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존재”라는 번역어가 서양 전통 형이상학의 근본 물음인 ‘있는 것으로서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뿐 아니라 하이데거의 근본 물음인 ‘있음의 의미(뜻하는 바)는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을 마름질하는 데 알맞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에 대한 증거로 크게 세 가지 사례가 제시 되었다. 첫째, 만일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 존재 증명’과 ‘신의 본질 해명’을 서술하기 위해 “존재”라는 번역어를 쓴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있음의 사실’로부터 ‘가짐의 상태’를 거쳐 결국 ‘있는 실체’로 잘못 넘어가기 쉽다. 둘째, 토마스의 존재론적 차이는 ‘있는 것’이 있음을 ‘나누는 갖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존재”라는 낱말은 그 자체로 이러한 ‘나누어 가짐’을 나타낼 수 없고, “하다”라는 동사의 도움을 빌려야만 분사가 될 수 있다. 셋째, 하이데거의 존재물음은 ‘있는 것의 있음’과 ‘있음의 있는 것’ 사이의 공속적 관계를 올바로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존재”라는 낱말은 이러한 관계를 담아내는 데 많은 장애 요소가 있다. 우리는 하이데거가 제시한 “sein”의 여러 보기 문장들을 우리말로 바꾸어 봄으로써 “존재”라는 번역어 대신 “있다”라는 우리말이 그 뜻과 쓰임새에서 보다 옳고 바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확신에 기초하여 우리는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 낱말인 “Sein”에 대한 우리말 번역어로 “있음”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있다”라는 낱말의 근본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 그 낱말의 어원적 의미들(가짐, 머묾, 차지함, 나타남)을 살폈고, 그 가운데 ‘나타남’이 다른 의미들에 비해 ‘가장 앞서고’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과감하게 확정했다. 우리는 이러한 확정의 올바름을 보이기 위해 “나무는 있다.”라는 글월을 분석했고, 그로써 “있다”의 근본 의미는 ‘나타남-이어나가기’임을 밝혀냈다.
In this article, I pointed out the current translated word, ‘존재(Being)’ has a limit to clarify “What does ‘being’ mean as it is?”, which is the fundamental question of western conventional metaphysics, as well as “What is the meaning of ‘Being’?”, the basic question of Martin Heidegger.
I explained this by giving three specific examples. Firstly, using the word ‘존재 (Being)’ can be dangerous because it has a possibility for us to misinterpret ‘there is something’ as ‘something possesses something’ and as ‘something substantial exists’, when we use the term ‘존재(Being)’ to demonstrate the ‘ontological argument’ and the ‘existence of God’. Secondly, in the aspect of the ontological difference of Thomas Aquinas, it is considering ‘there is something’ as ‘sharing a state of being’ that makes the differences. The term ‘존재(Being)’ itself, however, is insufficient to express such a meaning in detail so it has to be changed into a participle form by the verb ‘하다(do)’. Thirdly, when it comes to Heidegger’s question of ‘Being’, it is important to grasp the common properties between “Being of entity(Sein des Seienden)” and “Entity of Being(Seiendes des Seins)”. The term ‘존재(Being)’, however, has many limitations to be used for showing the relation clearly.
For these reasons, then, I tried to illustrate that the term ‘존재(Being)’ is more appropriate than the current term ‘existence’ so as to convey the exact meaning of ‘Sein’, a keyword of Heidegger’s philosophy. To demonstrate this, I switched several sentences presented by Heidegger, in which ‘Sein’ was used, into Korean. Through this process, I came to the conclusion that ‘being(있다)’ should play a role as a substitute for ‘existence(존재)’, the term which is now being used as the translated word of ‘Sein’.
Lastly, in order to ensure the basic meaning of ‘존재(Being)’, I explored some words such as having, remaining, occupying and appearing from the aspect of the etymological meanings. After that, I determined ‘appearing’ has the most initiative and ultimate feature of all. To verify the determination, I drew the fundamental meaning of ‘존재(Being)’ is ‘appearing and keeping connected’, from an example sentence, ‘A tree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