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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 다른 노래: 3·1절의 기념과 추모

The Same Event, Other Songs: Commemoration and Remembrance of Samiljeol, Independence Movement Day

장유정 ( Eujeong Zhang ) , 신혜승 ( Hye Seung Shin )
  •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 : 이화음악논집 23권1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3월
  • : 7-46(40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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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다짐과 선동: 광복 이전 3·1절 기념 노래
Ⅲ. 기억과 추모: 광복 이후 3·1절 기념 노래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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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광복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 지를 살펴본 것이다. 광복 이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 네 곡과 광복 이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 네 곡을 합쳐서 총 8곡을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각 노래의 문학적 분석과 음악적 분석을 시도하여 종합적으로 그 의의를 살펴보고, 광복 이전 노래와 광복 이후 노래의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항일음악 330곡집』에서 가져온 광복 이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 네 곡은 《3·1절가》, 《3·1 소년가》, 《3·1 기념가 1》, 《3·1 기념가 2》이다. 이 노래들은 대체로 다짐과 선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 해방 이전이기 때문에 노래를 통한 정신무장, 각오, 선동이 필요했고 노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노랫말에서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통해 독립을 염원했다. 새로운 선율을 작곡하여 노래하기도 했지만, 비교적 좁은 음역 안에서 움직이는 반복이 많은 친숙한 찬송가라는 기존 선율을 사용함으로써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었다.
광복 이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는 『대동신문』과 『연합신문』에서 찾은 《삼일절 기념가》와 《삼일 위령가》, 『삼일만세』라는 소책자에 실려 있던 《선열추모가》와 《33인의 노래》를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광복 이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들은 주로 기념과 추모에 초점을 맞춘 가사로 이루어졌다. 특히 후대에 나온 노래일수록 추모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 선법의 사용, 변박, 다채로운 화성, 당김음, 비화성음의 세심한 처리, 반음계적 진행, 7화음의 잦은 사용, 그리고 세심한 음악적 표현 등을 통해 위령가, 추모가, 송가로서의 의미를 성취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이라는 역사적 순간은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노래로 불리며 기억되고 기념되어 왔다. 3·1운동 관련 노래들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엿볼 수 있는 복합적 사회문화 현상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한 현재, 본고에서 소개하고 정리하고 분석한 이러한 3·1절 관련 노래들을 통해 3·1절을 다시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The study looked at how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Day songs were alike and different. The four songs before Korea’s liberation from Japan’s colonial rule and the four songs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s colonial rule were analyzed. This paper looked at the significance of each song in a comprehensive way by trying to analyze each song’s literary and musical analysis. Through this, this paper tried to reveal the difference between songs before and after Korea’s liberation.
The four songs before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are Samiljeolga, Samil Sonyeonga, 3·1 Memorial Day Song 1, and 3·1 Memorial Day Song 2 . These songs generally had the meaning of determination and agitation. Since it was still before liberation, people needed to be mentally armed, determined and motivated through singing. In the words of the song, they aspired to have independence through their ‘self-fulfilling prophecy.’ Even though they wrote a new melody and sang it, the familiar hymn, which was relatively repetitive, could be easily sung and remembered by using existing melodies.
The four songs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s colonial rule were Samiljeol Memorial Song, Samil Requiem Song, Seonyeol Chumoga , and Song of the 33 People.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Day songs, which appeared after Korea’s liberation, were composed mainly of lyrics focused on commemoration and remembrance. Songs are musically characterized by the use of mood, irregular time, various chords, syncopation, chromatic progression, and the frequent use of the seventh chord.
The historical moment of March 1, 1919 has been remembered and celebrated through a variety of songs not only at home but also in many parts of the world. The songs were made to celebrate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but the songs before and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showed different aspects. Songs related to the March 1st Movement are meaningful as complex social and cultural phenomena, which gives a glimpse into the thoughts and lives of the period. Through these March 1 songs, which are introduced, arranged, and analyzed in this paper, we hope to re-enact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Day and inherit its spirit.

