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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사학회> 한국교육사학> 3.1운동과 국가문명의 ‘교(敎)’: 천도교(동학)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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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국가문명의 ‘교(敎)’: 천도교(동학)를 중심으로

3.1 Movement in 1919 and ‘Teaching’ of National Civilization - Focus on Cheondokyo(Donghak) -

정혜정 ( Jung Hyejung )
  • : 한국교육사학회
  • : 한국교육사학 40권4호
  • : 연속간행물
  • : 2018년 12월
  • : 239-264(26pages)

DOI

10.15704/kjhe.40.4.201812.239


목차

Ⅰ. 서 론
Ⅱ. 3.1운동과 천도교 의암 손병희에 대한 평가
Ⅲ. 3.1운동의 전개과정과 임시정부수립
Ⅳ. 교(敎)의 개념과 국가문명
Ⅴ.「대한민국임시헌장」에 나타난 국가문명과 신인일치(神人一致)
Ⅵ.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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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동학운동의 역사적 계승으로서 민주공화체제의 국가를 탄생시킨 독립운동이자 개화기 국가수립운동의 결실이었다. 3.1운동은 천도교와 의암 손병희의 주도로 전개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의 노선을 취한 운동이었지만 그동안 이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은 동학운동의 연장으로서 신인일치(神人一致)의 사상에 입각한 자유, 평등, 공화의 국가문명을 지향한 것이었다. 천도교는 곧 동학으로서 우리 정신을 대표하는 ‘敎’임을 자처했다. 이 당시 敎라는 말은 전통사회에서 사용되던 敎의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서 종교와 교육을 아우르는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띠며 또한 국가의 이상을 담지 하는 것이었다. 敎란 곧 ‘최고의 가르침(宗敎)’이자 ‘나라가 주장하는 가르침(國敎)’이고, ‘가르침의 완성(敎育)’으로서 인간의 신인화(神人化), 애국관념의 정치화, 문명의 신성화(神聖化)를 내포하는 국권회복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敎의 운동이 지향했던 사회의 이상은「대한민국임시헌장」에 신인일치의 의사에 의한 건국으로서 명시되고, 정의와 인도를 애호하는 국민성으로 남녀빈부귀천의 계급이 없이 일체가 평등하며 신성(神聖)의 자유를 향유하는 신국(神國) 건설로 나타났다.
3.1 movement was the historical succession of Donghak(東學) movement and the fruit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enlightenment state, which created the nation of the democratic republic. 3.1 movement was a popularization, unification, and nonviolence movement that was led by Cheondokyo(天道敎) and Uiam(義菴) Son Byeong-hee, but it has not been properly evaluated. 3.1 movement and the birth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an extension of the Donghak movement and aimed at the liberation, equality, and republican civilization based on the idea of a Sin-In(神-人) integration. Chondogyo is the Donghak. And it claimed the ‘religion’ representing the Chosun(朝鮮). At that time, the term ‘Kyo(敎, teaching)’ was used in traditional society as a meaning of religion, education, political meaning and also bearing the ideals of the nation. It means ‘the best teaching(religion)’, ‘the main teaching of the nation(state religion),’ and ‘the completion of the teaching.’ This was a means of restoring national rights, which included the deification of human beings, the politicization of patriotic ideas, and the sanctification of civilization. The ideals of society in which the teaching movement of this kind was aimed at was specified as the founding foundation by expression of integration Sin-In(神-人) in the “Provisional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It is also a nationality that loves justice and human morality, and it is the aim of constructing a new nation that enjoys freedom and equality regardless of the rank of male and female, rich and poor, and noble and non-no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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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사회과학분야  > 교육
  • : KCI등재
  • :
  • : 계간
  • : 1225-1461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78-2019
  • :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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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0년대 조선총독부 일본인 학무관료 다카하시 하마키치(高橋濱吉)의 조선교육사 서술과 그 함의

