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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시대 중국문화 데이터 아카이브 현황과 시각화, 서비스 모듈 연구

A Study on the Service Module, Visualization and Current Situation of Chinese Cultural Data Archive in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박정원 ( Park Jeongweon )
  • : 한국중국학회
  • : 중국학보 80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7년 05월
  • : 95-122(28pages)

DOI


목차

Ⅰ.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며
Ⅱ. 중국문화 데이터 아카이브 현황
Ⅲ. 중국문화 데이터 집적화: STT, VR
Ⅳ. 중국문화 데이터 디자인, 서비스 모듈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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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우리가 수용하든 거부하든 간에 시대적 흐름은 이미 물려오고 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파격적인 변화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직업유형의 변화나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인한 정보소통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첫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며 중국문화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 현황을 분석하였다. 아카이브는 주로 인물정보, 사진자료가 주를 이루었다. 다음으로 TTS와 STT를 기반으로 영상이나 사운드에서 텍스트로 변환하는 방법과 VR 파노라마 사진 촬영 테크닉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Wordpress를 기반으로 시간, 공간, 영상, Wiki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전략을 분석하였다. 시간은 타임라인 방식을 사용하고, 공간은 Google Maps의 Open API를 사용하고, 영상은 멀티자막을 사용하고, Wiki는 Theme과 Plugin을 각각 사용하여 시각화하였다. 중국문화 관련 데이터베이스는 학문과 연구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기본이 되는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중국문화 데이터를 모델링하고 시각화하는 전략은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수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중국문화 데이터를 접근해 가는 전략적인 모듈을 제안한 것이며, 이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효율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has become inevitable. Whether we accept or refuse, the current trend is already being felt, and we can expect an extraordinary change in the field of society.
In this thesis, we analyzed the status of Chinese cultural data archive in the era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e archives primarily constituted figures for personal information and photographic data. Next, we analyzed how to convert text from video or sound to TTS and STT and analyze the VR photo shoot technique. Finally, we analyzed strategies to visualize Wordpress based time space, images, and Wiki data. Time is used in the timeline, and space is used by the Open API of Google Maps, and clips use Subtitles, Wiki uses Theme and plugins. The Chinese cultural database is the most important resource for learning and research, and it is a fundamental resource. The strategy of modeling and visualizing Chinese cultural data is a prerequisite for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In this thesis, it is proposed to propose a strategic module to gain access to Chinese cultural data in this period, and it is believed that it will strengthen the effectiveness of education and research.

ECN

I410-ECN-0102-2018-900-000621063


UCI

I410-ECN-0102-2018-900-000621063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중어중문학
  • : KCI 등재
  • : -
  • : 계간
  • : 1226-850x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63-2018
  • :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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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是+N+VP” 형식과 “有+N+VP” 형식의 비교연구

저자 : 최성은 ( Choi Sung-eun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3-3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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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N+VP”형식과 “有+N+VP”형식은 사용빈도가 높으며, 때로는 두 형식에서 “是”와 “有”의 기능과 의미가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형식은 각각의 통사적 기능과 의미 기능을 지니고 있다. “是+N+VP”형식에서 “是”는 유일 존재, 한정성을 내포하며, 비한정 지칭의 “N”이 놓이면 비문이 된다. 반면 “有+N+VP”형식은 비유일 존재, 비한정성과 결합하며, 한정 지칭의 “N”이 뒤에 위치하면 비문이 된다. 이로 인해 “是” 뒤에 비한정 지칭의 “N施”이 위치하면 “是”의 의미가 변하게 되며, “有”는 반대로 한정 지칭의 “N”이 뒤에 놓이면 “有”의 기능이 변화한다. 또한 “有+N+VP”형식에서 동사는 한정적으로 쓰이는데, 단문에서는 소유관계를 나타내는 동사를 사용해서 표현해야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是+N+VP”형식은 동사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문형에 있어서도 “有+N+VP”은 의문문, 부정문으로 표현할 수 없다. “是+N+VP”형식과 “有+N+VP”형식은 각각 표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是”는 동작 주체를 강조하는 표지로서 “有”와 달리 능동의 기능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有”는 관계성 소유관계를 나타내는 표지로 쓰이고 있으며, 수동의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복문에서 “有+N+VP”형식은 화자가 만족, 안위 등의 심리적 이득을 얻을 경우에 성립할 수 있다. “是”와“有”는 존재, 소유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심층적 의미기능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是”와 “有”의 어법화와 주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컨대, “是+N+VP”형식과 “有+N+VP”형식에서 “是”는 동작 주체 초점 표지로 쓰이고 있으며 “有”는 관계성 소유관계 표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2“X控”族新詞探析

