연구
82권 0호 ~ 82권 0호

KCI등재

석당논총
76권 0호 ~ 76권 0호

KCI등재

동양예술
46권 0호 ~ 46권 0호

KCI등재

명청사연구
37권 0호 ~ 46권 0호

KCI등재

대구사학
138권 0호 ~ 138권 0호

KCI등재

명청사연구
36권 0호 ~ 52권 0호

KCI등재

중국지역연구
7권 1호 ~ 7권 1호

KCI등재

고문서연구
56권 0호 ~ 56권 0호

KCI등재

동아연구
78권 0호 ~ 78권 0호

KCI등재

몽골학
60권 0호 ~ 60권 0호

KCI등재

중국사연구
124권 0호 ~ 124권 0호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발행기관 최신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