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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남래설(南來說) 고찰 - 가야불교의 전래 시점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Hypothesis of Korean Buddhism`s Transfer to the South Coast of Korea From India

이거룡 ( Lee Geo-lyong )
  •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7년 03월
  • : 43-69(27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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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발상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북래설(北來說)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계의 통설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한국불교남래설(南來說)을 고찰하였다. 북래설과는 달리 남래설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중국을 통한 고구려가 아니라 해로를 통한 우리나라 남해안(가야권역)이라고 본다. 남래설이 하나의 학설로 자리잡고 나아가서는 통설이 되려면 문헌이나 사료에만 의존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종교는 일종의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그 전파과정에 대해서는 문화교류사적인 입장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또한 불교의 남래(南來)를 규명하는 과정에서도 단지 『삼국유사』의 쌍어문(雙魚紋)이나 「봉암사지증대사적 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의 기록과 같은 단편적인 사료에 의거할 것이 아니라, 불교를 하나의 “종교적인 종합문화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의 제Ⅱ장에서는 남래설의 중심에 있는 가야불교의 전래 시기에 대하여 고찰했다. 무함마드 깐수(정수일)교수 등 허황옥기사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남래설은 대체로 가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를 허황옥이 가락국에 도래하는 시점으로 잡는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이 보다 이른 시기에 이미 불교가 가락국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제Ⅲ장에서는 허황옥의 출자가 남인도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당시 남인도의 불교 상황은 어떠했는가를 고찰했다. 이 문제는 남래설의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불교의 내용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의문과 관련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기 남인도불교의 거점은 안드라(Andhra)지역이었으며, 이미 기원전1세기 이전에 이 지역에서는 불탑숭배를 중심에 두는 대중부(Caityaka- Mahasamghika)가 유행했다. 실론 테라바다(Theravada)불교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마힌다(Mahinda)비구의 남인도 행적은 또한 이 지역에 테라바다불교가 성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실론과 가까운 타밀(Tamil)의 남부지역은 마힌다비구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The hypothesis that Buddhism entered into Korea through the China has been a common view of our country`s academic world. In this paper, I studied the hypothesis that Korean buddhism was transmitted through the southern region. Different from the hypothesis of Korean Buddhism`s transfer to the north, the southern transfer hypothesis insists that buddhism was firstly came into Korean southern area (Gaya area) by sea route, not by Goguryeo from China. However, to become a wide-accepted theory, the southern transfer hypothesis must show more than just currently available historical records and materials. Because religion is a kind of cultural phenomenon, the process of propagation should be considered from a cultural exchange perspective. In addition, in the process of identifying Buddhism`s southern transfer, it should be recognized as a “religious comprehensive culture.” Dealing with the possibility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India in ancient time, just depending on some words such as “the symbol of twin-fish”, “Ayodhya”, and “Heo-Hwangok” has a limit. In the chapter 2 of this paper, I studied the period of the introduction of Gaya Buddhism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southern transfer hypothesis. Those who accepted the southern transfer hypothesis generally think that Buddhism was introduced to Gaya when Heo-hwangok came to the Garak Kingdom. However, in this paper, the possibility that Buddhism was introduced to Gaya area prior to that time is proposed. In the chapter 3, I considered the Buddhism situation of Southern India from the era of the Buddha to that of Heo-hwangok`s arriving the Garak Kingdom. Historically, the base of early Southern Indian Buddhist was Andhra region, and in this region, Caityaka-Mahasamghika based on pagoda worship was prevalent. The track of the Buddhist monk Mahinda, regarded as the founder of Ceylon Theravada Buddhism, also shows that Theravada Buddhism was prevalent in South India. Especially, the southern region of Tamil, close to Ceylon strongly reflects the influence of Mah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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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8-200-00039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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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8-200-000394264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 등재
  • : -
  • : 계간
  • : 1976-0604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2007-2018
  • :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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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허왕후와 가야불교` 연구에 대한 분석과 방향모색

