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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의 도상과 배치

A Study on Iconography and Lay out of Chosa-Hall's Mural paintings in Pusok Temple

박은경 ( Park Eun-kyung )
  •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 석당논총 73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3월
  • : 85-101(17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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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부석사 조사당 벽화의 도상 재검토
Ⅲ. 부석사 조사당 벽화의 배치 문제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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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 장엄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채색이나 그림으로 불전의 안팎을 장식하는 것이다. 이에 수많은 벽화와 단청이 전국 사찰 곳곳에 존재하지만, 대부분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그 이유는 특히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등과 같은 전란으로 인해 사찰 건축이 피해를 많이 입었으며, 이에 따른 벽화도 불타고 소실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찰의 목조건물을 해체하고 중수·보수되는 과정에서 벽체가 교체되면서 벽화가 유실되거나 혹은 벽화가 덧칠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후기에 제작된 영주 부석사 조사당의 범·제석천 및 사천왕 벽화는 현존하는 사찰벽화 가운데 최고의 사례이자, 고려시대 유일한 불교도상 벽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매우 귀중한 벽화자산이다.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화엄십찰(華嚴十刹)로도 알려진 유서깊은 명찰로, 영주시를 지나 봉황산 중턱에 둥지를 틀고 있다. 부석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지난 해 2018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이다. 사찰의 경내 주불전인 무량수전을 지나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조사당 건물이 자리한다.
지금까지 부석사 조사당 벽화에 대해서는 부석사 및 조사당 수리보고서 등에서 언급되어 왔고, 제작기법이나 사천왕의 명칭 및 도상과 양식 등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기존의 견해와는 달리, 조사당 벽화의 도상을 재검토하고, 그 배치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의 도상과 배치에 관해 기존에 명명되고 있는 존상명에 대한 재검토와 더불어 불교미술의 방위관에 착안하여 배치 문제를 살펴보았다. 고려 및 조선시대 사천왕상 배치형식이 작품에 따라 달라지는 원인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기준이 되는 향방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적어도 통일신라 석굴암이나 고려시대 불화는 동향법(東向法)이 적용된 사례라는 점이다.
그런데 부석사 조사당은 본존이 남쪽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의 남향법(南向法)에 입각한 배치이다. 이 남향법은 조선시대에 보편적으로 많이 보이는 향법이나, 적어도 고려시대 부석사 조사당을 통해 남향법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이 주목 시 된다. 본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사당 사천왕벽화의 서방의 용 모티브의 등장이나 남향법 배치 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원리에 의해 향법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조사당 벽화 도상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The most representative way of decorating Buddhist halls is to adorn inside and outside of the buildings with colorings or paintings. Although numerous mural paintings and dancheong- a traditional multi-colored paintwork on wooden buildings- are found in Buddhist buildings throughout the country, most of them were painted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uddhist temples were damaged and mural paintings were also burnt and destroyed by the invasion of Mongo in the Goryeo dynasty an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addition, many mural paintings were either lost or repainted according to the replacement of their walls during the process of dismantling and repairing the temples' wooden buildings. In this sense, the Pusok temple's mural paintings of Brahma, Indra Sakra and the Four Devas in the late Goryeo dynasty are invaluable heritages in that they are not only the best examples of existing mural paintings but also the only examples of Buddhist mural paintings of the Goryeo dynasty.
Pusok temple, founded in the 16th years of King Munmu(676) by the Buddhist monk Uisang, is a historically distinguished Buddhist temple and also known as one of ten Avatamska temples. It is a branch temple of Goun temple, the 16th parish of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This temple has nestled in the middle of Bonghwang mountain after passing through Yongju city. Moreover, Pusok temple is currently a UNESCO World Heritage Sites under the name of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since June 2018. Passing through the main building of Pusok temple-Muryangsujeon, the Chosa-Hall is located a little above.
Heretofore, previous researches on Chosa hall's mural paintings of Pusok temple have been mentioned in the repairing reports on Pusok temple and Chosa hall. In addition, these researches have been mainly dealt with production techniques, styles, icons and names. However, unlike the previous researches, this article focuses mainly on reviewing the icons and layout of the mural paintings of Chosa hall in Pusok temple This article attempts a new interpretation on the icons and layout of the mural paintings of Chosa hall based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existing names and traditional method of arranging direction and location on Buddhist art history. It seems that the layout of paintings are closely related to the changes of the standard direction, though there were various explanations on changing arrangements of the Four Devas in the Goryeo dynasty and the Chosun dynasty, according to each art work. At least, Seokguram in the Unified Silla and Buddhist paintings of the Goryeo dynasty are the cases which apply the eastward method.
However, paintings of Chosa hall in Pusok temple have been arranged based on the southward method in that the main Buddha status is facing south. It is important that this southward method is founded in the case of Chosa hall, Pusok temple during the Goryeo dynasty, since it was a common method of arranging temples' halls during the Joseon dynasty. In the course of this research, a new fact was founded through the appearance of the Western dragon motif and the southward arrangement of the Four Devas. Therefore, a certain rule influences on the Buddhist halls' direction and location, and this rule will be an important clue that broadens the understanding of Chosa-Hall's mural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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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3회
  • : 1738-657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7-2019
  • :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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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시대 부석사(浮石寺)의 역사 · 문화적 성격

