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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해사 서술 현황과 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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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해사 서술 현황과 그 문제점

High School History Textbooks, Their Description of the History of Balahe and Its Problems

김종복 ( Kim Jong-bok )
  • : 한국고대학회
  • : 선사와 고대 5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3월
  • : 171-193(23pages)

DOI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구성상의 문제점
Ⅲ. 서술상의 문제점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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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학계에서는 당위로서의 남북국시대론과 현실로서의 통일신라론이 논쟁중이다. 물론 후자에서도 발해를 한국사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지만 신라와 발해의 위상이 같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들도 통일신라론에 의거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 신라의 성립 이후에 발해의 건국과 발전을 배치함으로써 삼국에서 남북국으로의 전개 과정을 단절시키고 발해를 부수적인 존재로 드러내는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식하는 이상, 발해사를 한국사 속에서 부각시키는 구성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행 교과서들의 또다른 문제점은 통일 신라의 영역이 대동강~원산만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나당전쟁 직후 임진강에 그쳤던 신라의 서북 경계선이 대동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발해와 당의 충돌 때문이었지만, 이에 대한 서술이 없다. 또한 발해가 대동강 이북을 포함한 요동지역을 차지했다고 서술하지만, 대동강~원산만을 경계로 서로 접한 신라와 발해가 거의 교섭이 없었던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한반도 서북부를 포함한 요동지역은 신라와 발해와 당 삼국간의 완충 지대였다.
이처럼 현행 교과서는 신라와 발해를 각각 단절적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많다. 발해사를 한국사에 포함한다는 당위론에서 벗어나 신라와 발해를 하나의 단위로서 서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Korean historical academics are arguing over the North-South States Period theory as Sollen versus the Unified Silla theory as Sein. Although the latter recognizes Balhae as part of Korean history, it does not see that Silla and Balhae have the same status. Current high school Korean history textbooks focus on the Unified Silla theory. They thus place the founding and development of Balhae after the establishment of Unified Silla, thus cutting off the process of developing into the South-North States from Three Kingdoms, and presenting Balhae as a subsidiary state. This is causing problems. So long as the history of Balhae is recognized as part of Korean history, there is a need to think seriously of how to highlight the history of Balhae in the Korean history.
Yet another problem of the current textbooks is that they define the territory of Silla as far as the border line of Daedong River to Wonsan Bay. Right after the Silla-Tang war, Silla had its northwestern border line just as far as the Imjin River, but could extend it to the Daedong River because of Balhae-Tang confrontation, which was not described in the textbooks. Further, they describe Balhae as occupying the Liaodong area including the area north of the Daedong River, but they fail to explain how Silla and Blahe, neighboring each other by the border of Daedong River to Wonsan Bay, had little diplomatic relationships. The then Liadong area, including the northwest Korean peninsula, was a buffer zone among three states of Silla, Balhae and Tang.
As such, current textbooks are significantly inclined to present a disconnected description of Silla and Balhae. There is a need to describe Silla and Balhae as a unit away from having to include the history of Balhae in the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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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계간
  • : 1229-0432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1-2019
  • :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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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학계의 종족 고고학 연구현황과 과제

저자 : 강봉원 ( Kang Bong-won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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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한국 학계 종족 고고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주민의 이주'와 '문화 전파'에 의한 설명에 반론을 제기하고 토착인들의 계기적인 진화와 발전에 초점을 맞추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종족은 홍적세 이래 거주하고 있던 구석기인들이 중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를 지나면서 독자적으로 형성 진화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과거 한국에는 '구석기시대'는 물론이고 '청동기시대'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우리나라고고학의 성장과 발전에 의해 이제 이 학설들은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적은 '1000'곳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구석기 유적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한반도에 많은 구석기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주민 구성을 논함에 있어서 '고 아시아족(Palaeo-Asiatics)' 혹은 '고 시베리아족(Palaeo-Siberians)'이남으로 이주하여 온 것이라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그동안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시베리아에서 이주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 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다른 한편, 고조선을 수립한 청동기시대 주민들은 요서나 요동지방에서 이주해 온 '예맥(濊貊)'족이라는 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럴 경우 한반도에서 발굴조사 된 신석기시대 유적에 거주하였던 주민들은 부지불식간에 간과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선진(先秦) 문헌에 예맥이 등장하며 이들이 우리 종족의 일부를 이루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그간 확인된 많은 수의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유적을 고려하면 구석기시대 이래 한반도에 거주하였던 토착주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하였을 것이라는 측면에 주의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 일부 유물과 유구에 보이는 공통적인 속성을 거론하여 종족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것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2요서 지역 등대식양익형 청동 꺾창의 등장과 전개의 역사적 의미

