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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 일본군 ‘위안부’ 재현과 진정성의 곤경 - 소녀와 할머니 표상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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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재현과 진정성의 곤경 - 소녀와 할머니 표상을 중심으로 -

Problem of Representation and Authenticity for ‘Comfort Women’ of the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 Focused on the Girl and Grandmother Image -

허윤 ( Yoon Heo )
  • : 한국여성사학회
  • : 여성과 역사 2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8년 12월
  • : 131-163(33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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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위안부’ 재현의 역사: 성애화에서 소녀상까지
Ⅲ. 법정에 선 위안부와 가족화된 여성 연대
Ⅳ. 실화와 증언이라는 레토릭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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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평화의 소녀상’으로 대표되는 일본군 ‘위안부’ 표상은 2015년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박유하 사태’를 경유하여 정치적 힘을 갖는 것으로 거듭났다. 과거 대중서사물이 일본군 ‘위안부’를 성인 여성의 성애화된 신체로 재현한 것과 달리, 최근 영화들은 소녀나 할머니로 등장하여 여성 연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사화된다. 영화 <귀향>(2016), <눈길>(2017)은 여성들이 서로의 이름과 생명을 이어받는 것으로 형상화한다. <아이캔스피크>(2017)와 <허스토리>(2018)는 공론장에서 증언하는 투사로서의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형상화하며, 일본군 ‘위안부’ 재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서사의 다양화 경향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재현이 갖는 ‘진정성’의 정치이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는 ‘실화’에 근거했다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는다. 김숨의 소설 『한 명』과 『흐르는 편지』 등은 증언집과 연구서 등을 각주로 달아서 이 이야기가 ‘진짜’임을 설득한다. 대중서사물은 실화와 증언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이러한 폭력이 ‘진짜’ 있었던 일이며, 우리는 이를 기억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진짜’와 ‘실화’의 수사에서 오히려 가려지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그 재현을 둘러싼 고민들이다. 재현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리얼리즘의 전제였다. 그러나 이 명제가 일본군 ‘위안부’ 서사에서는 다시 부활하는 것은 사실상 ‘위안부’ 표상에 대한 고민을 중지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는 대중서사는 윤리적 책임과 할머니에 대한 연대에 기반하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실화’이거나 ‘증언’이면 충분히 그 텍스트의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한국문학/문화의 재현은 아직도 그 몸피가 너무나 작다.
Since 2011, the ‘Statue of Peace’ (Pyeonghwa ui sonyeosang) has represented the ‘comfort women’, victims of the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It gained symbolic power especially after the trial of Park Yuha and the controversial agreement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over the issue in 2015. In the past, ‘comfort women’ in mass culture reproduced adult female eroticism of the body. But recent films have depicted the women as girls and grandmothers, emphasizing female solidarity and agency. The films < Return > (2016) and < Snows > highlight the friendship between the women as they become grandmothers who share their names and lives. < I can speak >(2017) and < Herstory >(2018) opened a new chapter in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by depicting them as fighters, speaking up in court. Important in the various narratives is the politics of ‘authenticity’ in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The narratives remind us that the violence was 'real' based on true stories and testimonies with responsibility on our part to remember them.
But the emphasis on ‘truth’ and ‘authenticity’ creates an aesthetic problem in the definition of realism and raises ethical questions about representation. Realism presumes that it is impossible to differentiate between representation and the real. That this problem reemerges in narratives about ‘comfort women’ is connected to the lack of reflection about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It is thought that the political effect of ‘comfort women’ narratives based on true stories and testimonies are sufficient in fulfilling any ethical responsibility and solidarity toward the women. However, the representation of ‘comfort women’ in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is still too 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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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반년간
  • : 1738-6691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4-2019
  •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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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라 진성여왕의 재현과 섹슈얼리티