UCI(KEPA)

I410-ECN-0102-2019-600-001684912

간행물정보

  • : 예체능분야  > 음악
  • : KCI등재
  • :
  • : 계간
  • : 1229-769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7-2019
  • :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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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같은 사건, 다른 노래: 3·1절의 기념과 추모

저자 : 장유정 ( Eujeong Zhang ) , 신혜승 ( Hye Seung Shi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3권 1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4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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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광복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 지를 살펴본 것이다. 광복 이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 네 곡과 광복 이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 네 곡을 합쳐서 총 8곡을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각 노래의 문학적 분석과 음악적 분석을 시도하여 종합적으로 그 의의를 살펴보고, 광복 이전 노래와 광복 이후 노래의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항일음악 330곡집』에서 가져온 광복 이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 네 곡은 《3·1절가》, 《3·1 소년가》, 《3·1 기념가 1》, 《3·1 기념가 2》이다. 이 노래들은 대체로 다짐과 선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 해방 이전이기 때문에 노래를 통한 정신무장, 각오, 선동이 필요했고 노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노랫말에서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통해 독립을 염원했다. 새로운 선율을 작곡하여 노래하기도 했지만, 비교적 좁은 음역 안에서 움직이는 반복이 많은 친숙한 찬송가라는 기존 선율을 사용함으로써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었다.
광복 이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는 『대동신문』과 『연합신문』에서 찾은 《삼일절 기념가》와 《삼일 위령가》, 『삼일만세』라는 소책자에 실려 있던 《선열추모가》와 《33인의 노래》를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광복 이후에 나온 3·1절 기념 노래들은 주로 기념과 추모에 초점을 맞춘 가사로 이루어졌다. 특히 후대에 나온 노래일수록 추모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 선법의 사용, 변박, 다채로운 화성, 당김음, 비화성음의 세심한 처리, 반음계적 진행, 7화음의 잦은 사용, 그리고 세심한 음악적 표현 등을 통해 위령가, 추모가, 송가로서의 의미를 성취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이라는 역사적 순간은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노래로 불리며 기억되고 기념되어 왔다. 3·1운동 관련 노래들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엿볼 수 있는 복합적 사회문화 현상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한 현재, 본고에서 소개하고 정리하고 분석한 이러한 3·1절 관련 노래들을 통해 3·1절을 다시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공연예술의 환경변화와 예술가의 대응: 판소리의 경우를 중심으로

저자 : 유영대 ( Young-dai Yoo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3권 1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7-7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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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판소리를 중심으로 삼아, 공연예술의 현장성과 기록으로 재현되는 특성에 관하여 점검한 것이다. 공연예술은 일회적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공연예술은 관객에게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다. 거장의 작품은 음반이나 영상자료를 통하여 재현된다.
전통사회의 공연예술은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으며 단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전통사회에서 판소리는 규격화된 공연공간을 갖지 못하고, 마당이나 사랑방에서 진행되었다. 당대 공연을 직접 체험하는 대신, 생생하게 그 현장을 기록한 자료를 기반으로 삼아 그 공연현장을 재구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명창의 공연에는 그 주변을 압도하는 현장의 아우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 서서 서구식 극장을 확보하면서, 우리는 기억되거나 기록된 공연을 재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재현된 소리판은 전통사회에서 이루어졌던 공연현장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고 차별화된 것도 있었다.
기계복제시대를 거치면서 판소리를 포함한 공연예술의 다양한 장르들이 음반이나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복제된 음반을 통하여 우리는 이전 시대에 이루어졌던 공연의 규모를 확인하고, 그 특징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복제된 음반에는 원본공연예술이 가지고 있는 현장감이 없고, 따라서 아우라도 사라졌다. 음반에 아우라 까지 담아내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현장이 주는 긴밀함은 어느 경우에도 재생되지 못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공연은 현장의 예술이다. 아무리 다양한 매체가 있다 해도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보는 것에 비견할만한 것은 없다. 현장에 있어야 생동감 있는 무대를 경험하고 열광한다. 현대에 와서 판소리라는 공연예술의 환경은 변화의 폭이 대단히 크다.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통하여 원본의 핍진함과 아우라를 공연현장 밖에서도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판소리를 포함한 공연예술의 감상은 현장을 떠나서는 그 본질적 아우라가 발현되지 않는다. 공연예술의 변화된 환경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예술가인 광대의 숙명이다.