저자 : 장재진 ( Jang Jae-ji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3-4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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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왕후에 대한 기록은 『三國遺事』 「駕洛國記」와 「金官城 婆娑石塔」 조에서 언급된다. `허왕후`에 대한 존재성 그리고 가야문화와 함께 언급되는 가야 불교에 대한 내용은 역사와 설화 또는 신화의 영역을 오가며 가치의 문제와 함께 진실공방으로 대두었다. 『三國遺事』에 기록된 허왕후에 대한 실존의 문제는 가야의 성립과 배경,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기원 그리고 인도불교의 남방전래설 등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설화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되며 이것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각색 및 윤색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은, 항상 설화의 원형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학문의 방법이 다른 것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또 다른 논란을 도출시킨다. 그래서 끊임없는 담론의 장에 대두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학문적 배경과 다른 논리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연구와 함께 허왕후와 가야불교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 반영된 단행본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에 본고는 허왕후와 가야불교에 대한 여러 종류의 연구를 분류하고 이때까지 진행되어 온 연구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앞으로 전개되어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역사에 대한 논증과 고증을 통해서 사실과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방법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사실은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허왕후 도래 그리고 불교의 전래`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여겨지거나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논쟁에 직면했을 때 역사주의자들의 담론에 갇혀버린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허왕후 출신지에 대해서는 기원전 3세기 인도의 갠지스강 중류지대에 있었다고 알려진 불교왕조 아요디아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이 내용은 『三國遺事』의 阿踰陀國의 허왕후 도래설과 일치한다. 그리고 허황옥과 불교 혹은 가락국 성립 초기의 불교전래 문화와 관련된 견해는 기원 1세기 초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가락국 불교가 전래 및 유포되었다는 설, 허황옥의 불교 전래에도 불구하고 가락국에는 불교가 수용되지 않았다는 설, 허황옥의 도래와 불교 전래는 전혀 상관성이 없으며, 불교의 가락국 전래가 5세기경 인도 방면이나 백제 또는 남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허왕후`에 대한 연구는 `학술 및 학위논문`, `동향 연구보고서 및 정기간행물`,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 `신화나 설화적 관점의 자료`, `소설류`, `학생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저서`, `답사·취재·연재 및 수필 종류의 자료`, `여성학의 관점`, `언어적 고찰`, `성(性)의 역사`, `차 문화`, `철기문명`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졌다. 허왕후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다양한 방식과 종류의 결과물을 도출했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이 있었지만 더 완성에 가까운 연구물이 나오려면 융·복합적인 연구방향과 방법론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고자 함에 있어서 특정 문헌에 대한 연구자의 연구방법론이나 입장만으로는 다른 견해와 방법론을 가진 연구자를 설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신화와 설화 그리고 역사의 경계가 모호하게 넘나든다고 여겨지는 `허왕후`와 `가야불교`에 있어서는 융·복합적인 연구방법을 통해서 부족했던 부분을 상호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한국불교남래설(南來說) 고찰 - 가야불교의 전래 시점을 중심으로

저자 : 이거룡 ( Lee Geo-lyong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43-6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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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발상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북래설(北來說)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계의 통설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한국불교남래설(南來說)을 고찰하였다. 북래설과는 달리 남래설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중국을 통한 고구려가 아니라 해로를 통한 우리나라 남해안(가야권역)이라고 본다. 남래설이 하나의 학설로 자리잡고 나아가서는 통설이 되려면 문헌이나 사료에만 의존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종교는 일종의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그 전파과정에 대해서는 문화교류사적인 입장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또한 불교의 남래(南來)를 규명하는 과정에서도 단지 『삼국유사』의 쌍어문(雙魚紋)이나 「봉암사지증대사적 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의 기록과 같은 단편적인 사료에 의거할 것이 아니라, 불교를 하나의 “종교적인 종합문화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의 제Ⅱ장에서는 남래설의 중심에 있는 가야불교의 전래 시기에 대하여 고찰했다. 무함마드 깐수(정수일)교수 등 허황옥기사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남래설은 대체로 가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를 허황옥이 가락국에 도래하는 시점으로 잡는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이 보다 이른 시기에 이미 불교가 가락국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제Ⅲ장에서는 허황옥의 출자가 남인도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당시 남인도의 불교 상황은 어떠했는가를 고찰했다. 이 문제는 남래설의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불교의 내용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의문과 관련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기 남인도불교의 거점은 안드라(Andhra)지역이었으며, 이미 기원전1세기 이전에 이 지역에서는 불탑숭배를 중심에 두는 대중부(Caityaka- Mahasamghika)가 유행했다. 실론 테라바다(Theravada)불교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마힌다(Mahinda)비구의 남인도 행적은 또한 이 지역에 테라바다불교가 성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실론과 가까운 타밀(Tamil)의 남부지역은 마힌다비구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3백제와 인도와의 교류에 대한 접근

