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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조선 초 `칙찬권계서(勅撰勸戒書)`의 수용과 『삼강행실도』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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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칙찬권계서(勅撰勸戒書)`의 수용과 『삼강행실도』 편찬

Influx of Imperial Morality books and compilation of the Samganghaengsildo (三綱行實圖) in early Joseon

이상민 ( Lee Sang Min )
  • : 한국사상사학회
  • : 한국사상사학 5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7년 08월
  • : 27-65(39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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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칙찬권계서의 수용과 그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삼강행실도』의 편찬 과정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 문물의 수용과 변용, 나아가 동아시아적 견지에서 바라본 한국 사상의 특징을 조선 초 사례로서 규명하고자 하였다.
명 초에는 국내외적 질서 안정을 위해 황제 편찬의 교과서인 칙찬권계서(勅撰勸戒書)가 편찬되었다. 이들은 국내와 국외의 질서를 통일하고자 하는 목표로 기획되었고, 유교·불교·도교를 포섭하였으며, 원을 정통왕조로 인식하였다는 특징이 있었다. 영락제는 이와 같은 칙찬권계서를 중국 국내는 물론, 주변국인 안남·조선에까지 수용시키고자 하였다. 명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 대외질서 확립과정으로서 대량의 칙찬권계서가 주변국에 보급되었다. 칙찬권계서는 조선 태종, 명 영락제시기 발생한 조선·명관계의 안정화 국면에 맞추어 태종·세종대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조선에서는 칙찬권계서를 교화서로 파악하고 그 활용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칙찬권계서의 일부가 유교적 기준에 따라 비판적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명으로부터 수용된 칙찬권계서들은 조선 건국 이전부터 진행된 교화서 편찬의 전통들과 결합하여 『삼강행실도』 편찬의 중요한 참고 대상으로 활용되었다. 칙찬권계서는 『삼강행실도』의 편찬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편찬된 『삼강행실도』는 내용상으로도 주력 인용 전거가 되었던 칙찬권계서들의 내용과 나아가 이들을 선별한 조선 국내의 정치·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종래 『효행록』의 특성들을 여러 방면에서 극복하였다. 『효행록』에서 강조된 신이사례를 배제하고 정표사례를 강조하여 관민간의 명분질서를 드러내었고, 나아가 절의·정절사례를 통해 사적 결속을 넘어선 義로서의 군신·부부간의 명분질서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칙찬권계서의 영향하에서 조선 초기의 논의들이 반영된 결과였다.
명 초 국내외 질서의 안정책이 반영되어 편찬·유포된 칙찬권계서들은, 조선 초의 교화관념과 지방질서의 정립과 정치권력의 안정화를 반영한 『삼강행실도』편찬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삼강행실도』는 당대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들여온 명 초 문헌들에 담긴 관념과 조선내부의 입장이 함께 수렴된 결과물이었다. 『삼강행실도』 편찬은 국내외적 조건에 따라 이루어진 당대의 세계관과 이상이 반영된 사업이었던 것이다.
This article intends to examine the incorporation of Imperial Morality books (勅撰勸戒書) and the subsequent influence on the Samganghaengsildo (三綱行實圖) compilation process. In doing so, the paper will use case studies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o analyze the adoption and modification of Chinese culture, as well as the East Asian perspective regarding endemic Korean thought.
During the Early Ming dynasty, the Emperor published a series of Imperial Morality books (勅撰勸戒書) in order to consolidate order within and without the dynasty. These books were compiled with the purpose of unifying the organization of the dynasty. Emperor Yongle (永樂帝) wanted to disseminate the Imperial Morality books throughout not only the Chinese region but also the neighboring nations of Annam and Joseon. Kings Taejong (太宗) and Sejong (世宗) maintained an abundant influx of the Imperial Morality books as part of Joseon`s proactive efforts to defuse diplomatic tensions arising from Emperor Yongle expansive foreign policies. The Joseon dynasty generally considered Imperial Morality books to be edifying texts and eagerly sought to devise application methods.
Imperial Morality books, incorporated with existing domestic, were used to publish the Samganghaengsildo (三綱行實圖), The Morality book of Joseon. The Samganghaengsildo is overcome the Hyohaengnok (孝行錄), the Morality book of late Koryo in many ways by the contents of the Imperial Morality books and the political and social environment of the Joseon.
Imperial Morality books influenced the compilation of The Samganghaengsildo in early Joseon. The Samganghaengsildo was a convergence of discourse in the newly introduced documents in early Ming and the position of Joseon. Compilation of the Samganghaengsildo was a project reflecting the ideals of the contemporary world, which was made in accordance with the domestic and external con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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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 등재
  • : -
  • : 연3회
  • : 1226-9441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7-2017
  • :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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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세기 경상도 사족의 혼례 방식

