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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지역 점토대토기 사회에 대한 다른 인식

An Alternative View on the Clay-band Rim Pottery Communities of the Central Part of Korea

송만영 ( Song Man Young )
  •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 인문논총 76권3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8월
  • : 327-368(42pages)

DOI


목차

1. 머리말
2. 점토대토기 사회에 대한 설명 틀과 문제점
3. 유적 편년과 기존 설명 틀에 대한 비판적 검토
4. 인구 변동과 점토대토기 단계의 관계망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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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중부 지역 점토대토기 사회는 점토대토기 집단의 이주설과, 이를 전제로 한 이주민과 재지민의 공존과 갈등, 그리고 교류 및 재편이라는 틀 속에서 설명되었다. 또한 외래 집단의 이주가 광역의 지역 통합과 본격적인 계급적 복합사회로 변화하는 등과 같은 문화변동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 글은 이러한 인식의 논리 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고고학 자료와 잘 부합되는 설명 틀인지 검토하고 그 대안적 가설을 제안하기 위해 작성하였다. 점토대토기 집단의 이주설은 문헌의 역사 기록을 편년과 문화 해석의 전제 조건으로 하는 방법론과 특정의 유물복합체를 집단으로 이해하는 인식론이 결합되면서 주장 된 것이지만, 실제 남한 지역의 인구 변동에는 확인되지 않은 실체이다. 또한 계통론적인 인식과 공존, 갈등설이 전제되어 점토대토기 유적편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검증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으며, 주거지의 중복 및 유물의 공반 관계에서 편년 오류가 확인되기도 한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관계망설을 제안하였는데, 청동기시대 중기 이래의 인구감소, 대형취락의 해체에 이어 취락의 분산, 소형화와 혼합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재지 집단이 사회 통합과 계층화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관계망을 형성하였다는 견해이다. 즉 재지 집단이 요동, 서북 지역, 그리고 중서부 지역을 연결하는 광역의 관계망을 통해 점토대토기와 세형 동검문화를 순차적으로 수용하였고, 제장과 같은 지역 관계망을 통해 그 문화를 확산하였다고 본다.
The clay-band rim pottery communities of the central region of Korea have been understood thus far from the point of view of migration, of coexistence and conflict between migrants and indigenous peoples, and in terms of exchange and reorganization. In addition, the migration of foreign residents has been regarded as a cause of cultural change, bringing about the regional integration of the wider area and transformation into a fully class-divided societ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whether there are any problems with the logical structure of such a perception, and to consider whether it is a descriptive frame that is consistent with archaeological data, and to suggest alternative interpretations if required. The migration theory for the clay-band rim pottery group, which was developed by combining the methodology of making historical records as a prerequisite for annals and cultural interpretation with the epistemology of regarding a specific archaeological assemblage as a representing a population group, is an unconfirmed entity. Also, the dating of the clay-band rim pottery sites has been based on the theory of systematic awareness, coexistence, and conflict. However, no verification has taken place and occasionally errors of chronology have been identified in relation to the overlapping of dwellings and the relationship of artifacts. Therefore, relationship network theory is presented as the basis for an alternative interpretation. It is proposed that the indigenous group formed strategic networks for social integration and stratification in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which involved the dissolution of large villages, their dispersion and the miniaturization, and the emergence of a mixed economy, which had taken place since the middle of the Bronze Age. In other words, it is argued that the indigenous group gradually accepted clay-band rim pottery and the Slender Bronze Dagger culture through a wide regional network that connected the Liaodong region, the northwestern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mid-western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at the culture had spread through the regional network via nodes such as ritual sites.

UCI(KEPA)

I410-ECN-0101-2019-000-001003746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598-3021
  • : 2671-7921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6-2020
  • :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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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ㄹ로'는 조사 '로'의 이형태인가?

저자 : 이현희 ( Lee Hyeon-hie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2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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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어의 '거'는 결코 명사 '것'에서 직접 줄어든 것이 아니다. 'X시'의 구조에서 'X이'가 되는 어중 'ㅅ' 탈락 규칙에 의해 '거시'가 '거이'가 되고 다시 재분석에 의하여 '거'가 석출된 것이다. 이 'ㅅ' 탈락 규칙은 '마시-~마이-'[飮] 같은 어휘 형태소와 '-십시다~-입시다' 같은 문법 형태소에 두루 적용되던 것이었다. '거'가 재분석된 다음, '나, 너, 저, 누, 이, 그, 뎌' 등의 1음절짜리 대명사에 문법 형태소가 통합할때 'ㄹ'이 덧붙던 중세 한국어나 근대 한국어에서처럼 현대 한국어의 '거'와 그와 동일한 규칙에 의하여 형성된 '뭐' 및 '무어'에도 'ㄹ' 덧붙기 규칙이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덧붙은 이 'ㄹ'은 조사의 일부가 아니라 어휘화된 어간의 일부로 인식되어 'ㄹ' 말음 어간과 동일한 음운론적인 행동을 보였다.