저자 : 강명숙 ( Kang Myoungsook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2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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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조선 거주 일본인 학무관료 高橋濱吉(1887~?)의 조선교육사 연구가 지니는 한국교육사에서의 연구사적 의미 및 한국교육사 지식체계 형성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조선에서 소학교와 중학교 교원을 지냈고, 경성공립공업전문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 교수와 조선총독부 시학관을 지내며 학무실무 경험을 지닌 관료 高橋濱吉는 조선교육에 대한 역사적 접근의 연구가 3·1운동 이후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며 나타나기 시작하던 즈음에 조선교육연혁약사(朝鮮敎育沿革略史, 1922) 를 서술하고, 이어 1927년『조선교육사고(朝鮮敎育史考, 1927)』를 저술하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는 업무상의 필요에 의해 지속적으로 조선교육 현황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高橋濱吉의 조선교육연혁약사 ,『조선교육사고』서술은 제2차 조선교육령 개정을 계기로 정리한 연혁 및 현황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高橋濱吉는 조선교육사를 병합 이전의 교육과 이후의 교육으로 나누고, 병합 이전의 교육은 구교육으로, 병합 이후의 교육을 신교육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인식 틀을 갖고, 일본의 개입 정도에 따라 과도시대, 보호시대, 신교육 여명기, 신교육 혁신기로 시대구분 하였다. 서당과 사화, 붕당을 중요하게 서술했지만, 사화 붕당의 원인을 서원과 연결시켜 파악하거나 과거제도 폐해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서술의 논리를 살펴보면 역사 발달을 부정하는 정체론적 서술, 왜곡 편파적인 서술, 조선 정부의 의존성을 강조하는 사대성론적 시각, 조선의 교육문화에 대한 일관된 부정적 언술 등이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과거제나 관학 중심의 교육사 서술 경향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 엄밀한 자료 검토와 해석을 결여하고 있어 본격적인 교육사 서술로 보기 어려운 점도 있으나 식민자의 시선으로 조선교육을 바라보는 눈이 제도화된 학지의 형태로 오늘날의 한국교육사 교육과 연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성찰이 필요하다.

21920년대 경성사범학교 졸업생의 교직 생활

저자 : 김광규 ( Kim Kwangkyu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1-5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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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20년대 경성사범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그들의 입학 동기와 졸업 후 초임 발령에서부터 교직을 떠나기까지 인사 실태, 교원으로서의 생활 실태를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착목하여 살펴본 것이다. 경성사범 졸업생의 교직생활을 준비, 시작, 일상의 세 단계로 구분하여, 교직생활의 준비 단계로서 경성사범 입학 동기와 함께 경성사범의 실제 학생 편제·구성의 특징을 살펴보았고, 교직생활의 시작 단계로서 초임 발령시 자격, 봉급, 발령지 등의 인사상 특징을 규명하였으며, 교원의 일상을 채웠던 여러 가지 일과 활동, 승진, 근속 기간, 일상의 불만과 고민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1922-1929년 경성사범 졸업생 1289명의 주요 이력을 전수 조사하여 연구자료로 활용하였다. 경성사범은 조선인·일본인 공학이었으나 일본인 학생이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사실상 일본인 교원 양성 학교로 기능하였다. 조선인, 일본인 모두 경성사범 입학 동기에서 경제적 이익이 중요했지만 경성사범 입학이 조선인 학생에게는 극소수만이 가질 수 있던 기회였던 반면, 일본인 학생에게는 사회경제적 상황상, 가정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경성사범 졸업생은 각 도의 공립사범학교 졸업생에 비해 높은 자격과 봉급을 받으며 전국 각 도의 초등학교에 초임되었다. 경성사범 출신 교원의 일상은 학교 교육 활동과 사회 교육 활동을 기본으로 하며, 기타 강습회 참가, 도서 간행, 강습회 개최, 시찰단 파견 등 조선교육회, 초등교육연구회 등에서 진행한 각종 사업에 참여하는 활동 등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기본적인 학교 교육·사회 교육 활동을 제외한 다른 활동이나 교장 승진 기회를 얻는 데서 조선인 교원은 일본인 교원보다 불리하였다. 경성사범 출신 교원의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율은 70% 이상으로 1910년대 양성기관 출신 교원 보다 높았다. 관료 신분,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급여, 퇴직 후의 은급(연금) 등 조선의 관공립학교교원이라는 직업이 보장하는 이익, 교직 생활에서 경성사범 졸업장이 주는 상대적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만족하지 못한 자들은 교직을 떠났다. 이 경우 진학이나 다른 시험에 응시한 자들이 있고, 소수지만 교육 운동에 참여한 자들도 있었다. 전자가 대학 졸업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학력, 교원 중에서도 초등교원이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못한 자의 선택이었다면, 후자는 개인적 영달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과 교육 문제에 눈을 돌린 자들이었다.