저자 : 김정운 ( Kim Jeong U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2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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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성리학적 관념을 토대로 국가 운영에 필요한 각종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였고, 의례는 『주자가례』를 근본으로 하여 관혼상제례의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하였다. 『주자가례』를 바탕으로 마련된 의례는 기존의 가족질서 속에서 시행하기 어려운 요소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대부들은 『주자가례』와 당시의 풍속이 상충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주자가례』의 절차를 변용하여 시행하였다. 기존에 조선시대의 혼례에 관한 연구는 법제와 의례서의 규정은 밝혀졌으나, 이것이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시행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은 연구가 미흡한 편이었다. 이에 본고는 당시 사족들의 일기를 활용하여 혼례 방식의 실상을 검토하였다. 17세기 경상도 사족들은 초례(醮禮)를 엄격하게 시행하였다. 초례는 혼례와 관례를 할 때에 훈계의 말을 하는 절차인데, 이 시기에 경상도 사족들은 혼례에서 초례를 중요하게 시행하였던 것을 확인하였다. 또, 혼례에서 교배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여 신랑과 신부가 처음만나는 날에 교배례를 거행하였다. 다만 『주자가례』에서 교배례는 신랑이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맞이하여[親迎] 온 후에 신랑의 집에서 하는 것이지만, 17세기 경상도 사족들은 신부의 집에서 교배례를 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혼례를 한 이후에 부부는 우선 신부의 집에서 거주하였다. 17세기 경상도에서 신부가 혼례를 하고 처음 시집에 갈 때까지의 기간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년 반까지 개인의 사정에 따라서 다양하였다.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가기 전까지 신랑은 신부의 집과 자신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였고, 이 기간 동안에 출산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혼례를 한 이후 이와 같은 거주 방식 때문에 『주자가례』에서 혼례의 필수 절차인 묘현(廟見)은 부차적인 절차가 되었다. 신부가 묘현을 하지 않더라도 혼인이 성립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묘현은 조선시대 혼례의 절차에서는 사실상 제외되었다. 본고는 16세기에서 17세기 경상도 사족들의 혼례 방식을 검토하였다. 같은 시기의 다른 지역과 같은 지역의 시기별 변화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이것은 과제로 남긴다.