2중세한국어 [자격]의 '로' 구문에 대한 연구

저자 : 정혜린 ( Jeong Hyerin ) , 백채원 ( Baek Chaewo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6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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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세한국어의 조사 '로'에 대하여 살피되, 특히 [자격]의 의미를 나타내는 '로'의 특성을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로'는 함께 사용되는 서술어에 따라 문장에서 나타내는 의미가 다양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조사이다. 본고는 [자격]의 의미를 가지는 '로'의 특성을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세한국어에서 [자격]을 나타내는 '로' 구문의 특성을 논하였다. 그리고 [자격]과 관련지어 함께 논의될 수 있는 구문도 살폈다. 이 논의를 통해 중세한국어 시기 '로'의 사용 양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3'날로', '세세로' 유형 부사의 역사적 연구

저자 : 김한결 ( Kim Han Gyul ) , 장고은 ( Jang Goeu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5-10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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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간 간격의 반복을 의미하는 '날로', '세세로' 유형 부사에 대한 통시적 해석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들은 형태·의미적으로 유사하기에 동류로 취급될 가능성이 있으나, 그 형성 과정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날로'류는 시간 명사와 조사 '로'의 통사적 구성에서 비롯하였다. 조사 '로'는 시간 반복의 용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선행하는 시간 명사와 결합하여 “매(每) X마다”라는 결합적 의미를 나타내었다. '날로'류는 특정 문맥에서 제3의 의미를 얻어 'X로' 전체가 어휘화를 겪기도 하였다. 이에 비하여 '세세로'류는 부사로 쓰이는 첩어 구성'X'와 첩어에 '예(←에)'나 '로'가 결합한 'X예', 'X로'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계열관계를 이루었다. '세세로'류가 보이는 시간 반복의 의미는 첩어 구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때 'X예', 'X로'는 통시태로서 중세한국어 이전 시기의 어형들이 계승된 것이다

4중세한국어에서 목적어에 결합하는 '로'에 대하여

저자 : 김태우 ( Kim Taewoo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1-12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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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한국어에는 세자리 서술어의 [대상] 논항에 부사격 조사 '로'가 표지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대상] 논항이란 물리적 또는 추상적 이동의 대상이 되는 개체를 뜻하는 것으로 위치 이동, 수여, 발화, 전환, 사유 동사 등이 [대상] 논항을 필요로 한다. 이때 '로'는 반드시 [수혜자, 도달점] 논항에 선행하여야 하며 한문 원문 以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以가 없더라도 목적어가 전치되어 있는 경우, 이 목적어에 '로'가 표지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한국어에는 없는 것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설명을 시도하였다. 첫째, 이를 비정형적 목적어 표지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세계 여러 언어에서는 서술어의 의미에 따라 목적어의 격표지가 바뀌는 현상이 존재하는데, 중세한국어도 이와 같은 유형의 언어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언어의 비정형적 목적어 표지와는 다르게 '로'는 대격 표지로 자유롭게 교체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 '로'를 전치된 목적어의 유표성을 표시하기 위해 이용된 표지로 볼 가능성도 있다. 이때 '로'는 도구격 조사로 서술어의 행위를 한정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현대한국어 동남방언과 동북 방언의 일부에서 대격 표지가 '로/르'로 실현된다. 이들은 각 방언에서 대격 조사 '을/를'이 음운 변화를 겪어 형성된 형태로, 중세 한국어의 [대상] 논항에 표지되는 '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요소이다.

5식민지 조선의 『일리아스』 읽기 ― 연애소설로 읽은 노자영 연구

저자 : 김헌 ( Kim Heo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5-16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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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학의 최고 고전인 『일리아스』가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읽혔는가? 이 글은 춘성 노자영의 『이리앳트니야기』에서 그 대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 작품은 『일리아스』를 한반도에 최초로 소개한 작품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른바 세계문학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했는데, 이런 흐름에서 『일리아스』가 조선의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호메로스 원작의 번역은 아니며, 일종의 요약본이다. 노자영은 일리아스의 줄거리에 트로이아 전쟁의 발단이 된 황금사과와 파리스의 선택 이야기를 앞에 붙였고, 10년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와 함께 귀향하는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를 끝에 덧붙였다. 이런 재구성의 과정에서 노자영은 '일리아스'를 연애소설로 읽어냈고, 자신의 작품에 '연애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실제로 그는 호메로스의 원작에 없는 연애소설의 요소들과 '사랑지상주의'(또는 '연애지상주의')의 이념을 집어 넣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노자영은 1920년대 출판계의 상업적 요청에 적극 부응하였던 것이다. 삼일운동 이후 한층 엄해진 출판의 검열을 피하고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연애소설의 출판이 사업적 전략으로서는 적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대중적 욕망과 노자영의 출판 전략은 '연애의 시대'로 표현될 수 있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문화적 흐름의 산물로 봐야 한다.