저자 : 최영호 ( Choy Young-ho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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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고려시대 부석사의 소속 종단과 국가·사회적 역할·위상을 진단하고 부석사에서 조성된 문화유산·기록유산의 성격도 검토하였다.
부석사는 신라말기 이래 고려시대에도 화엄종 소속의 핵심적인 사원으로 의상의 華嚴一乘 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며 불교적 위상과 인적 연계망을 국가·지역적으로 확장하였다. 공민왕 7년에는 외적 침략으로 부석사의 역할과 위상이 일시적으로 위축되었다가 같은 왕 21년 이후 다시 회복되었다.
고려시대 부석사는 이러한 정체성에 걸맞는 다양한 문화·기록유산을 새롭게 조성하거나 중수하는 등 역사·문화적인 역할·위상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기도 하였다. 고려후기 진각국사 천희가 주석하였을 때 무량수전을 새로 지었으며, 본존불인 아미타불상도 고치고 새롭게 금으로 칠하는 동시에, 조사당도 건립하거나 중수하고 조사당의 벽화나 조사영정 등도 새롭게 수리하였다. 고종 때에는 고려역서로 농학 등과 관련된 吉凶逐月橫看 고려목판을 조성·보급하는 국가·사회적인 역할을 분담하였으며, 불설아미타경판 및 3본 대방광불화엄경판도 조성하는 등 목판 출판인쇄와 함께 아미타신앙·화엄교학을 널리 보급하고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이러한 조성·중수불사는 의상의 화엄일승 사상을 계승하는 의미도 반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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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세기에 조성된 국보 제46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보물 제1614호 벽화안동 봉정사 대웅전 영산회상벽화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사찰벽화이다. 이 벽화들을 대상으로 보존을 위한 과학적 조사가 진행되었고 정량적 분석을 통하여 벽체의 입도비율, 재료특성을 확인 하였다. 벽화를 지지하는 벽체에 사용된 재료와 구조는 일반적인 조선시대 사찰벽화와 동일하나 재료의 배합비율이 다른 점과 조직이 치밀하게 구성된 점이 큰 차이점이다. 이 두 사찰벽화가 600년 이상을 보전될 수 있었던 전통기술의 한 면을 발견하였고 장기적 보존을 위한 방안마련의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부석사의 조사당벽화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사당과 무량수전 해체 수리 당시 일본인들이 사당 내 벽화 6점을 건물에서 분리하였고 20세기 초, 유럽의 벽화 처리방법인 석고를 이용한 벽체 균열부위보강을 적용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진행된 벽화 보존처리는 벽화 채색면 보존을 위하여 세척 및 화면보강처리가 진행하였다. 당시의 유행하던 재료들을 적용하였는데, 처리재료인 합성수지의 과다한 농도사용과 처리기술이 미숙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처리된 벽화들은 열악한 환경에 보관되어오면서 손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봉정사의 경우, 해체 및 보존처리 이후 지속적 유지관리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두 사찰벽화의 보존을 위한 과거의 행위들을 통하여 시대적 상황의 불가피성과 부족한 인식과 노력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또한 사찰벽화의 보존은 가능한 최소한의 처리를 통한 재처리가 용이하도록 하여야 하며 지속적인 관리와 적절한 환경조성이 유지될 때 장기적인 보존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3고려불화와 조선불화에 사용된 채색 비교