2조선 초 `칙찬권계서(勅撰勸戒書)`의 수용과 『삼강행실도』 편찬

저자 : 이상민 ( Lee Sang Mi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7-6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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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칙찬권계서의 수용과 그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삼강행실도』의 편찬 과정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 문물의 수용과 변용, 나아가 동아시아적 견지에서 바라본 한국 사상의 특징을 조선 초 사례로서 규명하고자 하였다. 명 초에는 국내외적 질서 안정을 위해 황제 편찬의 교과서인 칙찬권계서(勅撰勸戒書)가 편찬되었다. 이들은 국내와 국외의 질서를 통일하고자 하는 목표로 기획되었고, 유교·불교·도교를 포섭하였으며, 원을 정통왕조로 인식하였다는 특징이 있었다. 영락제는 이와 같은 칙찬권계서를 중국 국내는 물론, 주변국인 안남·조선에까지 수용시키고자 하였다. 명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 대외질서 확립과정으로서 대량의 칙찬권계서가 주변국에 보급되었다. 칙찬권계서는 조선 태종, 명 영락제시기 발생한 조선·명관계의 안정화 국면에 맞추어 태종·세종대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조선에서는 칙찬권계서를 교화서로 파악하고 그 활용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칙찬권계서의 일부가 유교적 기준에 따라 비판적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명으로부터 수용된 칙찬권계서들은 조선 건국 이전부터 진행된 교화서 편찬의 전통들과 결합하여 『삼강행실도』 편찬의 중요한 참고 대상으로 활용되었다. 칙찬권계서는 『삼강행실도』의 편찬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편찬된 『삼강행실도』는 내용상으로도 주력 인용 전거가 되었던 칙찬권계서들의 내용과 나아가 이들을 선별한 조선 국내의 정치·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종래 『효행록』의 특성들을 여러 방면에서 극복하였다. 『효행록』에서 강조된 신이사례를 배제하고 정표사례를 강조하여 관민간의 명분질서를 드러내었고, 나아가 절의·정절사례를 통해 사적 결속을 넘어선 義로서의 군신·부부간의 명분질서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칙찬권계서의 영향하에서 조선 초기의 논의들이 반영된 결과였다. 명 초 국내외 질서의 안정책이 반영되어 편찬·유포된 칙찬권계서들은, 조선 초의 교화관념과 지방질서의 정립과 정치권력의 안정화를 반영한 『삼강행실도』편찬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삼강행실도』는 당대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들여온 명 초 문헌들에 담긴 관념과 조선내부의 입장이 함께 수렴된 결과물이었다. 『삼강행실도』 편찬은 국내외적 조건에 따라 이루어진 당대의 세계관과 이상이 반영된 사업이었던 것이다.

31910-20년대 초 신지식층의 민주주의 인식과 현실활용 - 일본유학생과 동아일보의 논의를 중심으로 -

저자 : 이태훈 ( Lee Tae Ho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67-10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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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일본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에 수용된 민주주의론의 전개과정은 양면적 의의를 갖고 있었다. 첫번째 민주주의론은 단순한 정치제도론을 넘어 역사발전의 보편적 목표로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사의 전망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 사상은 사상내적으로 중요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완전한 자유, 평등의 실현을 사상적 목표로 강조하였지만, 현실적 실천방법과 주체에 대한 논의는 취약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론에 내재된 문제였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론은 개인의 인격적 성장과 사회와 개인의 조화, 사회구성원의 도덕적 의식향상을 주장하였지만 실천적 방법은 국가체제 내에서의 제도개혁, 정신개혁론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1920년대 초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조선사회에 소개, 확산되는 과정에서 더욱 본격화되었다. 동아일보는 민주주의를 신문의 핵심목표로 제시하며, 민주주의론의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였지만, 논의의 현실맥락은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식민통치의 모순을 비판하는 논리로 활용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내의 정치적 권리확보와 계몽적 실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특히 사회민주주의의 원리는 사회주의세력의 사상논리를 비판하는 근거로 강조되었다. 요컨대 1920년대 초 민주주의론은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반한 완전한 자유의 실현을 현실비판의 사상적 근거로 제시하였지만, 현실논리로서는 원론적 비판담론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사회주의세력을 비판하는 이념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론이 관념적 실천노선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체제 속에 무산정당운동론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면, 식민지조선사회의 민주주의론은 주변적 이념으로 위상이 축소된 것이었다. 식민지적 조건이 사상수용에 미친 결과였다.

