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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정몽주 전래의 `백원첩`에 대한 검토
The Study and Reviewal on Bakwoncheop Introduced by Jeong MongJu
김철웅 ( Kim Cheol-woong )
대동문화연구 99권 251-276(26pages)
UCI I410-ECN-0102-2018-900-000686364

`白猿帖`은 1920년대에 洪魯의 문중에서 입수하여 그의 문집에 소개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정몽주와 이행의 문집을 번역하면서 `백원첩`을 게재하였다. `백원첩`은 태조 왕건의 친필을 발견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려 말에 정몽주의 주도로 14인이 회합을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사료 비판이 생략된 채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문건이 과연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지 여러 모로 검토하였다. 먼저 태조 왕건의 「所思」 시는 `梁 貞明 2년에 鐵□을 토벌할 때 劉悳에게 써서 준 시`라고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궁예는 정명 4년(918)에 왕건의 혁명으로 폐위되었다. 따라서 왕건이 철원을 토벌한 때는 정명 2년이 아니라 정명 4년이다. 그런데도 정몽주는 고려 개국 시기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지 않고 劉禧億이 전하는 대로 기록하였다. 정몽주가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서술하였다는 것은 이해 하기 어렵다. 정몽주는 우왕 13년 8월의 동화사 회합에 참석한 인물들을 `知己`·`友`로 표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그의 `지기`는 정작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보림은 우왕 11년 7월에 이미 사망하여 회합에 참석이 불가능하였다. 이종학, 김자수, 이행 등은 관직에 있어 참석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자수와 도응은 우왕 13년 당시에는 金子粹, 都兪로 기재되어야 함에도 개명인 金自粹, 都膺으로 나온다. 이는 사실과 어긋나는 것으로 `백원첩`이 고려 우왕 때가 아니라 조선시대에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백원첩` 첫 부분은 「所思」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원래 李白의 「別東林寺僧」이라는 시이다. 이백은 고려 때에 매우 인기 있는 시인이었고, 이 시 또한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정몽주는 시에도 뛰어나 이백의 시, 「別東林寺僧」을 몰랐을 리가 없다. 회합을 가진 14명의 고려 문인들 중 어느 누구도 원작인 이백의 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회합에 참여한 인물 중 정몽주와 홍로의 글씨가 전해오고 있다. 종래에 알려진 이들의 글씨와 `백원첩`의 서체를 비교해 보면 유사성을 찾을 수 없다. 특히 `백원첩`의 정몽주 글씨는 서체가 거칠고 정갈하지 않다. 이처럼 `백원첩`에는 몇 가지의 오류, 그리고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따라서 `백원첩`을 사료로 활용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This study is investigated on Bakwoncheop introduced by Jeong MongJoo. Jeong MongJoo lived in the period of changing from Goryeo Dynasty to Josun Dynasty in Korea and from Won Dynasty to Myong Dynasty in China. In those times, Goryeo Dynasty was required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alteration. In 1372, Through diplomacy trip, He had acquired Wong Gun`s poem. This poem and his documents have been called Bakwoncheop. Until now through Baekwoncheop, Many scholars asserted academic and political genealogy between Jeong MongJoo and Gil jae, Hong lo and others. We have to be extremely exacting about figuring out the provenance and where did the material come from and is it authentic. Thus this paper is investigated on Baekwoncheop. Jeong MongJoo was a representation of Josun Neo-Confucianism. Therefore His handwritten letters were copied several times. The calligraphy of Jeong MongJoo was peculiaran and neat. But His penmanship of Baekwoncheop is not peculiaran and neat. And Baekwoncheop is research material filled content mistakes and misconceptions, miswritings. Therefore scholars require the best of wariness about Baekwoncheop.

Ⅰ. 머리말
Ⅱ. 「所思」 詩의 입수 경위에 대한 검토
Ⅲ. 동화사 회합에 대한 검토
Ⅳ. 「所思」 詩와 「聯句」의 검토
Ⅴ. 書體의 검토
Ⅵ. 맺음말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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