저자 : 박흥수 ( Park Heung Soo ) , 장영위 ( Zhang Yongwei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31-4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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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着社會的發展以及網絡的日益普及,新興的“X控”結構迅速在網絡上傳播開來,具有?强的能産性。本文以“X控”族新詞這一具有鮮明特征的新興族詞爲主要硏究對象,在前人硏究的基礎上,對“X控”族新詞的構成、語義進行分析,幷進一步探討其産生、發展過程以及推動這種發展的動因。 首先,本文運用詞匯學的相關知識,對“X控”族新詞的構成進行描寫和分析。“X控”族新詞是以“X”爲詞根,“控”爲類后綴的附加式合成詞。其中,外來音譯類后綴“控”在引入我國之后意義有所虛化,具有標記名詞的類義作用。 其次,通過語料我們分析得出,詞根“X”則可以分爲單語素、雙語素、多語素及非漢語成分四種類型,其音節、內部結構等方面具有豊富、多變的特点。 最后,本文從“X控”族新詞的産生及發展過程入手,闡述推動“X控”族新詞迅速發展的動因。分別對“X控”族新詞的形成、語義變化、使用環境變異等進行分析。新興族詞“X控”在語言的類推机制、經濟机制的推動下,根据使用者的具體需要在社會現實環境、社會文化背景及大衆心理的影響下進行類推和倣擬,進而不斷構成“X控”族新詞。

3槪念隱喩視角下的溫庭筠詞

저자 : 변성규 ( Byun Sunggyu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51-6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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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庭筠是晩唐大力作詞的第一人,他開創了五代、宋詞的盛況,后人都尊他爲花間鼻祖。 我們在讀溫庭筠的詞的時候,可以發現他的詞中大多是一些意象的羅列,他的詞在給讀者一種强烈的感官印象的同時,又能讓讀者産生豊富的聯想,體會到詞內部豊富的情感世界。之所以能有這樣的效果,槪念隱喩起了?大的作用。這些槪念隱喩讓讀者産生了豊富的聯想,而且讓詞的情感世界變得豊富,是構建溫庭筠詞的情感內容的重要手段。 槪念隱喩理論是Lakoff和Johnson提出的,該理論認爲隱喩不僅是一種普遍的語言現象,更是一種人們認知社會和世界的方式和手段,卽用一個認知域的經驗來理解?一個認知域的經驗。本文運用槪念隱喩理論,以后蜀趙崇祚編的≪花間集≫收錄的溫庭筠詞66首爲硏究對象,選取對溫庭筠詞情感內容構建有重要作用的槪念隱喩幷結合作品進行了分析。 通過分析,我們可以發現溫詞中在詞人是女子這一槪念隱喩主線下,還主要包括人的情感是自然景物,人是植物,分離和阻斷是簾,絶望是夢等基本槪念隱喩,?們共同作用,構建了溫庭筠詞的情感內容。以此爲基礎,詞人通過拓展對應關系、整合多個隱喩、增加細節描述 、質疑常規隱喩這四種方法對基本槪念隱喩進行了拓展創新,構建出詩性隱喩,從而使其詞具有了文學性。 詞人用槪念隱喩使內心的感受和抽象的槪念圖像化和具體化,從而幇助讀者更容易理解詞人在作品中要表現的深層意蘊,同時源域和目標域之間的張力使讀者産生了豊富的聯想,增强了作品的藝術感染力,使作品更具有趣味性和可讀性。

