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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김창업(金昌業)·리기지(李器之)의 중국 문인 교유 양상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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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업(金昌業)·리기지(李器之)의 중국 문인 교유 양상과 특징

The Aspects and Characteristic of Chinese Literati Friendships Kim chang-up and Lee gi-ji

申翼澈 ( Shin Ik-cheol )
  •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 대동문화연구 10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6월
  • : 253-285(33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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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金昌業의 중국 문인 교유 양상과 특징
Ⅲ. 李器之의 중국 문인 교류 양상과 특징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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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金昌業의 『燕行日記』와 李器之의 『一庵燕記』를 대상으로 18세기 전반 한중 문인의 교유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두 사람의 연행록은 이 시기의 연행록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중국 문인과의 교유 기사 또한 상당히 풍부한 편이어서, 18세기 전반 한중 문인의 교유의 양상을 고찰함에 있어 적절한 텍스트로 생각된다.
김창업이 교류한 중국 문인으로는 馬維屛·李元英·趙華·楊澄 등이 있다. 馬維屛은 화훼에 관심이 많던 김창업에게 水仙花를 선물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김창업은 북경 시장에서 수선화를 구입하여 귀국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 조선 땅에 들어온 최초의것으로 여겨지며, 이후 수선화는 선비들의 각별한 애호를 받아 수선화를 노래한 시가성행하게 된다. 李元英·趙華·楊澄과 김창업은 시문으로 교류하였는데, 이 중 양징과 가장 깊이 있게 사귀었다. 양징은 자신의 문집을 김창업에게 보내 서문을 부탁하였으며, 김창업은 형제들의 시를 모은 『金氏聯芳集』의 평과 서문을 요청하였다. 이를 통해 김창업 형제의 시가 중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기지가 교류한 중국 문인으로는 陳法·趙華·楊澄 등이 있다. 陳法은 북경으로 가면서 지나는 노정마다 사귈만한 중국 문인을 수소문하여 얻은 새로운 인물이고, 조화와 양징은 김창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인물들이다. 이기지는 진법과 다양한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으며, 이를 통해 간행된 지 얼마 안 된 『杜詩詳註』를 구입할 수 있었다. 아울러 진법에게 『挹翠軒集』을 보내주며 詩學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이기지는 양징에게 『本草綱目』에 실린 도상을 채색 세밀화로 그릴만한 화가를 추천받고자 노력하였다. 이기지가 『본초강목』의 채색 세밀화를 그려가고자 애쓴 것은 각종 동식물을 사실적이며 다각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장기와 골절까지 그려놓은 서양화집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이기지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철저하게 탐구하는 서양의 학문 자세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였음을 말해준다.
This article is based on Yeonhangilgi(燕行日記) and Ilamyeongi(一庵燕記) of Kim chang-up(金昌業) and Lee gi-ji(李器之), which looked at the aspects of the correspondence between Korean and Chinese literati in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The chronicle of the two is the most outstanding of the series of the period, and the articles of their association with Chinese literati are also quite abundant, which is thought to be the appropriate text in examining the aspects of the Korean-Chinese literary circle in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Among the Chinese literati who Kim Chang-up interacted are Lee Won Yeong(李元英), Jo Hwa(趙華), Yang Jing(楊澄) and Ma Yu Beong(馬維屛). Kim Chang-up, who was very interested in flowers, was given a gift, and Kim Chang-up bought daffodils(水仙花) at the Beijing market and returned home. This is believed to be the first time to enter the daffodil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after that, the daffodils will be given special favor by scholars and the poetry of singing daffodils will prevail. Lee Won Yeong(李元英), Jo Hwa(趙華), Yang Jing(楊澄) and Kim Chang-up exchanged poems, and Kim Chang-up had the most in-depth relationship with Yang Jing. Yang Jing sent his collection of works to Kim Chang-up to ask for a preface, and Kim Chang-up asked for the review and preface of Kimssiyeonbangjip(金氏聯芳集) that is a collection of poems by his brothers. This made the poetry of the Kim Chang-up brothers widely known in China.
Among the Chinese literati, Lee gi-ji exchanged are Jin Bub(陳法), Jo Hwa(趙華), Yang Jing(楊澄). Lee Ki-ji made a new friend with Jin Bub on the way to Beijing, while Jo Hwa and Yang Jing are figures he had already known through Kim Chang-up. Lee Ki-ji had in-depth conversations about the truth and various topics with Jin Bub that enabled him to purchase a new edition of Dusisangju(杜詩詳註) published shortly. He also sent a Epchiheonjip(挹翠軒集) to Jin Bub and had a deep discussion about the poetics(詩學). Lee Kee-ji tried to get Yang Jing's recommendation for an artist who could paint the drawings in Bonchogangmok(本草綱目). Lee Ki-ji's efforts to draw detailed painting appear could be due to the influence of Western paintings depicting various animals and plants in realistic and diverse detail, as well as organs and fractures. This indicates that Lee Ki-ji positively embraced the Western academic attitude of observing things closely and thoroug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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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382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64-2019
  • :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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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학으로 시대의 경계를 횡단하다 : ― 이태규·리승기·박철재의 행로