저자 : 김선주 ( Kim Sun-joo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2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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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여왕은 9세기 말에 살았던 과거 인물이지만 현대에도 소설, 영화, 뮤지컬과 같은 대중물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대중물에서의 끊임없는 재현은 대중들에게 진성여왕이라는 인물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대중물에서의 끊임없는 재현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대중물에서 진성여왕은 주로 섹슈얼리티만 과도하게 소비되고 있다. 진성여왕은 주로 성적인 쾌락만을 추구하거나, 혹은 한 남자를 향한 순애보를 간직한 여성의 모습으로 부각되고 있다. 반면 공적인 영역인 정치에는 무관심하거나 무능한 왕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진성여왕의 섹슈얼리티 부각은 현대 대중물에서 창작된 것이 아니다. 고려시대 『삼국사기』부터 진성여왕은 사적인 감정에만 빠져 정치를 그르치는 무능한 왕으로 묘사되었다. 왕이 되었지만 정치에 관심도 없고 무능하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진성여왕의 섹슈얼리티는 왜곡되었다. 그 배경에는 고려의 건국의 정당화와 '여성'을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하려는 고려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맞물려 있다.
조선시대에 여성은 정치적으로 무능하며 정치를 어지럽히는 존재라는 담론이 점차 강고해져 갔다. 이러한 지배 담론에서 신라 여왕의 존재는 완전히 일탈한 것이었다. 가부장적 지배 담론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여왕이라고 하는 존재의 정치적 무능을 강조될 필요가 있었다. '음란'으로 표상되는 진성여왕의 섹슈얼리티는 정치적 '무능'을 설명하는 장치였다. 현대에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소비되는 사회이다. 성의 상품화라는 전략에 극적 효과를 높이는 과정에서 현대에도 진성여왕의 섹슈얼리티는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런데 대중물에서 왜곡되어 소비되고 있는 진성여왕의 섹슈얼리티는 역사학계에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현대인들이 받아들이는 과거의 상이기도 하다. 과거의 상은 완결될 수 없으며, 역사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역사적 사건을 재평가하고 역사적 인물에 대해 새로운 상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역사상에서 부정적인 여성상들은 많았지만, 점차 새롭게 평가되거나 진취적인 여성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진성여왕은 대중물에서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재현되어 온 반면 역사학계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진성여왕은 역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서, 인물의 재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학계의 연구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여성상으로 소비만 된 것이다. 역사 대중화시대에 진성여왕 역시 역사적 담론을 통해 의미를 해석하고 재생산 될 필요가 있다.

2'드라마적 상상력'과 '역사적 상상력'의 한계에 갇힌 고려시대 여성들

저자 : 이명미 ( Lee Myung-mi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1-6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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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추태후>와 <기황후>가 주인공을 재현해내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한 가지는 기왕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두 여성의 긍정적 면모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다른 두 가지는 그들의 긍정적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구체적 방식과 관련된 것으로, 두 캐릭터가 모두 국가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강인함이 남성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재현방식은 '드라마적 상상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한계가 대중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고려시대 가족·친족제도 관련 연구성과에 힘입어, 고려시대 여성의 삶은 '남성 부럽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가족·친족제도 분야에 한정된 것으로, 여성의 삶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이해는 아니다. 정치적 영역에 있었던 여성의 삶과 관련해서도 두드러지는 활동을 보인 사례를 다룬 연구들은 있으나, 그러한 사례들이 고려시대 여성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의 어떤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 차원에서의 이해는 부족한 실정이다. 즉, 고려시대 여성의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충분하지 않은 상태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 대중물이 고려시대 여성의 삶을 밀도있게 그려내어 주인공을 '이해 가능한' 캐릭터로 재현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편, 대중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서 민족과 국가라는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그가 활동한 시기가 민족적, 국가적 갈등이 있는 시기일 경우에는 설령 개인의 삶과 행동의 동기를 이해 가능하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그 서사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가치에 반하거나 혹은 그를 배제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실패 이상의 비난에 맞닥뜨리게 된다. 민족과 국가라는 가치가 우선시되어 그에 반하는 개인들의 행보는 '이해'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 시선은 대중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넘어 한국사 연구 분야에도 존재 한다.
두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역사상의 모습 그대로 고려시대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이해 가능한' 인물로 묘사되기보다는 엄청난 왜곡을 수반하면서도 굳이 국가라는 가치를 좇아감으로써 '긍정일변도의 인물'로 재현된 데에는 위와 같은 상황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3TV 사극이 만든 또 다른 조선시대의 왕비·대비 - JTBC '인수대비'를 중심으로 -