4조선 문인 서거정(徐居正) 시(詩)의 소식(蘇軾) 수용 양상

저자 : 류소진 ( Liu Sojin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69-9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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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인 徐居正은 자신의 시화집인 『東人詩話』에서 고려 문단의 `東坡熱`에 대해 전언한바 있는데, 필자는 그의 시문집을 통해 서거정 자신도 소식 시문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을 뿐 아니라 소식 시를 적극적으로 학습했음을 발견했다. 우선 시가비평 방면에서 소식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의 시를 비평의 준거로 삼았으며, 다음으로 자신의 시를 지을 때에도 和蘇詩 창작, 蘇軾 語句의 借用, 同姓人 典故의 사용 등 여러 방면에서 소식을 수용했다. 더 나아가 소식을 모방하여 赤壁船遊를 재연하기도 했고 소식의 후신이라 칭하며 자신을 소식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라 불렸던 만큼 문단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서거정이, 소식을 作詩의 典範으로 내세우고 시가이론 및 시가비평 방면에서 다양하게 소식을 수용한바, 이는 조선 전기 문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서거정은 많은 조선 전기 문인들이 적극적으로 소식을 추앙하고 또 소식의 시문을 학습하는데 원동력을 제공한 것이라 하겠다.

5제4차 산업혁명시대 중국문화 데이터 아카이브 현황과 시각화, 서비스 모듈 연구

저자 : 박정원 ( Park Jeongweon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95-12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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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우리가 수용하든 거부하든 간에 시대적 흐름은 이미 물려오고 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파격적인 변화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직업유형의 변화나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인한 정보소통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첫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며 중국문화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 현황을 분석하였다. 아카이브는 주로 인물정보, 사진자료가 주를 이루었다. 다음으로 TTS와 STT를 기반으로 영상이나 사운드에서 텍스트로 변환하는 방법과 VR 파노라마 사진 촬영 테크닉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Wordpress를 기반으로 시간, 공간, 영상, Wiki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전략을 분석하였다. 시간은 타임라인 방식을 사용하고, 공간은 Google Maps의 Open API를 사용하고, 영상은 멀티자막을 사용하고, Wiki는 Theme과 Plugin을 각각 사용하여 시각화하였다. 중국문화 관련 데이터베이스는 학문과 연구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기본이 되는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중국문화 데이터를 모델링하고 시각화하는 전략은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수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중국문화 데이터를 접근해 가는 전략적인 모듈을 제안한 것이며, 이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효율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6서주(西周) 사도(司徒)의 재검토

저자 : 김동오 ( Kim Dongoh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25-14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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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와 활발해진 西周 金文 자료의 발굴과 연구는 전래 문헌에 기반한 西周史 연구에 새로운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중 周王의 冊命을 기록한 금문은 관제사 연구의 중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서주 이래 三公의 일인으로 최고위관인 司徒(□土)는 토지·농경과 인민 교화를 관장하는 民政官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의 기본적인 근거는 儒家 經典인 『周禮』였다. 서주 금문 자료를 분석해보면 이러한 인식에 일대 수정을 요구한다. 本稿에서는 서주 사도를 중심으로 그 본래성격을 살펴보았다. 司徒가 토지와 농경을 관장한다는 근거로 제시되는 금문에는 사도뿐만이 아니라 司馬, 內史 등 다양한 관직들이 등장한다. 이는 토지와 농경이 사도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직무는 아님을 말해준다. 오히려 사도가 六師와 八師 같은 군사조직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은 그 본질적인 성격이 군사적인 데에 있음을 반영한다. 사도의 藉田 관리 역시 농경 그 자체가 아니라 이에 수반되는 軍事儀禮적인 것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주춘추시기의 문헌 자료와 금문 자료들을 살펴보면 사도의 從軍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도의 山林川澤 관리 직무도 농업을 보조하는 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도가 등장하는 금문 자료들을 시기에 따라 일별해보면 서주 중기를 기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전시기의 자료들이 보다 군사적인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반해 후기에 접근할수록 직무가 점차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周禮』에 기술한 민정관으로서의 사도는 후기의 변화된 이미지에 맞추어 묘사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춘추시기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주 사도가 가지고 있었던 군사관으로서의 성격이 대체된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하면서 민정관적 요소를 흡수한 것이다.