3조선후기 경(京)·향(鄕) 유생의 생원·진사 진출실태 비교연구 - 1846년 식년감시를 중심으로 -

저자 : 김경용 ( Kim Gyungyong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57-8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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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사마방목뿐만 아니라 초시방목 공도회방목 사학승보·합제방목 등을 함께 고찰하여, 조선후기에 유생들이 소과에 응시하고 생원·진사로 입격하는 실태가 각 지역별로 어떤 편차를 보이고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각 지역에서 학동들을 가르칠 만한 인원의 분포상황을 헤아리고자 하였다. 생원·진사 구분 없이 소과 입격자의 지역별 분포를 볼 때, 전라·황해·함경 등의 지역에서만 입격율·성과율이 평균에 밑도는 저조한 상황이었고, 강원도가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평균 이상의 수준을 보였다. 소과 초시입격에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정도라면 조선후기 각 지역에서 학동들을 가르칠 만한 인원의 구비 여부는 굳이 따져볼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 주요 연구결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후기 생원·진사 진출실태를 京·鄕으로 단순히 양대별하여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京·鄕의 유생들이 사장과 경학 어느 한 쪽에 치중하여 양분된 듯이 논의할 수 없다. 지방의 각 지역을 무차별하게 묶어서 서울과 지방에 각기 별다른 지향성이 있었던 것처럼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생원시와 진사시의 경쟁율이 서로 다르고 7:1(1400:200) 보다 더 높았으며, 초시든 회시든 생원시보다 진사시에 더 많이 응시했다. 따라서 진사시의 경쟁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7·8·90대의 고령자나 10대의 연소자가 응시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입격한 사례도 나타나는데, 고령 입격자의 연령 산정에 과소추정된 경우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소과 입격 인원보다 7배가 넘는 많은 초시 입격자들이 비록 생원·진사가 되지 못했으나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국에 산재해 있던 소과 입격자 및 초시 입격자의 인구규모는 조선 후기 향촌교육 실태를 헤아리는 데에 주요한 참고사항이라고 생각한다.

4일제강점기 울릉도교육 연구

저자 : 김동환 ( Kim Donghwan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83-11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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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울릉도의 교육상황을 연구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울릉도의 역사적 배경과 인구변화, 그리고 울릉도 교육의 상황, 조선인의 교육과 일본인의 교육, 경상북도교육 내 울릉도교육의 위치에 대해 정리해봤다. 첫째, 조선조의 쇄환과 수토정책에 따라 주민이 거의 없던 울릉도는 1883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울릉도의 인구는 변동이 심하였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비중, 직업구성 등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둘째, 1909년 일본인학교가 설립되고, 조선인학교는 1913년에 최초로 설립된다. 1917년 이후 1923년까지는 조선인 학교 1개교, 일본인학교 3개교로 운영되다가 1923년 이후 1934년까지는 일본인학교 2개교, 조선인 학교 1개교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34년 이후 변화가 온다. 울릉도의 교육은 일제 당국의 교육정책과 이주정책에 따른 차별적 정책, 그리고 어업 등 산업과 경제 변화 그에 따른 인구구성의 변화 등에 따라 변화해왔다. 1921년 이후 조선인이 대다수로 운용된 태하공립소학교는 그 이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셋째, 울릉도 교육은 1917년과 1922년 인구만명당 학생수에서 경상북도 내에서 선두주자였다. 울릉도는 인구의 변화가 크지만, 1928년 이후에도 인구만명당학생수에서 경북 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넷째, 울릉도가 인구만명당학생수에 있어서 우위를 보이는 것은 초기에 낮은 부과금과 수업료의 영향, 울릉도의 높은 인구밀도, 조선인의 낮은 경제력에도 비교적 평등한 사회적 관계 등 교육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519세기 후반 사역원 생도의 과거 진출에 관한 연구-『완천기(完薦記)』수록 인원을 중심으로