4아편전쟁을 바라보는 조선의 다중 시선 - 19세기 중후반 조선 조정, 지식층, 서민층의 대청인식 연구 -

저자 : 장보운 ( Zhang Bao Yu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01-144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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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제1차·제2차 아편전쟁에 대한 조선 조정, 지식층 그리고 서민층의 반응을 중심으로 당시 조선 사회 각 계층의 대청인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1차 아편전쟁에 대해 당시 조선에서는 유신환(兪莘煥), 이항로(李恒老) 등 극소수의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조선 조정 내부나 지식층, 서민층에서 모두 큰 위기로 인식하지 않았고 무덤덤하거나 낙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서민층이나 일부 지식인들이 전쟁 소식을 신속하게 접하지 못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청이 제1차 아편전쟁에 대해 보여준 상황에 대한 인식이 낙관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사회에서도 청의 패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분석된다. 한편 제1차 아편전쟁에서 청의 패배를 충격이나 위기로 받아들인 일부 지식인들 간에도 사상적 균열을 보이며, 청의 멸망을 기대하는 부류와 청과의 공동운명 관계를 강조하는 부류가 나뉘는가 하면 서민층에서는 대청(對淸)복수의식이 여전히 상당부분 남아 있었다. 이는 서세(西勢)의 위협이 각 계층 조선인들에게 동일한 위기감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제2차 아편전쟁은 조선 조정이나 지식층, 서민층에서 모두 순망치한의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 및 청에 대한 태도에서 당시 각 계층은 다양한 견해를 보였다. 조선 조정이나 지식층 중 일부 관료적 지식인은 청을 연합세력으로 이해했다. 반면, 재야지식인이나 서민들 가운데에는 청이 약해짐에 따라 대청(對淸)복수론을 펼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청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거나 청의 위기에 대해 관망적 자세를 취한 사람도 있었다. 이는 각 계층의 서로 다른 서세인식, 그리고 조선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자신감 등 조선의 주체성에 대한 태도의 차이와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5식민지기 한국인·일본인 학자의 한국불교사 인식 - 공통의 지향과 상이한 시각 -

저자 : 김용태 ( Kim Yong Tae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45-17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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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 근대학문의 연구방법론이 적용되면서 한국불교의 전통의 상이 조형되었다. 서양에서 성립해 일본을 거쳐 수용된 근대학문으로서의 불교학은 보편적인 지적 권력을 가졌고, 그로부터 학문적 권력을 획득한 식민지기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불교사의 근대적 연구에 기여했다. 하지만 동양학적 접근, 그에 따른 폄하와 부정의 `타자화` 또한 동시에 이루어졌다. 본고는 한국인 학자의 한국불교사 토대 구축, 일본인 학자의 동양학적 시각과 연구 성과, 그리고 부정과 긍정의 두 측면이 교차된 전통의 자화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문헌학과 역사학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학문의 방법론 적용과 근대성의 지향은 양자에게 공통된 지점이었다. 다만 일본인 학자의 관점에는 타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는 당시의 맹목적 근대지상주의와 식민지라는 현실 상황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해방 이후 현재까지 탈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지향이 학술 담론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경향을 되짚어 보기 위해서라도 식민지기 연구의 공과 과에 대해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6천도교 계파의 동학사 인식 - 오지영의 “동학사”와 이돈화의 “천도교 창건사”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정인 ( Kim Jeong I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75-20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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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혁신파 지도자 오지영이 쓴 『동학사』와 천도교 신파 지도자 이돈화가 쓴 『천도교창건사』는 각각 천도교 혁신파와 신파가 추구하고 또한 걸었던 궤적이 반영된 교사이다. 오지영은 동학사의 계승성을 강조했으나, 이돈화는 동학사를 천도교의 전사(前史)로 이해했다. 오지영은 동학농민전쟁의 혁명성을 강조했지만, 이돈화는 손병희의 문명개화노선의 정당성을 부각했다. 오지영은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한 천도교 원로로서 동학 적통 의식을 갖고 있었고 동학에 기반하여 서양에 대응해야 한다는 동도주의를 지향했다. 이돈화는 천도교청년회 간부로 활약했던 중견 지도자로서 천도교 적통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동학 사상의 근대화·서양화를 지향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행보는 『동학사』와 『천도교창건사』의 동학 역사 서술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7연원록에서 사상사로 -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과 현상윤의 『조선유학사』를 읽는 방법 -