저자 : 이도학 ( Lee Do-hack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71-9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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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기는 한국 역사상 `大航海의 時代`였다. 대항해는 교류처의 다변화를 가져왔다. 그간의 중국 중심의 朝貢的 성격을 띤 교류에서 교역으로 성격적 변화가 따랐다. 교류 목적이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경제적 성격으로 전환 되거나 兩者가 合致되고 있었다. 백제가 印度 및 東南아시아 諸國과 교류한 데는 梵本 佛經의 확보에서 알 수 있듯이 求道的 측면도 배제할 수 없었다. 즉 거국적 차원에서 謙益의 中印度 파견을 통한 敎義에 대한 욕구 충족이라는 敎學的 측면도 분명 존재하였다. 이와 더불어 紫檀木이나 茶種, ?檀香을 비롯한 香·染料·佛具 등을 비롯한 불교 관련 물품의 수입도 절실했을 것이다. 결국 정치적 성격과 경제적 의미까지 복합적으로 내재된 백제의 印度 및 東南아시아 諸國과의 교류는, 조선술과 항해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動因이었다. 그리고 이는 백제 문화의 국제성 확립에도 기여했다.

4『속비구니전』에 등장하는 중국 비구니들의 활동 - 1~3권을 중심으로 -

저자 : 민명숙 ( Min Myong-suk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99-12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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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속비구니전』 6권 가운데 1-3권에 기록된 비구니들의 수행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작성한 것이다. 1-3권에 등장하는 시대는 양-명대까지 해당되며, 그 시기비구니의 수행과 주요 활동을 각 시대의 특징에 따라 발췌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소개된 내용의 특징을 시대별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대략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비구니들의 신앙과 수행에 관련된 내용이다. 양의 총지 비구니를 최초로 소개하고 있는 권1의 내용은 크게 당대 이전과 당대로 나눌 수 있다. 당대 이전의 비구니들은 총지와 같이 선관(禪觀)이나 선혜(禪慧)를 닦는 수행을 했으며, 혹은 경전을 독송하거나 계행을 철저히 지켰다. 경전은 주로 『법화경』을 독송했는데, 당대에는 독송 외에 사경이나 법화 삼매 수행을 했다. 그리고 삼매 수행은 소신이나 사신(捨身)공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권2의 송대 비구니들은 경전 독송 등의 수행보다는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비구니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들은 스승의 인정을 받고 상당법문을 할 기회도 주어졌으며, 당당하게 법을 이은 제자로 등록되어 있다. 권3에는 원대 8명과 명대 16명의 비구니를 기록하고 있다. 원대 비구니 대부분은 선지 식을 참방하고 깨달음을 얻었으며, 비구니 선사의 자격으로서 상당법문이나 선문답을 통해 제자들을 교육하고 법을 전했다. 선 수행이 거의 사라진 명대의 비구니는 철저한 고행과 함께 개인적인 경전 독송 등으로 수행을 삼았다. 둘째, 수행과 더불어 대사회적인 활약이나 전법을 시대별로 정리하였다. 먼저 당시대 이전의 특징은 『법화경』 독송을 통해 얻은 신이적인 모습으로 주위를 감화 시켰다. 당 시대에는 경전을 통한 대중포교, 사찰불사, 구호사업, 제자교육, 사신보시, 선시 등으로 득법제자 외에 일반 대중들의 교화와 이익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송·원·명대 비구니들은 당대와는 달리 개인이 소규모로, 혹은 상황에 따라 대중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로 나뉜다. 송대의 경우, 수행력을 통한 깨달음으로 대중의 존경을 받았으며, 선사나 법사의 자격으로 법문을 하고 대중을 부처님의 세계로 이끌었다. 또는 대장경을 간행하여 대중에게 불교를 전하고자 했다. 전자에 속하는 비구니들은 대부분 명대의 비구니들로서 개인적으로 병든 이들의 치료에 힘을 쏟았으며, 식량이나 의복 등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경전의 내용을 주위에게 알려주거나 신앙을 통한 신이한 모습으로 어려움을 덜어 주기도 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비구니들의 수행과 사회적인 활동은 각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그 시대 위정자들의 불교에 대한 입장과 정책에 따라 활발하게, 혹은 위축되어 소극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5『대불정능엄경』의 전역과 『수능엄경』·『수능엄삼매경』과의 관계성 연구