6김사량과 독일문학

저자 : 장문석 ( Jang Moon-seok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9-212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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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사량 문학과 독일문학의 관계를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김사량의 비평과 독일문학, 김사량의 창작과 교양소설의 형식, 김사량의 실천과 혁명.
첫째, 김사량은 '조선어의 위기' 앞에서 조선문학의 정체성에 관한 비평을 제출하였다. 당시 일본의 문학연구자들은 독일과 일본을 같은 위치에 두었지만, 김사량은 서구와 비서구의 낙차를 응시하면서, 독일 문학의 역사전 전개에 유비(analogy)하여서 조선문학의 현단계를 진단하였다. 그는 동시대 조선문학을 독일의 계몽주의로 이해하면서, 조선어와 문학의 전통을 형성할 '조선의 괴테'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는 조선문학이 외국문학의 수용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기를 기대하였으며, 나아가 번역이라는 실천을 통해 일본문학 및 세계문학과의 교류를 기대하였다.
둘째, 김사량은 창작을 통해서 서구적 형식과 동아시아 현실 사이의 거리를 고민하였다. 「빛 속으로」(1939)가 아쿠타가와 상 후보작으로 선정되면서 김사량은 도쿄에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타이완 작가 룽잉쭝(龍瑛宗)에게 이 소설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였다. 「빛속으로」는 학교라는 제도적 공간과 남성동성사회를 배경으로 한 학생의 성장과 우정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 일본에서 널리 읽혔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비롯한 '후기 교양소설'의 형식과 유사한 것이었다. 김사량의 「빛 속으로」는 서구적 형식과 비서구의 현실이 결합한 비서구 근대문학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교양소설은 서구 근대 부르주아의 이동성 및 직선적 역사의식에 근거한 소설의 양식이지만, 비서구-식민지라는 이중구속 아래에 있던 김사량에게 자아와 사회의 조화로운 성숙이라는 '교양'(Bildung)의 이념은 불가능하였다. 이후 김사량은 「천사」(1942)에서 직선적 시간의식을 정지하고, 전시체제기의 현재로부터 추방당한 '과거', 혹은 조선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으로부터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셋째, 김사량은 문학과 혁명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였다. 김사량은 하이네를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망명하여 독일 비판을 수행한 작가로 이해하였다. 그는 하이네의 문학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지만, 검열로 인해 하이네의 문학에 대해 충분히 서술하지 못하였다. 1945년 중국 옌안으로 탈출한 이후, 김사량은 문학과 혁명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사유할 수 있었다. 옌안에서 그는 동아시아 민중문학의 전통과 대면하였으며, 지식인이 아니라 민중이 주체가 된 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옌안에서 김사량은 희곡을 창작하였는데, 그의 희곡창작은 비서구의 현실로 서구적 형식을 탈구축할 가능성을 탐색한 사례였다.
도쿄제국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했던 비서구 작가 김사량의 문학적 실천은 민중의 삶에 유의한 동아시아문학이라는 중간결론에 닿게 된다. '김사량과 독일문학'이라는 논제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서구문학의 관계 설정이라는 추후의 과제를 남긴다.

7식민지근대에 복권된 양명학 ― 정인보의 『양명학연론』은 다카하시의 조선유학사에 대한 대항인가?

저자 : 이혜경 ( Yi Hye Gy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3-25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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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인보의 양명학을 제국 일본의 '근대양명학'과 관련해서 논의했다. 도쿄제국대학의 교수 이노우에 데츠지로는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라는 틀로 일본양명학이 근대일본을 열었다는 서사를 만들었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 도루는 이노우에의 유학이해를 조선연구에 적용해 조선을 주자학 일존의 정체된 사회로 규정하였다. 이 논문은 정인보의 양명학 현창이 다카하시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이노우에의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의 틀을 답습한 것임을 논했다. 그러나 이노우에와 달리 정인보는 그 자신이 양명학자로서, 그에게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는 참된 유학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또한 그에게 참된 유학을 회복하여 자신에게 가깝고 절실한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학문은 그대로 조선학이 되고 실학이 된다. 그는 이노우에와 마찬가지로 양명학을 민족적으로 전유했으나, 양명학의 보편성을 훼손하지 않고 '친친지쇄'를 강조하는 수준에서 민족주의를 자극하였다.