저자 : 김민 ( Kim Mi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5-8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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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안료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조선말기 이전까지 불화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안료는 금, 은, 동과 염료를 포함하여 약 30여 종류가 전부다. 이것은 불화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일반회화 또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시대적인 공통 상황이다. 그럼에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화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구도나 배치로도 나타나지만, 사용하는 색재나 기법에 의해서도 자연스럽게 구축되어온 것이다
고려불화의 육색에는 금니를 빈번하게 사용하였지만, 조선불화에서는 금니를 대신하여 연백과 등황의 혼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비록 금니의 사용은 거의 사라졌지만, 장식표현에는 금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고려불화에서 청색은 석청, 녹색은 석록을 마치 고정 색처럼 사용하였으나, 조선시대불화에서는 보다 다양해져 청색에 군청, 회청이 추가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녹색에는 공작석의 석록보다 오히려 녹염동광의 석록이 더욱 빈번하게 관찰된다. 이와 같이 고려불화의 채색은 조선불화에 비하여 단순한 편이지만, 고려불화가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밀하고 치밀한 문양표현에 있다. 반면 조선불화는 고려불화에 사용된 색재 외에도 다양한 색재가 추가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혼색이나 중첩채색과 같은 표현들도 더욱 다양하게 사용 되었다. 조선불화가 고려불화에 비하여 문양의 밀도면 에서는 다소 덜하지만 휘채색과 같은 색상단계 표현들은 작품 안에서 더욱 장식적으로 사용 되었다.
고려와 조선은 시대적인 간극과, 정치적 이념, 생활 풍토 등 당시의 다양한 환경에 맞게 불교와 더불어 불화도 변천해 왔다. 비록 시대적인 차이는 보이지만 대중들에게 예배대상을 향한 존경과 장엄미를 불러일으켜 자연스럽게 종교에 귀의케 하려 했던 목적은 같았던 것으로 각 시대에 맞게 경전을 충실하게 재현하려 했던 시도들이였다.

4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의 도상과 배치

저자 : 박은경 ( Park Eun-ky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5-101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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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 장엄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채색이나 그림으로 불전의 안팎을 장식하는 것이다. 이에 수많은 벽화와 단청이 전국 사찰 곳곳에 존재하지만, 대부분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그 이유는 특히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등과 같은 전란으로 인해 사찰 건축이 피해를 많이 입었으며, 이에 따른 벽화도 불타고 소실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찰의 목조건물을 해체하고 중수·보수되는 과정에서 벽체가 교체되면서 벽화가 유실되거나 혹은 벽화가 덧칠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후기에 제작된 영주 부석사 조사당의 범·제석천 및 사천왕 벽화는 현존하는 사찰벽화 가운데 최고의 사례이자, 고려시대 유일한 불교도상 벽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매우 귀중한 벽화자산이다.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화엄십찰(華嚴十刹)로도 알려진 유서깊은 명찰로, 영주시를 지나 봉황산 중턱에 둥지를 틀고 있다. 부석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지난 해 2018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이다. 사찰의 경내 주불전인 무량수전을 지나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조사당 건물이 자리한다.
지금까지 부석사 조사당 벽화에 대해서는 부석사 및 조사당 수리보고서 등에서 언급되어 왔고, 제작기법이나 사천왕의 명칭 및 도상과 양식 등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기존의 견해와는 달리, 조사당 벽화의 도상을 재검토하고, 그 배치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의 도상과 배치에 관해 기존에 명명되고 있는 존상명에 대한 재검토와 더불어 불교미술의 방위관에 착안하여 배치 문제를 살펴보았다. 고려 및 조선시대 사천왕상 배치형식이 작품에 따라 달라지는 원인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기준이 되는 향방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적어도 통일신라 석굴암이나 고려시대 불화는 동향법(東向法)이 적용된 사례라는 점이다.
그런데 부석사 조사당은 본존이 남쪽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의 남향법(南向法)에 입각한 배치이다. 이 남향법은 조선시대에 보편적으로 많이 보이는 향법이나, 적어도 고려시대 부석사 조사당을 통해 남향법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이 주목 시 된다. 본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사당 사천왕벽화의 서방의 용 모티브의 등장이나 남향법 배치 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원리에 의해 향법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조사당 벽화 도상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5봉정사(鳳停寺) 대웅전(大雄殿) 영산회후불벽화(靈山會後佛壁畵) 도상의 연원과 의의