저자 : 이영 ( Lee Young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31-15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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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년 唐에서 번역된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하 『대불정수능엄경』)은 우리나라 사찰 강원의 4교과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는 등 매우 중요시된 경전이고 중국에서도 149종의 주석서를 가진 경전이다. 그러나 이 경이 번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기부터 위경설이 있어 왔고 최근에는 중국 찬술설까지 대두되었다. 한편 이 경이 번역된 때로부터 500년쯤 전에 이미 이 경과 이름이 비슷한 『수능엄경』·『수능엄삼매경』이 존재했었다. 『대불정수능엄경』에 대한 위경·중국찬술설이 대두된 것은 동일본의 번역자가 2명이 있다거나 傳譯 記事가 역사서인 『唐書』의 기록과 다른 점, 다른 경전과 비슷한 내용 그리고 중국적 색채가 뚜렷한 번역어 등 때문이고 범문 원문이 없으며 역사서에 전역자 기록이 없다는 점도 그 이유가 되었다. 불경은 패엽경으로 편찬된 이래 필사본으로 유통되었고, 전역에 관한 기사는 傳聞 기록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기록과 『당서』와의 다른 점 때문에 위경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또 경전 간 용어·내용의 중복은 다른 경전에서도 매우 광범위하고 나타나 있다. 번역어도 번역자의 선택일 수 있으므로 명백한 증거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명백한 증거도 없이 기록 간 차이나 번역어 몇 단어만을 가지고 표절이라거나 위경 또는 중국 찬술이라는 주장은 합리적 결론이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經錄集인 『出三藏記集』(510~518년)에는 『수능엄경』과 『수능엄삼매경』[또 다른 이름: 『勇伏定經』(291)]이 각각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경전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수능엄삼매경』과 『대불정수능엄경』이다. 이들 두 경은 여래의 힘에 관한 유사한 내용이 있다. 전자에는 여래장과 같은 교리가 있고, 후자에는 여래장이라는 단어가 직접 나타나는 등 두 경의 관계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失傳된 『수능엄경』들, 『수능엄삼매경』, 그리고 『대불정수능엄경』이 동일 경전 또는 같은 계통의 경전인지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불정수능엄경』에 대한 위경설 등의 논란은 재고되어야 한다.

6삼계교 신행선사의 사회적 실천의 보살행

저자 : 권탄준 ( Kwon Tan-j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59-19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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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전쟁과 정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불교교단 또한 전반적으로 타락상을 보이고 있던 남북조시대 말기에, 대승불교 본연의 대중구제라고 하는 근본이념에 따라 민중구제활동을 사회적으로 실천하였던 삼계교의 신행 선사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신행은 불교가 설해지는 시대·장소·사람에 대해서 제각기 3단계로 분류하고, 제3계의 사람은 말법시대의 예토에서 살고 있는 下根機人들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는 이미 제3계의 말법시대로서, 오탁악세의 예토(穢土)에서 무지하고 삿된 소견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제1계와 제2계의 사람들을 위한 특정한 부처와 법을 설하는 별법(別法)이 아니라, 중생의 근기가 하열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일체의 불·법·승에 귀의하여 일체의 악을 끊고 일체의 선을 닦으며 이타행을 실천하는 보법(普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종래의 비구의 생활규범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데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구족계(具足戒)를 버리고 사미승의 신분이 되어 두타행을 행하였다. 하루 여섯 번의 예참(禮懺)을 하고, 걸식으로 1일 1식하며, 거리에 오가는 모든 이를 장래불로서 예배하고, 스스로 노동을 하였다. 그리고 일체중생을 위해 신명과 재물을 끊임없이 보시하려는 서원을 세워 민중구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신행의 사후에 사회복지 시설인 무진장원이 설립된 것은 그의 뜻을 이은 것이라 하겠다. 그가 보이고 있는 보살행의 실천은 말법사상에 상응하여 대승의 이념을 발휘한 것으로서, 대승불교를 이론적으로 연구·강설하여 관념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7량수밍(梁漱溟)의 구원결의론(究元決疑論)과 초창기 불교 이해