저자 : 金根培 ( Kim Geun-ba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3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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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선구적 과학자 3인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만나게 되는 경계를 살피려고 한다. 핵심 주체로 등장하는 이태규, 리승기, 박철재는 일제강점기에는 드물게 제국대학에서 과학 및 공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연구성과까지 거둔 출중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과학 동지로 격변기 역사의 한 가운데로 등장하며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현재 3인 과학자에 대한 이해는 매우 대조적이다. 한국을 떠난 이태규와 리승기는 남과 북에서 영웅 과학자로 여겨지나 자신의 터전을 힘겹게 지킨 박철재는 완전히 잊혀 있다. 남북 분단과 국가적 수준과 같은 시대상황이 이들의 이해에 투영되어 얼룩져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의 행로는 달랐으나 그 과학적 궤적은 시계열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 갈라서 있는 세 과학자의 해후와 재인식이 시급히 요구된다.

2비무장지대 생태조사의 의의와 전망

저자 : 文晩龍 ( Moon Man-yo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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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유산 DMZ는 1960년대 중반 첫 생태조사가 추진되면서 야생동식물의 보고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남한 생물학자들은 남북 공동으로 DMZ 생태조사 실시를 제안했으며, 이후 DMZ를 보존하거나 평화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구상들이 제시되었다. 그 과정에서 DMZ 생태조사는 특별한 이벤트에서 일상적인 국토관리로 변모했다. 하지만 북한은 DMZ를 남북 분열의 상징이자 속히 없애야 될 유산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남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DMZ가 갖는 다양한 가치를 북한에 인식시켜야 하고, 서해의 평화수역 문제를 함께 풀어갈 필요가 있다. 매설된 수많은 지뢰를 생각할 때 DMZ는 생태환경 보전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평화적 활용방안으로 여겨지며, 이를 위해서 동식물을 매개로 한 공동 사업을 꾸준히 해나가면서 남북한 사이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군사적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DMZ를 생태·평화적 관점에서 주목받는 대상으로 만든 것은 그 곳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들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목, 철원(鐵原) : ― 물길은 뚫려야 한다!

저자 : 鄭勝振 ( Chung Seung-j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5-8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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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는 鐵原은 일찍이 그 지정학적 중요성을 간파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京元線이 부설된 교통의 요지이다. 경원선은 조선후기 이래 전통 교역로인 三防路(추가령 구조곡)를 따라 철원평야 일대를 남북으로 관통했던 것인데, 당시 개항장인 元山을 경유해 일본 '內地'에 이르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철원 현지에는 철의 삼각지, 백마고지, 피의 능선 등 한국전쟁 때부터 익히 알려진 격전지가 DMZ 일대에 펼쳐져 있는데, 지금도 남북한 군사전력의 상당량이 경원선의 철도 라인을 따라 집중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엄중한 '휴전'상태에서 철원의 역사문화 및 자연 유산을 활용한 미래 '평화신도시'의 조성은,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 양측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 글은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분단의 역사현장인 鐵原에서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 철원에서 막힌 철길과 물길을 뚫어내는 것이야말로 남북간 평화공존, 교류·소통의 커다란 '물꼬'를 트는 작업이지 않을까.