저자 : 박도화 ( Park Dow-ha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3-13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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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대웅전에는 아미타삼존불상과 아미타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1997년 1월 16일 후불탱화를 보수하기 위해 벽에서 떼어내자 건립당시 후불벽에 그려진 벽화의 전모가 드러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 벽화는 손상이 심하지만 조선초기 대웅전 중창시 후불벽화로 그려져 예배되던 불화인데 그 도상의 연원은 조선전기 15세기에 간행된 법화경변상도에서 찾아볼수 있고, 불ㆍ보살상 등 존상의 형태, 복식, 광배와 보개의 모습 및 채색 등 세부표현 양식이 조선초기 지온지(知恩寺) 관경변상도(1435)와 같은 조선 전기 불화와 매우 유사함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이 봉정사 영산회후불벽화는 중창기의 기록대로 1435년경에 제작되었음을 알수 있고 그 도상은 조선후기 영산회상도의 조형(祖型)이 된다는 점에서 막중한 의의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 전각 후불벽화로서는 가장 연대가 이르고, 작품이 귀한 조선 전기불화인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6조선후기 직지사 대웅전 벽화의 도상과 특징

저자 : 김정희 ( Kim Jung-hee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7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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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대웅전에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중에는 용을 탄 관음보살, 용을 탄 동자, 관음보살삼존도(관음보살·선재동자·용왕)처럼 다른 사찰벽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도상이 많아서 조선후기 사찰벽화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본고는 직지사 대웅전의 내부벽화를 중심으로 배치현황에 대해 살펴보고, 용을 탄 관음보살, 용을 탄 동자, 관음보살삼존도, 한산습득도 등 다른 사찰벽화와 차별성을 갖는 도상에 대해 도상적 연원과 전개과정을 고찰하였다. 이어 대웅전의 중창기록 및 문헌기록을 중심으로 벽화의 조성연대를 고찰하였다. 대웅전 내부벽화 대부분은 1713~14년에 雪岑과 性澄을 비롯한 20여명의 화공이 중심이 된 단청 불사 때 조성되었으며, 1735년의 대웅전 중창 때도 부분적으로 벽화의 조성이 이루어졌음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용을 탄 관음보살, 용을 탄 동자를 비롯한 일부 벽화는 도상과 채색 등에서 19세기 이후의 특징이 보이고 있어, 중창 이후 부분적으로 개채와 보수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직지사 대웅전의 후불벽 뒷면 벽화를 포함한 내부 벽화는 18세기 전반 사찰벽화의 제작기법과 양식 및 다양한 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선후기 사찰벽화 연구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71920년대 신경향파 문학과 아나키즘 사상 간의 상관성에 관한 논고

저자 : 이형진 ( Lee Hyeong-ji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5-218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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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나키즘이라는 당대의 사상적 지반을 통해 신경향파 문학의 탄생, 지양, 지양의 효과 등을 논구하였다. 우선 1920년대에 확산된 민중 담론이 문학장에 침투하여 민중예술론을 형성한 경과를 살펴보았다. 민중예술론은 오스기 사카에의 아나키즘과 생명주의를 매개로 식민지 조선에 유입되었다. 민중예술론, 아나키즘, 생명주의 등은 신경향파 문학 탄생의 사상적 지반으로 작용하였다. 신경향파 문학에서 재현되는 자아의 확충과 완성, 생명력, 반역정신 등은 오스기 사카에의 민중예술론과 일치한다. 또한 아나키즘과 신경향파 문학은 카프에서 부정한 자연생장성과 반항의식, 민중의 자기표현을 문학의 강한 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카프에 의해 지양된다. 이러한 민중 중심의 담론들이 사라지면서 문학장에는 민중의 언어와 반역정신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표지화하고 민중의 지도자적 위치를 확립하려는 정치적 계몽주의의 언어만 남게 되었다. '예술의 주인은 민중'을 존재론적 근간으로 삼는 신경향파 문학과 아나키즘은 민중의 존재와 언어에 대해 변형을 요구하지 않고 민중의 존재성을 역능으로 긍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8유라시아 서부지역 인물문양 동양계 동경 검토