저자 : 임혜련 ( Lim Hye-ryun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3-9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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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하여 제작되어 방송된 TV 역사 드라마, 곧 사극의 제작 현황을 알아보고, 이 중 주요 배경과 소재를 제공하였던 왕실·궁중을 배경으로 한 사극 속 왕실 여성에 주목하였다. 구체적으로 JTBC에서 방송된 '인수대비'를 통해 창작된 드라마 속 주인공과 역사 사이의 간극을 통해 TV 역사드라마가 가지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람직한 사극 제작을 고민하기 위한 연구이다.
TV 사극은 양적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제작의 대상이 되는 시대도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선시대, 왕실을 배경으로 하여 왕실의 여성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자주 제작되어왔다. 방송국 JTBC에서 제작한 '인수대비'는 사극에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 인수대비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대왕대비 정희왕후, 왕비 폐비 윤씨를 주인공으로 하여 권력에 대한 야망을 가진 인수대비, 지성은 부족하지만 후덕한 정희왕후, 미천한 출신에서 왕비가 되었다가 몰락한 폐비 윤씨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캐릭터 설정 및 드라마의 내용은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제작되었고, 결국 왕실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TV 사극은 창작물이지만 그 영향력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제작되어야 한다. 역사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고증하여서 제작하라는 것은 아니나, 그 배경과 인물은 결국 실제 우리 역사였으므로 역사와의 사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 조선시대 왕실의 여성들은 역사와 드라마 사이에서 또 다른 인물로 창작되어왔다. 사극은 역사학자들이 하기에 부족한 역사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여왔다. 그러나 어떠한 드라마라도 우리의 역사와 그 속에 활동한 인물들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만큼 좀 더 역사와의 사이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드라마가 제작되어야 할 것이다.

4역사드라마 <화정>과 역사적 상상력 - 17세기 정명공주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들 -

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 서보민 ( Suh Bomin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1-12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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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사회에서 살았던 정명공주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들은 다양하며, 역사드라마와 책과 같은 대중매체는 그 중 하나이다. 이 글은 그것을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관점에서 다룰 것이다. 드라마작가 김이영이 재현한 역사드라마 <화정>의 '드라마적 상상력'과 역사학자 신명호의 대중서『화정, 정명공주』에 재현된 '학문적 상상력'을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정명공주와 그녀의 삶에 관한 역사적 상상력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정명공주와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 두 가지 방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화정'이라는 글씨를 남긴 정명공주가 대중적으로 소비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본래 목소리는 왜 들리지 않았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역사드라마 <화정>은 드라마 <이산>과 <동이>를 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김이영 작가의 작품이다. 정명공주에 관한 역사 기록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작가는 역사적 맥락을 기본배경으로 삼아 나머지는 역사적 상상력을 활용하는, 상상적 역사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화정>은 역사드라마 가운데 퓨전사극이라는 장르에 속한다. 그것은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고, 17세기 실존인물인 왕실여성 정명공주를 21세기를 사는 한국사회의 시청자들 앞에 호출하여 그녀의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다. 2000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정치적 비중이 커지면서, 드라마 <화정>의 주인공 정명공주는 '올바른 정치를 외치는 여성'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는 세월호 참사로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근혜와 그녀의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때였다. 그리고 그것이 드라마 속 정명공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역사학자 신명호의 책 『화정, 정명공주』는 정명공주의 입장에서 학문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정명공주의 인생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정사의 기록뿐만 아니라 야사로 인식되었던 역사기록들 속에서 실제 정명공주의 삶을 그려내고, 왕실문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활용하여 17세기 왕실사람들의 낯선 행위들을 현대 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사적, 사건사적 역사서술에 치중함으로써 83년이라는 긴 인생을 산 정명공주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The Return of Martin Guere)』을 통해 16세기 프랑스 농민의 일상적 삶과 사고방식을 미시적으로 재구성한 나탈리 제이먼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과거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보다 풍부한 '창작물'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17세기를 산 왕실 여성인 정명공주의 삶에 관한 그의 '재현'은 여전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5일본군 '위안부' 재현과 진정성의 곤경 - 소녀와 할머니 표상을 중심으로 -