4북선(北鮮)의 기억 : ― 식민에서 분단까지, 공간감각의 표상들

저자 : 李庚燉 ( Lee Kyeong-d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9-12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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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팔선 분단으로 북한은 텅 빈 공간, 아토피아가 되었다. 남쪽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은 감각할 수도 인식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공간 아닌 공간이다. 빈 공간은 이데올로기가 채웠다. 그러므로 아토피아가 된 북한을 재공간화할 수 있는 실마리는 근대 이후, 분단 이전의 '북선'에 있다.
식민지시대에 처음 등장한 북선의 공간감각은 개척과 식민의 공간, 조선인의 근원적 정체성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식민권력은 북선을 시찰하고 조사했다. 제국적 규모의 조사사업으로 식민지조선에서 동원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기준으로 지역을 나누고 순위를 산정했다. 그래서 북선은 적은 인구에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그리고 광업, 산림업, 수산업 등이 유망한 낙후지역으로 표상되었다. 식민과 개척, 제국 통치자의 북선에 대한 공간감각인 것이다. 이에 비해 조선인들의 북선은 근원적 정체성의 공간으로 표상되었다. 북선은 풍성한 문화, 수려한 산천과 동의어였고, 인정과 풍속, 역사와 여론이 있는 다시 말해 '사람이 살고 있는' 근원적 정체성의 공간이었다. 식민지 조선인에게 북선은 특유의 의미와 가치를 품은 자부심과 긍지의 공간으로 표상되었다.
하지만 종전과 해방으로 식민지 근대를 양분하던 북선의 공간감각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아토피아화의 기원에는 식민 공간에서 생성된 불안과 공포가 있었다. 일본인은 물론 고향을 떠나 이주한 조선인에게도 북선은 불안과 공포였고, 안전과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회귀를 촉발했다. 그들에게 삼팔선 분단 소식은 공포 부재의 공간, 안전과 생활이 보장된 공간, 정체성의 근원적 공간 즉 고향으로의 회귀 불가능의 감각을 자극했다. 해방기 북선을 가로지르는 월경 서사가 펼쳐진 환경이다. 그러나 고향을 향한 고난의 여정 속에서 오히려 불안과 공포는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불안과 공포를 동반하는 이동은 공간감각을 최소한의 생존감각으로 축소시켰고 이 때문에 북선의 공간감각은 북선의 사람들에 집중되었다. 북선을 종단하는 동안 만났던 조선인은 동정적이고 호의적이었다. 북선은 곧 북선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었고 월경자들이 경험한 동정과 호의가 탈북선을 자극한 불안과 공포를 소멸시켰다. 조선의 공간적 총체성이 붕괴되는 순간, 또 감각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으며 실천할 수 있는 '북선'이 아토피아로 전환되는 분기의 순간, 남선을 선택한 이들에게 북선의 마지막 기억은 조선인으로서의 '북선', 사람으로서의 '북선'으로 남았다. 북선의 사람들, 여기가 '북선' 토피아의 종착지이자, '북한' 토피아의 출발점이다.

5동북으로 가는 길의 역사적 전개 : ― 경흥로(慶興路)에서 경원선(京元線)으로

저자 : 金效恩 ( Kim Hyo-e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1-15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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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서울로부터 한반도 동북부 지역인 함경도로 향하는 전통적인 길에 주목하여 조선시대 도로의 설치와 이용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조선시대의 도로에 대한 규정은 초기의 법전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서울로부터 가까워 교통량이 많음에 따라 대로·중로·소로로 구분되어 관리되었다. 대로에 해당하는 역들은 세 갈래의 길에 해당하는데, 각각 서북(의주) 방면, 동북(경흥) 방면, 남부 방면으로 볼 수 있다. 서울로부터 동북부 극점에 해당하는 경흥(서수라)으로 통하는 길은 경흥로라 하여 조선시대의 간선도로 중 제2로로서 여러 지리지에 기재되었다. 경흥로의 지선 중 삼방로라 하는 길은 경흥로와 함께 함경도의 물산이 많이 집중되는 원산으로 통하는 주요 갈래길이었다. 삼방로는 보다 짧은 거리와 추가령 구조곡이라는 철령보다 완만한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원거리 이동에 적합하여 길의 이용이 간선인 철령을 넘는 경흥로보다 잦아지게 되었다. 관방에 위협이 된다는 문제제기로 인해 삼방로의 치폐 여부를 두고 조선 정부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보다 효과적인 중앙의 관리를 위하여 길의 허통이 용인되는 방식으로 결론지어졌다. 일제 시기에 철도가 부설되면서 경흥로가 재현되는데, 경원선~함경선~도문선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경원선은 지선인 삼방로와 궤를 같이 하는데,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전통적 길인 삼방로(경원선)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량 물류 수송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게 되었다.