저자 : 이지은 ( Lee Ji-eu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9-25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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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나 거대한 유라시아의 역사적 흐름과 분리될 수 없다. 본고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유라시아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면서 세계사적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해 유라시아 서부지역 발견 인물문양 동양계 동경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 다루는 동경은 유라시아 서부지역, 즉 러시아 서부와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되었던 동경 4점으로, 형식상 금대 동자연지유희문경과 파상인물문경에 해당한다. 동자연지유희문경으로는 러시아국립스타브로폴 박물관에 소장품 1점, 우크라이나 비니츠크 크르조폴스크 발견 동경 1점이고 이 동경은 인물문형태, 복식, 화문의 형태와 배치, 여백 정도에 있어서 상당히 높은 유사도를 가지고 있다. 이와 동일한 형식에 속하는 것은 러시아 극동지역 하바로프스크, 중국 지린성과 허베이성 출토동경, 그리고 개경 등지에서 발견된 고려경이 있다. 동자연지유희문경은 문양에 따라 2분되는데, 인물상에서 역동성이 드러나는 것, 문양이 조밀한 것이 세트를 이루고, 정적이면서 여백이 많은 것이 역시 세트를 이룬다. 이 두 가지 모두 중국 허베이성 일대에서 출토되고 있고, 현재 자료의 부족으로 선후관계 및 출토상황을 알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유라시아 서부지역 파상인물문경으로는 러시아 볼고그라드 미하일로브카 발견 동경, 우크라이나 헤르손 발견 동경이 알려져 있다. 이 두 동경은 중국 허베이성, 시안, 한국 개경 출토의 것과 비교했을 때, 주문양인 인물상의 크기가 작고 안면이나 옷주름 등이 간략하며, 배경문양인 파상문은 굵고 규칙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다른 문양 생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시안, 허베이, 한국 개경 출토품과 마찬가지로 험기가 있어, 금대 동금정책이 행해졌을 시기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라시아 서부 발견 인물문경은 극동지역을 제외한 유라시아 동부지역에서는 하카시아, 미누신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와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에서 동일한 형식의 것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영역은 킵차크한국, 차가타이한국을 포함한 몽골제국의 범위에 포함되고 있다. 물론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칭기즈칸의 원정과 몽골의 서진을 직접 원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지만, 향후 자료의 축적이 이루어지면 유라시아 사람과 물질의 이동양상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9울산 영축사지 동서삼층석탑에 대한 연구

저자 : 김지현 ( Kim Ji-hyu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1-28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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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울산 영축사지 동서삼층석탑에 대한 연구로, 동서삼층석탑에 보이는 독특한 현상을 비롯하여 각 부재와 수량 및 구성을 파악하고, 이후 석탑의 기단부결구구조, 조영원리 및 사리공의 위치와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석탑의 조성시기와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상하층기단을 결구하는 방식과 동서탑의 초층탑신에 마련된 사리공의 위치, 석탑의 조영원리 등을 종합해 본 결과 석탑 조성연대는 8세기 후·말기-9세기 전기 경으로 유추되어 『三國遺事』에 기록된 사찰의 창건시기(683)와는 다른 것으로 파악되었다. 영축사지에는 귀부와 석조 불상편이 남아 있는데, 이들의 제작시기 역시 8세기 후반-9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되어 석탑의 조성시기와 일치한다. 이는 8세기 후반 경 영축사의 중창이 행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둘째, 석탑의 조영원리를 분석한 결과 영축사지 동서삼층석탑의 조영원리는 경주의 移車寺址 석탑과 동일한 조영원리를 사용하였으며, 味呑寺址 석탑과도 매우 유사한 것을 확인하였다. 8세기 후반경 경주에는 원원사지 석탑, 용명리 석탑 등을 제작하였던 조영원리가 있었고, 8세기 말기 이후 무장사지 석탑, 남산리 서석탑 등에서 사용했던 또 다른 조영원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축사지 동서탑이 경주 이거사지 석탑의 조영원리로 조성되었다는 것은 당시 이거사 혹은 이거사 석탑을 조성했던 장인집단 등과 밀접한 영향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특히 경주 이거사지 석탑과 미탄사지 석탑은 불국사 삼층석탑의 조영원리를 참조하였기 때문에 영축사지 석탑, 나아가서 영축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영축사지 동서삼층석탑의 탑재 표면에서 관찰되는 특징 즉, 우주와 탱주 등의 각진 모서리 부분을 마치 둥글게 弧形으로 처리한 모습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서 유추해 보았다. 최근 특기할 만한 이 현상을 양식적 특징으로 파악하고 백제와의 관련성을 언급한 연구가 있지만, 이는 후대에 탑이 도괴되고 난 후, 탑재에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불을 지핀 결과 그 형태가 변형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10통일신라시대 식도구 연구 - 숟가락과 의례 -