저자 : 우현정 ( Woo Hyunjung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3-14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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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19세기 후반 사역원에 입속한 인물들의 진출 경로로서 역과 및 타과 합격여부를 확인하여 사역원에서의 인재양성과 선발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에 선행연구와의 상호검토를 통하여『완천기』에 수록된 인원을 총 1,303명으로 확정하였으며, 이 중사역원 입속에 성공한 인원은 1,224명으로 집계하였다. 또한『완천기』내 수록내용과 각종 방목, 족보자료 등을 통하여 사역원 입속지원자 1,303명 중 상당수가 15세 미만으로서 아명으로 입속시험에 응시하였고, 이들 중 관명을 받거나 성명을 개명한 인원 186명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1861년부터 1893년까지 사역원에 생도로서 입속한 인물 1,224명 중 총 263명이 역과에 합격한 것을 확인하였고, 이들은 전체 입속 인원의 21.5%에 해당하였다. 이들이 전체 역과 합격자 중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을 산출하였을 때, 1861년부터 1891년까지의 전체 역과 합격자 549명 중 약 47.9%로 기존의 선행연구에 비하여 약 23.4%P가 높은 것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사역원 입속생도 중 일부는 의과, 음양과, 소과 등 다른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역과 합격률에 비하여 월등히 그 비율이 낮았고, 사역원 입속에 실패한 인원이 타과에 상대적으로 많이 합격한 결과와는 상반되었다. 따라서 사역원에 생도로서 입속하여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이 역과 합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추후 1861년 이전 사역원 입속생도의 명단과 지방 역학생도의 명단 확보, 아명 입속자의 추가 관명 및 개명성명 확인작업 등이 이루어진 다면 사역원에서의 인재양성과 선발의 연관성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6『교육시론(敎育時論)』의 구성 및 성격 - '일본인의 조선교육 인식' 분석을 위한 시론 -

저자 : 이명실 ( Lee Myungsil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7-17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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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은 1885년부터 1934년까지 일본에서 발행되었던 잡지였다. 1호부터 1762호까지 매달 3회 발행된 잡지에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교육가, 학자, 교육관료, 정치관료 등이 필진으로 등장했고, 당시 현안이었던 교육정책 및 교육사상뿐 아니라 교육관련 출판물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와 함께 『교육시론』에는 조선 및 한국교육에 관한 글이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실려 있었다. 잡지에 게재된 글은 학부나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정책문서보다 일본 내 일반 독자들에게 훨씬 더 다가가기 쉽고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 아래 본 연구에서는 『교육시론』의 출간 의도 및 구성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논의한 후, 이 잡지에 실린 조선 및 한국교육 관련 기사의 양적 추이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i) 『교육시론』은 페스탈로치의 개발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교육시사 잡지의 성격을 지녔으며 종간될 때까지 자신들의 논조를 유지했다는 점, ii) 『교육시론』의 지면 구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지만 당시의 교육현안이나 국내외 교육동향 및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iii) 『교육시론』에 게재된 조선 및 한국교육 관련 글이 양적으로 많다고 보기 어렵지만 일본의 일반 독자들에게 정보제공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 등을 제시하였다.

7조선시대 문과 응시자격에서 소과 입격의 문제 검토

저자 : 이상무 ( Lee Sangmoo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5-20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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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시대 문과의 응시자격 중에 소과와 문과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그 동안 문과 응시자격에서 소과와 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었으며, 이 중에서 소과에 합격해야 문과에 응시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각종 규정, 사례를 확인한 결과 소과에 합격하지 않아도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사례가 조선 초기부터 등장하였으며, 『경국대전』을 비롯한 각종 규정을 확인해보아도 소과에 합격해야 문과에 응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었다. 이를 통해 소과에 합격해야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는 주장의 근거들은 매우 빈약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문과 응시자격에서 소과와 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반드시 재검토 되어야 하며, 소과의 합격여부와 상관없이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8숙종 - 정조대 문과의 은사(恩賜) 사용 규정 변화 연구

