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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사비기 백제 왕릉의 새로운 인식 -익산 쌍릉(대왕릉)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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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기 백제 왕릉의 새로운 인식 -익산 쌍릉(대왕릉)을 중심으로-

New Awareness of the Royal Tombs during the Sabi Period of Baekje - With a Focus on the Twin Royal Tombs (Tomb of the Great King) in Iksan -

이문형 ( Lee Moon Hyoung )
  •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 : 백제문화 6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8월
  • : 5-37(33pages)

DOI


목차

Ⅰ. 머리말
Ⅱ. 쌍릉 관련 문헌 및 일제강점기 조사 자료 검토
Ⅲ. 최근 발굴조사 자료의 검토와 해석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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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한 수 많은 유적을 파 헤쳤다. 100년이라는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당시 조사되었던 많은 유적들이 우리나라 학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익산 쌍릉은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익산 쌍릉은 오금산(해발 180m) 서쪽 능선 말단부 낮은 구릉에 2개(대왕릉·소왕릉)의 원형분이 남-북 방향으로 180m 떨어져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2017년 대왕릉의 재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 왕릉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자료와 함께 일제 강점기 조사 후 관대 위에 놓은 목함(木函) 내부에서 한 사람 개체분의 유골이 수습되었다. 유골의 자연과학적인 분석 결과 고령의 남성으로 확인되었으며, 연대측정결과 백제 제30대 무왕에 가깝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본 논문은 쌍릉과 관련한 문헌자료 및 일제강점기 발굴조사 자료의 검토와 최근 이루어진 대왕릉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정보의 검토를 통해 익산 쌍릉의 성격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문헌자료 검토 결과, 과거 쌍릉은 ‘마한의 시조’ 혹은 ‘백제 무왕’의 무덤으로 인식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7년 조사 후에 비로소 백제 사비기 왕릉급 무덤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2017년 대왕릉 재조사 내용 검토 결과, 대왕릉은 야트막한 구릉 능선 정상부의 입지, 지상에 거대한 규모의 봉분 조성에 판축기법의 토목공법 적용 등 사비기 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왕릉과는 다른 양상과 함께 석실 구축에 중국 남조척(南朝尺)의 사용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21m에 달하는 장엄한 묘도와 살아생전 미리 무덤을 만드는 수릉(壽陵)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이번 대왕릉의 재조사로 확인된 새로운 자료가 백제 사비기 왕릉 구조 및 횡혈식석실에 대한 기존 인식을 벗어나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During the age of Japanese oppressive occupation,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destroyed many relics scattered all over the country for the purpose of justifying the colonial rule. After a century has passed since then, many of the relics surveyed at that time were newly investigated by the hands of the Korean scholars who have found and revealed new facts including particularly those of the Twin Royal Tombs in Iksan.
The Twin Royal Tombs are located at the lower hills around the west-end ridge of Mt. Ohgeumsan (180m above sea level), with two round-shaped tombs (the great tomb and the small tomb) 180 m apart in parallel from each other in the south-north direction. During the re-examination of the great tomb in 2017, the remains of one individual were gathered from the inside of the wooden box which had been placed on the shelf after the surve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ogether with new data showing the structure of the royal tombs during the Sabi period of Baekje Kingdom.
The scientific analysis of the ashes from the remains confirmed that it was an older man's. The result of the dating was also announced suggesting that the man is likely to be King Mu, the thirtieth king of Baekje Kingdom. The present paper spotlighted again the nature of the Twin Royal Tombs in Iksan by reviewing the literature and documents related to the Twin Royal Tombs, including the data, materials and information obtained from the excav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age as well as from the excavation research of the great tomb conducted recently. From the review of the literature and materials, it was made known that, in the past, the twin tombs were believed to be the ones for 'the founder of Mahan' or 'the King Mu of Baekje Kingdom'. But just after the survey in 1917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it was recognized as the tombs of the royal family members during the Sabi period of Baekje.
The reexamination of the great tomb in 2017 showed that it is located around the top of the low ridge line and Banzhu (版築) technique was applied to construct the mound of grand scale over the graves on the plain area, which is different from the style of the royal tombs found in the old tombs cluster in Neungsan-ri of Sabi period, implying the possibility that the scales of the China's Southern Dynasty were employed when constructing the stone chambers. In addition, the possibility was also raised that the majestic tomb road of about 21m long was constructed and the tomb for life (壽陵) was built before death.
I hope that the new data obtained from the re-examination of the great tomb could help to broaden the scope of our understanding beyond the existing perception of the structures of the royal tombs and tunnel stone chamber tombs during the Sabi period of Baekje Kingdom.