7남송(南宋) 도성(都城) 임안(臨安)과 민간사묘신앙(民間祠廟信仰) - 도시사적 접근

저자 : 김상범 ( Kim Sangbum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51-19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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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도시사적인 접근을 통해서 남송 도성 임안의 민간신앙 전개양상을 검토해 보았다. 남송시기 도성 임안에는 전쟁과 사회경제적 유동성의 증가로, 서북피난민들과 함께 南遷한 `東京祠廟`와 남방 각지에서 유입된 `外郡行祠`들이 도처에 설립되면서 민간신앙의 새로운 지형이 형성되었다. 임안 고유의 토착신앙 외에 다양한 내원을 가진 지역신앙이 집결하면서 자연스레 민간신앙의 전국화가 이루어졌다. 남송정부는 현지인과 이주민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도성주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각 집단의 지역성을 존중하고 후원해주는 유화적인 사묘정책을 견지하였다. 기본적으로 北宋徽宗 建中靖國원년(1101)에 완성된 봉호와 묘액 하사를 통해서 지원과 통제를 병행하는 방식을 승계하였는데, 일단 正祠로 공인되면 立廟와 重修, 廟會活動 등을 적극 지원해주었다. 남송도성은 대체로 錢?가 건설했던 吳越 都城을 계승하여 사용하였다. 전통 도성이 천자가 기거하는 궁성을 중심에 두고 `坐北朝南`의 방향으로 건립되었지만, 임안은 `坐南朝北`의 북향도성이었다. 의례도시의 기준선이라 할 수 있는 중축선이 왜곡되었고, `左祖右社`와 같은 도성의 핵심의례시설 역시 실용적 차원에서 대칭구도를 무시하였다. 엄격한 장소규정이 이완되면서 의례도시의 定型性이 무너졌고 의례 본연의 신성함도 훼손이 불가피했다. 물론 공간적 제한이 이완되면서 민간 사묘가 도시내부로 확산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증가했다. 남송 도성 내 민간사묘의 공간분포와 확산 추이를 분석해 보면, 먼저 성황묘나 오자서묘와 같은 저명한 토착사묘나 무장권신들이 立廟를 주도했던 忠節祠들은 주로 중앙관서가 집중된 吳山 일대와 상업중심지에 위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忠節·士賢類와 같이 유교제사적 특징이 강한 사묘들은 자발적 분화나 확산과정은 발견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서북이주민에 의해 臨安에 유입된 東京祠廟를 검토해 보았다. 神農氏를 醫神으로 받드는 皮場廟는 吳山 祖廟외에 萬松嶺과 侍郎橋巷, 元貞橋에도 行祠가 설립되었다. 이 일대가 宗室과 피난민들의 집거지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피장신앙은 초기에는 서북 이주민 집단을 모태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侍郞橋에 설립된 行祠가 주목되는데, 인근에 惠民北局과 유명한 藥鋪들이 줄지어 있었다는 사실은 도시기능이 날로 분화하는 가운데 사묘도 관련 업종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도성주민들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남중국 각지에서 유입된 外郡行祠도 도성 내외로 빠른 확산추세를 보여주었다. 동악묘는 도성 내에 만 5곳의 행사가 설립되었고, 오통신을 숭배하는 靈順廟 역시 도성내외에 총 7곳의 행사가 건립되었다. 外郡行祠는 이주민들이 집거하는 지역이나 고향과의 교류가 편리한 교통요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외군행사는 `고향의 신`께 당면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소망을 기구하는 신앙의 공간이자, 남중국 이주자들과 여타 도성 주민들이 새로운 유대관계를 만들어가고, `묘회` 등 각종 종교행사를 통해서 서로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8청말(淸末) 안휘성(安徽省)의 재해구제(災害救濟)와 민간 의진(義賑)활동의 전개