820세기 한의학의 '신'(新) 고전 탄생 ― 이제마(李濟馬)와 사상의학(四象醫學)

저자 : 김성수 ( Kim Seong Su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1-28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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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마와 사상의학은 독창적인 의학사상 때문에 허준의 『동의보감』과 함께 한의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조선 최말기에 저술된 『동의수세보원』은 이제마가 기대했던 것만큼 평가를 처음부터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1910년대 처음으로 조직된 한의사 단체인 조선의생회의 기관지였던 『한방의약계』에 소개된 이제마의 의학은 사상설로 소박하게 평가받았을 뿐이다. 이후 사상론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경성의 한의학계에 확고하게 뿌리내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 이제마에 대한 평가는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다. 여기에는 조선학운동 등을 계기로 형성된 조선의 문화를 재조명하려는 사회적 흐름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조를 확장시킨 것은 1930년대 중반 동서의학논쟁의 주요 논자였던 이을호였다. 이을호는 체질의학으로 사상의학의 성격을 규정하고, 사상의학의 사상적·의학적·약물학적 분석 기사들을 신문 지면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하였다. 이후 이제마는 조선을 대표하는 의인 가운데 한명이 되었으며, 그의 저서 『동의수세보원』은 허준의 『동의보감』과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이 변화의 과정 ― 다른 말로 한의학의 신고전의 형성과정 ― 은 봉건적·신분적 규범에 따른 의학의 권위형성 방식이 학문적 정합성과 대중적 인식도로 점차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9실증사학의 '이념' ― 식민지 조선에 온 역사주의

저자 : 홍종욱 ( Hong Jong-wook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87-32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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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의 역사주의는 실증주의 역사학의 보편적 발전법칙을 비판하고 개체가 지닌 고유성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실증주의와 마찬가지로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을 내세우고 엄밀한 사료 비판을 강조하였다. 역사주의 역사학이 실증사학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다. 실증사학은 사실 파악과 가치 판단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19세기 이래 실증사학의 이념은 국가와 민족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병도가 이끈 진단학회는 과학과 민족의 결합을 지향했다. 일본 실증사학의 국민사에 맞서 한국의 국민사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식민사학과 이병도의 역사학은 모두 실증사학이었다. 동아시아에 온 역사주의 실증사학은 각 나라와 지역에서 나란히 국민사 역할을 떠맡은 셈이다. 식민지기 잠재되어 있던 민족이라는 이념은 해방과 더불어 민족사 서술로 구현되었다. 실증 사학이 견지해 온 민족이라는 이념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21세기 지속 가능한 역사학을 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중부 지역 점토대토기 사회에 대한 다른 인식

저자 : 송만영 ( Song Man Yo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27-36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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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중부 지역 점토대토기 사회는 점토대토기 집단의 이주설과, 이를 전제로 한 이주민과 재지민의 공존과 갈등, 그리고 교류 및 재편이라는 틀 속에서 설명되었다. 또한 외래 집단의 이주가 광역의 지역 통합과 본격적인 계급적 복합사회로 변화하는 등과 같은 문화변동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 글은 이러한 인식의 논리 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고고학 자료와 잘 부합되는 설명 틀인지 검토하고 그 대안적 가설을 제안하기 위해 작성하였다. 점토대토기 집단의 이주설은 문헌의 역사 기록을 편년과 문화 해석의 전제 조건으로 하는 방법론과 특정의 유물복합체를 집단으로 이해하는 인식론이 결합되면서 주장 된 것이지만, 실제 남한 지역의 인구 변동에는 확인되지 않은 실체이다. 또한 계통론적인 인식과 공존, 갈등설이 전제되어 점토대토기 유적편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검증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으며, 주거지의 중복 및 유물의 공반 관계에서 편년 오류가 확인되기도 한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관계망설을 제안하였는데, 청동기시대 중기 이래의 인구감소, 대형취락의 해체에 이어 취락의 분산, 소형화와 혼합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재지 집단이 사회 통합과 계층화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관계망을 형성하였다는 견해이다. 즉 재지 집단이 요동, 서북 지역, 그리고 중서부 지역을 연결하는 광역의 관계망을 통해 점토대토기와 세형 동검문화를 순차적으로 수용하였고, 제장과 같은 지역 관계망을 통해 그 문화를 확산하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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