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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일본학> 『계간 잔소리』와 재일코리안 2세의 자기의식 - 잡지 앙케이트란과 독자투고란을 중심으로 -

KCI등재

『계간 잔소리』와 재일코리안 2세의 자기의식 - 잡지 앙케이트란과 독자투고란을 중심으로 -

Kikan Jansori and Self-Awareness of Second Generation Koreans in Japan: Focused on Magazine Questionnaires and Reader Submissions

이한정 ( Lee Han-jung )
  •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 : 일본학 4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5월
  • : 111-135(25pages)

DOI


목차

1. 서론
2. 1세와 다른 2세 우리들
3. 재일 2세의 생활과 조국
4. 유산과 루트(뿌리-길)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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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79년에 창간되어 1981년까지 재일코리안 2세들에 의해 일본어로 발행된 『계간 잔소리』를 통해 재일코리안 2세들이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는지를 고찰했다.
잡지의 앙케이트 조사란과 독자투고란은 일본 각지에 살고 있는 ‘보통’의 재일 코리안 2세들이 자신의 ‘민족’과 ‘조국’을 일본의 실생활 경험 속에서 새롭게 의식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코리안 2세들이 증가한다. 조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1세와 달리 2세는 ‘민족’이나 ‘조국’에 대해 1세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계간 잔소리』는 이러한 세대 차이가 온전히 2세들만의 목소리로서 분출되고 있었던 공간이었다. 이 잡지에서 ‘보통’의 2세들은 ‘일본’이라는 공간이 ‘민족’이나 ‘조국’에 못지않게 자신들의 출생지, 삶의 터전으로서 ‘뿌리(root)’라는 의식을 나타낸다. 나아가 일본은 ‘삶의 선택’과 ‘삶의 길(route)’을 열어주는 곳이었다. 또한 그들에게 ‘조선’은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유산이다. 그렇기에 두 개의 뿌리는 모두 2세들의 생활 의식 속에서 삶의 여정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This paper discusses how second generation Koreans in Japan started to regard themselves through Kikan Jansori(Quarterly Nagging), a Japanese magazine published by second generation Koreans in Japan from 1979 until 1981. The questionnaire section and reader submission section of the magazine show how ‘ordinary’ second generation Koreans living in different places of Japan gain new awareness of their ‘ethnic group’ and ‘homeland’ through their real life experience in Japan.
The number of second generation Koreans who were born and raised in Japan increased in the mid-1970s. Unlike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s who came to Japan, the second generation began to think differently about the ‘ethnic group’ and ‘homeland’ from the first generation. Kikan Jansori is a space that presented such generation gap by solely expressing voices of the second generation. In this magazine, ‘ordinary’ second generation Koreans reveal the awareness that ‘Japan,’ their birthplace and habitat, is another ‘root’ of their life as important as the ‘ethnic group’ and ‘homeland.’ Furthermore, Japan is a place that provides the ‘choice of life’ and ‘route of life’ to them. To second generation Koreans, ‘Joseon’ is a legacy that leads from the present to the future. This is why the two roots are shown in the lifestyle of the second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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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598-1134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1-2019
  • :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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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재일코리안 민족교육을 둘러싼 정치성 - 1970년대 자주민족학급의 사례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웅기 ( Kim Woongk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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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在日コリアンの民族敎育のうち、今日唯一日本の公敎育の中で殘存している民族學級が1948年以降、衰退の一途にあった狀況から1972年南北共同聲明という分斷祖國間の政治的和解をきっかけに活性化する過程を考察することで、民族敎育をめぐる政治的側面について檢證を行っている。
大阪市西成區にある長橋小學校で始まった民族學級設置を求める運動が成功した要因として、同地域の持つ特性である活發な解放敎育運動が存在していた点が擧げられる。無權利の外國人である在日コリアンによる大阪市敎育行政に對する交涉が膠着していた中、解放運動の影響下にある同和住民の交涉參加によって事態が進展したのはその具體的成果である。
一方、長橋小學校を起点とする自主型民族學級の運營に關連し、駐大阪韓國總領事館および民團が大阪市敎育當局に對して朝鮮籍民族講師の追放を求めるという壓力を行使した。これは韓國國內の政治狀況を在日コリアンに對してそのまま適用しようとした事例と理解できる。統一機運が一氣に高潮し、在日コリアンが獨自に連帶を模索したことに制限を課しただけでなく、日本社會において政治的中立性を認知されている朝鮮奬學會に對してすら疑義を提起した。しかし、こうした行爲が日本社會で明らかになることで、その影響力には限界が生じた。
韓國側の行動は、民族敎育という政治理念を超越した在日コリアン共通の利益に逆行し、韓國側の正當性を低下させる結果を招いた。その一方で、民族學級を守った總連側が相對的に民族敎育運動における權威を獲得する原因ともなった。しかしながら、この一連の運動を通して、敎育現場では今日に至るまで分斷祖國雙方の不介入、政治的中立という基調が維持されることとなったのである。