저자 : 김영진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91-21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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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사상가 량수밍(梁漱溟)은 1916년 『구원결의론』을 『동방잡지』에 발표하여 학술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글에서 량수밍은 일종의 생명 철학을 전개했다. 그는 인생이 고통을 감각했고,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세계를 에테르의 와동으로 이해했고, 그것을 『기신론』의 홀연염기설과 대비시켰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의식의 흐름으로 파악했고, 유식학과 베르그손 철학을 동원해서 이 점을 해설했다. 『구원결의론』은 량수밍의 처녀작으로 초창기 자신의 불교 공부 성과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홀연염기설과 와동설을 통해서 세계 출현을 설명했고, 유식학의 상속 개념과 베르그손의 지속 개념을 통해서 인간 존재를 설명하고 했다. 이렇게 량수밍의 초창기 불교이해는 고통 타파라는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은 서구적 보편 지식을 동원하여 불교를 보편화하는 과정이었다.

8초기불교에서 까야(kaya)의 은유적 의미

저자 : 김성부 ( Kim Sung-boo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21-24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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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초기불교에서 `까야`(kaya)가 신체나 모임을 의미하며, 이중에서 신체로서의 까야에 대한 용례가 각각 다른 외연을 갖는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외연의 차이는 곰브리치(R. F. Gombrich)의 `은유`(metaphor)의 관점에서 해명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까야에 대한 분석은 초기불교를 보다 더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시모토 테츠오(Hashimoto Tetsuo, 橋本哲夫)는 그의 연구에서 까야의 의미를 정리하였다. 그에 따르면 초기불교 게송(gatha)에서 까야는 1)사람 2)사람들 3)물질적 신체 4)피로와 고통을 느끼는 생리적 신체 5)쉽게 파괴되고ㆍ합성되는 물질적 육체 6)육체 7)몸통과 사지 8)감각기관으로서의 신체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까야가 다른 개념과 합성된 복합어의 용례에서 까야는 신체나 모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하시모토의 연구에는 보완되어야 할 2가지가 있다고 보인다. 첫째, 까야의 연구가 게송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둘째, 하시모토는 까야에 관한 상이한 의미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고 까야의 다양한 의미를 신체라는 범주로 구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본문에서 이 2가지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니까야와 주석서의 산문에서 까야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그 결과 까야는 하시모토가 분류한 신체와 모임이라는 의미로 구획되었다. 하시모토와 필자의 연구를 정리하면, 모임으로서의 까야의 의미는 까야가 다른 개념과 합성될 때에만 나타난다. 모임으로서의 까야 용례에서 각각의 외연은 동일하다. 그리고 신체로서의 까야의 용례를 분석해 보았다. 하지만 모임이라는 까야의 용례와는 달리 신체라는 용례의 외연은 차이가 난다. 필자는 이러한 외연의 차이를 곰브리치의 은유에 대한 관점에서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곰브리치는 어떤 개념의 의미를 경전의 맥락(context)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초기불교에서 범천(梵天, brahman)은 기존의 브라만교(brahmanism, 婆羅門敎)의 범천의 의미와는 다르다. 또한 초기불교에서도 범천은 경전의 맥락에 따라 그 의미를 다르게 함축한다. 여기서 경전의 맥락은 `은유`ㆍ`우화적 비유`(allegory)ㆍ`풍자`(satire)로 결정된다. 곰브리치의 은유에 관한 입장에서 까야의 용례에서 나타나는 외연의 차이는 각각의 경전의 맥락에서 까야가 다르게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입장에서 신체로서의 까야에 대한 용례의 외연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예를 들면 까야는 물질적 신체인 「육체」로 은유된다. 여기서 까야는 `물질적인 것`, `단일한 객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리고 까야는 「사람」이다. 여기서 까야는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단일한 객체`, `인식과 행동의 주체` 등의 `독립적인 개인`의로서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체로서의 까야는 각각의 경전에서 다른 외연을 갖으며, 그 의미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까야는 경전에서 「육체」, 「사람」 등으로 은유되어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보인다. 이러한 분석은 경전에서 나타나는 까야의 외연의 차이를 해명해 준다. 이러한 분석은 경전에서 실질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개념들의 용례를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경전을 보다 더 잘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탐구 방식은 초기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9『상윳따 니까야』에 나타난 사회연대에 관한 일 고찰