저자 : 이성재 ( Lee Seong-jai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5-8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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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식양익형(약칭 양익형) 청동 꺾창은 등대·피홈·양익·짧은 슴베 등이 특징인 'ㅓ자형태의 독특한 요령 지역 토착 무기이다. 양익형 꺾창은 요서 지역에서 대략 서기전 4세기전반 초·중엽에 비파형동검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연의 호내식 꺾창의 영향을 받아 출현하여 서기전 3세기 초까지 사용되었으며 뒤에 연의 호내식에 오히려 영향을 주었다.
고대 중국의 전형적인 꺾창인 호내식은 전차 위에서 전차에 탑승한 적의 목을 베거나 자르는 데 편리하도록 고안된 무기이다. 이에 반하여 양익형은 예각인 착병 각도, 비교적 짧은 자루 길이, 등대의 존재를 통해 근접 전투 시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타격 병기임을 알 수 있다. 요서 지역의 동검은 길이가 짧아 자위적 성격이 강하고, 찌르는 창은 검보다 공격 범위가 넓고 살상력이 비교적 강하지만 방어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하여 단병인 양익형은 동검보다 공격 범위를 연장할 수 있고 살상력이 강하면서도 가벼워 한 손으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손으로 방패 등의 방어구를 드는 것이 가능하다. 요컨대 요서지역 토착 세력이 기존 무기 체계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원계 호내식을 근접 보병 전투에서 살상력을 증가하는 방향으로 고안한 것이 양익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 시대 이후 북방에서 동호가 세력을 확대하고, 연과 고조선이 대립하는 등 동북아시아지역의 정치·군사적 갈등이 고조되었다. 양익형이 등장하여 유행한 시기와 지리적 범위는 위와 같은 국제 정세와 대체로 부합하고 있다. 따라서 양익형은 주변 세력과의 정치·군사적 갈등 속에서 요서 지역 토착 세력의 효율적인 살상 무기 제작에 대한 관심과 무기 제작측면에서 연산 이남 지역과의 긴밀한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요서지역에서 근접 전투 전용의 타격 무기인 양익형 꺾창이 사회적 위세와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 무기로 제작되고 고위 신분의 특수 집단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에 요서지역에 보병이 존재했으며 보병이라는 병종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낮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3부여(夫餘)의 천하 중심의식 고찰(考察)

저자 : 윤상열 ( Simon Yune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1-10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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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광개토왕릉비에도 보이듯이 천하관과 연계되는 일정한 중심의식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고구려에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주었던 부여 역시 초기적인 중심의식을 갖추었으리라고 가정할 수 있다. 부여의 건국신화인 동명전승은 여러모로 해모수신화와 비슷한데 이는 양 신화가 공통적인 전승에서 갈라져 나와 각각 중국과 국내전승의 형태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즉, 동명과 해모수는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의 발생은 국내전승에서 중국 측 사료에 정착할 때 원래 신화의 신성성을 제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부여시조의 원래 신화 형태는 해모수 신화의 내용대로 하늘의 혈통을 받은 지상 최고의 중심존재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부여의 지배구조를 통해서는 강력한 왕권이 존재했고 비록 고조선처럼 분봉적 요소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출도'의 예에서 보이듯이 지방세력들도 일정한 권력분점을 바탕으로 왕권으로 집약되는 특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부여는 고조선 멸망이후의 세력공백을 이용해 고조선의 '동방세계' 상당부분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놓았고, 따라서 부여가 동방세계를 자신을 중심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의식한 중국 측 기록에는 이러한 부여 帝王의 위상이 '天子'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여의 건국신화지배구조대외관계를 검토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부여의 중심의식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4세종시(世宗市) 백제(百濟) 운주산성(雲住山城)의 축조(築造)와 운용(運用)