2'문세광'이라는 소문 - 재일조선인 문학에 재현되는 양상을 중심으로 -

저자 : 박광현 ( Park Kwanghyo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5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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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박정희저격사건'의 범인 '문세광'이 재일조선인문학에서 어떻게 표상되었는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재일한국인문학에서 '박정희저격사건'은 비교적 일찍이 다뤄졌다. 이회성의 장편소설 『금단의 땅(禁じられた土地一見果てぬ夢)』 (1979)이 그 중 하나이다. 이회성은 1969년부터 1975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후 이 사건은 10여년이 지나서 원수일의 단편집 『이카이노 이야기(猪飼野の物語-濟州島からきた女たち-)』 (1987) 중 「희락원(喜樂苑)」에서,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나서 양석일의 장편 『여름의 불꽃(夏の炎)』 (2003)에서 재현된 바 있다.
남과 북, '민단'과 '총련' 사이의 이분법적인 정치 언어로 이야기되던 이 사건은 문세광이 사형에 처해진 이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세상에 떠도는 소식' 쯤의 소문이 되어버렸다. 그 점에 대해서는 「희락원」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문세광' 이야기가 문자 세계가 아닌 민중 언어의 '소문' 속에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양석일은 『여름의 불꽃』에서 '송의철'이라는 '괴물'로 분장한 '문세광'이 2000년대의 또 다른 소문으로서 다뤄지고 있다. 그 괴물화 과정은 소설 속 서사구조처럼 그의 자유의지를 이미 초월한 것이었다. '송의철'이라는 괴물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역사적, 심리적 상황이 만들어낸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적 존재'로서 그려내고 있다.
사건 발생 이후, 오로지 '문세광'의 자백뿐인 수사 결과, 수사망이 닿지 않는 사건의 배후, 오히려 함구에 가까운 사건의 봉인과 수사 종결, 그리고 재일한국인 사회의 이분화된 언론의 보도 행태, 문학에서의 재현, 이 모든 것은 의구심 어린 소문으로 이어졌다. 이른 바 '문세광'이라는 소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글에서는 소문으로 이어진 재일한국문학에서의 '문세광'의 서사는 오히려 역동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또 사건과 허구 사이의 해석의 전복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3'전후' 재일조선인 스포츠커뮤니티의 기원과 형성(1945-1950)

저자 : 유임하 ( Yoo Imha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8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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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전후(戰後, 일본 패전 이후)'인 1945년부터 1950년에 이르는 기간에 주목하여 재일조선인 스포츠커뮤니티의 기원과 형성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재일조선인의 스포츠활동과 스포츠커뮤니티에 대한 논의는 '재일조선인'을 다층적으로 살필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다. 이 글은 예비적 고찰로, 식민지조선의 근대스포츠 수용과 전전(戰前, 일본 패전 이전) 재일 조선유학생들의 스포츠활동과 스포츠네트워크에 주목했다. 이들 유학생은 다이쇼 시대 이후 대중화된 근대스포츠를 향유하며 식민지조선에 이를 보급 확산하는 전파자, 확산자, 지도자의 역할을 자임했다. 이들의 스포츠활동은 국내 순회경기와 일본팀과의 친선경기로 이어지면서 스포츠내셔널리즘의 성향을 띠기도 했다. 이들은 조선체육회 결성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스포츠를 국가 부재의 상태에서 민족 역량의 우위를 과시하고 일제와 경합하는 주역이었다. 전후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사회는 모국의 정세 변화에 따라 分立했다. 재일조선인 사회가 친공, 반공 진영으로 나누어지면서 스포츠단체의 조직 또한 각각 다른 방식의 스포츠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갔다. 이들은 '해방된 민족'으로서 재일조선인들의 권익 보호와 함께 모국의 스포츠 지원, 현지사회와의 친선교류에 스포츠를 활용했다.