저자 : 허윤 ( Yoon Heo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1-16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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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평화의 소녀상'으로 대표되는 일본군 '위안부' 표상은 2015년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박유하 사태'를 경유하여 정치적 힘을 갖는 것으로 거듭났다. 과거 대중서사물이 일본군 '위안부'를 성인 여성의 성애화된 신체로 재현한 것과 달리, 최근 영화들은 소녀나 할머니로 등장하여 여성 연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사화된다. 영화 <귀향>(2016), <눈길>(2017)은 여성들이 서로의 이름과 생명을 이어받는 것으로 형상화한다. <아이캔스피크>(2017)와 <허스토리>(2018)는 공론장에서 증언하는 투사로서의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형상화하며, 일본군 '위안부' 재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서사의 다양화 경향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재현이 갖는 '진정성'의 정치이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는 '실화'에 근거했다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는다. 김숨의 소설 『한 명』과 『흐르는 편지』 등은 증언집과 연구서 등을 각주로 달아서 이 이야기가 '진짜'임을 설득한다. 대중서사물은 실화와 증언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이러한 폭력이 '진짜' 있었던 일이며, 우리는 이를 기억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진짜'와 '실화'의 수사에서 오히려 가려지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그 재현을 둘러싼 고민들이다. 재현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리얼리즘의 전제였다. 그러나 이 명제가 일본군 '위안부' 서사에서는 다시 부활하는 것은 사실상 '위안부' 표상에 대한 고민을 중지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는 대중서사는 윤리적 책임과 할머니에 대한 연대에 기반하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실화'이거나 '증언'이면 충분히 그 텍스트의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한국문학/문화의 재현은 아직도 그 몸피가 너무나 작다.

6지리산권의 합미성(合米城)·할미성(城) 성곽설화와 마고할미

저자 : 송화섭 ( Song Hwa-seop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65-211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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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에 합미성과 할미성의 집중 분포는 지리산권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적 요인과 인문지리적 환경에서 비롯하였다. 자연환경은 산간지대이지만 골짜기에 넓은 평야가 조성되어 경제적 부호(富豪)들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역사문화적 요인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운봉고원에서 국경을 두고 성곽을 많이 조성하였다. 통일신라시대 남원소경(南原小京)이 설치된 이후 남원지역에서는 문벌지족(門閥之族)들이 출현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과거급제자를 다수 배출하는 명향이었다. 또한 남원은 조선후기 민중문화 중흥기에는 고전소설의 발상지였다. 지리산권 합미성과 할미성은 남원 48방에 속해 있었으며, 명망가문과 관련이 있다.
지리산권에서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들은 라말려초기에 지방호족들이 성장하면서 재활용되었다. 고려시대 본관(本貫) 단위로 지방호족들이 행정력과 경제력을 장악하면서 대토지의 농장을 경영하였으며, 소작농에서 거둬들이는 곡물을 산성에 비축하면서 합미성이 태동하였다. 지리산권의 명망가문들은 과거급제를 통한 입신출세와 지방경제력을 유지하는데 부녀자들에게 위대한 능력의 여성상을 요구하였다.
조선후기 민중의식의 성장은 신화,전설,민담 등이 널리 확산되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명망가문에서는 마고할미 전설과 오누이힘내기 전설을 끌여들여 성쌓기내기설화를 창출하였으며, 이러한 설화를 교훈으로 위대한 능력의 여성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할미성이 태동하였다. 유교문화가 발달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아선호(男兒選好)와 남존여비(男尊女卑),삼종지도(三從之道)의 유교적 여성관은 가정살림의 온갖 짐을 떠안은 열녀열부시대를 도래시켰다. 합미성.할미성 성곽설화는 지리산권 지방토호세력이 명망가문의 위상을 유지하고 과시하는 상징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7신라 하대초기의 왕위계승과 태후의 역할