6삼대(三代) 기내(畿內)의 토지제도에 대한 『주례주소(周禮注疏)』의 해석

저자 : 尹錫皓 ( Yoon Suk-h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7-19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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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경전에서 전하는 王土의 운영원리는 分田과 制祿이다. 그러나 그 古法의 내용은 제한적이며, 다양한 해석의 결절점이 내재해 있다. 그로 인해 삼대 토지제도의 실상, 기내의 구조 및 통치체제와의 연관성 등의 많은 부분은 해석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鄭玄은 『周禮』와 『孟子』를 비롯한 다수의 경전을 통섭해 『周禮注』를 저술하여 주대 토지제도를 체계적으로 논정했고, 賈公彦은 疎를 통해 정현의 견해를 강화했다. 그 주요한 특징으로는 먼저 野를 횡적으로 양분하여 두 권역에 각각 6鄕-6遂-公邑과 采邑을 비정했고, 여기에 10溝法과 井牧法[井地]이라는 상이한 토지구획이 시행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기내를 관료제에 기초한 천자의 직접지배지와 采邑主의 직접지배지로 양분했는데, 그 권역은 각각 10구법지대와 정목법지대에 일치했다. 아울러 고전을 통섭하되, 기내에는 『周禮』 <載師>와 『司馬法』의 규정을, 기외의 봉국에는 『시경』·『맹자』·『논어』·『춘추좌씨전』의 경문을 각각 적용하여 해당 지역의 토지제도를 논증했다. 정현의 삼대 토지제도론은 賈公彦의 『周禮疎』를 통해 강화되었다. 특히 賈公彦은 기내에서의 封建을 인정했는데, 기내 채읍의 토지제도를 『맹자』의 경문을 근거로 재해석한 것 역시 그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周禮注疏』가 송대에 13경 주소의 지위를 얻게 되면서, 삼대 토지제도와 기내 통치체제에 대한 그 독법도 후대의 주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특히 『주례주소』는 采邑을 封國으로 규정하여, 分田과 制祿의 원리를 기내봉건과 긴밀히 결합시켰다. 이는 후대의 경세학에서 井田과 封建을 표리적 관계로 인식하게 되는 경학사적 토대로 작용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7『조당집(祖堂集)』 론난(論難) 여지(餘地)가 있는 어구(語句) 7사례

저자 : 朴英綠 ( Park Young-rok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7-22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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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 특히 『祖堂集』은 漢語史 연구에서 晩唐·五代 시기의 早期白話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禪語錄이 난해하지만, 특히 『祖堂集』은 현재 陜川 海印寺의 高麗大藏經本이 唯一本이므로 磨耗된 글자, 의심스러운 語句 등에 대해 비교할 대상이 많지 않아 內容 外的으로도 讀解에 어려운 점이 많다. 이글은 『祖堂集』에 대한 기존 校勘書, 飜譯書 및 각종 道具書의 설명 중 妥當性이 疑心스러운 事例들을 점검한 것인데, 다만 분량 관계상 대체로 『祖堂集』의 권5까지가 주요대상이며, 그 이후는 후속 작업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獲貧女之金珠”에서 '貪女'가 아니라 '貧女'가 올바른 표기이다. (2) “我法至六代陵遲傳法之人”에서 '陵遲'는 앞으로 발생할 현상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당부'이다. (3) “況吾未能變易? 分段之報, 必然之至, 當有所在耳”에서 '變易'과 '分段'은 서로 수준이 다른 두 종류의 生死이다. (4) 달마화상 條에 수록된 반야다라의 讖言偈 중 ①“白寶初平平”의 '初平平'은 승찬대사가 전법 초기에 廢佛사태를 만나 왕성한 활약을 하지 못하였음, ② “草若除其首”는 글자수수께끼로서 '十'字를 의미한다. (5) “可笑奇”에서 '可笑'는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부사로서 전체적 의미는 “대단히 기이하다, 대단히 뛰어나다”이다. (6) “撥草瞻風”에 대한 기존 해석은 대체로 상징적 의미의 분석에 편향되어 있으나 이것은 구체적 행위인 “행각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8리자연(李子淵)의 북송사행고(北宋使行考) ― 『파한집(破閑集)』 수록 감로사(甘露寺) 시문을 중심으로

저자 : 鄭墡謨 ( Jung Sun-mo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5-25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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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인로의 『破閑集』에 수록된 이자연(1002~1061)의 북송 사행과 甘露寺 창건에 관한 일화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자 했다. 먼저 감로사 창건에 관한 일화가 권근의 「감로사중창기」 및 『동국여지승람』에 그대로 전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파한집』에 수록된 이자연의 북송 사행이 후대 지식인들에게 역사적 사실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논증했다. 한편 당시 북송에서는 慶曆 6년(1046), 비밀리 고려측에 조공사절 파견 의향을 타진했으며 경력 8년(1048), 고려가 사신을 파견하여 병법서에 관해 문의해오자 구양수가 이에 회답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본고는 이러한 중국측의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고려가 미묘한 국제정세 속에서 문종의 즉위를 알리고 북송과의 국교 재개를 모색하기 위해 이자연 일행의 사절단을 북송에 파견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때 사절단이 중국 강남 지역의 운하를 이용하는 '南路'를 택하면서 潤州의 감로사를 방문한 것으로 보았다.