4전후 재일코리안 청년 학생 운동의 흐름 및 성격 - 민단계 청년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

저자 : 이진원 ( Lee Jinwo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5-11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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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재일 코리안 청년 학생 운동의 발자취, 목표, 내용을 토대로 그 성격을 분석한 것이다. 먼저 재일코리안 조직을 대중조직, 청년조직으로 나누어 그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재일코리안 운동의 흐름을 파악하였다.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한반도는 국제정치 환경에 휩쓸리면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재일코리안 조직도 그 영향을 받아 남한을 지지하는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총련으로 분열되고 청년 학생 조직도 분열이 되었다.
한편 남한을 지지하는 민단계열의 청년 학생 조직은 대한민국의 정세에 영향을 받아 다시 분열되었다. 1960년 4.19 학생 혁명 성공을 계기로 조직을 정비한 청년 학생 조직은 한반도 정세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정치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권이 민단 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청년 학생 조직은 이에 반발하였다. 재일코리안 권익 옹호 운동을 철저하게 추진하려는 청년 학생 운동은 민단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었다고 판단하여 민단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민단은 한청과 한학동을 산한단체로서 취소하였다. 민단은 산하단체로 청년회와 학생회를 조직하였고 한청과 한학동은 민단과 거리를 두고 민단과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냉전이 붕괴되고 한반도갈 제도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한청과 한학동의 경직된 운동에 반발한 청년들은 1991년 한청련(후에 KEY로 개칭)을 조직하여 새로운 정세에 대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재일코리안 청년 학생 운동 조직은 민단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입장을 둘러 싸고 한청ㆍ한학동, 청년회ㆍ학생회, 한청련(KEY)으로 나뉘어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 입장에 따라 전개한 활동의 성격은 한청ㆍ한학동의 운동을 원론주의적, 청년회ㆍ학생회 운동을 실용주의적, 한청련(KEY)운동을 원칙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5『계간 잔소리』와 재일코리안 2세의 자기의식 - 잡지 앙케이트란과 독자투고란을 중심으로 -

저자 : 이한정 ( Lee Han-ju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1-13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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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79년에 창간되어 1981년까지 재일코리안 2세들에 의해 일본어로 발행된 『계간 잔소리』를 통해 재일코리안 2세들이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는지를 고찰했다.
잡지의 앙케이트 조사란과 독자투고란은 일본 각지에 살고 있는 '보통'의 재일 코리안 2세들이 자신의 '민족'과 '조국'을 일본의 실생활 경험 속에서 새롭게 의식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코리안 2세들이 증가한다. 조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1세와 달리 2세는 '민족'이나 '조국'에 대해 1세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계간 잔소리』는 이러한 세대 차이가 온전히 2세들만의 목소리로서 분출되고 있었던 공간이었다. 이 잡지에서 '보통'의 2세들은 '일본'이라는 공간이 '민족'이나 '조국'에 못지않게 자신들의 출생지, 삶의 터전으로서 '뿌리(root)'라는 의식을 나타낸다. 나아가 일본은 '삶의 선택'과 '삶의 길(route)'을 열어주는 곳이었다. 또한 그들에게 '조선'은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유산이다. 그렇기에 두 개의 뿌리는 모두 2세들의 생활 의식 속에서 삶의 여정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6교육기본법 개정과 공명당