저자 : 이현주 ( Lee Hyun-ju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13-24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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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초기의 왕은 즉위 직후에 종묘제와 태자제를 통해 부계적 정통성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는 왕의 수직적 계통성을 수립하여 부계적 정통성을 천명하고, 왕위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성왕 사후에 적손인 준옹이 소성왕으로 즉위하고, 이어서 소성왕의 아들인 애장왕이 즉위하였는데, 이는 적자계승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헌덕왕이 애장왕을 시해하고 즉위하고, 흥덕왕은 헌덕왕의 동모제로서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왕위의 적자계승원리를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흥덕왕의 사후에는 왕위계승분쟁이 일어났는데, 이는 적자계승의 왕위계승원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자 발생한 것이었다.
하대초기의 왕은 모두 원성왕계이고, 이들 중 소성왕,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 민애왕은 인겸계이고, 희강왕, 신무왕, 문성왕, 헌안왕은 예영계이다. 하대초기의 왕위계승분쟁은 왕위의 정통성과 연관된 사안이었다. 왕의 부계적 정통성이 차별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모계, 즉 태후의 출신과 지위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혜충대왕(인겸)-성목태후의 자녀는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 충공이다. 헌덕왕, 흥덕왕, 충공은 동모형제(同母兄弟)의 혈연적 결연을 매개로 왕실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성목태후가 지닌 태후이자 대비로서의 위상은 인겸계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차기왕위계승권자인 태자가 부재할 경우, 왕위계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는 선왕의 부인, 즉 태후이다. 귀승랑은 헌덕왕의 왕비로, 흥덕왕 사후에 왕위계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태후였다. 즉 흥덕왕 사후에 예영계 간의 왕위계승분쟁이 야기되었던 것은 예영계인 귀승랑이 태후로서 차기 왕위계승권에 간여한 결과였다.
이처럼 하대초기는 왕위계승분쟁이 치열했던 만큼 부계 못지않게 모계 및 처계도 중요하였다. 왕위가 부자로 계승되지 않은 경우에 왕위의 정통성과 왕권의 정당성이 부족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에 왕은 즉위 직후에 그의 부모를 추봉함으로써 왕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대초기에 원성왕계 간의 왕위계승분쟁은 부계적으로 동일하므로 상대적으로 모계 및 처계의 위상이 중요해졌다. 또한 하대에 당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더욱 심화되었고, 이는 왕실여성, 특히 태후의 지위와 역할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8제국 일본의 '여공'이 된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 : 그 배경을 중심으로

저자 : 홍양희 ( Hong Yang-hee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47-28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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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시기 제국 일본의 '여공'이 된 여성들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식민지 조선 여성들이 도일하게 되는 배경을 당대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적 맥락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였다. 식민지라는 특수성 속에서 제국 일본의 노동자가 된 여성들은 민족 및 계급 뿐만 아니라 젠더 문제가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존재들이었다는 점에서, 보다 심층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1910년대 초부터 시작된 조선인 여성들의 일본으로의 노동이주는 빈곤, 그 외에도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에만 가면 큰돈 벌 수 있다는 상상, 근대 문화에 대한 선망, 불행한 가족사로부터의 탈출, 연락두절 된 남편이나 어머니를 찾기 위한 방편 등은 이들이 일본행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주요한 이유였다. 어리고 젊은 여성에서부터 기혼의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도일하는 여성들의 연령도 폭 넓게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혼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기혼의 아이 있는 여성들조차도 일본의 '여공'이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점이다. 이들이 가족을, 자신의 아이를 뒤로 하고, 도일하는 멘탈리티(mentality)는 무엇이었을까. 가난하고 병든 가족이 있는, 배고프다 칭얼대는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 그들의 도일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옭아매던 가족을 벗어난 여성이 공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선택일 뿐인가. 일은 고되고 힘들어도 자기 한 몸만 건사해도 되는 삶에서 그녀들은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이들 사례에 대한 트랜스내셔널 가족사 및 젠더사의 접근(transnational approach on family and gender history)을 통해, 좀 더 다양한 삶의 결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9상해 임정시기 여성 독립운동의 조직화와 특징