저자 : 노관범 ( Noh Kwan Bum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09-24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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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유학사 문헌의 통시적인 흐름을 거시적으로 `연원록`에서 `사상사`로의 변화로 독해하고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과 현상윤의 『조선유학사』가 연원록으로서의 유학사를 넘어 사상사로서의 유학사를 성취한 정도를 고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유학사 문헌은 주희의 『이락연원록』의 영향을 받아 `연원록`의 형식을 취하였다. 연원록으로서의 유학사란 유학 도통의 전승에 관한 인물 계보 지식을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연원록의 형식으로 이어졌던 유학사 편찬 전통은 근대 초기에 들어와 신문과 잡지의 미디어 공간과 만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였다. 국망 전후 조선 유학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팽배해지면서 성현 도통의 관념에서 벗어나 자국 유학사를 회고하는 새로운 역사관이 성장하였다. 국망 후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은 연원록의 형식으로 유학자의 언행을 서술했다는 점에서는 연원록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구성적으로는 조선 유교 쇠망사라는 거대한 역사 서사를 창안하는 데 성공하였다. 조선 전기 유학사에 대해서는 정몽주로부터 이황까지 조선 성리학의 도통을 헤아리는 도학사적 관심을 유지하되 조선 후기 유학사에 대해서는 쇠망사의 서사에 어울리게 유학자 편성 단위가 다양해졌다. 반면 해방 후 현상윤의 『조선유학사』는 연원록의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민족국가 건설기의 정서로 조선 유교 운동사라는 새로운 역사서사를 창안하였다. 유학자와 유학자의 사승 관계에 따라 연결되는 연원의 흐름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유학자의 실천과 운동에 따라 형성되는 사상의 흐름을 보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조선유교연원」이 붙들었던 조선 성리학의 도통관을 완전히 청산하여 시대의 변화에 따른 조선 유학 읽기를 추구하였다. 『조선유학사』는 사상사로서의 유학사를 분명히 선언하였고 실제 내용에서도 사상사로의 유학사를 창출하였다. 이는 한국유학사 분야에서 사상사의 출현이라 이를만한 학술적 사건이었다.

8쇼묘지(稱名寺) 소장·가나자와(金澤)문고 관리 원효 『기신론별기』의 기초연구

저자 : 김천학 ( Kim Cheon Hak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45-27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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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새로 발견된 원효의 『기신론별기』 사본의 특성을 밝히려는 논문이다. 우리나라에는 한국불교연구 가운데 원효 연구가 가장 많지만, 문헌학적 연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본 고에서 다루려고 하는 『기신론별기』에 대해서도 권수 등의 문제를 비롯하여 『기신론별기』의 유통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적은 없다. 더구나 기존 원효 『기신론별기』의 저본인 에도시대 판본보다 340년정도 앞서는 새로운 사본이 가나자와문고에서 발견되었고, 판본과 비교검토 결과 현재까지 500여 곳의 글자 차이를 보인다. 그 가운데는 기존 판본에 의한 해석을 바꾸어서 사상적으로도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는 곳도 상당수 발견되었다. 본고는 많은 차이 가운데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11곳에 대해서 검토하고, 기존에 주 연구대상이 되었던 원효소·별기 회본과의 차이점도 언급하였다. 새로 발견된 『기신론별기』사본의 특징은 표지에 `비룡(飛龍)`이라고 원효를 지칭하는 것과 1권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현재 간본이 2권인 것과 다르다. 검토결과 1권본이 심상을 통해서 일본에 전래된 계통의 『기신론별기』임이 확인되었다. 다만, 본 『기신론별기』사본은 완본이 아니고 결락이 있다는 한계가 있다. 판본과의 차이에서는 특히, `승(乘)`과`수(垂)` `초(超)`와 `기(起)` 등 원효의 의도를 바로잡을 수 있는 부분은 중요하다. 장자의 『소요유』 편의 도입도 원효 사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문맥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상의 예를 통해서 볼 때 『별기』 사본은 원효 저술의 정본화를 위해서 충분히 가치있는 중요한 문헌이라고 평가된다. 한편, 『별기』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만, 향후 원효 사상의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 『회본』에 수록된 『소』와 『별기』역시 교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9의적(義寂) 『보살계본소(菩薩戒本疏)』의 기초 연구 - 쇼묘지(稱名寺)·가나자와(金澤)문고 소장 사본(寫本) 소개를 겸하여 -