저자 : 정의도 ( Jung Eui-do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7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87-340 (5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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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은 밥상에서 국을 뜨거나 음식을 덜어 직접 입으로 넣는 도구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숟가락은 술잎의 끝이 뾰족하고 세장한 자루가 부가된 것과 술잎이 거의 원형이면서 세장한 자루가 한 세트로 사용된 형식(월지형Ⅰ식, Ⅱ 식), 술잎의 날이 둥글면서 최대 너비가 4부 보다 상위에 위치하며 너비가 상단한 자루가 부가되는 형식(분황사형), 술잎이 유엽형이면서 가는 자루가 부가되는 한우물형이 있다. 그리고 술잎이 월지형Ⅰ식과 같이 거의 원형이지만 술잎에서 이어지는 자루가 넓게 이어지는 형식(월지형Ⅰ식-a)이 있다.
각 형식의 사용시기는 월지형과 분황사형은 거의 같은 시기에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고 한우물형은 9세기 경이 되어서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월지형2식은 출토지가 안압지로 한정되어 있어 사용 계층이 극히 한정되었거나 짧은 시기에만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월지형 1식은 경주지역에서 출토 예가 적지 않고 지방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기 때문에 특정 계층의 숟가락으로 보았고 월지형 1식과 2식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에 한정된 경우이다.
지금까지 발굴조사 상황을 보면 월지형1식과 2식은 일본 정창원 소장 숟가락을 보더라도 세트로 사용되었을 것이 분명하여 늦어도 7세기 후반 경에는 제작 사용되었고 1식은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9세기 후반까지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분황사형은 월지에서도 1점이 출토되었지만 지방에서 월지형 1-a식과 같이 사용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월지형 2식이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지고 월지형 1식만 사용되거나 분황사형과 세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단언하기 어렵다.
경주지역에서 젓가락이 한 점도 출토되지 않는 것은 의문스러운 일이다. 삼국시대에도 젓가락 출토 예가 있고 일본 정창원에도 당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수저 한 세트가 소장되어 있다. 젓가락 대신 월지형 숟가락 세트를 사용하는 것이 당시의 식사 풍습이었는지 아니면 아직 출토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숟가락은 경주지역에는 월지나 우물지 등 물과 관련된 유구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월지는 구체적인 숟가락 출토 상황을 알 수 없으나 경주지역 우물에서 출토된 숟가락은 우물의 계획적인 폐기과정에서 매납한 것이 확인되었다. 신라 사람들은 우물에 용이 깃들어 있으며 나라의 시조가 태어난 곳이며 왕궁으로 상징되는 신령스런 장소로 여겼으므로 폐기에는 당연히 제사를 지냈고 제사지낸 기물을 매납하여 신령을 위무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축조된 성곽 내부에는 농성에 대비한 집수지를 조성하게 되는데 그 내부에서는 가위나 대도, 마구류가 출토되는 예가 있고 농기구도 출토되기도 하는데 그 출토 유물의 종류가 모두 월지 출토유물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집수지에서 출토되는 무기나 마구류는 그냥 흘러들어간 것이 아니라 군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제사의 결과로 투기된 것이며 숟가락이나 가위 등은 집수지 내부에 깃들여 있으면서 물을 주관하는 용에게 기우제나 풍년제를 지내면서 올린 헌물로 볼 수 있다.
또한 산지유적인 부소산유적이나 황해도 평산유적은 제사유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으로 성황사가 부소산의 정상에 있었던 곳이며 평산유적도 산성리 성황산성 내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어 모두 산천제사와 관련된 헌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숟가락은 통일신라시대에는 물론 식도구로 사용되었겠지만 풍년을 비는 용신제나 산천제에서 먹을 것을 상징하는 도구로 신에게 받쳐졌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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