저자 : 정운용 ( Jung Woon-yong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5-13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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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포함하여, 세종시를 둘러싼 천안 목천이나 청주 문의 등은 土質이 좋은 곡창이다. 또 목천은 전근대사회에서 전략 자원이라 할 수 있는 鐵과 함께 牛馬가 많이 산출되던 곳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전의 지역의 토산으로 鐵을 언급하면서 鐵場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즉 전의 전동 지역은, 주변의 곡창과 함께, 철 소 말 등 생산과 군사 전략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아울러 전의 전동 지역은 공주 부여와 교통로 작전선 상에서 직접 연결되는 곳이다. 이러한 점이 운주산성의 입지와 축조 운용 문제를 검토할 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 여러 地理志를 검토한 결과, 조선 중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이 편찬될 당시 지금의 雲住山은 高山으로, 雲住山城은 高山山城으로 명명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의 여지도서 에서는 고산이 雲注山으로, 고산산성이 雲注山城으로 개칭되었다. 여지도서 의 雲注山雲注山城이 지금의 雲住山雲住山城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중엽에 편찬된 대동지지 는 지금의 금성산을 운주산으로, 지금의 李城과 金伊城(金城山城)을 각각 운주산북성과 운주산남성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아마 전의 전동 지역 현지에서는 당시까지 여전히 금성산을 운주산으로 관념하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운주산성은 일부 조사된 성벽의 축조 방식에 의해 그 축조 국가를 확정하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운주산성 출토 백제 토기편이나 기와편에 주목하였다. 특히 일정한 크기의 성돌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이루어진 축성은 백제 중앙의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 內城수습 백제 기와편에 주목하여 운주산성의 축조는 백제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아울러 삼국사기를 참고하여 운주산성은 백제 무왕 때인 630년을 전후한 시기에 백제가 신라나 고구려의 침공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로 축성한 것이라 추정하였다.
즉, 운주산성은 백제 무왕 때 웅진에 대한 방어를 강화함으로써 사비 도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군사적 측면에서 축조된 것이라 여겨진다. 이때 높은 산에 입지한 운주산성은 공주 부여 지역으로 진군하고자 하는 신라나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에 대하여 대규모 산성의 존재를 과시함으로써 적의 예봉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백제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 본다. 또 운주산성의 내성에는, 지금의 西門과 연관하여, 산성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부 건물이 입지했을 것이라 추정해 보았다.

5초급중학교 중국역사 교과서(2016년 판)의 한국고대사 서술 내용과 특징 -구판(2014년)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저자 : 양승훈 ( Yang Seung-hun ) , 박현숙 ( Park Hyun-sook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1-16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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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교육은 문화대혁명 이후 기존의 계급투쟁 중심에서 벗어나 애국주의에 기초한 민족통합 기조 강화로 변화하였다. 이는 역사교과서에서의 자국사 중심 서술로 구현되었으며, 1990년대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정립과 함께 더욱 체계화되었다. 동북공정 등 정부 주도의 역사공정은 외연 확장을 통한 자국사 중심의 역사 재해석의 정점이었고, 그 결과물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2016년에 새로이 간행된 『의무교육교과서 중국역사』는 10년 만의 개정판으로서, 교과서 내용 역시 민족통합 논리와 자국사 중심 논리가 한층 구체적이고 체계화되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2014년 구판 교과서와의 비교 대조를 통해, 2016년 신판 교과서의 한국고대사관련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신판 교과서는 정치사 위주의 편년식 서술에 스토리텔링 요소를 가미하여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소수민족에 대해 우수한 중원 문명과 漢族문명의 영향을 받아 漢化되어, 오늘날의 '한 가족'을 이루었다는 논리를 한층 직접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민족통합 기조의 강화를 엿볼 수 있다.
한국사 서술은 1990년대 이후 단편적 나열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그 비중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주요한 소재로 다루어지던 당-신라 관계마저 2016년 판 교과서에서는 온전히 제외되었다. 인접 국가로서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관계를 유지했던 한국사를 정면으로 다루던 부분은 모두 삭제되었으며, 피동적인 교류대상으로 언급되는데 그치고 있다. 한편 본문에 첨부된 지도 자료에서는 전국시대부터 한반도 지역이 중국의 영역으로 표기되고 있다. 왜곡된 변경 인식과 역사 서술의 축소는 학습자로 하여금 한국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6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해사 서술 현황과 그 문제점