저자 : 연이섬 ( Yeon Lee-seom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45-28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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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먼저 프리드랜드의 사회복지 가치 중 하나인 `사회연대성 원리`를 핵심어로 삼아 『상윳따 니까야』를 분석·고찰하여 사회연대성 원리의 태도와 실천행동을 발견해 내고자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이와 같은 『상윳따 니까야』의 내용 중에 있어서 사회연대성 원리의 분석에 의해 경쟁과 경제성장만을 앞세운 결과 현 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간의 깊은 양극화현상이나 지역간의 갈등, 젊은층과 노년층의 갈등 등 양분화 된 상황에 대해 각각의 구성원으로서 화합할 수 있는 사회연대성의 요소들을 찾아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서 『상윳따 니까야』속 붓다의 사회연대에 대한 논리과정을 이해하고 실천적 함의를 밝혀 평등과 사회통합을 강화하는데 관심을 갖는 불교사회복지에 사회연대성의 실현을 위한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사회연대성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은 상호의존해야 하며 타인을 위한 도덕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개인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서로 상호의존하되 인간존엄성을 바탕으로한 각각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하며 타인을 위한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지극한 자기성찰을 통해 좀 더 객관화되는 자신과 통제된 자기를 형성한 후 타인을 위한 이타적 행위에 참여하고 경험하게 될 때 진정한 사회연대성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0『법화경』 「비유품」의 사거에 대한 동물비유의 상징성 연구

저자 : 하영수 ( Ha Young-su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29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81-31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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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비유품」에서는 세 종류의 동물이 끄는 수레의 비유를 설하고 이를 삼승과 연결시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성문승과 독각승의 비유풀이에 대해서, 두 한역본인 『정법화경』과 『묘법연화경』에서는 성문승을 양의 수레로, 독각승을 사슴 수레로 풀이하고 있는 반면, 범어본에서는 대응관계가 뒤바뀌어 있다. 그러나 네 개의 항이 고정되어 있을 경우, 대응관계가 뒤바뀐 두 개의 진술은 허용되지 않으므로, 이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먼저 범어사본 등을 참조하여 문제를 명확하게 하고, 이후 비유되는 동물의 상징성과 불제자의 유형의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했다. 그 결과 가축으로서의 양(aja)의 특징과 성문의 붓다에 대한 의존성이 공통되므로, 양을 성문의 비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또한 사슴(mrga)의 야생성과 독각의 無師獨悟라는 특징이 상통하므로, 사슴을 독각의 비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추정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보살승과 불승에 소(go)의 비유가 사용된 이유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먼저 법화경 자체에 붓다가 소로 비유되는 용례들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또한 실제로 석가모니 붓다의 이름이 최상의 소를 의미하는 `고타마(gotama)`라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은 소를 숭배하는 인도의 문화적 토양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추측되는데, 인도에서 최상의 소는 흰 소이기 때문에 `고타마 붓다`는 `흰 소의 붓다`를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상징성에 의거하여 大白牛車가 佛乘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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