저자 : 김성은 ( Kim Sung-eun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87-338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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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직후 1919년 4월 상해에 있던 한인 여성들은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김순애가 초대 회장을 맡아 회를 조직하고 이끌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주요 사업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금, 적십자회 활동과 간호법 연습, 국내외 애국부인회와의 통신과 연대,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와 후원, 중국인에게 한국인의 독립운동과 한중관계 연설, 3·1운동 기념식과 국치기념일에 전단을 배포하여 홍보활동을 하였다. 김순애, 이화숙, 김원경, 오의순, 최혜순 등이 상해 대한애국부인회의 중심인물이었다.
여성들은 1919년 7월 상해 대한적십자회가 재건되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회원 모집 및 회비 모금에 열성을 다하였다. 1920년 초 상해 대한적십자회는 독립전쟁에 대비하여 간호훈련 실시와 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간호부양성소를 부설하였다. 적십자회 조직과 간호훈련은 상해 대한 애국부인회 초창기부터 주요 관심사였다. 김연실, 김원경, 이화숙, 김순애, 오남희, 이봉순 등이 대한적십자회 간호부양성소 훈련과정을 수료하였다.
상해 대한애국부인회는 상해 한인교포사회에서 여성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모스크바 극동인민대표회의, 상해 국민대표회의,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에 대한애국부인회 이름으로 대표를 파견하였다. 1920년대 말 상해에서는 대한애국부인회 이외에 한인구락부, 한인부인회, 한인여자청년동맹(한국독립당 산하단체) 등 여성단체들이 조직되었다.
한인교포들은 민족의 생명이 정치(독립운동)뿐 아니라 교육에 있다고 생각하여, 대한인거류민단이 경영하는 인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정애경, 김연실은 인성학교 교사로, 김순애는 인성학교 유지원으로 활동하며 교포 2세 교육을 지원하였다. 상해 임정시기 김마리아, 양한나, 최혜순이 임시의정원의원으로 선임되거나 활동하기 시작했던 사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체제에서 여성들의 입법부 진출의 문이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23년 독립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민대표회의에는 각지의 여성 대표들이 참석하여 각자의 정세 판단에 따라 소신껏 발언하였다. 김순애는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독립운동지도단체를 만들자는 창조론을 주장했으며, 김마리아, 양한나, 오의순을 비롯한 상해 대한애국부인회에서는 임시정부를 확대 개혁하자는 개조론을 주장하였다.
김순애·김마리아 차경신은 정신여학교, 이화숙은 이화학당 대학과, 김원경은 경성여고보, 정애경은 숭의여학교, 김연실은 간호학교 출신이었다.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이 3·1운동의 경험을 간직한 채 사명감을 가지고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순애, 김원경, 오의순, 최혜순은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성장하거나 독립운동가 남편과 결혼하여 부부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한편 이화숙, 김마리아, 김연실, 정애경, 이봉순, 차경신 등 독신여성들은 임시정부 침체기에 상해를 떠나 미국에 건너갔고, 김마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이 한인교포와 결혼하여 미국에 정착하였다. 이들을 포함하여 미주 한인 여성들은 대한 여자애국단을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10한국과 일본의 가족법에서 처의 지위와 여성의 '권리'(1945~1960)

저자 : 김은경 ( Kim Eun-kyung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간행물 : 여성과 역사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39-37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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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이슈였던 민주주의 의제를 여성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탐색했다. 이를 통해 신질서 수립 과정에서 진행된 가족법의 '민주화'가 국민국가 형성과 자본주의 체제에 부응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가부장제적 차별을 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전에 비해 '민주화'된 가족법과 '향상된' 여성의 지위는 결국 부부 중심성을 강화하고 처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했음을 밝혔다.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국과 일본의 새 가족법에서 처의 지위와 관련된 조항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첫째, 한국은 호주제를 유지하고 일본은 그것을 폐지했기 때문에 두 가족법은 가족의 규정과 친족의 범위에서 크게 달랐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가족은 '호주의 가에 입적한 자'로 구성되었으며 친족의 범위도 부계와 모계가 차별적이었다. 둘째, 두 나라는 동일하게 혼인의 효과로 부부의 특유재산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국이 소유 여부가 불분명한 재산은 남편의 소유로 추정한데 반해, 일본은 이를 부부의 공유로 추정했다. 셋째, 한국은 처의 동의 없이 남편의 혼외자를 입적할 수 있게 했으나, 처의 혼외자를 입적할 때는 호주와 남편의 동의를 필수로 했다. 이와 달리 일본은 혼외자를 인지하면 호적법의 절차에 따라 입적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가족법은 민주주의를 헌법에 명시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옛 조항을 대폭 개정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첫째, 일본은 호주제를 폐지했고, 한국은 호주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부부 중심성을 강화했다. 미성년 자녀의 실제 부양 의무와 혼인 동의권이 부부에게 있었고, 모가 친권을 행사할 때 친족회의 간섭을 배제하거나 입양에서 처의 관여 권한을 인정한 점 등이 그렇다. 둘째, 한국과 일본은 재판상이 혼의 원인에서 처와 남편의 차별적 규정을 없애고 동등하게 했다. 셋째, 두 나라 모두 직계비속이나 직계존속이 있어도 처가 재산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처의 상속 권한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하게 평등의 확대와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의 가족법에서 민주주의적 '평등'은 (남편 우위의) 부부 중심성을 강화한 것을, '자유'는 처의 독립적인 재산권을 보장하여 자본주의사회의 경제 주체로 만든 것을 의미했다. 가족법에서 처의 지위 변화는 여성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이자 자본주의체제에서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는 기반을 제공했다. 요컨대, 제2차 세계대전 후 한일 가족법에서 민주주의나 자유와 평등은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에 부응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수립하는 전략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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