저자 : 김봉식 ( Kim Bongsik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8-167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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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교육기본법 개정에 있어서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역할에 관해 분석한 것이다. 즉 일본 우경화의 한 요인으로서 공명당의 역할 및 의미를 탐색하였다.
1999년 10월 연립을 구성한 이래로 자민당과 공명당은 연립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자공 연립정권하에서 많은 우경화 법안들이 추진되고 성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명당의 역할은 더욱 확대되었지만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 점을 경시하였다. 즉 우경화와 관련하여 종래의 연구는 자민당에 집중되어왔다.
본 연구는 교육기본법의 개정이 자민당의 일방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명당의 당략에 의거한 양당의 합의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논증하였다. 연립구성 이후 정권에 안주한 공명당은 자민당의 정책협력에 응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권자를 의식하기는 하였지만, 공명당은 연립 이탈이 아니라 정권 유지를 선택하였다.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정책 협상에서 행사한 전략적 수단은, 정책 거부가 아니라 타이밍이었다. 당의 존립을 위해 현실주의 전략을 구사해온 공명당은 교육기본법 개정에 일조한 것이다.

7「若者ことば」의 지속성에 관한 고찰 - 『현대용어(現代用語)の기초지식(基礎知識)』을 중심으로 -

저자 : Roh Hwang- Hee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7-18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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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07년(654어휘)과 2017년(471어휘) 『現代用語の基礎知識』 「若者ことば」를 비교, 분석하여 언어추이 변화율을 조사한 것이다.
2017년 『現代用語の基礎知識』「若者ことば」를 의미 분석하고 분류화한 다음 2007년 『現代用語の基礎知識』 「若者ことば」와 수록 양상 추이를 고찰하였다.
첫째, 2017년 『現代用語の基礎知識』에 수록된 「若者ことば」 사용양상은 기분과 말버릇 관련어가 압도적으로 많은 어휘 분포도를 보였다. 이것은 일본 젊은이들의 언어가 오락과 재미의 기능과 함께 타인이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 강한 정신적으로도 복잡한 젊은이라고 하는 세대의 특징이 언어생활에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또한 사람을 평가하는 말이나 부정적인 평가의 말이 많았다. 다음으로 놀이, 행동, 인간 관찰ㆍ일상생활, 패션, 성, 식생활, 명사계 순위로 어휘 수가 출현되었다.
둘째, 2007년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많이 소멸된 어휘로는 정신상태어(142) 식생활(64) 행동(57) 오락(54)언어유희ㆍ말버릇(51) 성(50) 완곡ㆍ애매(28) 인간관찰어(24) 순서로 나타났다.
셋째, 10년이 지나도 지속성을 유지한 「若者ことば」는 정신상태어(32) 말버릇 관련어(21) 애매ㆍ미묘(12) 행동, 놀이(11) 성(10) 패션(7) 인관관찰ㆍ일상생활(6) 식생활, 명사계(4)로 도출되었다.
분석결과로, 지속성 어휘는 10년의 변화에도 자리매김하여,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었고, 또한 「若者ことば」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8사슴을 통해 본 일본의 샤머니즘 문화

저자 : 문인숙 ( Moon In-sook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9-22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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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대 신화 속에서 사슴은 신의 사자로 등장하는데, 본고에서는 왜 사슴을 신성시했는가에 대한 문화적 현상의 배경을 '샤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고찰 했다.
북방 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샤머니즘 문화권에서는 사슴이 왕권을 상징하는 예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일본에서도 사슴은 왕의 뜻을 하늘에 전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이 시시오도리를 춘 이유는 샤먼의 대리자인 사슴을 통해 풍년을 기원할 수 있다는 신앙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슴이 하늘과 지상의 샤먼을 연결하는 우주록(cosmic deer)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슴 분장을 함으로써 초자연적인 신과의 교통이 용이했고, 그것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해결이 가능했다고 본다.
또 고대 왕들의 수렵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의례적인 행사로 신성한 동물인 사슴, 그 중에서도 뿔이 나무처럼 높이 솟아 신성함이 강조된 수사슴을 잡아 왕권과 지배력을 드러내는 사상의 중심에 샤머니즘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은 사슴 울음소리를 통해 하늘과 교통해서 샤먼으로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구성원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했고, 사슴(피)은 생명을 치료, 치유해주는 영력을 가진 샤먼으로써 만물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샤먼은 사슴을 통해 하늘과 교통했고, 사슴뿔은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우주목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고대 신화와 가요에 등장하는 사슴은 대부분 수사슴이다. 수사슴의 짝이 싸리나무로 그려지는데 싸리나무는 샤머니즘 공동 문화권에서 주술문화를 형성하는 나무이고, 또 싸리나무를 먹고사는 사슴과의 유착관계를 고대 일본인은 부부관계로 투영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고분 시대에 사슴뿔을 강조한 사슴을 부장품으로 썼던 이유도, 사슴신의 전령을 받은 다케미카즈찌만이 국토양위에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이런 배경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9일본 한화사전(漢和辭典) 고형표기(古形表記)의 연구