저자 : 김두현 ( Kim Du-hyun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91-22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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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丁戊奇荒 이후 조직화된 상해 신상의 義賑활동을 안휘성 사례를 통해서 분석해보았는데, 근대적 민간구제 활동으로서 義賑의 특징은 ①`民捐民辦` ②`不分畛域` ③`救人救撤` ③`不??敍`, ④`隨査隨放이다. 의진활동이 조직화·상설화될 수 있었던 것은 정무기황 당시 서양인의 화북지역구제에 자극을 받은 중국측 신상의 저항의식, 민족의식의 각성, 그리고 서양인 구제방식의 수용이 주요 요인이었다. 그리고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정보수단의 발달, 즉 『申報』와 電報라는 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재해정보의 신속한 전달이 가능해지고, 더구나 ①`민연민판`의 원칙 하에서 『申報』를 통한 자발적 구제경비 모금과 그 결과를 공표함으로써 의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신뢰성을 제고시킬 수 있었다. 물론 안휘성 지방관 및 신사들 또한 『申報』나 전보를 이용하여 상해 신상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진의 자발적 구제활동은 앞서 언급한 `不分畛域`의 원칙에서 보자면, 자신과 전혀 지역적 연고가 없는 지역을 위해,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또한 재해지역에 진무 경험이 풍부한 義紳들을 파견함으로써, 이전시기에 지역 신사층이 주로 자신의 연고지에서 구제활동을 전개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不??敍`라는 선언은 자신의 의진활동이 국가로부터 포상을 바라는 목적의식적 행위가 아님을 강조하고, 일종의 자발적 선의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안휘성출신 京官ㆍ지방관의 고향구제활동에서도 ?敍를 바라지 않는다는 선언이 누차 발견되고 있다. 다음으로 안휘성 同鄕 紳商의 고향구제활동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실상 동향관의 고향 구제활동은 안휘성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었지만, 李鴻章을 중심으로 형성된 淮系集團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지고, 안휘 同鄕官 스스로 고향구제 활동이 `義賑`의 일환으로서 `?敍`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당시 義賑이란 구호가 사회 전반에 전파ㆍ인식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同鄕官의 구제활동이 관료 신분이 아닌 동향 紳士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당시 官界의 분위기가 官賑 보다는 義賑에 더욱 많은 신뢰와 지지를 표명하고 있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해 등 외지에 기거하는 안휘 동향 紳ㆍ商의 고향구제를 위한 의진기구 결성과 조직화(駐?安徽義賑公所) 및 모금 활동을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활동의 저변에는 `동향의식`과 고향에 대한 `정체성`이 있었지만, 초기 활동을 보면 주로 성 단위의 동향의식보다는 자신의 고향(州縣)단위로 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에는 점차 州縣단위에서 省단위로 확대되는 경향(縣界→府界→省界)을 보이는데, 선통2년(1910)년 大水災가 정무기황에 필적할만한 규모였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였지만, 한편으로는 상해 의진의 특징 중 `不分畛域`이라는 구호의 영향이 있었다. 동향 紳商에는 徽商도 포함되지만, 청말 전체 안휘 동향 신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또한 비록 안휘성 내의 신사층을 중심으로 籌賑公會가 결성되어 官賑과의 협력체계가 구축되었지만, 사실상 전체 구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省外에서 활동하는 동향 紳商에 비하면 높지 않았다. 한편 안휘성 재해구제에 참여한 동향 紳商이 모금활동을 전개한 지역이 대부분 안휘성 내가 아니라 성외 지역, 그중에서도 상해에 집중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안휘성 내 신사의 역량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안휘 동향 京官·紳商의 고향구제를 위한 모금활동은 상해지역 의진활동에 비하면 그 규모나 활동범위가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보면 상해 의진활동이 여타 지역에 끼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91920년대 전후 북경(北京)의 유학환경과 한인학생(韓人學生) 현황