9김창업(金昌業)·리기지(李器之)의 중국 문인 교유 양상과 특징

저자 : 申翼澈 ( Shin Ik-cheol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3-28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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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金昌業의 『燕行日記』와 李器之의 『一庵燕記』를 대상으로 18세기 전반 한중 문인의 교유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두 사람의 연행록은 이 시기의 연행록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중국 문인과의 교유 기사 또한 상당히 풍부한 편이어서, 18세기 전반 한중 문인의 교유의 양상을 고찰함에 있어 적절한 텍스트로 생각된다.
김창업이 교류한 중국 문인으로는 馬維屛·李元英·趙華·楊澄 등이 있다. 馬維屛은 화훼에 관심이 많던 김창업에게 水仙花를 선물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김창업은 북경 시장에서 수선화를 구입하여 귀국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 조선 땅에 들어온 최초의것으로 여겨지며, 이후 수선화는 선비들의 각별한 애호를 받아 수선화를 노래한 시가성행하게 된다. 李元英·趙華·楊澄과 김창업은 시문으로 교류하였는데, 이 중 양징과 가장 깊이 있게 사귀었다. 양징은 자신의 문집을 김창업에게 보내 서문을 부탁하였으며, 김창업은 형제들의 시를 모은 『金氏聯芳集』의 평과 서문을 요청하였다. 이를 통해 김창업 형제의 시가 중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기지가 교류한 중국 문인으로는 陳法·趙華·楊澄 등이 있다. 陳法은 북경으로 가면서 지나는 노정마다 사귈만한 중국 문인을 수소문하여 얻은 새로운 인물이고, 조화와 양징은 김창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인물들이다. 이기지는 진법과 다양한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으며, 이를 통해 간행된 지 얼마 안 된 『杜詩詳註』를 구입할 수 있었다. 아울러 진법에게 『挹翠軒集』을 보내주며 詩學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이기지는 양징에게 『本草綱目』에 실린 도상을 채색 세밀화로 그릴만한 화가를 추천받고자 노력하였다. 이기지가 『본초강목』의 채색 세밀화를 그려가고자 애쓴 것은 각종 동식물을 사실적이며 다각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장기와 골절까지 그려놓은 서양화집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이기지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철저하게 탐구하는 서양의 학문 자세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였음을 말해준다.

10쓰시마 역지통신(易地通信) 교섭과 조선어통사(朝鮮語通詞)의 한글문서

저자 : 許芝銀 ( Her Ji-e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0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87-31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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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시기 왜관은 조·일간의 '경계와 접촉의 공간'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있었다. 왜관에서 근무했던 쓰시마번 사람들 가운데 조선어 통역관인 조선어통사는 조선과의 의사소통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이들의 일반업무는 관수와 재판, 그리고 대관의 공적인 사무를 보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집무소 역시 왜관의 東館쪽에 있는 館守家, 裁判家, 代官家 근처였다. 조선어통사의 주된 활동공간은 왜관의 동관면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왜관 북면의 사카노시타(坂ノ下)쪽으로도 자주 출입했는데, 그곳에 일본과의 의사소통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조선 역관들의 거주공간과 집무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어통사는 조선 측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조선어로 된 한글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쓰시마 역지통신 교섭과 관련하여 소개된 한글문서 가운데 조선어통사가 작성했거나 조선어통사가 작성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9통이 있다. 쓰시마 역지통신은 에도막부가 제안한 것으로 장소뿐만 아니라 국서 전달식을 비롯하여 외교의례의 전반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선에서 역지통신 제의를 받아들여 쓰시마에서 역지통신이 이루어질 때까지 24년이라는 긴 교섭기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조선과의 의사소통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조선어통사의 역할 또한 컸다. 쓰시마 역지통신 교섭 과정에서 조선어통사가 작성한 한글문서는 당시 에도막부와 쓰시마번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나아가 에도막부와 쓰시마번의 입장을 조선면에 피력하고 교섭을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조선어통사의 노고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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