저자 : 백혜영 ( Baek Hyeyou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1-24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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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漢和辭典은 字音表記의 字音 규정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
본고에서 검토한 古形表記의 문제점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合拗音 ヰㆍヱㆍヲ는 合口性을 상실하여 서로 혼동되다가 각각 ヰ〉イㆍヱ〉エㆍヲ〉オ로 변하며 사전에서 ヰㆍヱㆍヲ의 古形表記들은 사전 編纂 시 누락되거나 생략된 字音들이 대다수이다.
2) カ合拗音도 ヰㆍヱㆍヲ의 消滅과 동일한 과정을 겪어 왔으며 歷史的反名遣い와 字音反名遣い에서는 合拗音 표기를 유지하는데 이는 한자음으로 정착된 것으로 現代反名遣い에서는 모두 直音形으로 바뀌었다. 合口性을 반영한 표기가 출현하는 字音形은 그 古形에 모두 合口性을 표기해야 할 것이다
3) 豪韻 脣音字에 한해 -au형은 漢音에서 모두-ou형으로 정정해야 하는 것으로 大漢和는 많은 표기의 오류를 보이고 있다.
4) 舌內入聲韻尾의 표기는 吳音자료이건 漢音자료이건 -ツ와 -チ 두 가지 표기가 공존하다가 室町시대부터는 -ツ표기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ツ와 -チ라는 표기는 漢音과 吳音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5) 脣內入聲韻尾字와 脣內鼻音韻尾字는 古文獻을 통해 主母音이 어떤 형태로 출현하는지 일일이 확인해서 그 字音形을 결정해야한다.

10만주사변 후, 만주국군 창설과 역할 변화 - 일본의 만주국군 지도요령을 중심으로 -

저자 : 유지아 ( Yoo Ji-a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45-27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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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과 함께 건국한 만주국군은 국방군이 아니라 경찰적 성격을 가진 군대로 주로 만주지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반만항일투쟁 세력과의 싸움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만주국군 안에서도 혈연적, 지역적 감정에 의해 토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자,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관동군의 명령과 승인을 받아야 하는 보조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만주지역에서 소련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자 일본은 만주국군의 정군을 단행하면서 만주국군의 역할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만주사변 후, 소련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극동지역에서의 충돌을 피하면서 중일 양국에 대한 이원화 정책을 펴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만주국 승인 문제에서 영국과 미국의 눈치보다는 소련의 대응에 주목하면서 외교적으로 소련이 만주국을 승인하도록 만주와 소련관계를 호전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는 소련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서로의 상태를 관망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면적인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소련은 일중양국의 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변경했던 것이다. 그 결과 중국과 소련은 1937년 8월 21일에 중소불가침조약을 맺었고, 이로써 일본은 소련에 대한 양면 정책보다는 만주국군을 개편하여 소련과의 직접적인 충돌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이후 일본은 점차 만주국군을 정비하기 위하여 국내치안숙정 작업을 완성하고 국병법을 시행하여 만주국의 국군과 경찰을 분리했다. 또한 이 목적을 위하여 만주국군 지도를 위한 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왕도의 만주국은 신의 뜻에 따라 황도 일본이 건설ㆍ지도하고 있는 독립국으로 양국은 공존공영일체라는 원칙을 세운다. 이는 결국 왕도와 황도가 일치하기 때문에 일본군대와 만주국군은 일체라는 논리로 발전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주국군은 창군이래, 일중관계, 일소관계, 만소관계에 따라 역할이 변화하면서 일본의 황민화체제 안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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