3조신신궁 예제와 이왕직아악부

저자 : 이수정 ( Su-joung Le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3권 1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9-10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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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궁내성의 통제 하에서 활동하였던 이왕직아악부가 어떻게 조선신궁 예제에 동원되어 연주하였는지 그 과정과 연주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일제는 1925년 조선신궁을 완공하고 그곳에서 쓸 의식과 음악을 새로 제정하였다. 조선신궁의 가장 큰 의식인 예제에서 필요한 음악을 제정하기 위해 1926년 궁내성악부 악부장 다케이모리시케[武井守成]과 악사 두 명이 직접 조선을 방문했다. 이들은 조선신궁 예제용 미가구라를 새로 제정하였고, 이왕직아악부의 음악을 조사하고 연주곡을 선별하여 조선신궁 예제에 쓸 음악을 결정하였다.
당시 사용된 곡목은 제례악으로 종묘제례악·문묘제례악 중 한두 곡, 연례악으로 《경록무강지곡》·《수제천》·《요천순일지곡》·《만파정식지곡》·《장춘불로지곡》·《중광지곡》·《봉황음》·《만년장환지곡》·《함녕지곡》·《우림령》·《회팔선》·《기수영창지곡》·《정상지곡》 등이다. 이 곡 중에서 7-8곡을 뽑아 연주했다. 이왕직아악부에서는 1926년부터 해마다 조선신궁에서 음악을 연주하였고, 1940년대가 되면 무악(舞樂)도 추었다. 조선신궁 예제 연주 악대의 편성은 기존의 궁중음악에서 볼 수 없는 악기 배치법과 인적구성을 도입하였다. 궁내성 악부장 일행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왕직아악부의 연주는 조선신궁 예제 의식에 직접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일반관람객을 대상으로 여흥을 위해 마련되었다. 이러한 장소에서 오락 거리의 하나로 조선의 궁중음악과 문화가 사용됨으로써 망해버린 왕실의 처지와 위상을 대중들에게 시청각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이왕직아악부와 조선신궁의 결합은 내선일체를 효과적으로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일제 식민권력이 이왕직아악부에 자행하였던 관제 음악 활동의 실체를 일부 파악할 수 있었다.