저자 : 김종복 ( Kim Jong-bok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1-19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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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학계에서는 당위로서의 남북국시대론과 현실로서의 통일신라론이 논쟁중이다. 물론 후자에서도 발해를 한국사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지만 신라와 발해의 위상이 같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들도 통일신라론에 의거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 신라의 성립 이후에 발해의 건국과 발전을 배치함으로써 삼국에서 남북국으로의 전개 과정을 단절시키고 발해를 부수적인 존재로 드러내는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식하는 이상, 발해사를 한국사 속에서 부각시키는 구성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행 교과서들의 또다른 문제점은 통일 신라의 영역이 대동강~원산만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나당전쟁 직후 임진강에 그쳤던 신라의 서북 경계선이 대동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발해와 당의 충돌 때문이었지만, 이에 대한 서술이 없다. 또한 발해가 대동강 이북을 포함한 요동지역을 차지했다고 서술하지만, 대동강~원산만을 경계로 서로 접한 신라와 발해가 거의 교섭이 없었던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한반도 서북부를 포함한 요동지역은 신라와 발해와 당 삼국간의 완충 지대였다.
이처럼 현행 교과서는 신라와 발해를 각각 단절적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많다. 발해사를 한국사에 포함한다는 당위론에서 벗어나 신라와 발해를 하나의 단위로서 서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7『한국사』 교과서의 민족주의적 역사서술 분석 -고대사 부분의 서술내용을 중심으로-

저자 : 정동준 ( Jeong Dong-jun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간행물 : 선사와 고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5-22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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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2009 교육과정에 의거한 2014년판 8종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검토하여 고대사 부분의 민족주의적 역사서술을 분석하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8종 교과서 공통의 지적사항으로는 사실관계의 오류, 균형이 잡히지 않은 서술, 최신 성과의 누락 또는 미반영을 들 수 있었다. 사실관계의 오류로는 노비의 수공업 생산, 장보고의 사망연대, 균형이 잡히지 않은 서술로는 한민족의 형성, 백제의 역사 편찬, 발해 유민의 고려 귀부, 최신 성과의 누락 또는 미반영으로는 고대국가, 백제의 멸망 원인, 아프라시압벽화의 고구려 사신 등과 관련된 일련의 서술을 들 수 있었다. 이들 서술 중 상당수는 국정교과서 국사 의 서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고, 일부는 심지어 국정교과서 국사 보다 후퇴한 측면도 보였다.
민족주의적 서술로는 단일민족 형성과정의 강조, 연대 끌어올리기, 영역의 과장, 주변국가에 대한 잘못된 정보 등을 들 수 있었다. 단일민족 형성과정의 강조는 삼국통일과 민족형성의 문제, 연대 끌어올리기는 철제 농기구의 사용 시기, 고이왕대 정책들 중 6좌평의 설치, 영역의 과장은 고조선의 영역, 주변 국가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7세기의 십자형 외교, 나당전쟁의 종료과정 등과 관련된 일련의 서술을 들 수 있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서술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연구성과가 충실히 반영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민족주의적 관점에 따라 자국 중심으로 일면적인 서술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왜곡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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