저자 : 정지연 ( Cheong Jiyeon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03-23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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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숙종-정조대 문과 운영에 있어 은사 사용의 실제를 검토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고자 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숙종12년(1686)에는 직부전시자를 일반으로 별시에도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별시에 응시하는 직부전시자들의 등위는, 식년시·증광시와 달리, 방목 말등(末等)에 위치시켰다. 숙종28년(1702)부터는 식년시 시행일이 뒤로 미뤄지는 경우, 식년한성시에 보내지는 급1분자들도 실제 시행일을 기준으로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숙종43년(1717)에는 식년한성시로 보내지는 급1분자들은 제술 시권을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고 정원 외로 선발하도록 했다. 영조19년(1743)에는 초시를 설치하는 정시에 직부전시자를 응시하도록 했다. 정시에 응시하는 전시직부자의 등위는, 별시와 마찬가지로 방목 말등에 위치시켰다. 영조46년(1770)의 경인정식 에서는 제술 과시의 직부회시 및 급분의 은사를, 증광시·별시 등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영조50년(1774) 증광시부터는, 회시에 직부되었던 급2분자들도 급1분자와 마찬가지로 문과 초시에 보내어 제술 시권을 작성하도록 했다. 정조7년(1783) 식년시부터는 급분자들을 한성시 정원 내에서 선발하도록 했다. 식년시 외 다른 과거에서는 이미 경인정식 이후부터 급분자들의 문과 초시 정원 내 선발이 시행되었다. 정조7년에는 또한 직부회시의 이하의 은사를 사용할 때, 어떤 과시에 의한 은사인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과거(科擧)에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조18년(1794)에는 어고은사절목 을 제정하여 어고은사(御考恩賜)는 받은 횟수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영조대 후반까지 은사 사용 규정에 관한 논의 대부분은 문과 운영의 기준이 되는 식년시에서 일반응시자들과 은사자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었다. 은사자들의 응시 과거가 확대된 이후에는, 어느 한 과거의 응시자들이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마련되었다. 당시의 정책담당자들은 과거라는 제도적 틀과 응시자라는 제도 운영의 변수 사이에서, 제도 운영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각 집단의 불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은사 사용 규정을 정비했다.

93.1운동과 국가문명의 '교(敎)': 천도교(동학)를 중심으로

저자 : 정혜정 ( Jung Hyejung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0권 4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39-26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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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동학운동의 역사적 계승으로서 민주공화체제의 국가를 탄생시킨 독립운동이자 개화기 국가수립운동의 결실이었다. 3.1운동은 천도교와 의암 손병희의 주도로 전개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의 노선을 취한 운동이었지만 그동안 이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은 동학운동의 연장으로서 신인일치(神人一致)의 사상에 입각한 자유, 평등, 공화의 국가문명을 지향한 것이었다. 천도교는 곧 동학으로서 우리 정신을 대표하는 '敎'임을 자처했다. 이 당시 敎라는 말은 전통사회에서 사용되던 敎의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서 종교와 교육을 아우르는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띠며 또한 국가의 이상을 담지 하는 것이었다. 敎란 곧 '최고의 가르침(宗敎)'이자 '나라가 주장하는 가르침(國敎)'이고, '가르침의 완성(敎育)'으로서 인간의 신인화(神人化), 애국관념의 정치화, 문명의 신성화(神聖化)를 내포하는 국권회복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敎의 운동이 지향했던 사회의 이상은「대한민국임시헌장」에 신인일치의 의사에 의한 건국으로서 명시되고, 정의와 인도를 애호하는 국민성으로 남녀빈부귀천의 계급이 없이 일체가 평등하며 신성(神聖)의 자유를 향유하는 신국(神國) 건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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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Asia Pacific counseling
10권 1호 ~ 10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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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교육
29권 1호 ~ 29권 1호

청소년과 효문화(구 한국의 청소년문화)
34권 0호 ~ 34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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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교육연구논총
60권 0호 ~ 60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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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권 1호 ~ 19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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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연구
33권 1호 ~ 33권 1호

청소년과 효문화(구 한국의 청소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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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교육과 시민
1권 0호 ~ 1권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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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도덕교육
2020권 1호 ~ 2020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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