4이화여전 글리클럽 연구: 1927-1935년의 활동을 중심으로

저자 : 김은영 ( Eunyoung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3권 1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7-13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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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27-1935년 사이 이화여자전문학교(梨花女子專門學校) 글리클럽(Glee Club)에 대한 연구이다. 1886년 스크랜턴(Mary F. Scranton)에 의해 설립된 이화학당은 1925년, 문과와 음악과를 갖춘 여성 최초의 전문학교로 재정비한 후 조선민요를 조선 전통문화의 요체로 인식하면서 국악연구 및 글리클럽을 음악과의 커리큘럼으로 도입하였다.
1927년 이후, 이화여전 음악과는 선교사 메리 영과 안기영의 합작(collaboration)으로 『조선민요합창곡집』을 출판하고 레코드로도 전곡을 취입하는 등 매우 근대적인 행보를 이뤄내었다. 또한 전국순회 연주회를 통해 '조선 신여성의 민요합창'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리클럽의 음악활동은 음악계 및 기독교계 모두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음악계에서는 조선 재래음악을 오선보로 만들고 합창음악으로 편곡하여 서구화하였다는 이유로, 기독교계로부터는 미션스쿨 여학생들의 민요합창이 기생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1935년 이후 글리클럽은 서구합창음악을 재현하고 모방하는 레퍼토리로 전환하고 1930년대 말에 이르면 '국민음악의 밤'이나 '기원절봉축의 밤' 등 관주도의 음악행사에 동원되면서 제국의 충실한 국민이 되어가는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비록 10년이 채 못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시기 글리클럽의 활동은 서구음악의 일방적 수용자를 넘어 한국의 전통음악을 통해 선교지 현장을 반영하려고 시도했던 음악적 성취였다. 당시 제도권 사회의 공격과 반발은 글리클럽의 사회적 행보에 불편함과 위기의식을 느낀 가부장제 사회의 반발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기 글리클럽 프로젝트의 대중적 성공과 이에 대한 제도권 사회의 저항은 '전통사회'와 '근대사회', '전통음악'과 '서구(기독교)음악', '여성의 사회진출'과 '가부장제 규율권력의 저항' 등 갈등과 혼돈을 거듭하던 식민지 근대성의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51916년 하와이 호놀룰루 발행 『애국창가』 연구

저자 : 반혜성 ( Hyesung Ba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3권 1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82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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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16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발행된 『애국창가』를 대상으로 하여 그 편찬 배경과 체제, 그리고 수록곡의 특징을 고찰한 글이다.
『애국창가』는 노래를 통해 민족적 저항과 단결을 이루고자 한 분명한 동기를 갖고 간행된 노래집이다. 미주지역에서 만들어졌지만, 당시 북만주, 그리고 국내에서 발행된 창가집과 서로 공유하는 애국과 항일의 정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애국창가』에 수록된 77곡을 아우를 수 있는 큰 주제는 '애국심의 고취'와 '독립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국창가』의 수록곡은 창작된 곡보다는 곡조를 빌려다가 가사만을 새로 지어 만들어진 곡이 대다수를 이룬다. 차용된 곡조는 찬송가, 군가, 창가, 민요, 대중가요 등 다양한 계통을 수용하고 있지만 화성음악보다는 가창 실현의 차원에서 간결한 단선율의 노래, 즉 '창가'로 음악적 특징이 귀결되었다.
1916년 발행된 『애국창가』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애국창가'라 이름하여 분류된 창가집의 사례는 없었다. 『애국창가』에는 형식이 단순하면서도 박절감 있는 선율단락을 지닌 곡조에 민족적 감흥을 일으킬 수 있는 '애국'의 가사를 입혀서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한 '애국창가'를 탄생시켰다는 의의가 있다.

6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Op. 101》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 또는 탐정 보고서

저자 : 박유미 ( Yoomi Park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3권 1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3-21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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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의 《Op. 101》 해석을 통해 베토벤 후기의 작품양식 경향과 그 배경에 놓인 작곡가의 창작 상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이 곡은 베토벤의 창작이 잠시 위축되었던 1816년 작곡된 곡으로 그의 피아노 소나타들 가운데서 후기 양식을 여는 첫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 기존의 소나타 관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이 작품의 의미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방식의 분석의 틀에 의해서보다는 작곡가의 내면적 이해와 그것을 음악에 담는 방식을 탐구하는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의도로 기호학적 접근 방식을 취하여 작품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표현적 단서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음악 기호에 대한 이해는 서양 음악문화에 대한 깊은 지식을 요하므로 베토벤 그리고 기호학 전문가들(탐정)의 해석을 빌어 왔고 이를 토대로 작품의 의미를 재구성해 보았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3가지 키워드는 이 소나타의 전원적 성격, 환상곡적 성격, 그리고 즉흥연주자로서의 베토벤의 목소리로 요약할 수 있다. 종합 검토에서는 이들 각각의 성격에 대한 타당성이 검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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