저자 : 박광연 ( Park Kwang Youn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77-30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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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義寂, 7세기 중반~8세기 초반)은 당에 유학을 갔다가, 690년경 귀국하여 신라 교단에서 활동한 승으로서, 61부 이상의 저술을 하였다. 『보살계본소(菩薩戒本疏)』(이하 의적소)는 『범망경』 하권의 게송(偈頌)부터 시작하는 `보살계본`에 대한 주석서로서, 일본의 보살계 사상과는 다른 전개를 지닌, 신라의 보살계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특히 본고에서는, 현재 전하는 의적소의 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쇼묘지(稱名寺)·가나자와(金澤)문고 소장의 사본을 저본으로 활용하였다. 의적은 『유가사지론』에 근거하여 보살계의 체상(體相)과 종취(宗趣)를 밝히면서 보살계를 삼취정계 가운데 율의계를 중심에 두고 설명하였다. 그는 출가자의 경우 성문계를 받아야 보살계를 얻을 수 있다고 하고, 성문계도 계체(戒體)를 잃지 않는다고 하는 등 보살계의 수승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성문계를 인정하고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唐)의 법장이 재가자 및 처음 발심(發心)한 출가자를 대상으로 한보살계를 말했다면, 의적은 성문계를 받은 또는 앞으로 받을 출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살계를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의적이 활동하던 시기 신라 교단에는 체계화된 보살계 수계갈마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런 상황에서 의적은 의적소를 통해 출가승들에게 보살계 수지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구체적인 수계갈마를 소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적소의 사상사적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대의 신라 승려인 둔륜(遁倫)의 보살계관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나가도록 하겠다.

10『華嚴經問答』のテキスト硏究

저자 : 道津綾乃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사학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305-363 (5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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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問答』はテキストクリティ一クが必要であることを提示するのが本稿の目的である。 『華嚴經問答』に關する硏究は、いずれも『大正新修大藏經』45卷所收の『華嚴經問答』(以下、大正藏本『問答』)に依據している。底本は「平安末期寫小野玄妙氏藏本」とあるが所在未詳であり、大正藏本『問答』の飜刻が的確かどうかを底本に?って確認することは、現在誰もできない狀態にある。また、寫しである以上、流傳の過程で誤寫や改變は少なからず起こる現象であるが、それらが妥當であるのか誤りととらえるべきかを吟味することもできない。筆者は、現在依據しているテキストの精査が不十分であることが、『華嚴經問答』硏究の問題点であり、現存する寫本や後世の人?の引用文を比較し、より精度の高いテキストを想定して、『華嚴經問答』の更なる檢討を行うべきと考えている。この作業に適した對象の1つとして、稱名寺所藏『華嚴經問答』(以下、稱名寺本『問答』)を取り上げるのである。 稱名寺本『問答』は1295年末~96年前半の間に本文が書寫され、踊り字の用法に特徵がある。『華嚴經問答』は、大正藏本(小野玄妙氏藏本)、元祿14年刊本、稱名寺所藏本に加え、このたび新たに成?堂文庫所藏『華嚴經問答』寫本(以下、成?堂本『問答』)を發見した。稱名寺本『問答』と成?堂本『問答』には踊り字が使用されており、用法に共通性が認められる。ただし、稱名寺本『問答』と成?堂本『問答』の底本は同じではなく、稱名寺本『問答』に對して、他の3本は異本であると言わざるを得ない。しかし、兩寫本には、踊り字の用法に共通のル一ルがあることから、底本は案外近いところで一致する可能性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予測する。踊り字は、楊錫全氏によれば、「重文用法肇端于上古、中經秦漢、又歷中古、在出土文獻尤其敦煌及簡帛文獻中大量存在。」(原文簡體字)とあり、非常に古くから中國で用いられていたことで知られる。このことは、新羅で書かれた『華嚴經問答』が日本に直接流入したのかどうかを考察する必要を示唆し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 なお、日本中世の訓点を持つ稱名寺本『問答』は、文章解釋の面で參照する必要がある。これからの同書の硏究にはテキストクリティ一クが必要である。また、新出の兩寫本だけでなく、福士慈稔氏がまとめられた、日本の僧侶が引用している『華嚴經問答』との比較も重要である。これらは今後の課題と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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