UCI(KEPA)

I410-ECN-0102-2019-900-001757528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598-2963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67-2019
  • :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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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비기 백제 왕릉의 새로운 인식 -익산 쌍릉(대왕릉)을 중심으로-

저자 : 이문형 ( Lee Moon Hyoung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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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한 수 많은 유적을 파 헤쳤다. 100년이라는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당시 조사되었던 많은 유적들이 우리나라 학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익산 쌍릉은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익산 쌍릉은 오금산(해발 180m) 서쪽 능선 말단부 낮은 구릉에 2개(대왕릉·소왕릉)의 원형분이 남-북 방향으로 180m 떨어져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2017년 대왕릉의 재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 왕릉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자료와 함께 일제 강점기 조사 후 관대 위에 놓은 목함(木函) 내부에서 한 사람 개체분의 유골이 수습되었다. 유골의 자연과학적인 분석 결과 고령의 남성으로 확인되었으며, 연대측정결과 백제 제30대 무왕에 가깝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본 논문은 쌍릉과 관련한 문헌자료 및 일제강점기 발굴조사 자료의 검토와 최근 이루어진 대왕릉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정보의 검토를 통해 익산 쌍릉의 성격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문헌자료 검토 결과, 과거 쌍릉은 '마한의 시조' 혹은 '백제 무왕'의 무덤으로 인식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7년 조사 후에 비로소 백제 사비기 왕릉급 무덤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2017년 대왕릉 재조사 내용 검토 결과, 대왕릉은 야트막한 구릉 능선 정상부의 입지, 지상에 거대한 규모의 봉분 조성에 판축기법의 토목공법 적용 등 사비기 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왕릉과는 다른 양상과 함께 석실 구축에 중국 남조척(南朝尺)의 사용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21m에 달하는 장엄한 묘도와 살아생전 미리 무덤을 만드는 수릉(壽陵)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이번 대왕릉의 재조사로 확인된 새로운 자료가 백제 사비기 왕릉 구조 및 횡혈식석실에 대한 기존 인식을 벗어나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2~4세기 곡교천 유역 묘제 변천과 집단의 동향

저자 : 조성윤 ( Seong-yoon Cho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9-84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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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2~4세기 곡교천 유역 내 분묘와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과 편년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묘제의 변천과 분묘 축조집단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분석 결과, 묘제의 변천 과정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1단계(단경호-원저발-유개대부호)는 2세기 중엽, 2단계(단경호+평저발)는 2세기 후엽~3세기 후반, 3단계(단경호+평저발+원통형토기)는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으로 설정하였다.
곡교천 유역에서는 2세기 중엽 이후 중류역 북안의 용두리 진터 일대에서 분묘 축조집단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3세기 전반 이후에는 용두리 진터에서 밖지므레 일대로 분묘 축조집단의 확대 내지는 분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3세기 중엽 이후 밖지므레 집단은 대규모 분묘군을 조영한 집단으로 성장한다. 분묘군 내에서는 집단 내 위계 구조가 보다 뚜렷하게 반영되는 모습이 확인되며, 상위 위계의 분묘 내부에서 확인되는 외래 토기류와 마구류 등 나름의 희소성이 부여되는 부장품의 출토되고 있어 이를 통해 밖지므레 집단은 이 시기 곡교천 일대의 중심집단으로 부상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4세기 중엽 이후 밖지므레 집단의 분묘군은 더이상 확장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하여 4세기 후반 밖지므레 주변으로 조영되는 소규모 분묘군들의 존재와 곡교천 남안에서 대규모 분묘군으로 조영되기 시작하는 북수리 유적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앞 시기 이 일대 중심집단으로 존재한 밖지므레 집단의 세력은 약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동향 변화의 배경으로는 4세기 중엽 이후 분묘 부장품으로 적극 활용되기 시작하는 한성백제의 토기 기종들을 비롯, 금동이식이나 단봉문환두대도 등의 한성백제와 관련한 위 세품이 확인되는 점을 고려하여 한성백제의 영향력이 반영된 결과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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