저자 : 이재령 ( Lee Jaeryoung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31-26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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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강점기 중국의 정치·외교·학술 중심지였던 북경을 중심으로 근대 고등교육의 실태와 한인유학생의 현황을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淸末民初 국립 북경대·북경사범대와 기독교계의 燕京大를 비롯한 관립·사립 학교들이 근대 학문·사상의 유입구 역할을 하였다. 19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한 북경의 대학들은 신문화운동과 5·4운동을 거치면서 서구신사조의 전시장이 되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군벌전쟁은 정치적 혼란과 교육 재정난을 악화시켰지만 제도적으로 대학설립이 수월해지면서 사립대학들이 난립하였다. 이 시기 중국학교들은 한인학생들에게 입학수속과 학비 등 여러 면에서 편의를 제공해 주었고, 저렴한 생활비와 학비도 북경유학을 선택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1920년대 졸속으로 설립된 사립대학들의 허술한 학사운영도 한인학생의 입학을 도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1920년대 이후 북경지역의 국립·사립대학들은 양적 성장에 뒤이어 질적으로도 빠르게 발전하였고 한인유학생들의 지적 성장에 좋은 여건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국민당의 훈정체제가 구체화되면서 교육계의 자율성이 제약받고, 만주사변으로 북경의 교육환경이 현저히 악화되면서 한인유학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중일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1937년까지 北京大, 燕京大, 民國大, 朝陽大, 平民大 등에서 한인학생들이 유학하였고 高級中學에도 다수가 공부하였다. 이 가운데 북경대에 한인유학생이 가장 많았고, 사립대는 민국대와 평민대에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나머지 대학에도 적지 않은 한인학생들이 재학하였다. 일제강점기 實名으로 확인된 북경의 한인유학생은 270여 명이고, 유학시기는 1920년대에 집중되었으며, 고급중학이나 大學豫科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들의 전공은 다양했지만 인문사회계가 보편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사상운동이나 독립운동과 관련된 일본경찰 및 영사관 등의 사찰문건과 신문·잡지의 보도를 통해 이름만 확인될 뿐 유학시기, 학교, 전공 등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인원이 일백여 명에 이른다. 한인유학생들이 학업을 끝마치지 못한 이유는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거나 진로를 바꾸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제침략기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보낸 한인청년들의 삶은 荊棘의 길로 근대지식의 습득과 학문적 성숙은 기대만큼 쉽지 않았을 것으로 이해된다.

10중일전쟁시기 딩링(丁玲)의 일본군 성폭력재현과 1956년 전범재판 그리고 피해자 증언의 의미

저자 : 이선이 ( Lee Sunyi )

발행기관 : 한국중국학회 간행물 : 중국학보 80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63-29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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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일전쟁시기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하여 張雙兵의 『“慰安婦”調査實錄』(南京: 江蘇人民出版社, 2014) 등의 구술 자료집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나아가 일본군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중국의 여성주의자 딩링(丁玲, 1904-1986)은 이를 어떻게 문제화했는지에 대해서 그의 작품 「새로운 신념(新的信念)」, 「재회(重逢)」, 「내가 노을마을에 있었을 때(我在霞村的時候)」를 통해서 논하였다. 딩링은 산시성(陝西省)에 있던 공산당 근거지 옌안(延安)에서 전쟁터가 된 화북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일본군의 성폭력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구술자료들이 다루고 있는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의 중층성에 주목하다보면 1941년 옌안에서 딩링이 「내가 노을 마을에 있었을 때」에서 형상화시킨 주인공 전전(貞貞)의 삶과 훗날 딩링과 그녀의 작품이 받았던 비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전쟁 시기 공산당 근거지 옌안(延安)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딩링은 몇 가지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방식의 문제제기는 권장되었지만, 「내가 노을 마을에 있었을 때」의 주인공 전전의 입장에서의 문제제기는 노골적으로 억압되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기억과 망각을 통해 국가의 역사인식을 구성하였다. 그 실마리를 본고는 1956년에 행해진 전범재판의 기록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항일전쟁 승리, 내전 승리 등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잊혀야 했던 역사가 전쟁이 종료되고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 떠올랐다. 일본군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작동된 선별과 권력 작용은 오늘날 피해자가 입을 열고 그것을 기록하는 이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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